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야기, 아포프테그마 외에 예수의 행태에 있어서 그의 말씀들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타이센은 순회특혜자들이 극단적인 말씀들의 전승자들이라고 했다. 그러면 이미 예수의 어록을 모아 놓은 Q자료의 전승 주체는 누구였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말씀들의 전승 주체는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전승 주체나 예수사건 이야기의 전승 주체가 아닌 또 다른 일군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측에 대해서 다만 다음 몇 가지 특징들을 그 근거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Q자료는 단 한 군데에서만 기적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외에는 독립된 단편적 말씀만 수록되어 있다. 이것으로써 Q자료의 전승 주체는 사건 자체보다는 말씀에 더 관심이 있는 층이었음이 드러난다.
둘째, Q자료에는 마르코복음에 반영된 사건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예수의 수난사건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셋째, 민중의 전승을 중추로 한 마르코편자는 예수의 말씀전승을 극소화하고 Q자료와는 달리 사건 위주로 편집했다.
끝으로, 말씀들이 지혜문학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많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사건보다 말씀을 중요시한 층은 지식층이 아닐까? 지혜문학도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지식층이 그 담지자인 것이다.66)어떤 사람은 Q공동체라고까지 말하고 있으나(P. Hoffmann, Studien zur Theologie der Logienquelle, NTA NF8, 1972, S. 188f.) 그렇게 공동체를 형성했다고 볼 수 없는 것 갈다. 그러나 예수의 가장 독특한 말씀으로 규정할 수 있는 비유만은 다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Q자료에 수록된 비유 안에도 교회의 신앙을 보존하거나, 교회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동기를 가진 것이 있다. 이에 반해서 교회의 관심과는 상반되거나, 또는 별로 연관이 없는 내용들을 담고 있는 비유들도 많다. 큰 잔치 비유(루가 14, 12~24), 잃어버린 것에 대한 비유(루가 15, 4 이하), 겨자씨 비유(마르 4, 30 이하) 등에는 단순히 종말적 시각에서만 해석할 수 없는 요소들이 있다. 가령 잔치초대의 비유에서 기득권자들에 대해서 거리에서 방황하는 가난한 사람, 불구자, 소경 등이 새 나라에서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에는 민중의 애환과 희망이 충일해 있다. 어떤 이유로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건 간에 무의미한 존재로 멸시받는 자들이 새 나라의 중심세력으로 인정받게 된다는 내용은 민중적인 희망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유들은 지혜적인 말씀과는 달리 현실을 고발하고 새 세계를 희망하는 민중언어로서 그러한 새 세계를 꿈꾸는 민중에게 호소력을 가지며, 이러한 비유에 접한 민중은 결코 그 말씀들을 잊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들의 전승 모체가 바로 사건의 전승자인 민중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