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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루가의 특수자료

루가복음은 전체의 1/3에 해당하는 방대한 특수자료를 전승하고 있다.7)M. Tolbert("Leading Ideas of the Gospel of Lk", Review und Exposition, 1967/ 독역, "Die Hauptinteressen des Evangelisten Lukas", Das Lukas Evangelium Wege der Forschung, Darmstadt, 1974, S. 339)는 특수자료에 루가의 중생사상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른바 전(前)역사인 탄생설화, 공생애 출발에 즈음하여 예수가 나자렛에서 행한 선언(4, 18 이하), 그리고 고유한 비유들을 위시하여 많은 특수자료를 수록한 이른바 여행 보도(9, 31~19, 27)이다. 루가의 편집 의도를 관찰하기 위해서 여행 보도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1) 여행 보도(9, 31~19, 27)

이 보도는 루가복음의 특수자료들을 그 틀로 사용하며, 내용상으로는 여러 가지 전승자료들로 수령, 편집되어 있다.8)여행 보도에 대한 분석은 W. C. Robinson, Jr., "Theological Context for Interpreting Luke’s Travel Narrative",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960, pp. 20~31 참조. 여행의 목표는 예루살렘임을 전제한다(9, 28). 그리고 그것이 바로 죽음의 길임을 분명히 한다(9, 51).

그는 사마리아를 통과하려다가 거부당하고 그를 따르겠다는 자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9, 58/ L.S.)고 말함으로써 그의 유랑과 가난의 삶을 드러낸다. 그리고 제자 됨의 길은 바로 모든 것을 버림(물론 재물을 포함한다)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 그의 제자들과 그가 같은 상황에 있음을 반영하는데 그 뒤를 이어 나오는 72인(人) 파견 이야기에서 또 한 번 완전 무소유를 명령하는 것(10, 4/ L.S.)으로 그 사실을 재확인한다. 그리고 그러한 전제에서 제자들은 예수와 제자들이 공동 운명체임을 나타내는 대선언을 받게 된다("누구든지 너희 말을 들으면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누구든지 너희를 배척하면 바로 나를 배척하는 것이다" 10, 16). 그 뒤를 잇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10, 25~37)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Q자료인 주의 기도와 친구를 위해 구걸하는 자의 비유를 연결시킨 것(11, 5~8)과,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12, 16~21)로 시작해서 부자와 나자로의 이야기(16, 19~31)로써 결론을 삼는 복합적 이야기 묶음에서 루가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은 첨예화된다. 그 안에는 재물에 대한 평가(12, 33~34), 잔치초대 비유(Q) 그리고 잃은 자에 대한 비유 묶음(15장)에 이어 약은 청지기 비유(16, 1~8) 등이 포함되는데, 이야기 묶음에서 주된 관심은 역시 가난의 문제이다. 그 다음에 한 과부와 악한 재판관의 비유(18, 1~6/ L.S.), 부자 청년 이야기(Q)를 이에 포함시키고 그의 또 하나의 특수자료인 자캐오의 이야기(19, 1~10)로 절정을 삼는다.

이상에서 루가는 예수운동의 주제를 바로 '가난' 또는 '가난한 자'의 문제로 보았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째서인가? 그는 에비오니스트(Ebionist) 인가?9)FeineBehmKümmel의 Einleitung., S. 86 참조. 그러므로 '가난함' 자체를 찬양하고 그것 자체가 구원의 길이라고 보아 금욕주의를 주장한 것인가? 그러나 그가 금욕주의자가 아니었음은 예수를 세례자 요한과 대조시키는 그의 세평이 단적으로 입증한다. 예수는 먹고 마시는 것을 담한다는 세평을 들을 정도였고(7, 34/Q), 유다교의 경전생활에서 중요한 조항인 금식도 거부했다. 그렇다면 그는 가난한 자를 한 계급으로 보고 계급투쟁을 선언함으로써 부한 자들을 적으로 삼은 혁명가인가? 이러한 질문을 갖고 그의 특수자료들과 편집구들을 분석해보자. 여기서는 편의상 비유들을 중심으로 분석해보기로 한다.

