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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리스도교 박해

사울은 자신을 소개하는 말끝에 "열심에 있어서는 교회를 박해했다"(필립 3, 6)고 한다.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교 박해에 온 정력을 다 쏟았다는 표현이다. 바로 그런 삶이 그에게는 인간적으로 보아 크게 자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었다. 그의 그리스도교인 박해의 기록은 그 자신이 간단하게 언급한 말(글)과 사도행전에 나타난다.

위에서 본 것처럼 바울로가 그의 삶을 그렇게 엮어가는 거의 같은 때에 팔레스틴에 속하면서도 유다, 특히 예루살렘 세력에 의해서 이방 땅처럼 소외당하고 있던 갈릴래아 지방에서 한 민중운동이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민중운동이었다. 권력가도 아니 오, 명문 출신도 아니며, 심지어 정규교육을 받은 라삐도 아닌 무명의 이 청년이 자신과 비슷한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는 주로 농촌에서 활동했으며, 그의 언어는 당시 아녀자들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의 선포의 골자는 하느님 나라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구체적인 증거로서 악마가 지배하는 세대는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가 귀신 들린 자 또는 병자들을 치유하는 것은 바로 사탄과의 투쟁이라고 했다.

그런데 유다의 상부층에서는 이 운동을 또 하나의 거짓 메시아운동이라 보았다. 하기는 그 무렵에 많은 메시아운동이 일어나서 민중을 선동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때마다 당국은 그 두목을 붙잡아 잔인하게 제거해버렸으며, 그와 더불어 그 운동은 무산되곤 했었다. 이러한 경험을 한 저들은 예수를 처형해버림으로 이 운동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간단한 결론을 내렸고, 그에 따라 예수를 가장 잔인한 사형방 법인 십자가형에 처해버렸다.

이것으로 이 운동은 끝났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잠깐 움츠렸던 그의 민중은 짧은 시간에 재무장을 하고 나서서 바로 저들이 죽인 예수가 구약에서 기다리던 그 메시아이며, 그의 죽임당 함은 무엇보다도 이스라엘민의 죄를 대신 걸머진 사건이라고 증언했다. 그런데 저들은 지하에서 또는 어느 변두리에서 이런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를 처형한 곳, 유다의 심장부인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한 것이다. 유다교는 곧 박해의 손을 뻗쳤으나 저들은 결코 굴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자신들의 운동이 결코 반율법적이거나 반유다적인 것이 아니고 유다교의 완성을 위한 운동임을 역설하여 짧은 시일 내에 그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그것이 이른바 예루살렘 교회요, 그 주동자는 베드로를 위시한 일부 제자들과 예수의 형제 야고보였다.

그런데 그 안에는 뜻을 달리하는 계열이 처음부터 있었다. 그들은 바로 헬레니즘 영역에 거주하다가 고국에 돌아와 사는 이른바 헬레니스트(Hellenist)들이었다. 말하자면 교포 출신들인 셈이다. 저들은 본토의 유다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저들은 배타적 국수주의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 까닭은 저들이 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저들이 보기에 유다 사회를 외국과의 관계에서 차단한 것은 보수적 율법이해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유다교의 대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견해를 같이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예수운동을 보는 시각도 달랐다.

