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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루가복음서의 청중

위의 관찰에서 이미 청중이 누구인가는 판명되었다. 그들은 바로 가진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중을 묻는 것은 가난에 대한 역사적 사회조건을 밝힘으로써 청중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특히 루가의 삶의 자리로서의 역사적 조건들을 물음으로써 가난의 성격과 가진 자들의 현실을 밝혀보려는 것이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로 시작되는 '들의 설교'는 일차적으로 가난한 자를 향한 약속과 선포임에 틀림없다.38)정양모는 그의 학위논문 "Die Adressaten der Heilsbotschaft Jesu"(1970)에서 예수의 복음의 대상을 분석하는 중에 일차적으로 가난한 자임을 설득력있게 논술하고 있다. 또 "너희는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마라"(12, 22~34)는 말씀도 일차적으로 가난에 허덕이는 자들에게 주는 약속과 위로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예들에서 보는 대로 왜 가난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가난은 구약에서부터 신약까지 하나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이 말은 성서는 '가난'이라는 대전제하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신약성서에서는 가난의 문제가 특수한 성격을 띠게 된다. 팔레스틴은 로마와 헤로데왕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다 지도층에 의해서 이중, 삼중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유다 민족은 소수의 가진 자와 대다수의 가난한 자로 계층화되어버렸다. 이런 상황 아래서 이주현상이 극심했다. 에쎄네파나 젤롯당이 그런 구체적인 예이다. 저들은 정치적 이유 또는 경제적 이유로 자기 고향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집권자에 의해 강제로 이민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했다.39)가령 헤로데는 세바스터(Ant., 15―216), 바바(Bell, 3―26; Ant., 15―296), 헷시온(Ant., 15―294)을 추방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치적 이유로 노예로 팔린 자들,40)헤로데에 의해(Ant., 16―1; Bell., 1―154), 폼페이우스에 의해(Ant., 14―71), 리비니우스에 의해(Bell., 1―163), 카시우스에 의해(Bell., 1―140) 그러한 일들이 행해졌다. 유다전쟁 때 노예시장이 성했다는 기록이 많은데 그 예를 Ant, 3―304f., 542, 6―418ff. 7―208 등에서 볼 수 있다. 로마의 식민지정책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 전재산을 몰수당한 자들, 추방된 자들이 무수하게 많았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하에서 가난한 계층이 증가일로에 있었으며, 로마제국이나 그의 하수인인 헤로데왕은 폭력적 통치로 그들의 불만을 해소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수차에 걸친 감면감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헤로데대왕 시대에 두 차례에, 그의 사후 그리고 아우구스투스가 사마리아 지방에 4분의 1에 해당되는 감세 조치를 취했다는 등이 그런 예이다.

예수의 주변에는 바로 이러한 가난한 계층들이 모두 몰려들었고, 예수운동의 주역들도 주로 이같은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는가난한 자들 속에 살았으며, 예수운동도 가난한 자의 에토스(ethos)에 의한 것이라는 판단은 자명적이다. 따라서 위에 열거한 가난한 자들의 이야기의 대부분이 예수시대에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데 별무리가 없다.

그런데 루가는 그 시대적 상황이 달랐다. 유다전쟁으로 인해 팔레스틴은 사실상 초토화되었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 가난한 땅이 되었다. 수없는 유다인들은 전쟁으로 인해 모든 재산을 잃었고, 로마제국은 반로마전쟁을 일으켰던 유다인에 대한 근본적인 응징으로 팔레스틴에서 유다인을 추방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에 집, 고향, 땅을 잃고 이방에서 거지가 되어 배회하는 수많은 군중이 생겼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 그리스도인들은 자연히 가난한 무리가 되었기 때문에 가난은 실존적인 문제로서 그 중요성이 가중되었다.

게다가 루가시대에는 또 다른 시대적 조건이 가난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루가시대의 가난의 문제와 결부된 사회적 조건들의 특성을 다음 세 가지로 성격화할 수 있다.

