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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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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바울로'는 로마식 이름이고 '사울'은 히브리 이름이다. 사도행전은 전향 이전의 그를 '사울'이라고 하고, 그 후의 그를 '바울로'라고 한다.

그러면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사울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다. 바울로 자신의 출신과 그가 한 일에 대한 몇 차례의 짧은 발언과 사도행전에 간접적으로 반영된 몇 구절이 사울을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먼저 필립비서 3장 5절 이하를 보자.

나는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베냐민 지파에 태어났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에 있어서는 바리사이파 사람이었고, 열심에 있어서는 교회를 박해한 자이며, 율법의 의에 있어서는 흠없는 사람입니다.

이 전체 내용은 그가 단순히 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니라 그의 혈통으로 보나 성장과정 그리고 교육, 생활 등을 보나 가장 전통적이고 모범적인 이스라엘인이라는 것이다.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사람은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율법에 제정된 대로 모두가 꼭 날짜를 지킬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난한 자들은 거처가 분명치 않거나 그 외 여러 사정 때문에 그날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가령 우리 풍속에는 아기를 낳아 백일이 되면 백일잔치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할례받는 경우와는 다르지만 모든 부모들은 그것을 으레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가난하면 지킬 수 없고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바울로는 할례규정을 지켰다. 그것은 그의 집안이 안정된 집안이었음을 말해준다.

할례를 받는 것으로 비이스라엘 사람과 구별된다. 할례는 그 동기가 우선 위생적인 것이었음에 틀림없으나 그것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의무로 만들었던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바울로는 자신이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것을 밝힘으로써 자신이 참 이스라엘 출신임을 강조하려고 한다.

또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중에도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다고 한다(로마 11, 1 참조). 당시에는 열두 지파 중에 베냐만 지파 사람이 가장 먼저 가나안 땅으로 진입했다고 해서 이스라엘에서 베냐민 지파 사람의 우위성을 인정하는 관념이 있었다. 예언자 예레미야도, 그 이전 사울왕도 바로 이 지파 출신이다. 그러므로 베냐 민 지파 사람은 가장 대표적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또 그는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이라고 한다(고후 11, 22 참조). 히브리 사람이라는 말은 특별히 이방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특수성을 과시할 때 쓰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오랜 전통을 가졌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고 어떤 상황에 처해서도, 가정이나 사회 생활에서 민족의 순수성을 잘 지켜왔다는 표시로 쓰인다.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이란 말은 그가 히브리 전통대로 율법을 착실히 지킨 모범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말이다.

그의 집안은 바리사이파에 속했다. 바리사이파는 율법으로 국민운동을 일으킨 한 집단이다. '바리사이'라는 말 자체가 '구별된다'는 뜻인데 그만큼 저들은 엘리트 의식이 강한 율법주의자들이다. 정신적으로 보면 저들은 마카베오전쟁에 가담해서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 하시딤 계보에 속한다. 하시딤은 부패해가는 예루살렘 분위기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예루살렘을 탈출하여 율법에 따라 철저한 훈련을 하면서 예루살렘이 정화되는 날을 기다렸다. 그들이 얼마나 율법에 철저했던지 마카베오전쟁에 가담했을 때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안식일날 무기를 잡지 않음으로써, 침공한 시리아군에게 한꺼번에 1천여 명이 살해당하는 참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바리사이파는 사제계급이 아닌 평신도들로서 '율법의 생활화'라는 큰 목표 아래 활발한 운동을 일으켜 마침내는 주도적 위치에 서게 되었다.

바울로 당시에 바이사이인의 숫자가 도합 약 4천 명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렇다면 바울로의 집안은 그 4천 명에 끼일 만큼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바울로는 자신 있게 율법의 법 조항에 따라서는 흠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인간적으로 자랑한다면 나도 얼마든지 자랑할 것이 있다'는 전제에서 이같이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집안에서 태어났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의 집은 팔레스틴에 있지 않았다. 그는 외국 태생이다. 그의 집은 다르소에 있었다(사도 9, 1121, 39). 다르소는 로마의 속주인 길리기아의 수도로 현금의 터키지역이다. 그런데 이 다르소라는 도시는 로마시대의 아테네나 알렉산드리아에 맞먹는 헬레니즘 문화의 거점이었다. 바울로보다 한 세대 이전에 살았던 지리학자 스트라보는 다르소가 어느 지역보다 헬라철학이 가장 발달한 곳이라고 했다. 바울로가 헬레니즘 영역의 도시 사람인 것은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이혼문제에 대한 언급(로마 7, 1~3) 등은 헬레니즘 사회제도를 반영하며 경기(고전 9, 24~27; 필립 3, 13~14), 무기(데전 5, 8), 건축(고전 3, 10~12) 등의 비유를 즐겨 쓰는 데도 반영되는데, 이것은 농경언어를 쓰는 예수와 대조적이다.

