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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수를 따른자들

예수를 따른 사람 또는 예수가 언급한 사람들은 다양하지만 사회 계층적 측면에서 볼 때 분명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오클로스라는 전제에서 모범적으로 제시한 것이 마르코 2장 13~17절이다.

 

2장 13~17절의 분석 : 이 본문은 ① 13~14절과 ② 15~17절로 분리된다. ①은 "나를 따르라"(14절)가 중심이고, ②는 기쁨의 만찬석이 중심인데(15절), 서로 독립적으로 전승된 자료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 둘을 연결시킨 것은 마르코의 편집적 작업에 의한 것이다. ①과 ②를 분리시키면 ②에서 레위가 세리인 것을 알 수 없으며, 식사의 의미도 불투명해진다. 다만 이 둘을 연결할 때에만 이 이야기가 제자로 부름받은 기쁨의 만찬으로 나타난다. 루가는 이런 의미를 뚜렷이 하기 위해 레위가 예수를 초대한 것으로 한다(루가 5, 29). 또 ①는 언급되지 않은 제자들이 ②에서(15절) 등장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야기 전체에서 볼 때에는 레위가 장본인인데, ②에서는 그의 역할은 전혀 없고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과 예수 사이에 일어난 죄인들과의 공동식사에 대한 논쟁이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 동기와 결과의 강조점이 각각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마르코의 편집구를 보면 오클로스 이해를 위한 하나의 열쇠를 얻을 수 있다.

이 본문분석에 대해서 여러 견해가 많으나 13절과 15c절이 마르코의 편집구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13b절에는 예수를 따르면서 그의 말씀을 듣는 자들을 "모든 무리"(πάς ό ὄχλος)라고 하고, 15절 상반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은 예수와 그의 제자와 식탁을 같이했다고 한다. 15c절은 이런 사람들이 많이 예수를 따랐다고함으로써 '세리나 죄인'이 오클로스의 범주에 속할 뿐 아니라, 그런 부류들이 압도적이었음을 강조한다.

마르코에는 예수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곧 오클로스인데(2, 22, 4), 그중에 병자들이 압도적으로 많고(15회 언급) 그리고 저들은 배고픈 자들이었다(6, 34~358, 1 이하)고 한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에서보다 루가복음에 훨씬 많이 등장하는 과부도 그중에 포함된다(12, 41~42).

오클로스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이같이 다양한 사람들이 당시의 체제 속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한데, 이중에서 몇 가지 부류의 성격만 밝히면 전체의 사회적 성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본 대로 마르코복음에서의 오클로스의 구체적인 부류로서 '세리와 죄인'을 들었는데, 이것은 Q자료(마태 11, 19)와 루가의 특수자료에도 나온다(루가 15, 1). 마태오복음에는 죄인들이 "세리와 창기"(21, 31)라는 총칭으로 나오는데, 여기서 창기는 이른바 '죄인'의 범주에 두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죄인'이란 개념과 특히 직업을 표시해서 구별한 '세리'의 사회적 성분을 밝히면 오클로스의 윤곽이 밝혀질 것이다.

 

죄인(άμαρτωλός) : 예수가 '죄인'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는 사람이 없다. 그럼 어떤 의미에서 죄인인가? 유다교 전통에서 죄인이라면 일차적으로 하느님 앞에서의 범죄자를 뜻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율법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자에 대한 총칭이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등장 이후에 제사계급에 국한했던 제의적 의무, 즉 정결법을 이스라엘 민족 전체생활에 확대 적용함으로써 다른 양상이 빚어졌다.

예레미아스는 유다 사회에서 죄인을 두 가지 측면에서 규정한 사실을 지적한다. 하나는 일반이 공인하는 범죄자를 뜻하며, 또 하나는 당시에 규정된 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죄인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그는 이들을 구별하면서, 후자를 비도덕적 처세 또는 불명예스런 직업 때문에 일반에게 죄인으로 멸시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직업에 따라 죄인으로 규정받는 것은 그 직업이 직접적으로나 결과적으로 율법을 위반하여서이지 직업 자체 때문일 수는 없다. 가령 그 직업의 성격상 안식일에 쉴 수 없는 자(배꾼, 목자 그리고 창기 등) 또는 몸에서 악취가 나거나 율법에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것을 만져야 하는 직업을 가진 자(가령 가죽 만드는 자, 동 굽는 자, 도살자 등)들은 회중에서 소외되고, 예배참여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아스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그것은 병들었거나 가난하기 때문에 율법을 이행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모두 죄인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이다.

