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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도 됨과 소명

'사도'란 '보낸다'는 동사를 어간으로 한 명사이다. 즉 파견된 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주 일찍부터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12사도라는 관념적 숫자가 사용되었다. 12는 고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대표성을 의미한다. 한편 예수의 직계제자들 중에 베드로를 위시한 일부가 사도권을 주장할 뿐 아니라, 12라는 관념 속에 그 사도권을 정착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도권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역사의 예수를 목격한 제자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예수의 부활을 체험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12라는 관념적 수는 정해져 있으나 그 안에 드는 사람은 유동적이었던 것 같다. 마태오의 것과 마르코의 내용은 같으나 루가와 요한에는 한두 사람씩 다른 이름이 보인다. 사도행전에 '가리옷 사람 유다' 대신 '마티아'를 보궐한 것으로 보아(사도 1, 26) 예수 이후의 12사람에게도 변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바울로는 한사코 자신을 '사도'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바울로는 역사의 예수를 본 일도 없었거니와 12사도 중에 포함된 일도 없었다. 그리고 제자들이 볼 때 그는 부활의 현장에도 없었던 자이다. 그의 사도권 주장이 인정받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바울로는 그가 사도임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내가 자유인이 아닙니까.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보지 못했습니까!(고전 9, 1a)

이 주장은 다른 사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된다. 바울로가 언제 역사의 예수를 보았는가? 바울로는 이 말로써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그가 예수의 생존시에 비록 제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를 만난 경험은 있었다는 말인가? 그런 흔적은 전혀 없다. 만일 그가 역사의 예수를 본 일이 있다면 그 여러 편지 중에 자신의 사도권을 주장하기 위해서 또는 그의 전향동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그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로의 이 말은 그가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겪었던 그 경험을 일컬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일찍부터 이루어진 이른바 부활고백(고전 15, 3~7)의 끝머리에 "그리고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해 난 자와 같은 내게도 나타나셨습니다"(고전 15, 8)라고 함으로써 부활 경험자의 반열에 자기를 두는데, 거기서는 시간개념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그런데 바울로의 사도권 주장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는, 그가 어떻게 또는 누구에 의해 사도가 되었느냐는 사실이다.

사람들로부터도 아니고 사람을 통해서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아버지를 통해 사도가 된 나 바울로는……(갈라 1, 1).

그는 비록 예수의 생존시에 그에게서 직접 12사도에 임명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사람들, 즉 공동체를 통해 사도로 임명되었거나 아니면 가령 베드로 같은 대표적인 사람에 의해 임명 또는 인정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사도로 임명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물론 역사의 예수가 아니라 부활한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또한 하느님에 의해서 임명 되었는데, 그 하느님은 예수와 떨어진 별개의 존재로서의 하느님이 아니라 예수를 죽음에서 살려 일으킴으로 그리스도가 되게 한 하느님이라고 한다. 즉 한정사(정관사)가 붙은 하느님이다. 이로써 바울로는 그의 사도권이 다른 사도들과 똑같은 반열에 섰음을 강조한다.

바울로는 혹시나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과의 관계에서 종속적인 위치에 있지 않느냐라는 사람들의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 자신은 다마스커스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단신으로 아라비아에 갔다가 3년 후에 비로소 예루살렘에 올라가 베드로를 만났다고 한다. 또한 거기서 보름 동안을 지냈으나 주의 형제인 야고보밖에는 어느 누구도 만난 일이 없음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에게서 복음을 전수받지 않았음을 역설한다.

그러면 바울로는 왜 이렇게 자신의 사도권을 강조하는가? 그가 같은 예수를 선교하는 것이라면 왜 구태여 사도권을 무리하게 내세워야 했을까? 사도라고 불리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복음선교 전선에 나선 이가 얼마든지 많았으며, 저들 사이에는 별로 긴장이 없었다. 그러나 바울로가 사도권을 주장하는 것은 그의 소명의 내용이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특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울로는 자신이 받은 소명의 내용이 복음을 전하는 일(euangelizetai)이라고 한다(고전 1, 17). 이 점에서도 다른 사도들과 같다. 그러나 그 복음에 대한 이해가 사도들과 달랐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보다 다른 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우리가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 다시 말합니다. 누구든지 여러분이 받은 복음보다 다른 것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갈라 1, 8~9).

'복음을 전한다'는 말은 다른 사도들이 사용하는 것과 단어 자체도 같은데, 여기서 바울로는 그가 전하는 것과 다른 자가 전하는 복음이 달리 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어떤 복음이 정당한가를 가리기 위한 투쟁에서 확실한 교권인 사도권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 다른 사도들이 사도권을 등에 업고 바울로가 전한 복음에 대립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사도 됨은 사람을 통해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음에서 살린 하느님 아버지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 의해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았거나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갈라 1, 11~12)라고 한다. 이렇게 사도직과 그가 전한 복음을 지키는 일은 직접적인 관계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가 전향한 3년 뒤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게파를 만났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도 저들에 의해 복음을 전수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14년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일이 있는데, 그때에도 저들에게 무엇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갈라 2, 2)고 한다.