다르소에서 난 사울, 즉 그는 디아스포라(Diaspora) 유다인이라는 말이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그들의 역사 속에서 강제로 또는 자발적으로 이방땅에 분산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알렉산드리아를 위시해서 로마에까지 퍼져나갔다. 헬레니즘 영역의 도시에는 거의 예외 없이 디아스포라 유다인이 살고 있었다. 마치 중국인들이 미국을 위시한 여러 곳에서 차이나타운을 만들듯이, 저들은 곳곳에서 유다인구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저들은 물론 조국을 떠난 비애와 향수도 있었지만 이방땅의 문화에 접함으로써 폐쇄적인 유다교를 개방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이 헬레니즘 영역에 얼마나 많이 퍼져 있었나하는 것은 저들이 모국어(히브리어)를 모르는 후세들을 위해 구약성서를 헬라어로 번역한 이른바 70인역(LXX)을 만들어야 했던 데서도 볼 수 있으며, 또 바울로와 비슷한 때에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필로(Phillo)라는 유다 사람이 율법을 헬라적 시각에서 해석함으로써 유다인과 이방인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고 노력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은 이방땅에 살았으므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지역의 문화적 영향을 받는 면도 있으나 반면에 바로 이방인들과 섞여 살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체성을 고수하기 위해서 오히려 자기 민족의 전통에 철저한 면도 가지고 있었다. 사울에게는 분명히 헬레니즘적인 영향이 큰역할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구약연구에 몰두했던 것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의 부모는 그를 라삐로 교육했던 것 같다. 그의 집안이 로마 시민권을 얻은 것으로(사도 22, 27~28) 보아 경제적으로 저어도 중산층 이상이었음에 틀림없다. 로마시민권은 어떤 형태로나 로마정부의 인정을 받았을 때에만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천막 짓는 기술을 익혔다는 것은 그가 라삐생활을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 라삐는 율법을 가르치는 것을 직무로 삼았는데, 보수를 받지 않았으므로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수공업적 기술을 배우는 것이 상례였다.

그의 일상용어는 헬라어였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편지를 헬라어로 썼는데 그의 문장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편지를 쓰면서도 그의 생각을 단순히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운율적인 것도 고려할 만큼 능숙하게 헬라어를 구사했다. 고린토전서 13장에 있는 사랑의 찬가가 그 대표적인 증거이다. 그리고 그는 구약을 많이 인용했는데 그것은 모두 헬라어 번역인 70인역을 이용하고 있다. 그만큼 헬라어에 친숙했던 것이다. 한편 그는 시리아 일대에서 사용하던 아람어도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그가 베드로를 부를 때 '베드로'라 부르지 않고 아람어 이름인 '게파'라는 말을 사용했다. 또 바울로는 헬라철학에 대해서도 적어도 일반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적인 것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편지 중에 희랍 희극작가 메난다(Menander)의 글을 인용한 부분도 보인다(고전 15, 33). 사도행전에는 그가 견유학파나 스토아학파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사도 17, 18). 하여간 그는 수준급의 지식인이었는데, 바울로 자신도 그렇게 자인하고 있다(고후 11, 6).