유다교에서 병은 범죄의 결과라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구약의 전통(가령 시편 73편, 욥기 등)은 물론 신약에서도 그런 사고가 가시지 않았었다(요한 9, 12). 그중에서도 특히 나병환자, 혈루병자, 정산병자 등은 정결법과 직결되어 부정한 죄인으로 규정되었고, 저들이 겪는 고통은 천형(天刑)이나, 천벌(天罰)로 간주되었다.(Bill.). 저들은 의도적인 범법자가 아니다. 그들의 처지가 그럴 수밖에 없도록 했거나 혹은 밖으로부터 그렇게 규정받았다.

가난함도 이런 의미에서 꼭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가난이 안식일 법이나 정결법을 다 지킬 수 없게 하였다. 매일 일용할 양식은 가난한 사람들의 주된 기도제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매일'에는 안식일도 물론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저들은 안식일에도 무언가 먹을 것을 찾아 헤매야 했고,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고의적으로 법을 어긴 자와는 다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저들은 죄인으로 취급됐는데, 이것은 체제를 뒷받침하는 법에 의해 단죄된 것이다.

공관복음서 전통은 예수의 적대자로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을 상징적으로 등장시키는데, 죄인이란 개념도 바로 저들에 의해서 통념화된 것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바리사이 체제에서 죄인은 특히 정결법이 확대 적용됨으로써 그 영역이 확대됐는데, 그 결과 천한 직업, 가난함 그리고 병자 등이 이 사회에서 소외되었다. 그러므로 직업에 따른 규정이거나 이른바 '범죄자'이거나 간에 그 체제에서 밀려났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저들은 율법을 범했거나 율법적 체제에 적응할 수 없었기에 죄인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종교적인 죄와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것은 같은 경우의 양면이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당시에 여인들 특히 과부나 어린이 등도 천대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저들도 예수와 접촉한 민중으로서 예수복음의 중요한 관심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이들에 관해서는 후에 다시 언급될 것이다.

 

세리 : 한편 죄인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에 포함시키지 않고 유달리 그것과 병행시켜서 부각시킨 것은 세리이다. '세리와 죄인'이라는 용법은 마르코뿐만 아니라 Q자료(마태 11, 19)와 루가 특수자료에서도 볼 수 있다(루가 15, 1).

마르코복음에서는 세리에 대해서 2장 15절에서만 언급되는데, 그가 세리를 오클로스로서 취급하고, '병자―죄인'이라는 통념 속에 포괄하고(13b, 17절), 예수를 따르는 자 중 그런 이들이 많았다고 한 지적(15a절)은 세리를 민중으로 간주하였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서 중요한 것이다.

세리를 예수의 민중으로 간주했다면, 그 민중은 민족주의나 경제적 측면에서 소외된 자로 국한할 수 없다. 세리는 로마제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부류이며, 또 가난한 계층이라고 성격지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르코는 세리 레위가 만찬에 초대할 만한 경제적 여유를 가진 자로 서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리의 성분을 일괄해버리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그중에는 치부한 자도 있으나 가난한 자도 있으며, 로마제국의 경제착취의 앞잡이로 청부를 맡은 층도 있으나그런 자들에게 고용되어 일정한 업무만 수행하는 직책도 얼마든지 있었고, 저들 중에는 시간제로 고용된 자도 많았다. 이들이 모두 그 사회에서 '세리'로 취급되었는데, 그들이 무엇보다도 민족감정에서 소외된 것은 저들이 자주 이방인과 동일하게 지칭된 것에서도 볼 수 있다(이런 용법은 마태오에 있음. 5, 46~48 참조. 6, 76, 3210, 5).