교회 안에 이 두 계파의 긴장이 있었던 것이다. 그 긴장이 사도행전 6장에 곧 노출된다. 열두 사도들이 교인 전체를 모아놓고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먹이는 일에 치중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그러니 형제들이여, 여러분 가운데 믿을 만하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내시오. 그러면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만 힘쓰겠습니다"(2~4절)라고 제안하므로 회중들이 일곱 사람을 뽑았는데, 이상한 것은 이름을 보아 저들이 모두 헬레니스트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추천된 사람들은 먹이는 일(diakonia)에 치중한 것이 아니라 사도들과 다름없는 복음 전파의 일선에 나섰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두 계파의 갈등을 해소해보려는 과정을 이렇게 서술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헬레니스트계의 지도적 인물인 스데파노가 체포되었다. 베드로 등 제자들이 아니고, 바로 헬레니스트인 스데파노가 체포된 까닭은 무엇인가? 사도행전은 마치 그가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기 때문인 것처럼 전한다(6, 8). 그러나 베드로나 요한 등도 기적을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이 사람이라니! 고발하는 자는 "이 사람이 언제나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한다고 한다"(6, 13)고 하였다. 여기서 거룩한 곳은 물론 성전이다. 따라서 스데파노가 고발당한 죄목은 유다교의 두 중심기둥을 흔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스데파노의 항변은 사도행전 7장에, 신약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긴 연설문으로 실려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확실히 그는 성전을 거부한다. 다윗에 의해 정초 되고 솔로몬에 의해 세워진 성전에 대한 이야기끝에 "지극히 높으신 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집에 계시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하고(48절), 예언자 이사야의 말로(이사 66, 1) 그 뜻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역사를 전개할 때에도 그 초점을 출애굽 사건에 둔다. 그와 동시에 그 사건을 주도한 모세를 높임으로 광야시대의 야훼신앙과 자기 시대의 성전종교를 대립시킨다. 그리고 그의 연설 전문은 이스라엘의 타락 사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반드시 반율법적인 것은 아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이 연설 내용이 유다교 안의 개혁자들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예수에 대해 일언반구도 말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그를 돌로 쳐 죽이고 동시에 그의 일당을 숙청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스데파노는 이렇게 첫 희생자로 순교되고 그것을 계기로 헬레니스트들이 사마리아(사도 8, 1), 페니키아, 키프로스, 안티오키아(사도 11, 9) 등 사방으로 퍼져나 갔다. 우리는 그 외에도 다마스커스나 로마의 교회 등 바울로 이전에 세워진 교회들은 아마도 이렇게 흩어진 헬레니스트들에 의해 세워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울이 바로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교인 박해의 전선에 나선 것이다. 먼저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간추려보자.

예루살렘에서 스데파노를 처형할 때 사울이라는 청년이 그 현장에서 옷을 지키고 있었다(사도 7, 5). 이 기사에는 증인들의 옷이라 했는데 유다 전통에서 보면 예수의 경우처럼 피고의 옷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때에 대한 회상이 사도행전 22장 20절에 다시 반복된다. 그다음 그는 곧 그리스도인 박해의 전선에 나선다. 그리스도교를 완전 '박멸'하기 위해 '집집마다' 다니며 체포하고 감옥에 넘겼다고(9, 1 이하) 할 만큼 그의 결의는 대단했다. 그는 여전히 제자들을 '위협'하고 살해할 '기세'를 보였으며, 다마스커스에 그리스도교인들이 대량 숨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대제사장(가야파)에게서 그런 권리를 이양받는 공문을 받았다. 그것은 그대로 "그 도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다 만나는 대로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어오려는"(9, 1~3) 것이 목적이었다. 한편 다마스커스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그리스도교인을 "죽이던 사람"(9, 21)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개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유다교의 수뇌부와 연결된 박해운동에 참여한 것이 된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런 서술은 지나친 과장이라고 보고 최대한 축소하려고 한다. 그런데 박해이야기는 바울로 자신도 몇 차례 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하느님의 교회를 "무자비"하게 박해했으며, "아주 없애버리려고" 했다고 한다(갈라 1, 13). 곧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아주 없애버리려 했던 자란 말이 또 나온다. 그리고 바울로는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를 아주 없애버리려고 했던 사람이라는 세평이 바울로의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갈라 1, 23). 어떻게 한 개인이 한 민중운동을 없애버리려는 계획을 할 수 있었을까? 물론 그의 말에는 저들을 죽였다든지 체포해서 투옥했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지적은 없다. 그러나 아주 없애버리려고 의도했다는 말은 사도행전의 서술과 상통한다.

