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이른바 '그리스도찬가'라고 일컬어지는 것으로서 상당히 일찍 형성된 케리그마라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공인되어 있다.16)O. Hofius, Der Christushymnus Philipper 2, 6~11, J. C. B. Mohr/ Tübingen, 1976, S. 1. 이 찬가는 시구(詩句)로 나누어질 수 있을 만큼 운율적이다.17)분석은 O. Hofius, op. cit., S. 20ff. 참조. 그것은 그 내용상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시구는 선재자(2, 6~7a)에, 둘째 시구는 수육자(2, 7b~8)에, 셋째 시구는 올리운 자(2, 9~11)에 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시 형식으로 사변화한 것은 벌써 역사적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사변화할 수 있는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이 찬가의 삶의 자리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우선 팔레스틴 영역이라는 견해와 헬레니즘 영역이라는 견해가 대립되어 있다.18)R. Deichgräber, Gotteshymnus und Christushymnus in der frühen Christenheit, Vandenhoeck & Ruprecht/ Göttingen, 1967, S. 126ff. 참조. 다이히그레버는 그것이 팔레스틴 갈릴래아일 것이라는 로마이어의 주장에 반하여 언어적으로 보아서 출처가 헬레니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견해를 인정한다면 이것 역시 지역적 격차에서부터 온 사변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으리라는 가정을 확인하는 것이다.
다음에 이 찬가가 불리어진 현장에 대한 전해도 여러 가지이다. 로마이어(E. Lohmeyer)는 이 찬가가 불려진 현장은 성만찬 마당(Abendmahlsfeier)19)E. Lohmeyer, Kyrios Jesus, Neudrück, Parmstadt, 1961, S. 65f.이라고 보며, 이에 반해서 예르벨(J. Jerbell)은 예배현장이었을 것이라고 한다.20)J. Jerbell, Imago Dei, FRANT 76, Göttingen, 1960, S. 206ff. 이 그리스도 고백의 현장이 일반적 역사현장과 구별된 종교의식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두 견해는 같다.21)E. Lohmeyer, op. cit., S. 133. 이것도 예수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난 다음 단계에 이루어진 것임을 시사한다.
내용상으로 보아서도 그것이 예수사건의 역사성을 희미하게 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이 찬가의 내용상 그리스도의 선재와 다시 그 위치로의 환원(곧 부활) 사이에 있는 수육과정 속에 예수의 수난의 장이 놓여 있기 때문에 그 수육한 삶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수난의 현장이 어떠했는지는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한편 8절 끝부분(8절c)에 있는 "십자가에 죽으심"(θανάτου δέ σταυρού)이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고, 바울로가 첨가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22)ibid., S. 8, 44ff. 이에 대해서 호피우스(O. Hofius)는 그 구절의 원래성을 입증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23)O. Hofius, op. cit., S. 3ff.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논쟁이 아니라 비록 십자가의 죽음이라고 했어도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 큰 충격을 준 '죽임'의 사건으로나, 혹은 그것 자체가 독립된 구원사건으로 표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24)이상과 같은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에 관해서 O. Hofius, ibid., S. 13의 주 42 참조. 호피우스는 바로 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이 원래적이라는 것을 변호하기 위하여 그와 비슷한 형식의 하느님 찬가들을 예로 드는데, 그것이 맞는다면 바로 그것은 역으로 그리스도 찬가가 역사적 사건과 먼 거리에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누구에게, 왜 죽임을 당했는가를 생략한 채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만 할 경우, 고린토전서 15장에서의 "성서대로"와 같이 "하느님께 철저히 복종했다"는 뜻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같은 그리스도 찬가의 범주에 속하는 디모테오전서 3장 16절이나 히브리서 12장 2절과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