 

(2) 선한 사마리아인(10, 25~37)

이 비유는 구원의 길을 묻는 자에게 주는 대답이다.10)루가는 ζώηάιώνιος라고 하는데 이 질문과 분리시켜서 이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길이다. 이 이야기는 사건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소유물은 물론 목숨까지도 위험한 상황에 있다. 그것은 정적인 상황이 아니라 그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결단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레위인, 제사장 등은 이 사건에서 자신들을 폐쇄시켰으므로 그 사건이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으며, 그들은 이 사건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았다. 이 사건에 응한 자는 유다인들이 천시하던 한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는 자산과 재산을 나누어중으로써 그 수난자의 이웃이 된다. 그는 이 수난자의 소리에 응함으로 스스로 적대감정11)사마리아인과 유다인 사이의 적대성은 극에 이르렀다. 따라서 그가 그 감정에 사로잡혔다면 피해자의 소속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에서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수난자를 사랑할 수 있는 이웃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구약의 계명 전체의 뜻을 집약하는 두 큰 계명(실상은 한 계명의 양면)을 실천하는 자가 되었다.12)가장 큰 계명을 묻는데 예수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동시에 제시하였다(마르 12, 28~34/ 병행). 마르코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자에게 그가 '하느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했고 마태오는 이 둘이 율법의 총집약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물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주제의 성격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그것은 바로 '이 비유의 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물음이다. 지금까지 그 주인공은 바로 사마리아인이라고 결론지어왔다. 따라서 이 비유를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라고 했으며, 알레고리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에서는 그 사마리아 사람은 바로 그리스도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이 비유는 한 사건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에게 사건이 일어났다. 여기 '죄 없이' 강도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반쯤' 죽임을 당한 수난자가 이 사건의 중심에 있다. 이 수난자의 비명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결단을 요구한다. 그것에서 자신을 폐쇄한 자들은 '이웃 되는 길'을 못 찾았지만, 이 사건에 자신을 개방한 자는 참이웃이 되었다. 그러므로 수난자가 구원받는 계기를 제시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론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십자가의 사건이 구원에의 부름의 사건이라는 해석을 여기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강도 만난 자가 그리스도 자신일 수밖에 없다.

이 비유와 더불어 예수는 "너는가서 이와 같이 행하라"(10, 37b)라고 명령한다. 이것을 통하여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나'를 중심으로 하여 남을 원수와 이웃으로 구분함으로써 결국 '이웃'을 추상화시킨 상태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제시한다. 우리가 이 비유를 우리의 주제에 적용한다면, 가난한 자는 구원의 길을 여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

 

(3) 친구를 위해 구절하는 비유(11, 5~8)

이 비유는 주의 기도(Q자료)와의 관련 속에서 편집되어 있다. 그런데 주의 기도는 날마다 필요한 양식에 대한 간구를 하느님 나라의 도래(미래의 희망)에 대한 간구 다음에 두어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을 볼 때 바로 이 기도가 무엇보다도 가난한 자를 위한 것임이 드러난다. 친구를 위해 구걸하는 자의 비유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한 사람에게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밤중에 찾아와서 "친구여, 떡 세 덩이만 꾸어주게. 내 친구가 여행중에 내게 왔는데, 그에게 줄 것이 없어서 그러네"(11, 5~6)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여기서 가난한 자의 절규가 운동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여기서 찾아온 친구나 그를 맞는 사람이 모두 그날 그날의 양식을 장만해야 먹을 수 있으며, 단 한 사람을 위한 여분도 없는 가난한 층임을 알 수 있다. 저들은 참으로 일용할 양식을 애절해야 할 만큼 가난한 자들이다. 그런데 찾아온 친구의 굶주림이 그를 맞이한 가난한 친구를 움직였고, 그 친구는 이제 가진 자의 닫힌 문을 두드리게 된다. 이처럼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하는 가난한 자들의 운동이 전개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간절한 기도가 관철되리라는 약속은 바로 운동으로서의 가난한 자의 간구가 성취되리라는 약속을 뜻한다. 이 비유는 가난한 자의 간구에 하느님마저 승복해야 한다는 가르침인데, 구체적으로는 가진 자가 그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서 가진 것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저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힘이 가난한 자에게 있다는 말이 된다.

 

(4)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12, 16~21)

이 비유는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16, 19- 31)로써 결론을 맺는 복합적인 이야기군의 서두에 놓여 있다.13)I. H. Marschall, The Gospel of Luke :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1978/ 한역 『루가복음I』, 한국신학연구소, 1984, 192면. 이 비유는 재산을 생명의 궁극적인 보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이다.

