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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느님 나라의 도래 선포

하느님 나라의 대망은 고난의 장에서 형성된 것이다. 예수시대를 지배하던 묵시문학의 선구를 다니엘서로 보는데, 그것은 셀류커스의 안티오쿠스 4세(일명 Epiphanes, B.C. 175~164년)의 악랄한 박해 때에 씌어진 것이다. 이 묵시문학은 그 뒤로 A.D. 2세기까지 줄기차게 세력을 형성해왔는데, 그 시기는 이스라엘민에게는 최악의 시기였다. 그 사이에 나온 묵시문학으로는 에녹서83)에녹서는 에티오피아판과 슬라브판이 있는데, 전자는 에티오피아 교회의 Kannan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유다서 14~15절에도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로마시대의 저술이다. 모세승천 기록, 제4에즈라서, 바룩서 등이 있고 신약에서는 계시록이 유일하다.

학자들은 묵시문학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을 내세우며 또 많은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역시 묵시문학을 수난당하는 민중의 운동―그것이 생존을 위한 것이건, 싸우기 위한 것이건―이라는 맥락 속에서 보기보다는 그것들의 사상의 계보를 따지고 차이들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는 종교사학파의 관심사인 종교 현상으로 보는 데 치중하였다는 것이다. 묵시문학파의 발상이나 표현은 지나치게 현학적이기 때문에 분석을 꾀하는 데서 그 핵심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묵시문학은 통틀어 억압당한 민족의 사무친 한을 다양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저들은 묵시문학을 통해 분노와 복수심, 자기 한계에 대한 한탄, 세상에 대한 증오 그리고 새 세계를 그리는 애원, 힘의 한계를 처절히 경험하는 데서 오는 초월자의 기적적 관여, 심판, 새로운 통치 등을 갈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묵시문학의 연구에 있어서 '수난당한 민중의 절규'라는 대전제를 뺀 어떤 학문적 노력도 별 가치가 없다. 어떤 이들은 묵시문학의 주제들의 계보를 찾아서 나열하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런 주제들을 선택한 자의 삶의 자리를 망각하며 처절한 삶의 절규를 심미의 대상으로 삼아버린다. 따라서 묵시문학의 어느 책이든지 그것을 묵시문학파의 학설 또는 교본처럼 전제하고 연구하는 자세는 피해야 한다.

묵시문학은 상호간의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떤 표현을 빌려오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들은 꼭 유다적이려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일부러 이방적이려고 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살려고 한 것뿐이다. 현재가 악한 원수에게 지배되어 영구할 것으로 보이고 그것을 물리치기에는 자신들의 힘의 한계가 너무도 분명하니까 하느님이 두 에온(aeon, 시대시간)을 창조 때에 만들였다는 생각을 자기들의 신념으로 만들어 절망에서부터 자기를 구원하려고 한 것이다(에티오피아 에녹서). 이렇게 해서 저들은 역사는 많은 곡절과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쳐서 결국 낡은 역사는 종말을 고하고, 보이지 않는 데(하늘)서 하느님이 세계의 왕들의 나라와 대조되는 영원한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확신에 도달한다(다니엘서).

그러나 현재의 고통이 견디기 어려우니까 감옥에 간 자식이 돌아올 날짜를 셈하듯 숫자세기도 발달했는데, 가령 고난시대를 3년 반(다니엘서)이라고 한 것은 바빌론에서 완전수로 신격화된 7의 반을 표시함으로써 절대로 죽기까지 고통당하지 않는다는 위로를 삼은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날로 피안적 색채를 띠기 시작한 하느님의 왕국(그의 직접통치)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인 것으로써 바로 수난의 장에서 저들의 혁명에 대한 염원이 저들로 하여금 창세 6천 년 이후 천년왕국시대84)서남동은 천년왕국설을 중요시하나 성서에는 계시록 20장에 단 한 번 나올 뿐이다. 단 바나바서에는 천년안식시대가 언급되고 있다.의 비전을 보게 한 것이다.

하느님의 직접통치 전에 '사람의 아들'이 모든 통치권을 이양받고, 모든 땅의 주권과 그들의 착취로 이룬 영광에 종식을 가져올 것이다(다니엘서). 이 인자는 왕들과 권력자들을 그 진영에서 내쫓고, 강자들을 그 권좌에서 내몰며, 강자가 맨 사슬을 풀고 악인의 이를 부술 것이며(에티오피아 에녹서), 의로운 자와 그 집단을 자유로 이끌고 메시아 축제로 이끌며, 새로운집단의 왕으로서 다스릴 것이다(에티오피아 에녹서 62, 9~1069, 26~29).