사도행전에는 그가 가믈리엘 문하에서 수학했다고 한다(22, 3). 가믈리엘은 A.D. 25~50년의 예루살렘의 유명한 라삐로서 유다교의 두 학파 중의 한 거두인 힐렐(Hillel)의 아들(손자?)이었다. 그는 명성이 높은 라삐였기 때문에 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만일 바울로가 그의 문하에서 수학했다면 한 교포로서 예루살렘에 일정기간 체류한 것이며, 이로써 유다교에서 인정받는 라삐였을 가능성이 크다. 가물리엘 자신에 대해서는 바울로가 높이 추앙받는 스승이었다는 것 외에 별로 전해진 것이 없다. 그런데 바울로가 힐렐계보에 섰다는 사실에서 그의 유다교 내지 율법이해의 경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힐렐은 그와 양립하여 다른 학파를 이끌었던 샴마이가 보수적이었던 데 반해 개혁파적인 경향이 질었다. 그렇다면 바울로의 구약 이해에는 가믈리엘을 거쳐서 힐렐의 영향이 미쳤을 수 있다. 사실상 다음에 근본적으로 살피게 되겠지만 바울로는 구약 해석에서 라삐 유다교에 비해 훨씬 대담하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바울로가 그리스도를 위해 포기한, 자기가 자랑할 만한 모든 것을 열거할 때 가믈리엘 문하생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사실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라삐 훈련의 흔적, 구약이해 등을 감안해볼 때 그것을 부정해야 할 충분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그가 "많은 나의 동년배들보다 훨씬 더 유다교에 앞섰다"(갈라 1, 14)라고 말하는 그 동년배란 바로 가믈리엘 문하의 동료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에 바울로는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 그는 라삐로서 구약성서를 가르쳤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방 땅인 헬레니즘 영역에 살고 있는 그가 유다 사람에 국한해서 율법을 가르쳤을까? 아니면 이방 사람들에게도 유다교를 전파했을까?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 이방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자신의 사명은 하느님이 모태로부터 결정해 놓으신 숙명적인 것이라고 한 데서 암시되듯 이방 선교는 그의 전(前)생애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방 사람들 중예도 유다교로 전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을 신약성서에서는 "이방의 경건한 사람들"(가령 사도 10, 1 이하)이라고 불렀다. 저들은 유다교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했고, 그와 더불어 유다인의 의무를 다하여야 했다. 그런데 유다교 전파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할례였다.

만일 우리가 사울이 이방인에게 율법을 전파하는 전도자였다는 전제를 갖는다면 왜 그가 특히 할례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했던 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바울로는 자신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끝까지 맞서 싸웠다. 그것은 바로 할례가 유다교를 전파함에 있어서 가장 큰 난제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스도교를 통하여 율법에서의 자유를 터득한 그는 이방인에게 야훼의 도(道)를 전파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제거되었다는 환희를 경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몸에 그리스도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유다 사람이나 헬라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갈라 3, 27~29)라고 선언하는 데, 바로 이 선언은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할례와 율법을 지키는 일을 말하지 않는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유다인이 이방인과 하나가 될 문이 그리스도를 통해 열렸다는 환희에 찬 선포가 아닐까? 그것은 바로 유다교를 이방인에게 선포하려 했으나 언제나 이 난제에 부딪쳐 고통받았던 경험에서 나온 반작용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그는 라삐였으나 이방인을 대상으로 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는 이방인에게 유다교를 전파하기 위한 선교의 도상에 있었다고 보여진다.


List of Articles
바알 (열상 19, 18)
남은 칠천 명 (19, 7-18)
민중의 손으로 통일되는 날 (아모 9, 11-15)
겨울은 가고 (에제 37장)
에제키엘이 무등산에서 절규한다 (에제 24, 6-8)
포로에서의 탈출 (이사 66, 1-8)
위정자와의 대결 (이사 7, 10-14)
   
제5부 새로운 존재
일상성과 비일상성 (루가 10, 38-42)
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창세 3, 1-10)
새로운 인간상 (창세 12, 1-9)
믿음의 조상 (창세 22, 17-18)
두 사이 에 손을 얹을 판결자 (욥기 9, 25-35)
하느님으로부터의 도피 (시편 139편)
하느님의 웃음 (시편 2편)
잠과 신앙 (시편 127편)
교회란 무엇인가 (로마 8, 9-30)
인간을 말한다 (마르 12, 28-34)
존재 근거 (시편 42편)
우주의 품으로 (시편 8,3 이하)
   