풍년을 맞은 한 부자가 곳간을 넓히고 거기에 곡식을 쌓아두고 이제는 삶이 보장되었다고 안도한다. 그러나 삶은 소유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자기를 위하여(έαυτω) 재물을 쌓아두며 하느님께 대하여(είς θεόν) 부유하지 못한 자라는 전제가 중요하다.14)예레미아스(op, cit., S. 90)는 D. Buzy, M. Dibelius 등에 의지해서 21절은 추가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루가의 이해인데 그 이해는 바로 된 것이다. 하느님에게 부유하지 못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부자 청년의 이야기에서 파악하면 된다. 즉 그는 '너'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에서 밝혀진다.

 

(5)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16, 19~31)

이 이야기에는 한 부자와 거지 나자로가 등장한다. 그런데 어떠한 윤리종교적 평가도 없이 단지 그 부자의 호화로운 삶과 거지 나자로의 비참한 모습만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피안에서 나자로는 영원한 축복에, 부자는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며, 그 사이에는 결코 념을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이러한 심판의 이유는 그 부자는 살아 있을 때 좋은 것(τά άγαθά)을 모두 받았으며 거지 나자로는 세상에서 나쁜 것(τά κάκα)을 모두 받았다는 것이다. 왜 이것이 저들의 운명을 가름하는 기준이 되는가?

이 부자는 앞에 나온 풍년을 맞은 저 부자와 다를 바가 없다. 그는 부를 독점하고 그 안에서 삶을 향유한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남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자기 집 문 앞에 비참한 모습으로 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하는 거지가 있었으나 그에게 전혀 관심하지 않은 것이 그것에 대한 구체적 증거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이유이다. 거꾸로 말한다면, 만일 이 부자가 이 비참한 굶주린 자를 향해 자신을 개방하고 그 현장에서 새로운 소리를 들어 자신을 변혁할 수 있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이 거지 나자로가 바로 이 부자를 구원할 수 있는 열쇠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그는 저주스런 상태에서 해방되지 못했으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그는 영영 저주받는 상태에 머물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유에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포괄해서 가난한 자의 소리에 응하여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구원을 받으라는 명령이 내포되어 있다. 어리석은 부자 비유 다음에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염려를 경고한 뒤 위로의 말씀이 중심이 된 Q자료에 "너희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는 일을 하라"(12, 33/ 특수자료)라는 말을 첨가한 것과, 또 위기 앞에서의 결단을 알리는 Q자료들을 집중적으로 편집하여 급박한 상황을 재확인시킨 뒤에 마침내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도 버려야 한다. 자기 목숨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14, 26~27 / 특수자료)라는 말에 "이와 같이15)"이와 같이"(ούτως ούν)는 위의 요구들을 집약한 말이다. 14장 2627절과 연결시켜서 루가가 첨가한 말이다. 5, 1118, 1818, 22; 사도 2, 44 이하4, 32 등.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14, 33)라는 말씀을 첨가한 것 등은 이러한 의도를 잘 표출한다. 그리고 해고된 관리인의 비유를 이러한 말씀군에 포함시킨 것도 위의 사실을 정당화해준다.

 

(6) 해고된 관리인의 비유(16, 1~8)

이 비유는 9절 이하의 까다로운 교훈 때문에 해석상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일반적인 견해대로 8a절이 본래의 결론이라면,16)I. H. Marschall, op. cit., S. 331. 루가의 편집 의도에는 뚜렷한 전제가 있다.

이 비유를 9절까지로 보는 경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17)G. Schneider, Das Euanglium nach Lukas, 1977, S. 11~24. 9절은 원래 독립된 것으로 유다 그리스도교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루가의 입장은 분명해진다. 사람들은 특히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에 대해 기존의 윤리를 가지고 이 비유의 가치를 정당화하려는 입장에서 많은 변명을 시도해왔다. 8a절도 역시 이런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어떻게 주인의 재산을 가로채는 행위가 칭찬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7절까지를 원형으로 보고 8, 9절은 후기에 첨가된 불투명한 이야기로 격하시키는 입장,18)J. Fitzmyer, "The Story of the Dishonest Manager", Theological Studies 25, 1964, pp. 23~42 참조. 이 관리인의 행위가 합법적이었다고 변호하려는 시도19)Derselt("The Parable of the Unjust Steward", NTS, 1961, pp. 213ff.)는 9절까지가 이 비유의 원래적 형태라고 보며 종이 합법적인 계산을 함으로써 주인의 명성을 높여주었기에 주인이 기뻐했다고 해석한다. 등 여러 가지 해석이 속출하였다.

