예수는 오클로스를 목자 없는 양처럼 불쌍히 여긴다(6, 34). '목자 없는 양'이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유래하는데, 구약에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여 저들을 돌볼 책임을 진 지배층을 비판하는 전통과(가령 에제 34, 5) 야훼를 배신함으로써 방향을 잃은, 저주받은 군중으로 비판하는 전통(열왕상 22, 17)이 있다. 그런데 복음서에는 후자의 경우는 전혀 없다. 모세가느 그의 후계자 선택을 위한 간구에서 "야훼의 회중을 목자 없는 양떼처럼 버려두지 마십시오"(민수 27, 17)라고 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르코는 예수를 따르는 저 굶주린 오클로스를 지도자 없는 군중으로 보며 동시에 저들은 당시의 지배층에게 소외된 계층임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예수는 오클로스들이 내 어머니와 형제들이라고 선언한다(3, 34). 3장 34절은 "자기를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라는 서술 다음에 이런 선언을 하는데, 그 앞 32절의 "무리(오클로스)가 그를 둘러앉았다가"라는 편집구를 통하여 마르코는 독자들로 하여금 저들이 바로 오클로스임을 알도록 한다. 이것은 혈연적 가족관계에서의 탈출과 동시에 오클로스가 새로운 공동체(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체제에서 보면 용납되기 어려운 선언이다. 그러므로 마태오는 오클로스 대신 제자들(μαθηταί)로 바꾸고 루가는 그 용어 자체를 삭제한다.
예수는 언제나 오클로스를 가르친다(2, 13ᆞ4, 11~12ᆞ7, 4ᆞ10, 1ᆞ11, 18). 특히 10장 1절의 "예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라는 구절은 예수가 오클로스를 언제나 가르치기를 원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오클로스가 그의 가르침에 도취했다(13, 18b)는 내용에 상응하는 것이다(마태오나 루가복음에는 이상의 구절들의 일부가 삭제 또는 변경됐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태오나 루가는 오클로스를 가르침의 대상으로 약화시킨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오클로스를 무시해서라기보다 사도권, 즉 교회의 권위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루가복음에는 5장 1절과 14장 15절 등에서 오클로스만이 가르침의 대상으로 등장하는데, 마르코복음에는 없는 루가의 편집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