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마르코는 오클로스라는 용어를 신약에 도입한 자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예수를 따르던 자, 그리고 예수가 편애하던 자들을 오클로스라는 명칭으로 나타냈다고 했다. 그러면 이 말의 언어학적 전통을 물을 필요가 있다. 이 물음으로 마르코가 이해한 민중의 의미가 더 분명해질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키텔(G. Kittel)의 『신약사전』(Theologisches wörterbuch zum N.T.)을 중심으로 한 자료제시와 분석을 전제로 하고 그 특성만을 집약하겠다.
(1) 신약 이전의 경우
'라오스'(λαός)를 도입해서 유다 사회에 크게 그 의미를 부각시킨 것은 70인역 성서이다. 거기에는 히브리어 '암'(Am)을 '라오스'로 번역한 것이 무려 2천여 회나 된다. 그런데 그것은 오늘날의 '국민'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 압도적이다. 이것은 어떤 통치적 공동체에 속했다는 뜻이다. 가령 "파라오의 라오스"같은 표현이 그런 예인데, 그리스의 호머(Homer), 핀다르(Pindar) 그리고 헤로도트(Herodot) 등에서 볼 수 있는 용법이다. 그런데 라오스 용법에 있어서 70 인역 성서의 특징은 '민족'이란 뜻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으로서, 특히 이스라엘 민족을 이 말로 표시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을 표시하는 경우에는 'Am'을 라오스로 번역한 데 비해, 비이스라엘 민족은 'έθνος'로 번역한 경우가 많다. 특히 '하느님의 민족 Am'이라는 경우는 어김없이 라오스를 사용한다. 70인역 성서의 라오스 용법에서 지적할 또 하나의 특징은 'λαός'의 복수인 'λαοί'가 140회 가량 사용되었는데, '무리'처럼 '오클로스'와 통하는 뜻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라오스를 구성실체로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주목된다. 이 사실은 70인역 성서의 'λαός'에 속민 또는 천민성이 거의 나타나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요한 특징이 된다.
이같은 전통은 라삐문서에서도 계승된다. 라삐문서에서 라오스를 비이스라엘 민족을 지칭하는 경우에 사용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에는 '율법을 범했다'와 같은 단서가 붙어서 이스라엘민과 구별한다. 그리고 디아스포라(Diaspora) 유다교의 비문에 단순히 라오스라는 말로 이스라엘을 표시한 예가 많다.
이에 비해서 '오클로스'는 불과 60회 가량(H. Bietenhard) 나오는데, 그것도 구약문서 중 고대에 속하는 것에는 전혀 없고 후기문서에서만 볼 수 있다.
오클로스는 민중을 뜻하는 '하몬' 외의 여러 단어의 번역인데, 그 여러 가지 용법의 공통점을 성격화하면 무리(crowd)이다. 그 용어 안에는 집단체 또는 한 집단의 일원이라는 뜻이 없다. 가령 '이스라엘 무리' 또는 '이방인의 무리'라는 표현이 이같은 성격을 분명히 나타낸다. 이러한 소유격은 결코 소속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리스 문헌에서 핀다르(Pindar) 이후에 등장하는 이 용어는 결속된 어떤 집단이나 조직화되거나 목표를 뚜렷이 한 계층이 아니라 무질서하고 갈팡질팡하는 다수 또는 전투부대에 예속됐으나 부차적인 위치에 있는 계층을 지청할 때 사용되는데, 고용병 또는 종군 비전투원 등 군에 이끌려다니는 노예 따위나 강제로 일에 동원되는 무리를 말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무명의 사람들이 지배계층과 대립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인데, 이것이 무식하며 소동스럽고 짐스러운 무리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과 더불어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암시받는 바가 많다.
70인역 성서는 대체로 이러한 그리스적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매스(Mass)다. 매스는 일반적으로 그것에 형용구가 붙는 데 따라 가변적이다. 그것은 폭도도 될 수 있고, 용병도 되고, 무색(無色)한 다수개념도 된다. 때로는 아이들, 여인들의 무리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것은 라삐문서에서도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마르코는 예수의 민중을 바로 '오클로스'로 지칭했다.
(2) 신약의 용법
신약은 70인역 성서와 비교할 때 이 두 용어의 사용 빈도수가 정반대다. 신약에서는 라오스가 141회 나오는데, 오클로스는 174회나 나온다. 그런데 라오스는 루가문서에만 84회(H. Bietenhard)가 되는 것으로 보아 루가는 라오스에다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루가의 라오스 용법에 초점을 맞추면 그 뜻은 분명해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몇 가지 특이한 점만 지적하겠다.
첫째, 루가는 마르코의 영향에 의해 비록 오클로스를 많이 쓰지만, 오클로스는 라오스와 같은 의미로 쓴다.
둘째, 그러나 루가는 다른 민족(έθνος)과 구별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라오스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루가 19, 47ᆞ22, 66; 사도 4, 8ᆞ23, 5 등). 이런 라오스 용법은 70인역 성서의 영향임에 틀림없다. 이와 관련해서 주목할 것은 비기독교인으로 기독교를 박해하는 유다인들을 오클로스 또는 오클로이(όχλοι)로 지칭한다는 점이다.
셋째, 루가복음에도 라오스를 권력자와 대립시킨 데가 있는데, 그것은 마르코의 오클로스의 성격과 같다. 그런데 'οί άρχιερεις καί γραμματείς τού λαού'(백성의 제사장이나 서기관)나 'οί πρεσβύτεροι τού λαού'(백성의 장로) 따위의 표현을 통해서 보면 루가는 라오스와 지배층을 한패로 몰고 있다.
이에 대해서 마르코가 오클로스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예수를 따르는 무리의 성격을 뒷받침하는 것인데, 여기서 한 가지 더 분명해지는 것은 마르코의 오클로스는 결코 유다민족이라는 집단이나 한걸음 더 나아가서 유다 민족 사회의 지배층을 소유격으로 오클로스와 결부시킬 여지는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