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에서 루가 편자가 특히 가난한 자에 관한 전승을 많이 동원한 것과 마르코나 Q자료를 전승하면서도 경제적 결단을 요구하는 말들과 결부시킨 것을 밝혔다. 이러한 관찰에서 밝혀진 것은 예수의 말씀에서 청중이 가난한 자로 된 것까지도 루가는 편집작업을 통해서 그 청중을 가진 자로 대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루가는 예수가 부자의 어리석음과 저들의 운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폭로함으로써 저들에게 구원의 길이 봉쇄되었다는 전승을 주저없이 선포할 뿐 아니라 그런 것에 해당되는 새로운 자료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는 가진 자를 구원의 길에서 제외한 것은 아니다. 저들에게 희망이 없으면 청중으로 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루가는 저들에게 구원의 유일한 통로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자들을 통하는 길이다. 가난한 자에게 자신을 개방할 때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기적이 일어난다. 그 구체적인 지시는 때로는 모든 것을 다(πάς) 버리라고도 하고, 구제하라고도 하고, 가진 것의 반을 바치겠다는 것을 그대로 용인하기도 한다. 이것은 경제분배 자체가 구원의 궁극적 열쇠라고 보지 않았으나 그것을 뛰어넘어서 직행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은 없다는 뜻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것은 권력이나 재물에 안주하여 자신을 차단함으로써 구원의 길에서 소외된 자들이 그것에서 해방되어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가난한 자의 절규를 받아들일 때만 가능하다는 단호한 결론이기도 하다.
루가는 가난한 자와 부한 자 사이의 갈등은 우선적으로 이미 제도화된 교회의 현실문제로 보고 그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제도교회내의 성원(成員)들에게 주는 경제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계의 문제로 보았다.
이상에서 다음과 같이 루가의 입장을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자는 민중의 구체적 실체로서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주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