한편 Q자료로서 유명한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보라, 저 사람은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마태 11, 19; 루가 7, 34)는 마르코의 전승과 부합된다. 그리고 이런 부류를 포용한다는 것은 예수 당시가 반로마운동이 마침내 게릴라전 형태를 띠어 그 민족의 호응을 받는 때이고, 또한 무엇보다도 세금정수를 전제로 한 호구조사 때부터 반기를 들고 주로 갈릴래아 지방을 본거지로 하여 세금납부 거부를 당면 투쟁목표로 했던 때이며, 라삐 전통에서까지도 세리를 단죄하여 살인자 또는 강도와 함께 나열할 정도(Ned III, 4면 : Bill. I, 379면)였음을 상기하면 그 의미가 크다. 어째서 마르코는 이들을 오클로스의 범주에 포함시켰을까?

우선 그것은 예수전승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예수전승의 특징은 그 동기가 어떻든 그 공동체에서 소외되어 멸시당하는 계층은 무조건 포용한다. 세리는 민족감정에서만이 아니라 특히 종교 지배층, 지주 그리고 부상(富商)들에게 배척받았음은 그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에서만 봐도 분명하다. 세리에게는 유다 경건생활의 하나인, 가난한 자를 위한 헌금의 권리도 거부됐으며(BQ 10, 1~2), 유다 법정의 증인으로도 용납되지 않았다(Babylon Talmud).

 

죄인과 세리에 대한 예수의 입장 : 마르코는 "왜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과 같이 식사하지요?"라는 비판에 대한 대답으로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없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 16b~17)는 어록을 결부시킨다(후에 언급). 이로써 위에서 이미 지적한 대로 세리도 이른바 죄인에 포함시키고, 그는 바로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고 한다.

여기서 '부르러'(καλέσαι, to call)라는 뜻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루가의 경향에서 볼 수 있듯이 '회개한 죄인' 또는 '회개시키기 위해서'라는 뜻과는 다르다(루가는 세리, 죄인 등을 많이 등장시켜 그의 관심을 표명하지만, 언제나 '회개한 죄인' 또는 '회개하는 죄인'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루가 15장 7, 10, 18절 참조). 이런 조건은 마르코복음에는 없을 뿐 아니라 '제자로서 부른다'는 뜻을 지닌 단어인 kales를 사용한다(1, 2021 참조).

이런 기본적인 예수의 자세는 그 밖의 부류인 환자, 어부, 여인, 어린이 등에서도 동일하다. 세리는 저들과 다른 점이 많으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 체제에서 소외되어 있고, 따라서 멸시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이 사실과 함께 예수의 제자 중에 세리와 함께 열혈당원도 포함되었다는 사실(마르 3, 18)을 감안하면, 예수의 민중에 대한 자세가 결코 정치구조 아래 눌린 자에 국한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말은 예수가 지평적 인간관계를 무시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이 점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치료한 병자들에 대한 예수의 행태가 보여주는 다른 면이다.

 

병자들 : 병은 다른 불행과 마찬가지로 '죄의 결과에서 온 벌'이라는 생각이 유다교에서는 자명적인 것이었다(J. Schniewind). 복음서에도 이런 사고의 흔적이 있다(요한 9, 1 이하의 제자들의 질문; 루가 13, 2; 마르 2, 5 등 참고). 이런 관념은 특히 정결법을 일반에게 확대한 바리사이파의 지도권 형성 이후에 뚜렷해졌다. 그러므로 나병환자, 정신병자, 혈루병자 등은 특히 소외되었다.

복음서에는 병자들이 무수히 등장하는데 많은 경우에 저들은 가족과 그 동리에서까지 버림받은 상태에 있음을 암시한다. 병자가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가난 때문이기도 한데, 병자는 정결법에 저촉되므로 종교적으로도 소외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불행이 죄값이라는 관념은 저들을 공동체에서 배제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도록 했다.

마르코 2장 5b절에 근거해서 예수도 이같은 전제를 가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것은 옳지 않다. 마르코 2장 5a절에서 믿음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병자의 믿음이 아니고 그를 메고 온 사람들의 믿음이다. 이런 경우가 이 밖에도 두 번 더 있다(5, 369, 23). 그런데 이 믿음은 이른바 '속죄에 관한 믿음'과 전혀 상관없는 단순한 신뢰를 뜻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일 이 텍스트에서 죄 사함에 비중을 둔다면, 그것은 하느님 나라가 도래함으로써 낡은 체제나 그것에서 이루어진 관념에서 해방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J. Schniewind 등이 이와 비슷한 이해를 하고 있는데, 요한 9장 2~3절에 대해서 이런 입장을 뚜렷하게 표명한다).

