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민중신학의 일차적 과제는 민중사실의 증언이다. 이 말은 민중이 일으키는 사건의 진실과 의미를 언어화하는 일이 민중신학의 할 일이라는 말이다. 민중신학은 민중을 의식화나 계몽의 대상으로 삼는 주체적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중과의 만남에서 얻은 충격의 산물이다. 이 만남에서 신학하는 사람들이 역사의 실체를 보았으며 그 힘을 감지했다. 발견된 저들은 인간사회에서 주변적 위치에 있으나 실은 역사를 이끌어가는 담지자였다. 민중의 절규는—그것이 수동적인 것이나 능동적인 것이거나—신학하는 사람들의 '회개'를 요구했다. 그리스도교가 서구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을 때 형성되었는데 그것을 그대로 전수받아 그리스도교안에서 엘리트로 자부하면서 가르치는 행위를 한 신학인들이 얼마나 삶의 현장과 유리되어 있는지를 자각하게 했다. 저들이 하는 일은 사변적 유희, 도그마의 언어적 정리 정도인데 물음도 대답도 서구신학에서 그대로 받아 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현장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민중을 만남으로써 지금까지의 삶에서 대전환을 강요받게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앞서서 서구 전통의 신학의 틀을 깨고 삶의 현장으로 나오는 일이었다. 민중이 고정관념과 엘리트적 자부심에 사로잡힌 신학하는 사람들을 해방하는 힘을 과시했다. 그 힘에 의해 신학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자부심을 느꼈던 사고의 틀, 언어 그리고 시각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안될, 결단해야 할 자리에 몰리게 됐다. 마치 바울로의 경우처럼!
바울로는 자신은 그의 출신지나 자라난 과정이나 배운 것이나 사회적 위치나 그리고 그의 정열에서도 단연 선별된 엘리트였음을 자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찮은 주변적 존재들이 어떤 명분도 없는 갈릴래아의 예수를 통해서만 살 수 있다는 주장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 민족사의 모독이요 전통적 종교 교리예의 도전이요, 가치체계의 파괴라고 보았기에 저들을 위험한 병균처럼 보고 그 소탕에 앞장서기도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정통성을 깨는 이 잡패들의 입을 영원히 틀어막거나 세상에서 제거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동시에 기존의 틀에 아무 자리도 없는 갈릴래아의 예수의 힘을 근절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어느 순간 일대 전환을 강요받았다. 그는 자신의 긍지를 나열한 다음 "그러나 내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오물같이 여겼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발견되려는 것입니다."(필립 3, 7~9)하고 말한다. 이것은 그 사회와 더불어 그가 소외시켰고 멸시했던 민중사건에 저항하다가 그 민중사실에 굴복했다는 말이다. 율법으로 무장하고 율사로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던 그가 율법체제에서 죄인들로 규정된 저들의 반율법적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은 자기 포기를 의미한다. 루가는 사도행전에서 바울로가 만난 이는 '박해를 받는 나자렛 예수'(사도 9, 5 참조)라고 한다. 민중과 하나 되어 체제에 도전하다 처형된 무명의 청년 즉 체제 안에서 불법자로 죽은 그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 그의 회심의 핵심이다. 그는 민중사실에 항복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난 민중사실을 새로운 언어로 증언하는 것을 그의 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신학하는 사람들이 이와 흡사한 막다른 골목에 몰려 결단해야만 했다. 그의 위치는 민중과 더불어 전선(戰線)에 나갔으나 총은 메지 않고 카메라와 붓을 든 종군기자의 그것에 흡사하다. 그는 보고 들은 바를 전선에 있지 않은 자들에게 전해야 한다. 그러나 촬영한 것이나 녹음한 것을 빠뜨리고 전할 수는 없다. 전혀 다른 상황에 있는 독자들에게 알아듣고 볼 수 있게 편집해야 하고 해설해야 한다. 그 편집, 그 해설은 물론 사실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신학하는 일들이 민중현장에서 민중사실을 목격했다. 사실이기에 시비의 대상은 아니고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거부하느냐,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재래적인 각도에서 볼 때 추하기도 하고 비접하며 이기적이기도 하고 탐욕적이기도 한 민중사실, 그러나 때로 자기초월을 쉽게 하는 저들, 그리고 가는 실개울 같은 저들이 갑자기 합류하여 건널 수 없는 큰 강을 이루고, 어떤 때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아무런 힘을 못 낼 것 같은 저들이 때가 오면 강철같이 응결하여 어떤 아성도 뚫고 나가는 힘이 되는 민중사실, 아무튼 이 민중사실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그 의미를 해설하는 것이 민중신학의 일차적 과제이다.
■ 이 글은 1968년에 집필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