이러한 신념이 바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민중의 글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성격은 어느 한 지역의 고유한 현상이 아니라 보편성을 지닌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오랜 수난의 역사를 거듭한 민족이지만, 특히 에피파네스 이후 마카베오전쟁, 로마의 점령정치, 헤로데 왕가의 횡포, 역대 총독들의 잔인성 등으로 질곡을 헤맨 민족이지만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절규와 애원은 새 세계, 즉 하느님이 직접 통치하는 현실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해야 할 것은 북이스라엘보다 후에 망했다가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남유다계를 지배하는 예루살렘파이다. 나는 편의상 예루살렘파와 탈(反)예루살렘파로 구분한다. 예루살렘파는 대사제를 정상으로 하는 사제귀족, 산헤드린 구성원 그리고 바리사이파 등이 대표하며 탈예루살렘파는 에쎄네파(쿰란), 세례자 요한파, 젤롯당 그리고 예수이다. 그리고 후자의 선구는 마카베오전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고 그렇게 해서 세워진 하스몬왕가의 타락에 분노하여 탈예루살렘한 하시딤이라고 본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예루살렘파는 언제나 어용적이었으며 종말사상이나 하느님 나라 도래를 사실상 거부하는 풍조가 지배적이었다는 사실이다.85)Goppelt(Christentum und Judentum in ersten und zweiten Jahrhundert, 1954, S. 64)는 종말신앙이나 메시아 대망은 대사제권에서는 그들의 실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거부했다고 한다. Baron(op. cit., II, S. 35)은 그런 대망계층에서도 하류계층이었다는 전제 밑에 Goppelt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E. Stauffer(Jerusalem und Rom, Bern, 1957, S. 103)는 서기관 계열의 반(反)메시아 대망입장을 밝힌다. 바리사이파는 사상적으로 하시딤 계보이며 따라서 묵시문학 영역에 있었으나 유다교에 대해 지배세력이 됨으로써 사실상 비종말적이 됐다. Hengel은 라삐문서에 메시아 대기가 결여된 것을 인정하면서 그것이 완성된 무렵인 주후 2, 3세기는 그런 것을 기록하기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면서 에쎄네나 초대교회에 생생했던 내림임박의 대망이 바리사이파에도 전제되어 있었다는 것은 이미 死物化된 개념으로 남아 있었다는 말 이상이 아니다. 바리사이파는 갈릴래아 유다의 운동을 갈릴래아 이단자라고 하고, 갈릴래아 유다가 바리사이파가 이혼장에 모세법 외에 기존체제의 권력자의 숭락을 받는 것을 비판하는 데 대한 반론의 자세가 그들의 대권력 자세를 잘 드러낸다(M. Hengel, op. cit., S. 585 참조). 그것은 쉽게 납득이 간다. 까닭은 저들은 기존체제의 특권자요, 그러므로 그 수호자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떤 혁명적인 것도 배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상에서 묵시문학이 고난과 함수관계에 있으며, 안전지대에 있는 계층일수록 도그마의 정립과 상관없이 사실상 민중들의 묵시문학적 염원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비추었다. 이로써 하느님 나라 도래를 어떤 계층이 기다렸는가를 밝히려는 한 단계를 넘었다.

유다 사회에서는 유다전쟁 훨씬 이전부터 메시아사상과 관련시켰거나 아니거나 간에 세계종말사상은 가난하고 억압당한 계층과 직결돼 있었다.86)H. Kreissig, op. cit., S. 104f. 브랜던은 특히 날품팔이에게서 메시아 대망이 강했다고 한다.87)S.G.F. Brandon, op. cit., S. 156. 루가편자가 메시아 도래와 가난한 자와 눌린 자의 해방을 직결시키는데(4, 18이사 61, 1~2) P.Oxy. 12장 6~9절에 보존된 "돌을 들어라. 그러면 너는 나를 발견하리라. 나무를 빠개라. 나는 거기 있으리라"는 어록은 노동하는 자와 메시아의 깊은 관계를 암시한다.88)IQsb v 21. 또 쿰란문서에는 "가난한 자들이 정의를 심판하여 왕과 권력자에게 비웃음과 멸시가 있을 따름"이라는 예언이 있다.89)Baron op. cit., II, S. 35.