첫째, 유다 그리스도인들이 헬레니즘 영역에 이주함으로써 예수 전통에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게 되었다.41)큄멜(Einleitung., S. 94)은 루가의 저술장소에 대해 "팔레스틴 밖에서 서술한 것만은 확실하다"고 한다. 헬레니즘 영역에는 금욕주의를 표방하는 철학파들에 의해서 가난 자체를 찬양하는 풍조가 있었는가 하면,42)견유학파와의 관계 가능성에 대해서는 L. Schotroff, Jesus in Nazareth, Hoffnung der Annen, 1981, S. 108 이하 참조. '가진 자는 가진 자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대로' 살아감으로써 가난한 자에 대한 아무런 윤리사회적 책임을 느끼지 않는 풍조가 지배적이었다. 이것은 팔레스틴 전통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구약에서 특별히 이른바 모세의 법전은 가난한 자를 위한 법이라고 할 만큼 가난에 대한 입장이 뚜렷하며, 제도화된 유다교에서도 경건의 훈련항목으로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을 중시했다. 그러므로 팔레스틴에서는가난한 자를 위하는 윤리적 명령이 결코 이질적인 것이 아니었던 반면에, 헬레니즘 영역에서는 이러한 윤리적 명령이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었다.

둘째, 헬레니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왔던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가정과 소유를 가진 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중에는 부자들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라든지,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극단적인 말씀들을 어떻게 전하는가 하는 것이 큰 문제로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43)슈미탈즈(op. cit.)는 이런 견지에 선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게 되었다. 유다인들에 의한 박해도 있었지만 로마제국에 의해서도 박해를 받았는 데, 주로 황제 숭배에 대한 거부가 표면적인 원인이었다. 이 박해는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소유를 박탈함으로써 새로운 가난한 자들을 산출하기도 했지만,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재산을 위시하여 모든 것을 버리는 결단을 하도록 강요했다. 이른바 예수와 가난의 에토스는 이같은 역사과정에서 여러 형태로 전승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루가에서는 가난한 자와 가진 자의 적대적 관계, 그리고 가진 자들의 가난한 자에 대한 무관심 내지는 멸시가 가장 절실한 당면 문제였다. 루가의 편집작업을 관찰하면 이러한 시대적, 사회적 조건들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난한 자를 잃은 자 또는 적은 자들로 집요하게 부각시킨 것은 바로 그들에게 무관심하거나 경멸하는 현장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앞장에서 예거한 그의 특수자료 들은 물론 탕자의 비유를 위시하여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비유 등이 그러한 입장을 반영해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예수의 관계에 대한 루가의 서술이다. 루가복음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를 초청해서 식탁을 같이했다는 보도(7, 3611, 3714, 1)가 자주 나온다. 이러한 장면은 루가에게만 있지만, 이것으로 예수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관계를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44)보른캄(Jesus von Nazareth, 1956, S. 88)은 마태오복음에서 예수가 바리사이파와 충돌한 보도가 자주 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적대관계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로 루가에서 바리사이파들이 예수를 초대한 예들을 든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가 겨냥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가를 보아야 한다.

가령 예수에게 기름을 부은 여인의 이야기를 한번 보자. 루가는 이 이야기의 현장을 바리사이파의 집으로 설정한다.45)7, 36(마르 14, 3 이하, 마태 25, 6 이하, 요한 12, 1 이하의 비교). 마르코와 마태오는 베다니 문둥병자 집이요, 요한은 '베다니'만을 함께 전제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목적은 바로 예수가 저들이 배격하는 '죄인'의 편에서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함으로써 예수를 초청한 그들이 예수를 참으로 대접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진정으로 대접한 자는 바로 저들이 멸시한 죄인임을 밝히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바로 이 바리사이인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다.