그러면 바울로에게 주어진 소명은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그의 복음선교의 대상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이다. 바울로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교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제 나는 이방 사람인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러한 내 임무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로마 11, 13)라고 한다. 또 그는 같은 편지에서 "나는 이방 사람들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었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해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고 있습니다"(15, 16)라고 하면서 바로 그 직책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여기에서 그의 소명의 내용이 뚜렷해졌다. 바울로는 비유다인 세계에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기존의 사도들이나 어느 누구와 의논하여 결정한 것이 아니고 "내가 모태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세우시고 불러주신 이가 기쁜 마음으로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그 아드님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려고 내게 아드님을 계시해주셨습니다"(갈라 1, 15)라고 한다. 한편 모태에서부터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은 제2 이사야의 표현인데(이사 49, 1), 그 익명의 예언자가 "너는 땅끝까지 나의 구원이 이르게 하여라"(이사 49, 6)라는 계시를 전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바울로가 이 표현을 빌려 복음의 세계화라는 확실한 소명을 시사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바로 이런 표현은 예레미야에도 있다(예레 1, 5).

그런데 이와 같은 소명은 순수한 복음전파라는 차원에서만 볼 때에는 이스라엘의 지도층과 직접 충돌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로 인해 유다교의 폐쇄성이 무너지고, 그에 따라 생겨나는 결과들이 심각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그리스도교회의 신학적 입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아직 그때까지도 그리고 그후 오랫동안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았으면서도 유다교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던 예루살렘 교회내의 지도층은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었다. 유다교의 영역에 머물러 있자니 그리스도 복음의 성격이 위축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충실하자니 유다교의 전통과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런 딜레마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데, 한때 그리스도교 박해의 선봉에 나섰던 바울로가 독자적으로 유다 전통에서 탈출하여 아무 조건 없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저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들과 축을 같이하는 그레꼬 로마의 영역에 있는 유다인 그리스도교인들도 곳곳에서 바울로와 충돌을 일으켰으며, 그때마다 저들은 바울로의 교권의 정당성을 문제삼고 나왔던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층은 이방 선교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를 믿더라도 유다인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본적인 의무는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할례받는 일, 이방인과 우상의 제물을 함께 먹지 않는 일 등이 있었다. 그리고 바울로에 대해서도 비록 그의 공로를 일면적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는 어디까지나 사도들이 중심이 된 예루살렘 교회의 지시를 받아야만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로는 자기의 주장을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 이 받은 소명은 고유한 것으로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간의 긴장은 점점 고조된 것이다. 그러나 바울로는 비록 자기의 신념을 관철해나갔지만 한편으로 예루살렘 교회와의 연대성을 중요시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소명의 고유성에 대한 동의를 얻기 위해 14년 후 이른바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참석했던 것이다. 거기서 그는 자기 소명의 고유성을 분명히 함으로 저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고 하며, 결론으로 "그들은 할례받은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하느님께서 베드로에게 맡기신 것같이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내게 맡기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할례받은 자들을 위한 사도직을 베드로에게 주신 분이 할례받지 않은 자들을 위한 사도직을 내게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갈라 2, 7~8)라고 말한다.


List of Articles
바알 (열상 19, 18)
남은 칠천 명 (19, 7-18)
민중의 손으로 통일되는 날 (아모 9, 11-15)
겨울은 가고 (에제 37장)
에제키엘이 무등산에서 절규한다 (에제 24, 6-8)
포로에서의 탈출 (이사 66, 1-8)
위정자와의 대결 (이사 7, 10-14)
   
제5부 새로운 존재
일상성과 비일상성 (루가 10, 38-42)
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창세 3, 1-10)
새로운 인간상 (창세 12, 1-9)
믿음의 조상 (창세 22, 17-18)
두 사이 에 손을 얹을 판결자 (욥기 9, 25-35)
하느님으로부터의 도피 (시편 139편)
하느님의 웃음 (시편 2편)
잠과 신앙 (시편 127편)
교회란 무엇인가 (로마 8, 9-30)
인간을 말한다 (마르 12, 28-34)
존재 근거 (시편 42편)
우주의 품으로 (시편 8,3 이하)
   