한편 특히 주목되는 것은 헬레니즘 영역에 위기가 왔을 때 종말사상이 급속히 퍼져나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만큼 저들도 생존의 위협을 당한 탓이며 동시에 저들도 새것, 새 나라를 기다렸는데 이것은 기존질서의 종언에 대한 애원과 새것이 내 편이라는 무조건적 신념을 토로한 것이다. 바론(Baron)은 이런 풍조가 하류계층에서 파생했음을 입증한다.90)M. Hengel, op. cit., S. 42ff.

젤롯당운동은 하느님 나라 또는 통치자 메시아의 내림 또는 통치를 행동으로 열망한 큰 민중운동으로서 에피파네스의 폭정 이후에 발생하여 마카베오봉기에 가담한 하시딤에 정신적 뿌리를 박은 대표적인 메시아 운동체이다. 이들의 성분을 살펴보는 것은 위의 관찰에 대한 좀더 구체적 입증이 될 것이다.

요세푸스가 젤롯당을 '강도때'(ληστάι)라고 부른 것은91)Jos., Ant., S. 18, 7. 요세푸스 자신이 변절한 자로서 로마에 붙어먹고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에 근거한 규정이기도할 것이다. 그는 저들에 대해 "큰 강도떼가 계속적으로 습격을 감행하고 가장 유력한 사람들을 죽였다. 표면상으로는 공동의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상은 사리사욕 때문이다",92)Jos., JB., 7, S. 256, 264. 또는 "그것(자유의 요구)은 그들의 가면이고 그것으로 저들은 저들의 잔인성과 사욕을 감추려고 했다는 것은 그들의 행동이 입증하는 대로다"93)M. Hengel, op. cit., S. 335.라고 말한다. 이같은 요세푸스의 말을 반드시 전부 무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들은 실제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자유를 달라는 것도 사실이지만, 워낙 가난한 계층인데 다 그 싸움의 형태가 남의 물건을 약탈하지 않고는 지속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도적떼가 무수히 많았고, 그 행태가 젤롯당과 대동소이했을 것이며, 또 사실 순전히 도둑이면서도 독립군 행세를 한 패들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세푸스의 주장에서 점점 분명해지는 한 가지 사실은 그때 그만큼 거덜나서 정상생활을 할 수 없는 계층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조(李朝) 양반의 세도정치로 피폐한 때에 주로 거덜난 농민이 중심이 되어 곳곳에 도적떼가 성하여 점차 서강단(西江團), 폐사군단(廢四郡團), 유단(流團) 등의 이름까지 내세운 떼들이 많았는데 저들은 그럴듯한 뜻을 표방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도둑질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중 규모가 큰 것이 홍경래의 난, 진주민란이었고 이러한 저항운동이 바탕이 되어 후에 동학농민봉기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저들은 한편에서 보면 애국자요 다른 한편에서 보면 도둑때였듯이, 갈릴래아 중심의 젤롯당운동도 그러한 여건에서 출발했을 것이고, 그것과 비슷한 양상을 띠었을 것이다. 요는 가난이 직접적 원인이 되었고 그것은 새 현실, 새 세계를 갈망하는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저들은 대지주나 세무관의 집에서 쫓겨난 농부들, 탈출한 졸병, 노예, 목동같이 '무소유' 계층이었다.94)Jos., Ant., 18, S. 274; 20, S. 256; M. Hengel, of. cit., S. 34. 그중 거덜난 소농 둘이 압도적이어서 그들의 수는 날이 갈수록 증가되었다.95)J. Klausner, S. 252f., 259; H. Kreissig, of. cit., S. 113. 이들은 점차 무장부대가 되어 A.D. 1세기 중엽에는 갈릴래아 산악지대에 집결했다.96)M. Hengel, op. cit., S. 26.