이야기 자체는 7절로 끝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것이 무엇을 비유하는지를 알 수 없다. 8, 9절은 이 이야기를 비유화한 내용이다. 내용상으로 9절을 7절에 연결시키면 완전한 비유가 된다. 그런데 8절을 이 비유에 포함시키려면 그 주인(ό κύριος)을 이 비유를 말한 예수에게로 돌려야만한다. 그것은 문법상으로도 가능하며20)E. Klostermann, Das Lukaseua ngelium, Ttibingen, 1926, S. 163; K. H. Rengstorf, Das Evangelium nach Lukas, Göttingen, 1937, S. 185; K. L. Schmidt, Das Evangelium nach Lukas, 1960, S. 258. 루가는 그런 전제로 서술했을 것이다.

한편 루가는 말하는 자를 3인칭으로 표시함으로써 비유의 본래적 형태를 흐리게 했으나 8절과 9절로써 이 비유의 이해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즉 이 이야기의 사실상의 주인공인 청지기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었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경우에도 문제는 남아 있다. 곧 불의한 재물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가 남의 재산을 소유자의 눈을 속여 자기 것처럼 이용한 것이 불의하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만약 그런 말이라면 그를 칭찬했다는 말이나 아무런 단서 없이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명령은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능한 또 하나의 해석은 그 재물 자체를 불의하다고 보는 것이다. '불의한 돈'이라는 독립적 용법은 특히 묵시문학에 자주 나온다.21)가령 에티오피아 에녹서 63, 10과 제4에즈라 2, 1 등. 루가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재물이 사람들에게 불의를 유발시키는 근원임을 전제하고 있다.22)W. Schmithals, "Lukas-Evangelist der Armen", in : Theologia Viatorum XII, 1973, S. 157~167. 이 단문 끝에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라는 Q구절을 삽입함으로써 루가는 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루가의 기본 입장이라면 그 청지기가 이용한 재물 자체가 불의하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것을 반물질주의라고 볼 수는 없다. 물질 자체가 악하거나 선하다는 견해는 성서적이 아니며, 루가에게 있어서도 전혀 타당하지 않다.

물질의 불의 여부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규정된다. 남의 것을 강점했거나 독점한 경우, 그 물질이 인간을 노예화하는 경우, 그리하여 그 물질에서 자신의 삶의 보장을 찾고 이웃(하느님)과의 관계를 차단하는 경우에 그 물질은 불의한 것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이 어떤 방법으로 재물을 모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가 재물을 독점 함으로써 이웃과의 관계를 차단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한 재물을 그 청지기는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준 것이다. 그 동기야 어떻든 부자의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행위 자체가 칭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청지기는 그 주인이 자기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 일을 대신했던 것이다.

가난한 자와 친구가 되는(가진 것을 나누어 먹는) 행위는 바로 구원과 직결되어 있다. 이 사실이 9절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친구가 된 가난한 자가 재물을 나누어준 그를 영원한 장막 안으로 영접할 것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청지기는 의적과 같은 역할을 했으며 바로 그런 행위가 칭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해석은 이 이야기군(郡)의 결론인 부자와 나자로의 이야기와 부합한다.

 

(7)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18, 2~7)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과부이다. 이 과부는 재판관에게 그녀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집요하게 졸랐다. 원한을 풀어달라(έκδικ έω)는 원문은 유린당한 권리를 회복시켜달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권리가 어떤 권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만일 구약의 전통대로 과부를 어린아이와 더불어 가난한 자의 상징이라고 본다면, 그녀의 원한은 부자에게 당한 유린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원수는 부당한 일을 하고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것은 권력층(재판장)이 그의 편에서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과 그러한 체제에 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길은 막혀 있다.

그러나 이 '가난한' 과부의 집요한 간구는 마침내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이 재판관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므로 그 재판관은 어떤 것에 유착된 상태에서 해방되어 자기의 본분을 다할 수 있었다. 그의 이러한 변화는 또한 그녀의 원수로 하여금 불의 속에 정착한 상태에서 해방되도록 변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그 동안 이 비유는 기도의 능력과 연결되어 해석되어왔다. 즉 불의한 재판관이 하느님으로 교체되어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고 오랫동안 그대로 두실 것 같으냐?"(18, 7)라고 결론을 내려왔다. 이 결론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 가난한 과부는 하느님이 택한 해방전선에 서게 된 셈이다. 이렇게 한 가난한 과부의 부르짖음이 하느님마저 움직이게 하여 구원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8) 자캐오 이야기(19, 1~10)

이 이야기는 루가복음이 수록한 마지막 특수자료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자캐오는 세리장인데, 특히 루가는 그가 부자였음을 지적한다. 세리이면서 부자라는 지적은 유다인의 지도층이면서 부자라는 사실과는 대조되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그를 죄인으로 간주한 데(7절)서 알 수 있다.