그리스도교를 근절하려는 열심에 찬 청년 사울이 아직도 그리스도교도들에 대한 태도를 분명하게 결정 못한 유다 상부와 접선하여 자신에게 저들을 근절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도록 요청했을 가능성이 크다. 로마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끝까지 역대 총독들을 설득하고 결국 카이사르에게 직접 재판을 받도록 한 위인이 역설적으로 말해 비슷한 과정을 거쳐 그리스도교 박해에 나섰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그는 그렇게까지 광분했을까? 이것은 증오 이상의 계기가 있음을 반영한다. 그 자신이, 비판받은 말처럼, 그리스도교를 하나의 전염병 보듯 보았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빨리 박해에 나서고 그것에 광분하였다는 것은 빨리 손쓰지 않아서 그것이 만연될 경우 구제불능의 사태에라도 이를 것 같은 화급함을 보여준다.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사도행전에는 왜 그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단지 사도행전에서 간접적으로 표현된 바에 따르면 스데파노를 죽인 동기로서 성전과 율법을 거슬렀으며, 모세가 준 그들의 관례를 바꾸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것은 유다교 안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내용에 불과하다. 그런데 바울로 자신의 발언에서는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갈라디아서 1장 13절에 이어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철저한 유다교주의자였던가를 강조한다. 또한 필립비서 3장 6절에서 그가 누구보다도 유다교 전통에 철저했다는 맥락 속에서 교회박해를 말한다. 즉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조상들의 전통을 지켰고, 율법을 철저히 지킨 이스라엘인의 자부심과 관련시킨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그리스도교는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그 결과 헬레니스트들은 이방에 흩어졌는데, 안티오키아 교회가 그 중심적 역할을 했다. 한편 이방 교회에서 급속도로 그리스도론이 발전되었는데, 그것은 스데파노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리스도론의 핵심을 말한다면 그리스도사건은 바로 유다 율법의 끝이며, 그러므로 구원의 길은 '율법을 지킴'으로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대치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써 그의 박해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가 유다의 전통을 파괴할 위험을 갖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또한 그가 어디에서 그리스도교를 알게 되었나 하는 것도 드러난다. 사울은 그리스도교를 이런 그리스도론을 주장하는 그룹을 통해서 이해했을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자기의 반생에 모든 심혈을 기울였던 지금까지의 삶은 완전히 무의미해질 뿐 아니라 그가 발을 디디고 선 바탕이 완전히 무너져버린다는 위협을 느꼈던 것이다.


List of Articles
바알 (열상 19, 18)
남은 칠천 명 (19, 7-18)
민중의 손으로 통일되는 날 (아모 9, 11-15)
겨울은 가고 (에제 37장)
에제키엘이 무등산에서 절규한다 (에제 24, 6-8)
포로에서의 탈출 (이사 66, 1-8)
위정자와의 대결 (이사 7, 10-14)
   
제5부 새로운 존재
일상성과 비일상성 (루가 10, 38-42)
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창세 3, 1-10)
새로운 인간상 (창세 12, 1-9)
믿음의 조상 (창세 22, 17-18)
두 사이 에 손을 얹을 판결자 (욥기 9, 25-35)
하느님으로부터의 도피 (시편 139편)
하느님의 웃음 (시편 2편)
잠과 신앙 (시편 127편)
교회란 무엇인가 (로마 8, 9-30)
인간을 말한다 (마르 12, 28-34)
존재 근거 (시편 42편)
우주의 품으로 (시편 8,3 이하)
   