저들의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억압당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로마 세무관을 습격하고97)M. Hengel, op. cit., S. 38 : J. Ziegler, Die Konigsgleichnisse des Mid rarch beleuchtet durch die römische Kaiserzeit, Breslan, 1903, S. 93. 헤로데왕 개인의 포도밭을 전멸하다 지주에게 살해되고, 국가권력에 의해서 체포되는 일이 다반사였다.98)Jos., JB, 5, S. 271f.; Ant., 17, S. 273ff.; W. R. Farm er, "Judas Simon and Athronges", NTS4[1957/ 58], pp. 147~155. 이러한 민중으로 구성된 젤롯당은 누구보다도 하느님 나라의 도래 또는 메시아 대망에 가장 열렬했다는 것은 그들의 삶에서 나온 절규임과 동시에 그 올 세계는 바로 그들의 편이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저들에게 메시아운동이 큰 호응을 받았다. 헤로데왕이 죽은 뒤 일어난 민중봉기의 지도자 중 하나는 노예 출신인 시몬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당시 천직으로 규정된 목동 아트롱게스(Athronges)였는데, 이들이 왕관을 쓰고 왕으로 자처했어도 민중은 그들의 그런 행동에 저항감을 갖지 않았고 그들을 추종했다.99)Jos., Ant., 17, S. 271f.; E. Stanffer, Die Botschaft Jesu damals undvheute, 1959, S. 112. 갈릴래아 유다는 메시아로 추앙되었으며100)Jos., JB, 2, S. 434. 최후에 예루살렘을 진격한 유다의 아들 므나헴도 메시아적 의식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했으되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 따랐다.101)Theudar는 요르단 강을 둘로 가른다고 호언했다(Jos., Ant., 20, S. 97ff). Josnas Sopherot는 예리고 성을 기적으로 파괴한다고 했고(J os., Ant., 20, S. 169~172), 사마리아의 Dositheus는 그리짐 성전에 필요한 기물을 기적으로 땅에서 파내리라고 했으나(H. Kreissig, op. cit., S. 109) 민중은 따르지 않았다.

민중에게는 메시아가 왕의 신분 출생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없다. 그렇다고 어떤 초자연적 능력의 소유자를 전제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약속을 하면서 사람을 모으려는 자들102)이 분석에 대해서는 H. E. Tödt, Der Menschensohn in der synoptischen Überlieferung, 1959와 F. Hahn, Christologische Hohertitel, S. 13~53을 보라.은 실패했는데 위의 사람들은 단지 저들과 운명을 같이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들이 메시아로 추앙받았다는 것은 저 민중의 메시아관이 이른바 신학적 수준에서 사변적으로 정립한 메시아관과는 거리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문제는 다른 내용과 관련해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다만 여기서는 갈릴래아는 젤롯당을 중심으로 새 세계를 갈망하는 그 마당(場)이 예수가 하느님의 나라가 임박했다고 한 설교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해두면 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은 갈릴래아의 민중에게 최대의 돌출구를 열어주는 일이며, 동시에 로마―헤로데―예루살렘 세력권에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List of Articles
바알 (열상 19, 18)
남은 칠천 명 (19, 7-18)
민중의 손으로 통일되는 날 (아모 9, 11-15)
겨울은 가고 (에제 37장)
에제키엘이 무등산에서 절규한다 (에제 24, 6-8)
포로에서의 탈출 (이사 66, 1-8)
위정자와의 대결 (이사 7, 10-14)
   
제5부 새로운 존재
일상성과 비일상성 (루가 10, 38-42)
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창세 3, 1-10)
새로운 인간상 (창세 12, 1-9)
믿음의 조상 (창세 22, 17-18)
두 사이 에 손을 얹을 판결자 (욥기 9, 25-35)
하느님으로부터의 도피 (시편 139편)
하느님의 웃음 (시편 2편)
잠과 신앙 (시편 127편)
교회란 무엇인가 (로마 8, 9-30)
인간을 말한다 (마르 12, 28-34)
존재 근거 (시편 42편)
우주의 품으로 (시편 8,3 이하)
   
