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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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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중을 보는 눈

민중을 단순히 사회사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것은 사회과학의 대상밖에 될 수 없으며, 그 결과는 평면적 관찰에 머물게 된다. 그렇다고 그런 사실을 무시하면 탈역사화하여 인간은 추상화되고 만다. 바울로에게서는 교회로 모여든 민중에 대한 사회사적 파악이나 전개를 거의 볼 수 없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고 의식적인 것이다. 그는 "이제부터 아무도 육에 따라(kata sarka)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고후 5, 16)고 선언했다. 이것은 사람을 사회적 신분이나 지식 따위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그의 입장을 뚜렷이 밝힌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체제, 그것에서 형성된 가치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대신 그리스도의 사건에서 새 세대가 시작되었다는 확신에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 다음에 나오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보십시오, 옛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 17)"라는 선언이다. 이런 입장에서 "유다 사람이돈 헬라 사람이든, 종이든 자유 인이든,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어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고전 12, 13)"라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구속사적 관점에 선 신앙적 선언이고, 역사적 현실과는 아직 거리가 먼 것이다. 까닭은 사회구조는 그때까지 어떤 변동도 없었고, 거기서 생기는 계층간의 갈등과 문제는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현실적인 당면문제였기에 위에서 지적한 세 가지 카테고리로 그때의 계층사회의 구조가 교회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문제로 삼았으며, 약자들이 교회내에서 기존의 낡은 가치관에 의해 천대받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면서 비교적 약한 것,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요긴하다(고전 12, 22~23)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구체적인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필레몬에게 보내는 편지의 배경과 그 편지에 나타난 바울로의 입장이다.

바울로가 필레몬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짧은 편지가 신약성서에 수록되어 있다. 이 편지는 옥중에서 필레몬에게 보낸 것이다. 이 편지에서 필레몬은 수준급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자임을 나타낸다. 까닭은 그가 자기 집을 그리스도교인들의 집회장소로 제공할 만큼 큰 집의 소유자일 뿐 아니라(2절), 종(들)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필레몬 가의 종의 신분이었던 오네시모는 필레몬 가에서 탈출하여 바울로에게로 갔다.

당시 로마제국 영역에 6천만 명의 노예가 있었다고 하는데,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탈출한 노예들은 신분보호를 위해 몇 가지 길을 찾았다. 그중 하나의 길은 큰 도시에 잠복하는 것이다. 거기서 거지나 떠돌이로 군중 속에 숨어들어 은신하는 일이다. 또 다른 길은 망명처를 구하는 것이다. 망명처란 어떤 신전이나 또는 신에 의해 명명된 자의 집(司祭) 등이다. 거기에는 경찰이 침범할 수 없는 전통이 희랍 사회에 있었으며, 중세에도 그런 전통을 이어받았다.

필레몬 가의 종 오네시모가 바울로에게 간 것은 그가 새 종교의 사도이기 때문에 그의 보호를 청할 목적이었을 것이다(디벨리우스). 바울로는 그를 받아들였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의 '심복'처럼 대했고, 또 오네시모 자신도 옥중에 갇힌 바울로의 뒷바라지를 정성껏 했다.

그런데 이 짧은 편지에서 바울로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에 대한 자세가 드러나 있다. 우선 필레몬과 같이 사회적으로 인정된 신분의 사람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하고 좋게 평가한다. 그에게 어떤 비판도 지시도 하지 않고 그저 그가 한 일, 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긍정한다. 바울로는 필레몬에게 그의 재산을 나누어주라든가 종을 부리는 것을 책망하거나 오네시모가 탈출한 책임을 추궁하는 따위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네시모에 대한 모든 권한이 필레몬에게 있음을 전제한다. 그러기에 오네시모에 대한 결정을 그의 동의를 얻지 않고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14절). 이런 자세는 현대인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며, 그의 사랑에 대한 이해가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가 필레몬과 같은 '상류층'의 편에 선 것은 결코 아니다. 우선 오네시모에 대한 그의 입장을 보자. 오네시모가 왜 필레몬 가에서 탈출했을까?