유다 지도층은 대체로 예수와 적대관계에 있는데 반하여 자캐오는 예수에게 무엇인가 갈구하고 있었다. 이같은 사실은 예수를 보려고 뽕나무 앞으로 달려갔다는 극적인 묘사로 나타난다. 예수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그의 집에 머물기로 하며, 자캐오는 그를 진심으로 환영한다. 그런데 그가 예수에게 제안한 내용이 주목을 끈다. 그것은 그가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는 것이며, 탈취한 것이 있으면 규례대로 4배로 갚겠다는 내용이다. 왜 예수를 영접하는 일과 가난한 자에게 자기의 소유를 나누어주겠다는 제안이 직결되어 있을까? 그것은 예수 자신이 가난하기 때문이거나, 혹은 예수를 가난한 자와 일치시킬 만큼 예수의 관심사가 바로 가난한 자에게 쏠리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자캐오에게 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임했다"(9절)라는 예수의 선언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앞의 돈 많은 의회 의원에 얽힌 이야기(18, 18~27/ 병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회 의원이면서 부자인 한 사람이 예수에게 구원의 길을 물어왔다.23)마르코복음에는 그 신분이 제시되지 않는다(10, 17). 이에 대해서 예수는 궁극적으로 모든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를 따르라고 했다. 이 부자는 예수의 이러한 제의에 응할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서 예수는 저 유명한 폭탄선언을 하는 것이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보다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나가기가 더 쉬울 것이다"(25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은 곧 구원(σωτηρ)으로 이른다는 것으로(26절), 이 선언을 단적으로 말하면 부자에게는 구원의 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원래 마르코자료(10, 17~31)인데, 루가는 그 다음의 자캐오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두 이야기를 대조시킨다.

그 부자는 유다지도층(의회 의원)인 반면, 자캐오는 그들에 의해 소외된 계층이다. 그 의회 의원은 자기 소유를 고수하면서 구원의 길을 찾았으나, 자캐오는 구원의 길과 가난한 자가 함수관계에 있음을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줄 것을 제안할 수 있었다. 한편 의회 의원에게 모든 재산을 버리라고 한 데 대해, 자캐오는 자기 재산의 반을 내놓겠다고 한 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구원과 가난한 자가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의 인식이며, 이렇게 행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열쇠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의회 의원은 '구원'을 받지 못한 반면, 이 자캐오에게는 구원의 문이 열렸다.24)의회 의원과 관련해서 구원의 길이 막혔다는 말(26절)과 자캐오에게 오늘 이 집에 구원의 길이 열렸다고 한 말의 어원이 같음에 주목하라.


List of Articles
바알 (열상 1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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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새로운 존재
일상성과 비일상성 (루가 10, 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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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말한다 (마르 12, 28-34)
존재 근거 (시편 42편)
우주의 품으로 (시편 8,3 이하)
   