판권
표지
예수의 민중사건 : 『민중과 성서』를 내면서
   
제1부 복음서와 민중
   
예수와 민중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전제
    2. 마르코복음 안의 오클로스
    3. 마르코복음에 나타난 오클로스의 성격
        1) 오클로스의 성격
        2) 오클로스에 대한 예수의 행태
        3) 종합
    4. 예수를 따른 자들
    5. 마르코복음 안에 있는 어록
    6. 오클로스의 언어학적 의미
        1) 라오스와 오클로스
        2) 오클로스와 암 하 아레츠
    7. 종합
마르코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1. 전제
    2. 마르코의 삶의 자리
    3. 마르코의 민중신학의 기조
        1)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14a절)
        2) 갈릴래아로 가다
        3) 하느님 나라의 도래 선포
    4. 민중의 행태
예수사건의 전승 모체
    1. 문제 제기
    2. 케리그마의 성격
        1) 고린토전서 15장 3~8절
        2) 필립비서 2장 6~11절
        3) 사도행전에 나타난 케리그마
    3. 민중언어의 성격
    4. 수난사
    5. 예수의 행태 일반
        1) 기적 이야기와 예수의 행태
        2) 아포프테그마와 예수의 행태
        3) 로기온(Logion, 어록)과 예수의 행태
    6. 결론
가난한 자 : 루가의 민중 이해
    1. 가난한 자
        1) 통계적 고찰
        2) 루가의 특수자료
        3) 예수의 탄생설화와 나자렛 선언
        4) 마르코와 Q자료
    2. 루가복음서의 청중
    3. 결론
마태오의 민중적 민족주의
    1. 문제 제기
        1) 마태오의 신학적 주제에 대한 논의들
        2) 문제 제기
    2. 마태오가 처한 현실
        1) 마태오와 그의 시기
        2) 민족적 와해 위기
    3. 마태오의 현실인식
        1) 이스라엘 : 길 잃은 양들
        2) 길 잃은 양이 놓여 있는 현실
    4. 민족동일성 재확립
        1) 뿌리 찾기
        2) 바리사이파가 주도하는 라삐 유다교와의 대결
    5. 마태오의 민중 이해
        1) 언어적 성격
        2) 의식화된 민중
    6. 맺는 말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예수사건의 재발견
    2. 마르코복음과 민중
    3. 민중은 수단이 아니다
    4. 민중은 객체일 수 없다
    5. 십자가는 민중수난의 극치다
민중신학의 어제와 오늘
    1. 독재와 대항하므로
    2. 민중을 만나므로
    3. 민중과 더불어
   
제2부 민중운동사
   
민중사건과 언어사건
    1. 성서에서 본 말의 성격
        1) 그 말의 현장은 어떤 것이었나
        2) 예수의 경우
        3) 예수사건에 관한 전승
        4) 오순절의 말 사건
    2. 무엇으로 말하는 것인가
    3.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4. 우리가 해야 할 말
미래는 가난한 자의 것 : 루가 6장 20~26절
    1. 축복과 저주
    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3. ‘지금’과 ‘장차’
    4. 우리의 선택
나라가 임하옵소서
    1. 예수의 기도
    2. 그의 기도를 전달받은 자들
    3. 하느님의 나라
고향 잃은 민중
    1. 피난민
    2. 성서에서 본 피난민문제
    3. 게르(GER) 문제 해결의 시도
    4. 이방인에 대한 관용의 한계
    5. 당면한 과제
        1 ) 새로운 인식을 위한 운동
        2)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제언
이스라엘 민중사
    1. 머리말
    2. 출애굽
    3. 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
    4. 민중을 배반하고 세워진 왕권
    5. 분단시대의 고난
    6. 민중운동의 여러 계열
    7. 예수의 민중운동
    8. 맺는 말
   
제3부 민중과 체제
   
민중사실의 증언
    1. 민중신학의 전제들
    2. 민중사실의 증언
고난과 고백
    1. 수난자와의 일치
    2. 마르코의 민중
    3. 수난사와 고난
    4. 더불어의 고난
    5. 맺는 말
갈릴래아 민중에 항복한 바울로
    1. 바울로의 위치
    2.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3. 그리스도교 박해
    4. 예수를 만남
    5. 전향
    6. 맺는 말
소명(召命)
    1. 바울로의 소명
    2. 사도 됨과 소명
    3. 이방인에게로
바울로와 역사의 예수 I
    1. 머리말
    2. 예수에 대한 바울로의 말
    3. 예수냐 바울로냐
    4. 왜 예수가 아니고 케리그마인가
선택받은 민중: 고린토전서 1장 26~31절
    1. 고린토교회 구성원의 사회계층
    2. 공동체원의 가치 판단 기준
    3. 민중을 보는 눈
    4. 택함을 받은 민중
   
제4부 예수의 희망
   
하늘도 땅도 공(公)이다
    1. 낙원 이야기
    2. 아담一인간
    3. 실락원은 공을 사유화함으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마르코 16장 1~8절
    1. 제3의 자리
    2. 갈릴래아
    3.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예수의 희망
    1. 새 세계에의 희망
    2. 희망과 세계혁명
    3. 바른 인간공동체의 희망
    4. 맺는 말
   
판권
표지
예수는 논하지 않았다
   
제1부 민중의 언어, 이야기
   
1. 성서라는 책의 성격
2. 성서의 서술양식
    1) 구약성서
    2) 신약성서
    3) 민중언어
   
제2부 예수의 이야기(비유)
   
1. 만성병에 걸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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