우선 필레몬은 바울로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의 집을 집 회장소로 개방한 것으로 보아 오네시모는 새로운 복음을 알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자유인임을 의식하고 탈출해서 바울로에게 갔을 가능성이 있다. 만일 이러한 가정이 맞는다면 바울로는 오네시모를 옹호하고 필레몬에게 오네시모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강조했을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 오네시모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거나 돈을 축냈을 수 있고, 그 때문에 도망쳤을 수 있다. 바울로도 그런 가능성을 말한다(18절).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오네시모가 고백했을 것이고 바울로는 분명한 말로 책임을 지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둘 다가 아니라면, 그가 종으로서 그 임무를 다하지 못한다고 필레몬에게서 천대를 받았을 수 있다. 바울로가 오네시모가 전에는 주인에게 "쓸모 없었다"고 한 것은 그런 뜻으로 해석할 수 있고 또 바울로 자신에게도 그랬다고 해서 오네시모가 임무 소홀에 대한 추궁이 두려워 도망쳤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 바울로가 오네시모를 필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이 편지를 쓴 것인데 이 추천서 같은 편지에서 지금은 "내 심복"이요, "그대에게나 내게 다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노예로서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 아니고, 그리스도교인으로 변화되었다는 뜻임에 틀림없다. 그런 까닭에 "그를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들이라"고 하며, 자기와 같은 동지(koinonos)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이상에서 바울로는 사회신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미 자유인이나 노예의 차이가―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없어졌다는 신념을 가진다(갈라 3, 28).

그는 모든 기준을 그리스도사건에서 본다. "주의 부르심을 받은 노예는 주의 자유인입니다"(고전 7, 22)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그의 입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가 오네시모를 필레몬에게 돌려보내는 것은 "종 된 이들이여, 육신의 주인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 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성실을 다하시오……"(6, 5 이하)라고 된 에페소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과는 다르다(에페소서는 바울로의 편지가 아니다).

이상에서 바울로의 민중관의 뚜렷한 일면이 드러났다. 그것은 사회적 신분이 그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그는 사회구조적 현실이 사람을 계층화하고 자유를 박탈하는데 무관심했다는 뜻이 된다.

그러한 결론을 안고 고린토의 민중에 대한 바울로의 입장을 보자. 고린토교회 초창기의 구성원은 압도적으로 민중이었다. 그러나 신분 이 높은 소수가 한 파벌을 형성하여 그로 인한 문제가 있었다(고전 11, 17 이하 참조). 이런 상황 속에서 바울로는 굶주리고 가난한 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더 가진 자들의 '횡포'를 책망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문제를 교회라는 일정한 집단에 국한된 문제로 보고, 사회구조적 차원으로까지 그 문제의 원인을 확대하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분명하게 못 배운 자, 피지배자 그리고 비천한 출신의 편에 서서, 그들이 배운 자, 집권자 그리고 신분이 높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무력하게 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것에 대해 수 직적인 설명을 하는데 두 가지로 표현한다.

하나는 하느님이 그러기 위해 저들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주체는 어디까지나 신일 뿐 아니라, 그 주체의 '도구'로서라도 그렇게 선택된 자들의 활동을 동일한 선상에서 서술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둘째는, 그 목적은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앞에 자신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직 주만 자랑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그의 그리스도 중심주의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사회적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가령 이런 목표를 지향할 때에는 사회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어떤 계급적 구분이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하면서 인간을 구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길을 방해하는 사회구조에 대해서 왜 침묵할까?