이런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치병(治病)설화의 성격이다. 그중에서 지적할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들의 대부분이 그들의 거처를 떠나 방황하는 소외상태에 있다는 점이요, 또 예수는 치유 후에 대부분의 경우 저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점이다(후자는 荒井 獻의 지적이다). 특히 2장에 치병설화가 집중되었는데, 첫째 설화인 나병환자 치유가 그 표본이다(『예수의 행태』, 40면 이하). 예수의 치병설화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치유대상이 나병환자라는 점인데 그들이야말로 정결법에 의해서 소외된 대표적인 병자이다(Bill. I, 474면에서 문헌 참조).

둘째, 그는 집 안에서도 격리되어 있었다.

셋째, 환자가 제사장에게 보임으로 깨끗해진 데 대하여 모세가 명한 예물을 바치라고 지시하는데, 예수가 제사장에게 보이라는 것은 그가 나병환자가 아니라는 확증을 받아 그를 소외시킨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바로 생존권으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어린이의 경우(5, 35 이하7, 24 이하) 또는 분명히 다른 목적으로 서술된 치유설화(3, 1 이하) 외에는 모두 "집으로 가라" 또는 "가라"로 끝낸다(2, 115, 195, 348, 2610, 52). 그중 5장 19절은 병을 고친 자가 예수를 따라가기를 원했다고 함으로 더욱더 "집으로 가라"는 예수의 의도가 강조되어 있다. 그것은 그에게로 '부른다 '와는 다른 측면의 경우로서 이 사회로의 복권(復權)이라는 뜻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List of Articles
바알 (열상 19, 18)
남은 칠천 명 (19, 7-18)
민중의 손으로 통일되는 날 (아모 9, 11-15)
겨울은 가고 (에제 37장)
에제키엘이 무등산에서 절규한다 (에제 24, 6-8)
포로에서의 탈출 (이사 66, 1-8)
위정자와의 대결 (이사 7, 10-14)
   
제5부 새로운 존재
일상성과 비일상성 (루가 10, 38-42)
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창세 3, 1-10)
새로운 인간상 (창세 12, 1-9)
믿음의 조상 (창세 22, 17-18)
두 사이 에 손을 얹을 판결자 (욥기 9, 25-35)
하느님으로부터의 도피 (시편 139편)
하느님의 웃음 (시편 2편)
잠과 신앙 (시편 127편)
교회란 무엇인가 (로마 8, 9-30)
인간을 말한다 (마르 12, 28-34)
존재 근거 (시편 42편)
우주의 품으로 (시편 8,3 이하)
   
판권
표지
예수의 민중사건 : 『민중과 성서』를 내면서
   
제1부 복음서와 민중
   
예수와 민중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전제
    2. 마르코복음 안의 오클로스
    3. 마르코복음에 나타난 오클로스의 성격
        1) 오클로스의 성격
        2) 오클로스에 대한 예수의 행태
        3) 종합
    4. 예수를 따른 자들
    5. 마르코복음 안에 있는 어록
    6. 오클로스의 언어학적 의미
        1) 라오스와 오클로스
        2) 오클로스와 암 하 아레츠
    7. 종합
마르코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1. 전제
    2. 마르코의 삶의 자리
    3. 마르코의 민중신학의 기조
        1)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14a절)
        2) 갈릴래아로 가다
        3) 하느님 나라의 도래 선포
    4. 민중의 행태
예수사건의 전승 모체
    1. 문제 제기
    2. 케리그마의 성격
        1) 고린토전서 15장 3~8절
        2) 필립비서 2장 6~11절
        3) 사도행전에 나타난 케리그마
    3. 민중언어의 성격
    4. 수난사
    5. 예수의 행태 일반
        1) 기적 이야기와 예수의 행태
        2) 아포프테그마와 예수의 행태
        3) 로기온(Logion, 어록)과 예수의 행태
    6. 결론
가난한 자 : 루가의 민중 이해
    1. 가난한 자
        1) 통계적 고찰
        2) 루가의 특수자료
        3) 예수의 탄생설화와 나자렛 선언
        4) 마르코와 Q자료
    2. 루가복음서의 청중
    3. 결론
마태오의 민중적 민족주의
    1. 문제 제기
        1) 마태오의 신학적 주제에 대한 논의들
        2) 문제 제기
    2. 마태오가 처한 현실
        1) 마태오와 그의 시기
        2) 민족적 와해 위기
    3. 마태오의 현실인식
        1) 이스라엘 : 길 잃은 양들
        2) 길 잃은 양이 놓여 있는 현실
    4. 민족동일성 재확립
        1) 뿌리 찾기
        2) 바리사이파가 주도하는 라삐 유다교와의 대결
    5. 마태오의 민중 이해
        1) 언어적 성격
        2) 의식화된 민중
    6. 맺는 말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예수사건의 재발견
    2. 마르코복음과 민중
    3. 민중은 수단이 아니다
    4. 민중은 객체일 수 없다
    5. 십자가는 민중수난의 극치다
민중신학의 어제와 오늘
    1. 독재와 대항하므로
    2. 민중을 만나므로
    3. 민중과 더불어
   
