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를 무조건 따랐던 사람들을 민중이라고 했음이 뚜렷하다. 마르코는 이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오클로스'라는 대명사로 그들의 계층성을 밝혔는데, 우리말로 하면 '쌍놈'이라는 말에 해당한다. 그런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 바울로의 편지를 위시한 그 어느 서한에서도 이 단어를 발견할 수 없고, 단지 수난의 현장을 그 배경으로 한 『요한묵시록』에 이 단어가 등장하는대, 이것은 주목할 일이다. 이 점에서 바울로는 역사의 예수와 그 현장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고, 구속사적 그리스도만을 선교했다는 사실이 재확인된다.
그러나 바울로서신들은 초창기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계층에 속했는지에 대해서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고린토교회에 보낸 첫 편지 1장 26~31절에 나타난다.
형제들이여 당신들의 소명을 보시오. 육(肉)에 의해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으며, 권력자나 명문 출신이 많지 않습니다(고전 1, 26).
이 구절의 우리말 번역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보시오"라고 해서 처음 예수를 믿게 된 때를 말한 듯한 오해를 낳기 쉬우나, 'Klesis'란 단어는 '부른다' '초대한다'라는 뜻으로 과거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26~28절에서는 세 가지 사람을 세 가지 범주로 나타낸다. 지혜로 운 자에 대해서 미련한 자, 강자에 대해서 약자, 명문 출신에 대해서 비천한 자, 즉 쌍놈이 그것이다. 지혜로운 자란 배운 자, 교양 있는 자이다. 이에 대해서 미련한 자란 배우지 못한 자, 즉 불학무식한 자이다. 이것이 사회계층적 개념임은 그 다음에서 뚜렷해진다. 즉 바울로는 '세상의 어리석은 자' '세상의 약한 자'(27절) '세상의 천한 자와 멸시받는 자' '이름(존재) 없는 자'(28절)를 '지혜 있는 자' '유력한 자'와 대립시키고 있다. 여기서 '세상'이라고 한 것은 낡은 세계, 즉 기존체제를 말한다. 초창기의 그리스도교인들은 기존체제에서 볼 때, 하잘것없는 무리들이었다.
이것은 비단 고린토교회 성원들의 경우만이 아니라 당시의 그리스도교인 전반의 사회적 신분성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 비판가의 선구로 알려진 첼수스(Celsus)가 A.D. 178년에 쓴 글에, 그리스도교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그들은 문화인, 지식인들에 대해 악의를 품고, 배우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만 모아놓고 교회를 만들고 있다. 그들의 생업을 보면 대개 양털 깎기, 신발고치기, 세탁업 같은 것으로서 쌍놈들이다.
첼수스는 그리스도교인들을 희랍의 문명인과 대조시키는데, 그 기준은 무엇보다도 당시의 희랍적 기준이었던 지적 수준으로서, 그것은 동시에 자동적으로 사회적 계층을 규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눈에서 보면, 저들은 정말 하잘것없는 계층이었다. 바울로도 이 희랍의 지혜, 특히 그 철학적 사고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것과의 논쟁과 변증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고 학자가 어디 있습니까? 헬라 사람들은 지혜를 구하나 우리는……(고전 1, 18 이하).
나도 여러분에게로 가서 하느님의 증거를 전할 때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하지 않습니다…… 내 말과 내 설교는 교묘한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말로 한 것이 아니라 다만……(2, 1 이하).
이상은 본문 앞뒤에 있는 몇 구절인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우선 바울로가 희랍문화를 의식했다는 것과 당시의 그리스도인 일반의 수준에 관한 것이다.
초창기 그리스도운동의 중추가 사회적으로 비천한 계층이었다는 것은 이미 다이스만(A. Deissmann)이 지적했는데 유제(E. A. Judge), 콘첼만(H. Conzelmann) 등은 사도행전의 예나 바울로가 지적한 사람들 중 일부의 사회적 위치를 들어서 그런 견해에 맞서고 있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본문의 "많지 않다"(1, 26)는 표현에서 "지혜 있는 자, 권력자 그리고 명문 출신도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하나, 27절 이하는 비록 소수의 상류층에 대한 언급아 있다고 해도 바울로는 그들을 내세워 시위할 생각은 없고, 오직 그것은 상류층 이 교회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고린토교회 구성원의 성분은 어떤가?
첫째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공관복음서에 등장하는 '오클로스'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공관복음서의 민중은 농어촌의 민중인데 반해서, 이들은 도시의 민중이다. 또 공관복음서의 민중은 예수와 더불어 유랑하는 민중인데 대해, 고린토민중은 정착되어 있다. 그것은 이들 중에 집을 교회당으로 제공하거나 경제적으로 지원한 사람들이 많이 지적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둘째는, 고린토 시의 사회구성의 측면에서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고린토 시는 B.C. 146년에 로마제국의 침략 때 그 부(富)와 더불어 완전히 붕괴되었는데, 케사르에 의해서 B.C. 44년에 로마의 새로운 식민도시로 재건됐다. 로마제국은 여기에 해방된 노예들을 정착시켰다. 그러나 물론 지배층은 로마시민들이었다. 이 도시가 이미 B.C. 27년에 아카이아(Achaia) 지방장관의 주재지가 된 것으로 보아, 지배세력은 로마시민이었을 것이며 상하계급 사이의 거리가 대단했을 것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사회구조가 교회구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도시에서 미련한 자, 약한 자, 쌍놈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대부분이 노예 출신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전 7, 21 이하ᆞ12, 13 참조).
이같은 추측을 뒷받침하는 암시가 있다. 그것은 '사랑의 만찬'에 대한 바울로의 경고이다(고전 11, 17~22). 교회당에서 함께 만찬을 하는 것은 사랑의 교제이다. 그런데 그중에는 자기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가지고 올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전자의 사람들은 자기 것을 가지고 와서 홀로 포식하고 취한다. 이런 계층은 극히 소수였으리라. 이에 대해 대부분은 배를 끓고 있었다. 이것은 그 안에 이미 계급적 균열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리고 고린토 시 안에는 먹을 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음을 본문에 비추어서 추측할 수가 있다. 그리고 바울로가 바로 저들을 향해 "가난한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는 것과 "교회를 멸시한다"고 책망한 데에서, 교회의 중추가 가난한 계층이며 바울로 자신도 그들 편에 서서 소수인 상류층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