판권
표지
예수의 민중사건 : 『민중과 성서』를 내면서
   
제1부 복음서와 민중
   
예수와 민중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전제
    2. 마르코복음 안의 오클로스
    3. 마르코복음에 나타난 오클로스의 성격
        1) 오클로스의 성격
        2) 오클로스에 대한 예수의 행태
        3) 종합
    4. 예수를 따른 자들
    5. 마르코복음 안에 있는 어록
    6. 오클로스의 언어학적 의미
        1) 라오스와 오클로스
        2) 오클로스와 암 하 아레츠
    7. 종합
마르코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1. 전제
    2. 마르코의 삶의 자리
    3. 마르코의 민중신학의 기조
        1)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14a절)
        2) 갈릴래아로 가다
        3) 하느님 나라의 도래 선포
    4. 민중의 행태
예수사건의 전승 모체
    1. 문제 제기
    2. 케리그마의 성격
        1) 고린토전서 15장 3~8절
        2) 필립비서 2장 6~11절
        3) 사도행전에 나타난 케리그마
    3. 민중언어의 성격
    4. 수난사
    5. 예수의 행태 일반
        1) 기적 이야기와 예수의 행태
        2) 아포프테그마와 예수의 행태
        3) 로기온(Logion, 어록)과 예수의 행태
    6. 결론
가난한 자 : 루가의 민중 이해
    1. 가난한 자
        1) 통계적 고찰
        2) 루가의 특수자료
        3) 예수의 탄생설화와 나자렛 선언
        4) 마르코와 Q자료
    2. 루가복음서의 청중
    3. 결론
마태오의 민중적 민족주의
    1. 문제 제기
        1) 마태오의 신학적 주제에 대한 논의들
        2) 문제 제기
    2. 마태오가 처한 현실
        1) 마태오와 그의 시기
        2) 민족적 와해 위기
    3. 마태오의 현실인식
        1) 이스라엘 : 길 잃은 양들
        2) 길 잃은 양이 놓여 있는 현실
    4. 민족동일성 재확립
        1) 뿌리 찾기
        2) 바리사이파가 주도하는 라삐 유다교와의 대결
    5. 마태오의 민중 이해
        1) 언어적 성격
        2) 의식화된 민중
    6. 맺는 말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예수사건의 재발견
    2. 마르코복음과 민중
    3. 민중은 수단이 아니다
    4. 민중은 객체일 수 없다
    5. 십자가는 민중수난의 극치다
민중신학의 어제와 오늘
    1. 독재와 대항하므로
    2. 민중을 만나므로
    3. 민중과 더불어
   
제2부 민중운동사
   
민중사건과 언어사건
    1. 성서에서 본 말의 성격
        1) 그 말의 현장은 어떤 것이었나
        2) 예수의 경우
        3) 예수사건에 관한 전승
        4) 오순절의 말 사건
    2. 무엇으로 말하는 것인가
    3.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4. 우리가 해야 할 말
미래는 가난한 자의 것 : 루가 6장 20~26절
    1. 축복과 저주
    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3. ‘지금’과 ‘장차’
    4. 우리의 선택
나라가 임하옵소서
    1. 예수의 기도
    2. 그의 기도를 전달받은 자들
    3. 하느님의 나라
고향 잃은 민중
    1. 피난민
    2. 성서에서 본 피난민문제
    3. 게르(GER) 문제 해결의 시도
    4. 이방인에 대한 관용의 한계
    5. 당면한 과제
        1 ) 새로운 인식을 위한 운동
        2)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제언
이스라엘 민중사
    1. 머리말
    2. 출애굽
    3. 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
    4. 민중을 배반하고 세워진 왕권
    5. 분단시대의 고난
    6. 민중운동의 여러 계열
    7. 예수의 민중운동
    8. 맺는 말
   
제3부 민중과 체제
   
민중사실의 증언
    1. 민중신학의 전제들
    2. 민중사실의 증언
고난과 고백
    1. 수난자와의 일치
    2. 마르코의 민중
    3. 수난사와 고난
    4. 더불어의 고난
    5. 맺는 말
갈릴래아 민중에 항복한 바울로
    1. 바울로의 위치
    2.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3. 그리스도교 박해
    4. 예수를 만남
    5. 전향
    6. 맺는 말
소명(召命)
    1. 바울로의 소명
    2. 사도 됨과 소명
    3. 이방인에게로
바울로와 역사의 예수 I
    1. 머리말
    2. 예수에 대한 바울로의 말
    3. 예수냐 바울로냐
    4. 왜 예수가 아니고 케리그마인가
선택받은 민중: 고린토전서 1장 26~31절
    1. 고린토교회 구성원의 사회계층
    2. 공동체원의 가치 판단 기준
    3. 민중을 보는 눈
    4. 택함을 받은 민중
   
제4부 예수의 희망
   
하늘도 땅도 공(公)이다
    1. 낙원 이야기
    2. 아담一인간
    3. 실락원은 공을 사유화함으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마르코 16장 1~8절
    1. 제3의 자리
    2. 갈릴래아
    3.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예수의 희망
    1. 새 세계에의 희망
    2. 희망과 세계혁명
    3. 바른 인간공동체의 희망
    4. 맺는 말
   
판권
표지
예수는 논하지 않았다
   
제1부 민중의 언어, 이야기
   
1. 성서라는 책의 성격
2. 성서의 서술양식
    1) 구약성서
    2) 신약성서
    3) 민중언어
   
제2부 예수의 이야기(비유)
   
1. 만성병에 걸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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