정결법을 들어서 예수를 비난하는 마르코자료에 대해서도 루가는 그 장소를 예수를 초청한 바리사이파의 집으로 설정하여46)마르코복음 7장 이하의 정결법 논쟁이 루가에서 생략된 대신 11장 37절 이하에 다른 형태로 전승됐다. 마르코나 마태오는 바리사이파들을 비판한 데 대해서 루가에는 바리사이파 집이 그 장소로 되어 있다(11, 37). 정결법을 지킬 수 없는 민중을 멸시하는 저들의 위선을 폭로하며, "속에 있는 것으로 남을 구제하라"(11, 41)는 말을 삽입함으로써 그러한 민중을 멸시하고 경원하는 계층을 청중으로 삼는다.

또, 수종병 환자를 고치는 현장(14, 1~6)도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으로 설정한 것도 위와 같은 목적에서이다. 루가는 이 이야기에서도 바리사이파의 초청을 결부시켜서 "네가 점심이나 만찬을 차렸을 때에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불러오지 마라. 그들이 또 너를 초대하여 도로 갚을까 염려된다. 그러므로 잔치를 베풀 때에는가난한 사람들과 절름발이들과 맹인들을 청하라"(14, 12 이하)라는 지시를 덧붙임으로써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겨냥한 말씀으로 삼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루가는가난한 사람들을 위시한 민중을 중심으로 초청하는 만찬의 비유를 바리사이파의 집에서 예수가 한 말로 서술한다.47)14장 1~6절, 7~11절, 12~14절 그리고 15절 이하로 나뉘나 14장 1절에서 바리사이파 집에서 연속적으로 한 얘기처럼 편집되어 있다(마태오는 전혀 다르다). 이 이야기에서도 바리사이파는 민중을 멸시하면서 상좌에 앉기를 좋아하며, 대접받기 좋아하는 사람의 전형으로 단정하는데(14, 7), 다른 데에서 저들을 특히 "돈을 좋아하고 상좌에 앉기를 좋아하는"(16, 15) 사람들로 단정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들의 설교'에서 가난한 자를 굶주리고 우는 자와 평행시킨 것은 그 가난의 동기가 정치적 내지 사회적 박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루가는 이에 새로운 요소를 가미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또 인자 때문에 너희를 배척하고 욕하고 누명을 씌우면 너희는 복이 있다"(6, 22)는 구절이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적 가난이나 정치적 요인에 의한 가난이 아니라 박해를 당하고 있는 수난자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이 선언(6, 22) 만을 떼어내서 보게 되면 그 선언을 듣는 청중은 가난한 자가 되지만, 루가는 부유한 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이 선언과 평행시킴으로써 결국 이 선언의 청중을 부유한 자들로 바꾸어놓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원래 약속 내지 위로의 말씀이었던 것이 경고의 말씀으로 바뀐다. 이 경고는 물론 정치 또는 사회적 이유로 인해 가난에 우는 자들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한 채, 자기가 소유한 것에서 자족하는가진 자들을 향한 것이다.

제자들이 되는 조건을 말하는 14장 25~32절의 구성에서도 이러한 루가의 입장을 읽을 수 있다. 이 단락은 루가가 Q자료와 마르코 자료를 결합시킨 것인데, 그의 편집구에 의해 고유한 성격을 갖는다. 마르코복음에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마르 8, 34)로 되어 있고, 마태오복음(10, 37~38/ Q)에는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합당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로 되어 있다. 이것은 본래 위기 앞에 선 제자들에게 준 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르코나 마태오는 자신들의 복음서에 이 말을 기록하면서 박해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를 안중에 두었을 수도 있으며, 또는 그들과 그들의 청중들은 이 말씀을 박해 앞에서 모든 것을 버릴 것을 각오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루가는 이 두 가지 자료를 결합하면서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14, 33)는 단호한 말을 첨가함으로써 그 청중을 바꾸어놓고 있다. 이때 청중은 바로 가진 자들이다. 저들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박해로 가난해진 사람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나아가서 저들을 멸시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이 말은 망대를 세우거나 전쟁을 도모할 때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뒤이어 "이와 같이"(ούτως ούν)로 연결시킴으로써 그 전략의 핵심이 소유를 다 포기하는 것임을 말한다.

