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복음의 편십자가 집중한 신학적 관심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여러 견해들이 있다. 그것들은 각기 그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다.
첫째는 마태오를 교회주의자로 보는 시각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마태오가 다른 복음서에서 볼 수 없는 '에클레시아'(ἒκκλησια, 교회)라는 개념을 사용(마태 16, 18ᆞ18, 17)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위상과 권위를 절대화했기 때문이다.1)H. C. Kee, Understanding the New Testament/ 서중석 역, 『신약성서이해』, 한국신학연구소, 1990, 209면; 서중석, 『복음서해석』, 대한기독교서회, 1991. 136~37면; Simon LegasseᆞPère Le Poittevin, Lecture de l’Euangile selon saint Matthieu, Cahiers EVANGILEe 9, Service Biblique Evangile et Vie Editions du CERF, 1974/ 김건태 역, 『마태오복음』, 카톨릭출판사, 1988, 104~105면; 정양모 역주, 『마태오복음』,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 1, 분도출판사, 146-147면.
둘째는 마태오가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스라엘의 계승자로서 모세와 그의 이름으로 된 토라(Tohra)의 수호자이며, 새 계약의 주체라는 인식에 기조를 두었다는 주장이다.2)정양모 역주, 위의 책, 18-19, 22~23면. 마태오는 구약을 압도적으로 많이 인용하고 있으며(12회)3)"저자는 적어도 130개의 구절에서 구약성서를 직접 참조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43개 구절은 성서를 그대로 인용한 구절이다"(S. LegasseᆞP. L. Poittevin, op. cit. pp. 23~24)., 토라를 절대화하는 전승 편에 선다. 그중에서도 5장 17~18절이 그런 입장을 천명한다. 그러므로 마태오는 예수를 제2 모세로 보았다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4)W. G. Kümmel,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1963, S. 60 참조; H. C. Kee, op. cit. pp. 189~90, 192~202.
셋째는 이스라엘의 입장에 서서 후기 유다교를 대표하는 바리사이파 등 유다교 지도층과의 대결을 목적으로 했다는 주장이다.5)김득중, 『복음서신학』, 컨콜디아사, 1986, 52~53면; S. LegasseᆞP. L. Poittevin, op. cit. pp. 17~20/ 정양모 역주, 앞의 책, 23, 45, 90~91, 94, 110~111, 115, 119~120, 143, 193~196, 199~200면; E. Schweitzer, Das Evangelium nach Matthäus, 1976, S. 4~5. 그것은 그가 토라와 예언자의 글을 그대로 유효한 것으로 선언하고,6)마태 7, 12ᆞ22, 40. 유다교의 가르침을 수용하라고 하면서도(23, 2~3) 줄곧 라삐들과 바리사이파를 예수의 적대자들로 상정할 뿐 아니라, 23장에서 보는 대로 저들의 위선성을 집중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들은 계속 논쟁의 여지를 안고 있으나 각기 그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논문은 마태오의 관심의 중심이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에 있으며, 그 시각에서 위에 예거한 주제들이 전개되고 있다는 가정 밑에서 마태오를 해석하려고 한다.
이는 위에서 예거한 관심사들을 포괄하는 것이지 전혀 다른 문제라거나 대치되는 문제로 전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과 상호 모순되거나 충돌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앞으로 구체적으로 다루겠으나, 우선 '교회'란 세계적 보편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데 반해서 한 민족의 문제는 이에 상충될 수 있으며, 유다교 내지는 모세의 문제 역시 그리스도교에서는 아직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을지 모르나 민족적으로 볼 때는 이미 전혀 다른 상황에 있을 때이니 만큼 상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관심이 민족에 있다면, 그는 단지 '유다 민족주의'를 내세우려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새로운 민족의식을 정립하려는 것인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