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이 그리스도교 탄생의 날이라면 오순절(Pentecost)은 그리스도교회 탄생의 날이다. 그런데 오순절사건은 바로 말의 사건의 날이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는 온 세계에 퍼진 유다 사람들을 위시하여 이른바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방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국경과 문화, 이해관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어의 장벽을 가진 자들이다. 그런데 성령이 말의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순식간에 그러한 장벽이 허물어지고 모두 알 수 있는 말씀 위에 교회가 서는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예레미야가 끊임없이 해야 할 말을 함으로써 수난을 계속 당한 장소, 예수가 최후의 말씀을 함으로써 처형된 장소, 스데파노가 순교한 장, 바울로가 최후로 체포된 장인 예루살렘! 그곳은 역대로 어용종교인들의 부패의 온상이다. 무엇보다도 로마와 결탁하여 예수를 처형함으로써 흐른 피가 아직 대지에서 마르지 않고 있을 그런 장소이다. 바로 여기서 오순절 말씀사건이 일어났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성령으로 입을 열어 해야 할 말, 즉 증언한 자들은 종교귀족도 아니요 성서전문가도 아닌 갈릴래아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저 사람들이하는 말을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된 셈인가!(사도 2, 7~8)
갈릴래아! 예루살렘이 멸시하여 이방인의 땅, 즉오랑캐의 땅이라고 하던 갈릴래아, 선한 사람이 태어날 수 없다는 그 갈릴래아에서 온 사람들, 저들이 바로 종교귀족의 본거지인 예루살렘 거리에서 말의 사건의 주체가 되다니!
당시 갈릴래아 사람들은 민중의 상징이다. 바로 이 민중이 주체가 되어 역사를 변혁시키기 위해 이루어질 공동체가 세워지는 날이 바로 말씀사건의 날이다. 이것은 기존체제 그리고 가치관이 붕괴한 사건으로서 정치적 차원 이상의 사건이다. 민중이 귀족층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는 사건은 역사의 장을 여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상에서 공통된 점은, 예언자의 맥을 이은 말의 현장은 어떤 구별 된 종교영역이 아니라 바로 정치, 경제 그리고 인간의 삶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 말들은 곧 정치문제로 비화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