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로가 받은 소명은 뚜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로는 기묘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그 소명을 실천에 옮기는 일 때문에 동료들에게서 시련을 받는 결과를 빚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받은 소명을 예수의 직계제자들이 회의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둘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그것으로 인해 박해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로가 소명을 말하는 것은 단순히 자기 생애를 서술하는 곳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부정하려는 사람들과 투쟁하려고 반론을 제기하는 데서 표현되고 있다. 그런 발언 가운데서 주목되는 것은 그의 전향과 소명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시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그의 발언을 보자.
바울로는 투쟁의 글로 유명한 갈라디아서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오, 사람을 통하여 된 것도 아니오, 예수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임명받아 사도가 된 나 바울로는……(갈라 1, 1).
이 말의 원문은 "바울로, 사도(apostolos), 사람들에게가 아니고 사람을 통해서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느님 아버지를 통해서"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의 중요한 편지들이 다 그렇다. 로마서의 서두도 "바울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로 부름받은"이라는 순서로 되어 있고 고린토전서는 "바울로, 사도로 부름받은" 순으로 되어 있다. 도대체 이런 식의 편지어법은 일찍이 없었다. 어떻게 편지 서두에 자기 이름을 가장 먼저 세우고 그리스도교회 안의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사도'라는 말을 그 뒤에 놓을 수 있을까?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소명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입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먼저 밝힐 것은 '사도'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