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우리는 성서를 '피난민의 글'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이 수집된 것은 바빌론 포로시대 생활에서 그리고 에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이고, 그것이 경전화된 것은 비록 팔레스틴의 얌니아라고 하더라도 로마의 혹정 아래서 피난생활하던 때였다. 그리고 피난처에서 형성된 글로서는 예레미야, 에제키엘, 제2이사야, 신명기사가의 역사서, 제사문서, 에즈라, 느헤미야, 하깨, 즈가리야, 말라기, 요엘, 요나, 다니엘, 시편의 많은 부분과 이야기 등이다. 그리고 신약성서는 100퍼센트 유랑지에서 성립됐다. 그중 시편 한 편을 보자.
바빌론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의 수금 걸어놓고서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노래하라" 청하였지만,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고 졸라대면서
"한 가닥 시온 노래 불러라"고 하였지만
우리가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버릴 것이다.
네 생각 내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시편 137, 1~5).
이것이 고향 잃은 사람들의 심정이니, 성서는 그런 시각에서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이제 그 내용을 읽어보자.
첫째, 이스라엘의 가장 오래 된 민족 신앙고백은 이렇다. "제 선조는 떠돌며 사는 아랍인이었습니다"(신명 26, 5). "떠돌며"라는 동사 Gur는 외국에 사는 나그네로서 이 동사에서 "피난자"라는 "게르"(ger)가 나왔다. 성서에서는 아브라함이 게르이고(창세 23, 4ᆞ17, 8), 그 선조가 게르임이 계속 반복된다(출애 22, 21ᆞ23, 9; 신명 10, 9). 이들은 바로 고향 잃은 사람이다.
게르는 박해와 착취의 대상이다. 이스라엘 역사는 바로 에집트의 게르(노예)생활에서 출발한다. 이스라엘인들은 탈출로부터 광야 40년 가나안에 정착했으나 여전히 군주국들의 박해 속에게르의 생활을 계속한다. 그러나 가나안에서 비로소 약자들의 종족동맹이 결성되어 이른바 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일명 Amphiktyonie, M. Noth)을 이루었는데, 저들의 결속은 오직 '야훼만'의 신앙(Mono-Yahwism)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능률적이라도 군국제도를 거부했고, 따라서 가장 평등한 공동체를 구현한 시기이다. 그들이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도 실상과는 다른 게르의 생활 아닌 고향이라는 뜻이 반영되었으리라.
둘째, 다윗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군림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유다의 왕이 되고, 그것을 등에 업고 불레셋과의 싸움에 지친 이스라엘을 흡수해버리며 이른바 통일군주국가를 성립한다. 그로부터 이민족 침략을 계속하여 남북아라비아, 아프리카, 소아시아까지 수없는 게르를 만든다(삼하 8장; 열왕상 4장). 그는 전략적으로 유다와 이스라엘인을 동등하게 등용했으나 이스라엘은 나그네의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뒤를 이은 솔로몬은 계속 그 판도를 넓혀 이방인 게르를 만들어가는 한편 국내에서 유다편애정책을 써서 이스라엘계는 전원 관직에서 배제해버리고 이스라엘에 노골적인 탄압을 가해 북이스라엘 민은 한 제국 안에서 게르의 슬픔과 분노 속에서 살다가 결국 그 다음 대에 이스라엘왕국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아주 분단되고 말았다.
셋째, 분단민족은 제국주의국가들에 계속 침략받아 수없는 게르를 발생하게 했다. 아시리아, 바빌론 등의 침략에서 다수가 포로로 잡혀가서 메소포타미아, 하골, 고산 그리고 그발 강 주변 그리고 텔아비브 등에 강제로 정착되었다(에제 3, 15 등). 그리고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남아 있을 때에도 그들은 계속 속국으로 존속했으니 결국 게르의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후 마침내 로마에 의해서 결국 유다인 전체가 게르의 운명에 빠졌다. 유다인들은 잠시나마 반로마항쟁을 하지만 결국은 초강대국 로마에 의해 진압되었고 로마는 예루살렘 함락과 더불어 유다인 배척정책을 쓰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민은 모두 게르가 된 셈이다. 그 결과 그리스, 로마 전역,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일대 등의 80여 개국에 디아스포라 유다인이 40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상에서 이스라엘인들이 게르가 된 요인은, 첫째 제국주의 강대국의 침략, 둘째 국가의 통치가 계급적 차별을 하므로, 셋째 이로 인해서 또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가난 때문이었다고 대별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의 경우에 있어서 특수한 것은 토라(Tohra)의 배타적 해석과 선민사상이 그들로 하여금 어디에 정착해도 이질성을 면치 못하므로 게르의 상태를 면치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