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민중(합비루)은 마침내 지금의 팔레스틴인 가나안 땅에 정착한다. 여호수아서에 따르면 저들이 전투를 통해 가나안의 주민들을 용감하게 소탕하고 점령한 것으로 되어 있고 그 땅은 야훼의 신이 그들에게 주기로 약속한 땅이라는 것을 전제하지만, 사무엘상을 위시해서 여호수아서 안에서도 그와는 다른 양상으로 정착한 흔적이 역력하다. 다만 여기서 분명한 것은 저들이 한꺼번에 온 가나안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잠입해 들어가 31개 이상의(여호 12, 9~24 참조) 군주국이 자리잡고 있던 평야가 아닌 변두리 지역인 산간지대를 점유했다는 사실이다(여호 12, 8).
이렇게 해서 저들은 마침내 팔레스틴 일부에서 한 종족동맹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것을 가나안 지역의 많은 군주들 밑에서 착취당하던 농노들이 합류하여 하나의 종족동맹적 세력을 이루어 자주권을 행사한 결과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이렇게 여러 종족이 동맹한 흔적으로서는 신의 이름이 다양하고(야훼, 엘로힘, 엘사바트 등등) 신을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신이라고 부른 것 등에서도 볼 수 있다. 한편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도 끝부분이 신의 이름인 '엘'(El)자로 되어 있는데, '엘'로 되는 이름이 가나안의 신이라는 정설을 따른다면 그 신은 가나안 기층주민의 신이요 바로 그들이 출애굽 한 합비루와 경제적, 신분적 공통점에 의해서 쉽게 결합되어 하나의 동맹공동체를 이루었으리라는 상상은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하여간 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은 억압받던 민중에 의해서 결속된 공동체이다.
한편 그들의 성분에서 미루어보아 그 공동체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첫째, 저들은 사상적 통일로 신의 이름을 야훼로 하기로 합의한 것 같다.
둘째, 저들이 높이 치켜든 기치는 '야훼만'이었다. 이것은 신앙고백인데 동시에 정치적 선언이기도 하다. 그것은 야훼의 주권 외에 어떤 주권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같은 선언은 군주국가 밑에서 신음하던 민중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또 그들만의 체험에 의한 신념으로서 계속 사수해야 될 내용이었다.
셋째, 하느님만이 유일한 주권이라는 선언은 '인간 위에 인간이 없다'는 선언이다. 인간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것은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만드므로 사람을 신격화하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경험한 저들은 어떤 형태로나 권력의 온상이 되는 체제를 거부했다.
넷째, 그리하여 저들은 신분제도와 더불어 군주제도를 배격했다. 그러므로 비록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에도 방어전을 위해서는 사람을 동원하고, 조직적으로 싸울 필요가 있으므로 어떤 사람을 능력에 따라 선봉장으로 기용하고, 주민들을 모두 전사로 내세웠으나 그 선봉장은 결코 특수신분에 한정시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목동도, 농사꾼도 선봉장이 되는 데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그리고 난국을 극복한 다음에도 그 선봉장을 위시해서 모두가 원상태로 돌아가게 할 뿐, 상임 또는 상주하는 제도나 장소는 두지 않았다.
다섯째, 그들의 모든 생활양식―가령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은 어디까지나 평등주의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판관 중의 한 사람인 기드온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또 "제 집안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그는 민중 중의 민중 출신이었다. 그런 그가 카리스마를 받고 기용되어 적의 침략을 물리치는 선봉장이 되었다. 개선장군으로 돌아오는 그에게 사람들이 "당신과 당신 자자손손이 우리를 다스려주십시오"라고 요청했을 때 그는 단호하게 "내가 그대들을 다스릴 것도 아니요 내 자손이 그대들을 다스릴 것도 아닙니다. 그대들을 다스릴 분은 야훼 한 분뿐이지요"(판관 8, 23) 라며 단호하게 그 입장을 밝혔다. 이것은 그의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바로 이 공동체의 기본정신을 대변한 것이다. 사실상 그도 다른 판관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임무를 다하자 본래의 자리인 일터로 돌아갔고, 세습의 욕심은 물론 그의 당대에서조차 그 권력을 유지하려는 틀을 만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저들은 이러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난국을 겪어야만 했다. 조직된 군주국들의 침략이 그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200년 가까이 이러한 체제를 유지했다는 것은 기적적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에 의한, 민을 위한, 민의' 민주주의 규범이다. 이스라엘 민중은 이같이 민중이 주도하는 공동체를 역사상에서 성공적으로 실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