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와의 비교 : 마태오는 마르코의 오클로스라는 말을 대부분 그대로 수용할 뿐 아니라 이 단어를 추가로 사용하며,69)마태 4, 25; 5, 1; 7, 28; 8, 1; 9, 8ᆞ23ᆞ25ᆞ33ᆞ36; 11, 7; 12, 23ᆞ34ᆞ36; 14, 5ᆞ13ᆞ15ᆞ19ᆞ23; 15, 30; 20, 29ᆞ31; 21, 8ᆞ9ᆞ11; 22, 33; 26, 56; 27, 15ᆞ24. 그 개념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다. 가령 목자 없는 양(9, 36), 불쌍한 무리(14, 15), 배고픈 무리(14, 19), 병든 무리(15, 30) 등등이 그런 것이다.
마태오는 마르코에 나오는 오클로스의 적극적인 의미를 그대로 전승하는데 그것은 루가와 비교하면 더 확실해진다. 마르코 3장 31절 이하에는 "무리(오클로스)가 그를 둘러앉았다"는 전제 다음에 예수가 "자기를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고 '보라, 여기 내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문맥상으로 볼 때, 여기서는 바로 오클로스가 그의 어머니요 형제들이라고 지칭한 것이며, 그들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 루가(8, 19~21)는 오클로스를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만나는 데 있어서 장애물처럼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는 "내 어머니요 형제"라는 중대한 선언을 결부시키지 않은 데 대해서 마태오(12, 46~49)는 오클로스를 제자와 동일시하면서 마르코의 의미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70)양식사적 시각에서는 46절의 오클로스와 49절의 제자들을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마태오를 편집사적 시각에서 볼 때, 그들을 구별할 의도를 찾아볼 수 없다. 가령 마태오 5장 1절에서 오클로스와 제자가 병행되나 오클로스가 청중에서 제외됐다고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마태오에는 민중과 제자를 같은 청중으로 병행시키는 경우가 여러 곳이다(예 23장 1절).
마태오 21장 26절에서는 오클로스들이 세례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기 때문에 예수의 적대자들이 그를 무서운 존재로 보았다는 마르코(11, 32)의 내용을 그대로 보존하여 전승한 반면에, 루가는 오클로스를 라오스로 바꾸었다.
마태오 21장 24절에서는 기득권자들이 본 오클로스의 위력을 드러내는 것으로 마르코(12, 12)와 꼭 같은 뜻으로 전승하지만, 역시 루가는 이 무리를 라오스로 바꾸고 있다(20, 19).
루가와의 비교(Q자료) : 위에서 이미 마르코 자료를 루가와 비교했는데, Q자료 사용에서도 루가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루가 3장 7절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온 무리(오클로스)를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한 데 대해서, 마태오는 오클로스를 빼고 "많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3, 7)로 바꾸고 있다.
루가 13장 17절에서는 예수의 행적에 감탄하는 이들을 라오스라고 한 데 대해서, 마태오는 오클로스로 명기하고 있다(9, 8).
루가 20장 45절에서 예수의 청중을 라오스라고 하고 그들을 제자들과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오는 "오클로스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23, 1)고 하며 사실상 둘을 구별하지 않고 있다.
오클로스와 이스라엘 : 9장 23절에서 마태오는 오클로스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대조시키면서 이스라엘과의 관련 속에서 서술하고 있다. 또한 15장 31절에서 오클로스가 예수의 기적행위에 놀라면서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함으로써 '하느님'과 '예수'와 오클로스를 '이스라엘'과 결부시키고 있다. 이와 꼭 같은 서술법이 9장 33b~34절에도 나온다.
한편 마태오는 구약을 많이 인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경우 70인역(LXX)에 따라 민중을 라오스로 표기하고 있다(1, 21ᆞ2, 6ᆞ4, 16ᆞ13, 15ᆞ15, 8). 그런데 주목되는 점은 라오스를 예외 없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1장 21절에서 예수의 이름을 설명하면서 "자기 백성(라오스)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하는 것과 2장 6절에서 "내 백성(라오스)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다"는 말을 "이스라엘 백성 중의 잃은 양만을 위해 보냄을 받았다"는 말과 연결시켜볼 때, 마태오는 '이스라엘' '라오스' '예수'를 한 맥에서 보고 있다는 단면을 드러낸다.
끝으로 종합보고(4, 23~25)에서 예수가 고쳐준 여러 가지 병자들을 라오스(ἐν τῳ λαῳ, 23절)라고 하고, 뒤이어 바로 그들을 오클로스라고 함으로써(25절) 라오스와 오클로스를 같은 뜻으로 쓰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상에서 볼 때, 마태오의 언어적 사용에서는 라오스와 오클로스가 성격상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그가 중요시하는 '이스라엘'과 직결시키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오클로스 또는 라오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이스라엘민의 동일성을 찾으려는 목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것은 다음에서 더 분명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