판권
표지
예수의 민중사건 : 『민중과 성서』를 내면서
   
제1부 복음서와 민중
   
예수와 민중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전제
    2. 마르코복음 안의 오클로스
    3. 마르코복음에 나타난 오클로스의 성격
        1) 오클로스의 성격
        2) 오클로스에 대한 예수의 행태
        3) 종합
    4. 예수를 따른 자들
    5. 마르코복음 안에 있는 어록
    6. 오클로스의 언어학적 의미
        1) 라오스와 오클로스
        2) 오클로스와 암 하 아레츠
    7. 종합
마르코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1. 전제
    2. 마르코의 삶의 자리
    3. 마르코의 민중신학의 기조
        1)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14a절)
        2) 갈릴래아로 가다
        3) 하느님 나라의 도래 선포
    4. 민중의 행태
예수사건의 전승 모체
    1. 문제 제기
    2. 케리그마의 성격
        1) 고린토전서 15장 3~8절
        2) 필립비서 2장 6~11절
        3) 사도행전에 나타난 케리그마
    3. 민중언어의 성격
    4. 수난사
    5. 예수의 행태 일반
        1) 기적 이야기와 예수의 행태
        2) 아포프테그마와 예수의 행태
        3) 로기온(Logion, 어록)과 예수의 행태
    6. 결론
가난한 자 : 루가의 민중 이해
    1. 가난한 자
        1) 통계적 고찰
        2) 루가의 특수자료
        3) 예수의 탄생설화와 나자렛 선언
        4) 마르코와 Q자료
    2. 루가복음서의 청중
    3. 결론
마태오의 민중적 민족주의
    1. 문제 제기
        1) 마태오의 신학적 주제에 대한 논의들
        2) 문제 제기
    2. 마태오가 처한 현실
        1) 마태오와 그의 시기
        2) 민족적 와해 위기
    3. 마태오의 현실인식
        1) 이스라엘 : 길 잃은 양들
        2) 길 잃은 양이 놓여 있는 현실
    4. 민족동일성 재확립
        1) 뿌리 찾기
        2) 바리사이파가 주도하는 라삐 유다교와의 대결
    5. 마태오의 민중 이해
        1) 언어적 성격
        2) 의식화된 민중
    6. 맺는 말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예수사건의 재발견
    2. 마르코복음과 민중
    3. 민중은 수단이 아니다
    4. 민중은 객체일 수 없다
    5. 십자가는 민중수난의 극치다
민중신학의 어제와 오늘
    1. 독재와 대항하므로
    2. 민중을 만나므로
    3. 민중과 더불어
   
제2부 민중운동사
   
민중사건과 언어사건
    1. 성서에서 본 말의 성격
        1) 그 말의 현장은 어떤 것이었나
        2) 예수의 경우
        3) 예수사건에 관한 전승
        4) 오순절의 말 사건
    2. 무엇으로 말하는 것인가
    3.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4. 우리가 해야 할 말
미래는 가난한 자의 것 : 루가 6장 20~26절
    1. 축복과 저주
    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3. ‘지금’과 ‘장차’
    4. 우리의 선택
나라가 임하옵소서
    1. 예수의 기도
    2. 그의 기도를 전달받은 자들
    3. 하느님의 나라
고향 잃은 민중
    1. 피난민
    2. 성서에서 본 피난민문제
    3. 게르(GER) 문제 해결의 시도
    4. 이방인에 대한 관용의 한계
    5. 당면한 과제
        1 ) 새로운 인식을 위한 운동
        2)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제언
이스라엘 민중사
    1. 머리말
    2. 출애굽
    3. 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
    4. 민중을 배반하고 세워진 왕권
    5. 분단시대의 고난
    6. 민중운동의 여러 계열
    7. 예수의 민중운동
    8. 맺는 말
   
제3부 민중과 체제
   
민중사실의 증언
    1. 민중신학의 전제들
    2. 민중사실의 증언
고난과 고백
    1. 수난자와의 일치
    2. 마르코의 민중
    3. 수난사와 고난
    4. 더불어의 고난
    5. 맺는 말
갈릴래아 민중에 항복한 바울로
    1. 바울로의 위치
    2.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3. 그리스도교 박해
    4. 예수를 만남
    5. 전향
    6. 맺는 말
소명(召命)
    1. 바울로의 소명
    2. 사도 됨과 소명
    3. 이방인에게로
바울로와 역사의 예수 I
    1. 머리말
    2. 예수에 대한 바울로의 말
    3. 예수냐 바울로냐
    4. 왜 예수가 아니고 케리그마인가
선택받은 민중: 고린토전서 1장 26~31절
    1. 고린토교회 구성원의 사회계층
    2. 공동체원의 가치 판단 기준
    3. 민중을 보는 눈
    4. 택함을 받은 민중
   
제4부 예수의 희망
   
하늘도 땅도 공(公)이다
    1. 낙원 이야기
    2. 아담一인간
    3. 실락원은 공을 사유화함으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마르코 16장 1~8절
    1. 제3의 자리
    2. 갈릴래아
    3.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예수의 희망
    1. 새 세계에의 희망
    2. 희망과 세계혁명
    3. 바른 인간공동체의 희망
    4. 맺는 말
   
판권
표지
예수는 논하지 않았다
   
제1부 민중의 언어, 이야기
   
1. 성서라는 책의 성격
2. 성서의 서술양식
    1) 구약성서
    2) 신약성서
    3) 민중언어
   
제2부 예수의 이야기(비유)
   
1. 만성병에 걸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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