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맺는 말
가장 격렬했던 젤롯당의 민중운동도 예루살렘 함락과 더불어 그 중추가 꺾이고 마사다의 이른바 죽음의 항쟁(72년) 그리고 바르 코흐바 일당의 최후의 산화(A.D. 135년)를 끝으로 영원히 사라지고, 평화주의를 표명하고 내일을 위해 극기운동을 펴던 에쎄네파도 유다 전쟁 마지막 단계에 이에 가담하여 몰살하고 말았다. 그리고 남은 민중운동으로는 전승국인 로마에 아부하여 생존을 유지한 바리사이파와 예수의 민중운동이었다.
이후 바리사이파가 '얌니아'학파를 세우고 구약의 경전화 작업에 몰두하여 유다민족의 결속을 도모한 데 대하여, 예수의 민중은 배타적 유다 민족주의에서 탈출하여 온 세계를 그들의 무대로 삼아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이념을 정립하고 이르는 곳마다 새로운 조직으로서의 교회를 세우고 소아시아, 유럽 마침내는 그때 당시 세계의 심장부로 알려졌던 로마에까지 진입해서 마침내 그 로마를 무력을 통하지 않고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후대에 와서는 로마를 점령한 그리스도교가 천년 암흑시대를 만든 장본인으로 비판받고 있지만, 민중운동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을 거점으로 출발해서 세계에 퍼져나간 유일한 집단이 되었다.
이상에서 오늘과 같은 독재정권 아래서 민중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가 어떤 방향을 설정해야 할지를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 1987년 5월 N.C.C. 인권위원회 주최 모임 주제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