부자 청년 이야기에서 마르코는 그 청년이 나간 다음(10, 22), 예수로 하여금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나가는 것이 더 쉽다"(10, 25)는 말을 하도록 한 데 대해, 루가에서는 예수가 직접 부자에게 이 말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18, 25). 그리고 그 말에 대한 설명을 듣는 청중들을 마태오처럼 제자로 제한하지 않고 듣는 자들(οί άκουσαντές)이라고 하여, 이 부자 청년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그 청중으로 만들고 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라"(12, 22~34/ Q)는 말씀의 청중은 누구일까? 그것은 그날 그날 아무-런 생활보장 없이 살아가는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는 말이다. 그런데 루가는 그것에 다 "너희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는 일을 하라.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준비하고 하늘에다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두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12, 33)를 첨가하고 있다. 이로써 그 전체 말씀은 소유를 삶의 보장으로 알고 그것에 철저하게 의존하기 때문에 아웃의 가난과 고통을 보고도 자기의 것을 나누어주지 못하는 부자들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이 말씀은 마태오와는 달리 하느님이 삶을 보장해주시기 때문에 아무 염려 말고 대담하게 그 재산을 나누어주라는 말씀이 된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소유를 팔아 구제하는 일이 곧바로 자신을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준비하고, 하늘에다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는 일이라고 한 것은 중요하다. 자신을 위해서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준비하는 것, 하늘에 없어지지 않을 재물을 쌓는 것이 '구원의 상태'를 의미한다면, 가난한 자를 위해서 자기의 재산을 내놓는 것이 구원으로의 구체적 결단이며, 이 결단을 촉구하는 것은 바로 가난한 자들 자신이라는 말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가난한 자들로부터 자신을 차단하는 것은 구원의 길에서 자신을 차단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마 언급되었지만 루가가 가진 자를 청중으로 삼았다면, 교회내의 가진 자를 겨냥한 것인가, 아니면 일반화한 것인가라는 물음이 남는다.

서구의 성서학자들은 대부분 루가는 이미 제도화된 교회내의 부자와 가난한 자를 말하고 있다고 보는데, 그러한 가능성은 배제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교회 안에서의(헬레니즘 영역) 빈부의 격차로 인한 긴장을 구체적으로 고린토교회에서 볼 수 있으며, 그 현상은 고린토교회에 국한되지 않고 헬레니즘 영역의 교회 전반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고린토전서에서 고린토교회의 약간의 가진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도외시 내지 멸시함으로써 교회의 분열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48)고전 1, 26~31 참조. 루가는 이런 상태를 보고 일차적으로 교회내의 문제로서 교회내의 가진 자들을 청중으로 삼았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반드시 교회내의 문제로 국한시켰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데겐하르트(H. J. Degenhardt)도 루가복음의 가난한 자에 관한 편집사적 연구49)H. J. Degenhardt, "Lukas-Evangelist der Armen Besitz und Besitzverricht in den Lukarischen Schriften", in : Eine Araditions und Medaktions geschichtliche Untersuchung, Stuttgart, 1965(이 책을 구하지 못해서 슈미탈즈의 위 논문에서 재인용한다).에서는 다른 서구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교회내의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그는 루가가 겨냥한 대상은 교회의 지도층(교역자, Amtraäger)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가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은 재산 포기의 명령인데, 그는 이 명령이 제자들(μαθηταί)에게 내려졌다고 보고, 그 제자들이 바로 사도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루가는 제자들을 사도들에게 국한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인 일반에게도 적용하고 있다.50)W. Schmithals, op. cit., S. 156. 루가가 사도들과 그리스도인 일반 사이를 넘나드는 몇 가지 예를 보자.