제2부 민중운동사
   
민중사건과 언어사건
    1. 성서에서 본 말의 성격
        1) 그 말의 현장은 어떤 것이었나
        2) 예수의 경우
        3) 예수사건에 관한 전승
        4) 오순절의 말 사건
    2. 무엇으로 말하는 것인가
    3.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4. 우리가 해야 할 말
미래는 가난한 자의 것 : 루가 6장 20~26절
    1. 축복과 저주
    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3. ‘지금’과 ‘장차’
    4. 우리의 선택
나라가 임하옵소서
    1. 예수의 기도
    2. 그의 기도를 전달받은 자들
    3. 하느님의 나라
고향 잃은 민중
    1. 피난민
    2. 성서에서 본 피난민문제
    3. 게르(GER) 문제 해결의 시도
    4. 이방인에 대한 관용의 한계
    5. 당면한 과제
        1 ) 새로운 인식을 위한 운동
        2)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제언
이스라엘 민중사
    1. 머리말
    2. 출애굽
    3. 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
    4. 민중을 배반하고 세워진 왕권
    5. 분단시대의 고난
    6. 민중운동의 여러 계열
    7. 예수의 민중운동
    8. 맺는 말
   
제3부 민중과 체제
   
민중사실의 증언
    1. 민중신학의 전제들
    2. 민중사실의 증언
고난과 고백
    1. 수난자와의 일치
    2. 마르코의 민중
    3. 수난사와 고난
    4. 더불어의 고난
    5. 맺는 말
갈릴래아 민중에 항복한 바울로
    1. 바울로의 위치
    2.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3. 그리스도교 박해
    4. 예수를 만남
    5. 전향
    6. 맺는 말
소명(召命)
    1. 바울로의 소명
    2. 사도 됨과 소명
    3. 이방인에게로
바울로와 역사의 예수 I
    1. 머리말
    2. 예수에 대한 바울로의 말
    3. 예수냐 바울로냐
    4. 왜 예수가 아니고 케리그마인가
선택받은 민중: 고린토전서 1장 26~31절
    1. 고린토교회 구성원의 사회계층
    2. 공동체원의 가치 판단 기준
    3. 민중을 보는 눈
    4. 택함을 받은 민중
   
제4부 예수의 희망
   
하늘도 땅도 공(公)이다
    1. 낙원 이야기
    2. 아담一인간
    3. 실락원은 공을 사유화함으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마르코 16장 1~8절
    1. 제3의 자리
    2. 갈릴래아
    3.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예수의 희망
    1. 새 세계에의 희망
    2. 희망과 세계혁명
    3. 바른 인간공동체의 희망
    4. 맺는 말
   
판권
표지
예수는 논하지 않았다
   
제1부 민중의 언어, 이야기
   
1. 성서라는 책의 성격
2. 성서의 서술양식
    1) 구약성서
    2) 신약성서
    3) 민중언어
   
제2부 예수의 이야기(비유)
   
1. 만성병에 걸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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