판권
표지
예수의 민중사건 : 『민중과 성서』를 내면서
   
제1부 복음서와 민중
   
예수와 민중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전제
    2. 마르코복음 안의 오클로스
    3. 마르코복음에 나타난 오클로스의 성격
        1) 오클로스의 성격
        2) 오클로스에 대한 예수의 행태
        3) 종합
    4. 예수를 따른 자들
    5. 마르코복음 안에 있는 어록
    6. 오클로스의 언어학적 의미
        1) 라오스와 오클로스
        2) 오클로스와 암 하 아레츠
    7. 종합
마르코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1. 전제
    2. 마르코의 삶의 자리
    3. 마르코의 민중신학의 기조
        1)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14a절)
        2) 갈릴래아로 가다
        3) 하느님 나라의 도래 선포
    4. 민중의 행태
예수사건의 전승 모체
    1. 문제 제기
    2. 케리그마의 성격
        1) 고린토전서 15장 3~8절
        2) 필립비서 2장 6~11절
        3) 사도행전에 나타난 케리그마
    3. 민중언어의 성격
    4. 수난사
    5. 예수의 행태 일반
        1) 기적 이야기와 예수의 행태
        2) 아포프테그마와 예수의 행태
        3) 로기온(Logion, 어록)과 예수의 행태
    6. 결론
가난한 자 : 루가의 민중 이해
    1. 가난한 자
        1) 통계적 고찰
        2) 루가의 특수자료
        3) 예수의 탄생설화와 나자렛 선언
        4) 마르코와 Q자료
    2. 루가복음서의 청중
    3. 결론
마태오의 민중적 민족주의
    1. 문제 제기
        1) 마태오의 신학적 주제에 대한 논의들
        2) 문제 제기
    2. 마태오가 처한 현실
        1) 마태오와 그의 시기
        2) 민족적 와해 위기
    3. 마태오의 현실인식
        1) 이스라엘 : 길 잃은 양들
        2) 길 잃은 양이 놓여 있는 현실
    4. 민족동일성 재확립
        1) 뿌리 찾기
        2) 바리사이파가 주도하는 라삐 유다교와의 대결
    5. 마태오의 민중 이해
        1) 언어적 성격
        2) 의식화된 민중
    6. 맺는 말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예수사건의 재발견
    2. 마르코복음과 민중
    3. 민중은 수단이 아니다
    4. 민중은 객체일 수 없다
    5. 십자가는 민중수난의 극치다
민중신학의 어제와 오늘
    1. 독재와 대항하므로
    2. 민중을 만나므로
    3. 민중과 더불어
   
제2부 민중운동사
   
민중사건과 언어사건
    1. 성서에서 본 말의 성격
        1) 그 말의 현장은 어떤 것이었나
        2) 예수의 경우
        3) 예수사건에 관한 전승
        4) 오순절의 말 사건
    2. 무엇으로 말하는 것인가
    3.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4. 우리가 해야 할 말
미래는 가난한 자의 것 : 루가 6장 20~26절
    1. 축복과 저주
    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3. ‘지금’과 ‘장차’
    4. 우리의 선택
나라가 임하옵소서
    1. 예수의 기도
    2. 그의 기도를 전달받은 자들
    3. 하느님의 나라
고향 잃은 민중
    1. 피난민
    2. 성서에서 본 피난민문제
    3. 게르(GER) 문제 해결의 시도
    4. 이방인에 대한 관용의 한계
    5. 당면한 과제
        1 ) 새로운 인식을 위한 운동
        2)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제언
이스라엘 민중사
    1. 머리말
    2. 출애굽
    3. 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
    4. 민중을 배반하고 세워진 왕권
    5. 분단시대의 고난
    6. 민중운동의 여러 계열
    7. 예수의 민중운동
    8. 맺는 말
   
제3부 민중과 체제
   
민중사실의 증언
    1. 민중신학의 전제들
    2. 민중사실의 증언
고난과 고백
    1. 수난자와의 일치
    2. 마르코의 민중
    3. 수난사와 고난
    4. 더불어의 고난
    5. 맺는 말
갈릴래아 민중에 항복한 바울로
    1. 바울로의 위치
    2.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3. 그리스도교 박해
    4. 예수를 만남
    5. 전향
    6. 맺는 말
소명(召命)
    1. 바울로의 소명
    2. 사도 됨과 소명
    3. 이방인에게로
바울로와 역사의 예수 I
    1. 머리말
    2. 예수에 대한 바울로의 말
    3. 예수냐 바울로냐
    4. 왜 예수가 아니고 케리그마인가
선택받은 민중: 고린토전서 1장 26~31절
    1. 고린토교회 구성원의 사회계층
    2. 공동체원의 가치 판단 기준
    3. 민중을 보는 눈
    4. 택함을 받은 민중
   
제4부 예수의 희망
   
하늘도 땅도 공(公)이다
    1. 낙원 이야기
    2. 아담一인간
    3. 실락원은 공을 사유화함으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마르코 16장 1~8절
    1. 제3의 자리
    2. 갈릴래아
    3.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예수의 희망
    1. 새 세계에의 희망
    2. 희망과 세계혁명
    3. 바른 인간공동체의 희망
    4. 맺는 말
   
판권
표지
예수는 논하지 않았다
   
제1부 민중의 언어, 이야기
   
1. 성서라는 책의 성격
2. 성서의 서술양식
    1) 구약성서
    2) 신약성서
    3) 민중언어
   
제2부 예수의 이야기(비유)
   
1. 만성병에 걸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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