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사도라는 사명의식을 가진 바울로는 팔레스틴 밖에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모든 지역과 소아시아 일대를 세 차례나 누비고 다녔다. 그의 활동은 가히 초인적이었다. 그의 목적지는 세계의 심장부로 알았던 로마와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한 스페인이었다. 글자 그대로 "땅끝까지 이르러" 그가 받은 복음을 전하려 한 것이다. 그는 세계제국인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군사도로와 행정 중심지를 거꾸로 되밟아 올라가면서 마치 '전염병'같이 그리스도교를 전파시켜 나갔다. 그런데 그의 이같은 초인적 활동은 그리스도교로 세계를 '정복'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었는가?
바울로는 유다교가 고집하는 '할례'를 거부함으로 그로 인한 유다 민족과 다른 민족 사이의 담을 헐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에서는 일찍부터 그리스도인이 되는 표시로 '세례'를 실시했다. 사도행전에서 전하는 바로는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전향한 표시로서 세례를 베풀어 하루에 3천 명씩이나 전향시켰다는 보도가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로는 세례를 베풀지 않았다. 그는 세례를 주는 일로 인해 계파가 생기는 것을 경고하면서 자신은 두 사람 외에는 세례를 준 일이 없음을 "하느님께 감사한다"(고전 1, 24)고까지 한다.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교의 물량적 확장을 목표로 하지 않았으리라는 주장의 근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그에게는 그리스도교를 새로운 종교로서 조직하고 그것을 성격화하기 위해 의식(儀式)상으로 제도 따위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했다는 인상도 없다. 그러면 그의 목표는 그리스도교를 새로운 종교로 발전시키는 데 그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복음의 내용이 일으킬 세계 변화를 기대하는 데 있지 않았을까?
이런 물음을 가질 때 우리가 관심해야 할 것은 그의 전향사건에서 풀이된 동기들이 그의 소명에 어떤 작용을 했나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완벽주의자, 엘리트주의자에서 예수의 민중이 벌인 사건에 항복하고 그들을 향해 전향한 그 사실이 그의 소명을 실천에 옮기는 데 어느 정도 반영되었나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전향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울로가 그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예수의 십자가로 집약하고 있는데, 이 사실은 대단히 민중적이다. 후에 이것을 별도로 살펴보겠지만 그는 '십자가'라는 말 자체를 동사까지 합하면 무려 17회나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을 자신의 복음의 중심으로 삼는다. 그는 물론 십자가의 사건이 반유다적이며, 반헬라적임을 알고 있다. 십자가는 율법의 시각에서 볼 때나 지혜의 시각에서 볼 때에도 어리석은 것이며, 하느님에게 정죄받은 상징이기 때문에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이른바 지혜 있는 자들을 비판하는 끝에 "유다 사람들은 기적을 구하고 헬라 사람들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고전 1, 22~23)라고 하면서 "이것이 유다 사람들에게는 거리낌이 되고 이방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지만 부르심 받은 사람에게는……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능력이요 하느님의 지혜"(24절)라고 역설적인 말을 하고,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한다(25절). 이 십자가는 엘리트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은 것, 미련한 것, 약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엘리트적인 것이고 민중적인 것이다. 그는 그 다음에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는데,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계층적으로 분류하고서 그들은 권력이나 지혜나 가문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변변치 않은 사람들이며, 어리석고 약하며 멸시받으며 존재 없는 자들 이 대부분이고, 하느님은 바로 이런 약자들을 선택해서 강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셨다고 한다(고전 1, 26~28 참조).
그의 반율법투쟁은 민중해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것도 후에 별도로 논의할 것이지만 율법은 상류층에게는 자랑거리가 되고 그들의 권익을 뒷받침하는 구실이 되지만 가난한 자, 눌린 자에게는 속박의 쇠사슬로 기능했던 것이다. 그는 십자가의 사건을 마치 '종의 문서'를 불태우는 사전처럼 이해했다(골로 2, 14). 이 점에서는 예수의 운동과 축을 같이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건이 제국주의와 가부장제도하에 고착된 계급성을 타파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다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 자유인과 종의 벽, 남자와 여자 사이의 벽이 다 무너질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라면 '십자가의 복음'은 체제 속에서 눌려 있는 자들, 즉 '민중의 해방을 위한 복음'이라는 뜻이 된다. 사실상 그의 선교영역에서는 이런 담들이 헐려져갔으며, 바울로 자신도 행동으로 그것을 실천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런 선언을 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맙시다(갈라 5, 1).
그는 그의 길을 방해하면서 유다주의를 관철하려는 자들과 싸우면서 "그 거짓 형제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러 몰래 들어온 자들이었습니다"(갈라 2, 4)라고 규정한다.
자유! 그것은 자유인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고 구속받고 있는 자 즉 민중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마침내 그의 신관(神觀)마저도 민중적이 된 일면을 보여준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를 반유다주의적, 반희랍지혜적 상징으로 내세우는 맥락 속에서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하다고 말하는데(고전 1, 25), 여기서 십자가사건 자체가 전능한 하느님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약함의 표상이라는 시각이 노출되어 있다. 그는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자신의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의 현실은 예수가 약해서 달려 죽은 사건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발상들은 예수의 민중운동에 영향받은 것이 아니었으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바울로와 같은 완전주의자에게는 약함은 죄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현실적으로 관철되었는가? 오히려 그에게는 유다ᆞ반유다적인 면이 그대로 계승되지 않았는가? 이것은 뒤에서 계속 문제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