예수가 제자 됨의 조건을 말할 때 마르코에는 무리(ὄχλος)와 제자들(μαθηταί)에게 한 것으로 되어 있고(8, 34), 마태오는 제자들에게만 국한시켰다(16, 24). 그런데 루가는 많은 무리(ὄχλοι πολλοί)로 대치시키고 위에서 이미 본 대로 재산을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첨가함으로써 그 대상을 일반화시킨다.

또 마르코에서 씨 뿌리는 비유의 해석은 제자들에게만 한 것으로 되어 있다(4, 10). 그런데 루가는 열매 맺는 씨를 설명할 때 "좋은 마음으로(έν καριά καλή) 말씀들을 지키며, 인내로 열매를 맺는 자"라고 함으로써 그 대상을 사도(제자)에게 국한시키지 않는다(8, 15).

또 루가에서 탐욕을 배제하라는 경고(12, 15), 새 나라에 들어가는 데 재산이 장애물이 된다는 말(14, 15 이하), 세상 걱정으로 마음을 둔하게 하지 말라(21, 34)는 말은 제자들에게보다는 부유층 일반에게 해당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들의 설교'에서 루가가 청중을 제자들이 아니라 "많은 제자들의 무리"(ὄχλος πολλὢν μαθητὢν)라는 특수한 표현을 쓴 것은 이 말씀의 대상을 교회내로 국한시키지 않고 일반화하려는 구체적인 흔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빈부의 문제에 집중한 계기는 당시의 교회에서 야기 된 문제였다고 할 가능성도 있으나, 그는 그것에 머물지 않고 시야를 그 시대의 전체적 문제로 확대시켰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와 관련하여 재산 포기를 사도들에게 국한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루가시대에는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이미 모든 재산을 포기했다는 전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51)L. Schottroff, op. cit., S. 116.


List of Articles
바알 (열상 1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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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에서의 탈출 (이사 6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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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새로운 존재
일상성과 비일상성 (루가 10, 38-42)
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창세 3, 1-10)
새로운 인간상 (창세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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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으로부터의 도피 (시편 139편)
하느님의 웃음 (시편 2편)
잠과 신앙 (시편 127편)
교회란 무엇인가 (로마 8, 9-30)
인간을 말한다 (마르 12, 28-34)
존재 근거 (시편 42편)
우주의 품으로 (시편 8,3 이하)
   
판권
표지
예수의 민중사건 : 『민중과 성서』를 내면서
   
제1부 복음서와 민중
   
예수와 민중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전제
    2. 마르코복음 안의 오클로스
    3. 마르코복음에 나타난 오클로스의 성격
        1) 오클로스의 성격
        2) 오클로스에 대한 예수의 행태
        3) 종합
    4. 예수를 따른 자들
    5. 마르코복음 안에 있는 어록
    6. 오클로스의 언어학적 의미
        1) 라오스와 오클로스
        2) 오클로스와 암 하 아레츠
    7. 종합
마르코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1. 전제
    2. 마르코의 삶의 자리
    3. 마르코의 민중신학의 기조
        1)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14a절)
        2) 갈릴래아로 가다
        3) 하느님 나라의 도래 선포
    4. 민중의 행태
예수사건의 전승 모체
    1. 문제 제기
    2. 케리그마의 성격
        1) 고린토전서 15장 3~8절
        2) 필립비서 2장 6~11절
        3) 사도행전에 나타난 케리그마
    3. 민중언어의 성격
    4. 수난사
    5. 예수의 행태 일반
        1) 기적 이야기와 예수의 행태
        2) 아포프테그마와 예수의 행태
        3) 로기온(Logion, 어록)과 예수의 행태
    6. 결론
가난한 자 : 루가의 민중 이해
    1. 가난한 자
        1) 통계적 고찰
        2) 루가의 특수자료
        3) 예수의 탄생설화와 나자렛 선언
        4) 마르코와 Q자료
    2. 루가복음서의 청중
    3. 결론
마태오의 민중적 민족주의
    1. 문제 제기
        1) 마태오의 신학적 주제에 대한 논의들
        2) 문제 제기
    2. 마태오가 처한 현실
        1) 마태오와 그의 시기
        2) 민족적 와해 위기
    3. 마태오의 현실인식
        1) 이스라엘 : 길 잃은 양들
        2) 길 잃은 양이 놓여 있는 현실
    4. 민족동일성 재확립
        1) 뿌리 찾기
        2) 바리사이파가 주도하는 라삐 유다교와의 대결
    5. 마태오의 민중 이해
        1) 언어적 성격
        2) 의식화된 민중
    6. 맺는 말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예수사건의 재발견
    2. 마르코복음과 민중
    3. 민중은 수단이 아니다
    4. 민중은 객체일 수 없다
    5. 십자가는 민중수난의 극치다
민중신학의 어제와 오늘
    1. 독재와 대항하므로
    2. 민중을 만나므로
    3. 민중과 더불어
   
