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해 반론을 펼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바울로의 말 가운데 "주의 말씀" "우리가 전해 받은 대로" 등등의 말들도 있고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과 내용상으로 흡사해 보이는 것이 꽤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내용들을 하나하나 추적해보자.
그가 권고하는 말 중에서 "이것은 주의 말" 혹은 "주에게서 받은 말"이라고 확언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이것은 주에게서 받은 계명이 아니고 자기 개인의 것이라고 함으로써 그가 얼마나 주의 말씀에 충실하려고 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처녀들에 관해서는 내가 주께로부터 받은 명령이 없으므로 내 의견을 말하려 합니다"(고전 7, 25). 이것은 종말론을 전개하면서 남녀관계를 말하는 중에 있는 것인데, 여기서 분명히 주님의 명령과 자기의 의견을 구별함으로써 그 주장을 자기 의견으로 상대화시킨다.
"그 밖의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내 말이요 주님의 말씀은 아닙니다"(고전 7, 12). 이것은 믿지 않은 부부의 재혼과 이혼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자기의 견해임을 밝힘으로써 그 권고를 상대화시켜 놓은 것이다.
"결혼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주의 명령입니다"(고전 7, 10). 여기서는 신자인 부부의 결혼과 이혼의 문제를 다루면서 주의 말씀이라고 하여 권위를 부여한다. 그런데 이것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입장(마르 10, 1~12)을 사실상 반영한 것이다.
"내가 여러분께 전한 것은 주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고전 11, 23~25). 이 말이 가리키는 내용은 최후의 만찬에 대한 규정이다. 이것은 복음서와 비교해볼 때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말을 빼면 순서의 차이 등이 있으나 같은 자료임이 틀림없다.
"주께서도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복음에 의하여 살아가도록 정해주셨습니다"(고전 9, 14). 이것은 전도자의 생활지원에 대한 규율인데 복음서의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이상에서 "주의 말씀" 또는 "주의 명령"이라고 밝힌 글들의 전부를 살펴보았는데 그 특징은 하나같이 교회생활의 규율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바울로가 주의 명령 또는 주의 말씀을 받았다면, 문제는 어떻게 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논구하기 전에 우선 한 가지를 더 살펴보자.
그의 말 중에 예수의 말의 내용과 같거나 비슷한 것들이 있다.
로마서 12장 4절은 그리스도교인들이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에 대해 취해야 할 자세를 말한 것으로서, 이는 마태오 5장 43~44절(루가 6, 27~28/ 병행)과 상통한다.
로마서 13장 9절은 율법의 전 내용이 이웃사랑으로 집약될 수 있다는 말로, 마르코 12장 31절(마태 22, 39~40/ 병행)과 상통한다.
로마서 16장 19절의 "나는 여러분이 선한 일에는 슬기롭고 악한 일에는 둔하기 바랍니다"라는 말은 내용상 마태오 10장 16절에 있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온순하라"는 말에 비견될 수 있다. 고린토전서 13장 2절b의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라는 말은 문맥과 상관없이, 그 표현이 마르코 11장 23절(마태 17, 20; 루가 17, 6)과 상통한다. 그리고 예수의 설교를 집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언급도 자주 등장한다(로마 14, 17; 고전 4, 20ᆞ6, 9~10ᆞ15, 51; 갈라 5, 21).
그런데 바울로는 이상의 것들을 예수의 가르침이라는 전제에서 전승하는가? 그리고 그것들의 의미는 예수의 가르침과 동일한가? 이것은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바울로의 말 가운데에는 독자가 이미 알고 있음을 전제하거나, 또는 자신의 말이 아니고 전승받은 것임을 전제하고 전하는 것들이 상당히 있다.
데살로니카전서 4장 13~17절은 팔레스틴의 묵시문학적 전승인데, 바울로는 이것을 주의 말씀이라고 한다(4, 15). 그런데 복음서 자체에서는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데살로니카전서 5장 2절은 종말론에 대한 것으로 이미 독자들이 그것을 알고 있음을 전제한다. 그 아래 9~10절도 전승된 것임은 11절의 "여러분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과 같이"라는 말에서 입증된다.
고린토전서 8장 1~6절은 우상의 제물에 관한 전승으로 "우리가 다 알고 있다"는 말을 두 번 반복하는데, 그것은 비록 전승되어서 자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뜻을 확실히 파악하도록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다.
고린토전서 15장 3~6절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신앙고백문인데, 바울로는 그에 앞서 2절에 "내가 전한 대로의 복음의 말씀을 굳게 지킬 것"을 권하면서, 3절에서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주었습니다"라고 함으로써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 교회에서 전승받은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로마서 3장 24~26절은 속죄론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이 역시 바울로의 말이 아니라 전승받은 것이다. 그것은 22~23절이 앞뒤 구절인 21, 24절과 문장의 흐름상 잘 연결되지 않고 돌출된 데서 알 수 있다.
로마서 4장 25절은 역시 전승된 말씀으로 그리스도교인들이 처하고 있는 실존적 상황을 풀이하는 5~8절의 거점이 되고 있다.
로마서 4장 9절은 교회내의 파벌에 따른 분열을 책망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고 있는데 바울로는 이 전승자료를 앞에 놓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주권을 내세운다.
이상에서 살펴본 말들은 바울로 자신이 '전해 받은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앞에서 본 '주의 명령' 또는 '주의 말씀'이라는 것과 일단 구별해서 살펴보았다. 그러면 바울로는 누구를 통해서, 그리고 어디에서 이 전승을 전해 받았을까?
물론 역사의 예수에게서 직접 받았을 수는 없다. '전해 받았다'라고 명기한 것은 그가 전향(轉向)하기 이전에 그리스도교에서 이미 형성된 신앙고백을 전해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 데살로니카전서 4장의 것과,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로마서 1장 3~4절에서 말한 "육으로는 다윗의 혈통"이라는 말을 제외하면(이 둘은 팔레스틴 전승임에 틀림없다) 모두 헬레니즘 영역에서 형성된 그리스도론적인 고백들이다. 후에 바울로의 그리스도론을 취급할 때 이 문제로 다시 돌아가서 논의하게 되겠지만 바울로는 헬레니즘교회, 즉 이방 교회에서 이루어진 고백을 전수하고 있다. 이는 원문을 전문 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언어상으로도 복음서의 언어와 다른 것임이 판명됨으로써 확실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바울로가 '주의 말씀' 또는 '명령'이나 '전해 받은 것'이라고 말한 것 모두는 역사의 예수의 말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말, 엄밀히 말하면 그리스도로서 고백된 말들(그것을 '케리그마'라고 한다)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그가 예수의 말을 직접 전한 것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바울로는 왜 '그리스도의 말'에 집중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