판권
표지
예수의 민중사건 : 『민중과 성서』를 내면서
   
제1부 복음서와 민중
   
예수와 민중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전제
    2. 마르코복음 안의 오클로스
    3. 마르코복음에 나타난 오클로스의 성격
        1) 오클로스의 성격
        2) 오클로스에 대한 예수의 행태
        3) 종합
    4. 예수를 따른 자들
    5. 마르코복음 안에 있는 어록
    6. 오클로스의 언어학적 의미
        1) 라오스와 오클로스
        2) 오클로스와 암 하 아레츠
    7. 종합
마르코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1. 전제
    2. 마르코의 삶의 자리
    3. 마르코의 민중신학의 기조
        1)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14a절)
        2) 갈릴래아로 가다
        3) 하느님 나라의 도래 선포
    4. 민중의 행태
예수사건의 전승 모체
    1. 문제 제기
    2. 케리그마의 성격
        1) 고린토전서 15장 3~8절
        2) 필립비서 2장 6~11절
        3) 사도행전에 나타난 케리그마
    3. 민중언어의 성격
    4. 수난사
    5. 예수의 행태 일반
        1) 기적 이야기와 예수의 행태
        2) 아포프테그마와 예수의 행태
        3) 로기온(Logion, 어록)과 예수의 행태
    6. 결론
가난한 자 : 루가의 민중 이해
    1. 가난한 자
        1) 통계적 고찰
        2) 루가의 특수자료
        3) 예수의 탄생설화와 나자렛 선언
        4) 마르코와 Q자료
    2. 루가복음서의 청중
    3. 결론
마태오의 민중적 민족주의
    1. 문제 제기
        1) 마태오의 신학적 주제에 대한 논의들
        2) 문제 제기
    2. 마태오가 처한 현실
        1) 마태오와 그의 시기
        2) 민족적 와해 위기
    3. 마태오의 현실인식
        1) 이스라엘 : 길 잃은 양들
        2) 길 잃은 양이 놓여 있는 현실
    4. 민족동일성 재확립
        1) 뿌리 찾기
        2) 바리사이파가 주도하는 라삐 유다교와의 대결
    5. 마태오의 민중 이해
        1) 언어적 성격
        2) 의식화된 민중
    6. 맺는 말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예수사건의 재발견
    2. 마르코복음과 민중
    3. 민중은 수단이 아니다
    4. 민중은 객체일 수 없다
    5. 십자가는 민중수난의 극치다
민중신학의 어제와 오늘
    1. 독재와 대항하므로
    2. 민중을 만나므로
    3. 민중과 더불어
   
제2부 민중운동사
   
민중사건과 언어사건
    1. 성서에서 본 말의 성격
        1) 그 말의 현장은 어떤 것이었나
        2) 예수의 경우
        3) 예수사건에 관한 전승
        4) 오순절의 말 사건
    2. 무엇으로 말하는 것인가
    3.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4. 우리가 해야 할 말
미래는 가난한 자의 것 : 루가 6장 20~26절
    1. 축복과 저주
    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3. ‘지금’과 ‘장차’
    4. 우리의 선택
나라가 임하옵소서
    1. 예수의 기도
    2. 그의 기도를 전달받은 자들
    3. 하느님의 나라
고향 잃은 민중
    1. 피난민
    2. 성서에서 본 피난민문제
    3. 게르(GER) 문제 해결의 시도
    4. 이방인에 대한 관용의 한계
    5. 당면한 과제
        1 ) 새로운 인식을 위한 운동
        2)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제언
이스라엘 민중사
    1. 머리말
    2. 출애굽
    3. 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
    4. 민중을 배반하고 세워진 왕권
    5. 분단시대의 고난
    6. 민중운동의 여러 계열
    7. 예수의 민중운동
    8. 맺는 말
   
제3부 민중과 체제
   
민중사실의 증언
    1. 민중신학의 전제들
    2. 민중사실의 증언
고난과 고백
    1. 수난자와의 일치
    2. 마르코의 민중
    3. 수난사와 고난
    4. 더불어의 고난
    5. 맺는 말
갈릴래아 민중에 항복한 바울로
    1. 바울로의 위치
    2.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3. 그리스도교 박해
    4. 예수를 만남
    5. 전향
    6. 맺는 말
소명(召命)
    1. 바울로의 소명
    2. 사도 됨과 소명
    3. 이방인에게로
바울로와 역사의 예수 I
    1. 머리말
    2. 예수에 대한 바울로의 말
    3. 예수냐 바울로냐
    4. 왜 예수가 아니고 케리그마인가
선택받은 민중: 고린토전서 1장 26~31절
    1. 고린토교회 구성원의 사회계층
    2. 공동체원의 가치 판단 기준
    3. 민중을 보는 눈
    4. 택함을 받은 민중
   
제4부 예수의 희망
   
하늘도 땅도 공(公)이다
    1. 낙원 이야기
    2. 아담一인간
    3. 실락원은 공을 사유화함으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마르코 16장 1~8절
    1. 제3의 자리
    2. 갈릴래아
    3.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예수의 희망
    1. 새 세계에의 희망
    2. 희망과 세계혁명
    3. 바른 인간공동체의 희망
    4. 맺는 말
   
판권
표지
예수는 논하지 않았다
   
제1부 민중의 언어, 이야기
   
1. 성서라는 책의 성격
2. 성서의 서술양식
    1) 구약성서
    2) 신약성서
    3) 민중언어
   
제2부 예수의 이야기(비유)
   
1. 만성병에 걸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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