제2부 민중운동사
   
민중사건과 언어사건
    1. 성서에서 본 말의 성격
        1) 그 말의 현장은 어떤 것이었나
        2) 예수의 경우
        3) 예수사건에 관한 전승
        4) 오순절의 말 사건
    2. 무엇으로 말하는 것인가
    3.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4. 우리가 해야 할 말
미래는 가난한 자의 것 : 루가 6장 20~26절
    1. 축복과 저주
    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3. ‘지금’과 ‘장차’
    4. 우리의 선택
나라가 임하옵소서
    1. 예수의 기도
    2. 그의 기도를 전달받은 자들
    3. 하느님의 나라
고향 잃은 민중
    1. 피난민
    2. 성서에서 본 피난민문제
    3. 게르(GER) 문제 해결의 시도
    4. 이방인에 대한 관용의 한계
    5. 당면한 과제
        1 ) 새로운 인식을 위한 운동
        2)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제언
이스라엘 민중사
    1. 머리말
    2. 출애굽
    3. 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
    4. 민중을 배반하고 세워진 왕권
    5. 분단시대의 고난
    6. 민중운동의 여러 계열
    7. 예수의 민중운동
    8. 맺는 말
   
제3부 민중과 체제
   
민중사실의 증언
    1. 민중신학의 전제들
    2. 민중사실의 증언
고난과 고백
    1. 수난자와의 일치
    2. 마르코의 민중
    3. 수난사와 고난
    4. 더불어의 고난
    5. 맺는 말
갈릴래아 민중에 항복한 바울로
    1. 바울로의 위치
    2.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3. 그리스도교 박해
    4. 예수를 만남
    5. 전향
    6. 맺는 말
소명(召命)
    1. 바울로의 소명
    2. 사도 됨과 소명
    3. 이방인에게로
바울로와 역사의 예수 I
    1. 머리말
    2. 예수에 대한 바울로의 말
    3. 예수냐 바울로냐
    4. 왜 예수가 아니고 케리그마인가
선택받은 민중: 고린토전서 1장 26~31절
    1. 고린토교회 구성원의 사회계층
    2. 공동체원의 가치 판단 기준
    3. 민중을 보는 눈
    4. 택함을 받은 민중
   
제4부 예수의 희망
   
하늘도 땅도 공(公)이다
    1. 낙원 이야기
    2. 아담一인간
    3. 실락원은 공을 사유화함으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마르코 16장 1~8절
    1. 제3의 자리
    2. 갈릴래아
    3.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예수의 희망
    1. 새 세계에의 희망
    2. 희망과 세계혁명
    3. 바른 인간공동체의 희망
    4. 맺는 말
   
판권
표지
예수는 논하지 않았다
   
제1부 민중의 언어, 이야기
   
1. 성서라는 책의 성격
2. 성서의 서술양식
    1) 구약성서
    2) 신약성서
    3) 민중언어
   
제2부 예수의 이야기(비유)
   
1. 만성병에 걸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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