List of Articles
바알 (열상 19, 18)
남은 칠천 명 (19, 7-18)
민중의 손으로 통일되는 날 (아모 9, 11-15)
겨울은 가고 (에제 37장)
에제키엘이 무등산에서 절규한다 (에제 24, 6-8)
포로에서의 탈출 (이사 66, 1-8)
위정자와의 대결 (이사 7, 10-14)
   
제5부 새로운 존재
일상성과 비일상성 (루가 10, 38-42)
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창세 3, 1-10)
새로운 인간상 (창세 12, 1-9)
믿음의 조상 (창세 22, 17-18)
두 사이 에 손을 얹을 판결자 (욥기 9, 25-35)
하느님으로부터의 도피 (시편 139편)
하느님의 웃음 (시편 2편)
잠과 신앙 (시편 127편)
교회란 무엇인가 (로마 8, 9-30)
인간을 말한다 (마르 12, 28-34)
존재 근거 (시편 42편)
우주의 품으로 (시편 8,3 이하)
   
판권
표지
예수의 민중사건 : 『민중과 성서』를 내면서
   
제1부 복음서와 민중
   
예수와 민중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전제
    2. 마르코복음 안의 오클로스
    3. 마르코복음에 나타난 오클로스의 성격
        1) 오클로스의 성격
        2) 오클로스에 대한 예수의 행태
        3) 종합
    4. 예수를 따른 자들
    5. 마르코복음 안에 있는 어록
    6. 오클로스의 언어학적 의미
        1) 라오스와 오클로스
        2) 오클로스와 암 하 아레츠
    7. 종합
마르코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1. 전제
    2. 마르코의 삶의 자리
    3. 마르코의 민중신학의 기조
        1)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14a절)
        2) 갈릴래아로 가다
        3) 하느님 나라의 도래 선포
    4. 민중의 행태
예수사건의 전승 모체
    1. 문제 제기
    2. 케리그마의 성격
        1) 고린토전서 15장 3~8절
        2) 필립비서 2장 6~11절
        3) 사도행전에 나타난 케리그마
    3. 민중언어의 성격
    4. 수난사
    5. 예수의 행태 일반
        1) 기적 이야기와 예수의 행태
        2) 아포프테그마와 예수의 행태
        3) 로기온(Logion, 어록)과 예수의 행태
    6. 결론
가난한 자 : 루가의 민중 이해
    1. 가난한 자
        1) 통계적 고찰
        2) 루가의 특수자료
        3) 예수의 탄생설화와 나자렛 선언
        4) 마르코와 Q자료
    2. 루가복음서의 청중
    3. 결론
마태오의 민중적 민족주의
    1. 문제 제기
        1) 마태오의 신학적 주제에 대한 논의들
        2) 문제 제기
    2. 마태오가 처한 현실
        1) 마태오와 그의 시기
        2) 민족적 와해 위기
    3. 마태오의 현실인식
        1) 이스라엘 : 길 잃은 양들
        2) 길 잃은 양이 놓여 있는 현실
    4. 민족동일성 재확립
        1) 뿌리 찾기
        2) 바리사이파가 주도하는 라삐 유다교와의 대결
    5. 마태오의 민중 이해
        1) 언어적 성격
        2) 의식화된 민중
    6. 맺는 말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예수사건의 재발견
    2. 마르코복음과 민중
    3. 민중은 수단이 아니다
    4. 민중은 객체일 수 없다
    5. 십자가는 민중수난의 극치다
민중신학의 어제와 오늘
    1. 독재와 대항하므로
    2. 민중을 만나므로
    3. 민중과 더불어
   
제2부 민중운동사
   
민중사건과 언어사건
    1. 성서에서 본 말의 성격
        1) 그 말의 현장은 어떤 것이었나
        2) 예수의 경우
        3) 예수사건에 관한 전승
        4) 오순절의 말 사건
    2. 무엇으로 말하는 것인가
    3.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4. 우리가 해야 할 말
미래는 가난한 자의 것 : 루가 6장 20~26절
    1. 축복과 저주
    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3. ‘지금’과 ‘장차’
    4. 우리의 선택
나라가 임하옵소서
    1. 예수의 기도
    2. 그의 기도를 전달받은 자들
    3. 하느님의 나라
고향 잃은 민중
    1. 피난민
    2. 성서에서 본 피난민문제
    3. 게르(GER) 문제 해결의 시도
    4. 이방인에 대한 관용의 한계
    5. 당면한 과제
        1 ) 새로운 인식을 위한 운동
        2)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제언
이스라엘 민중사
    1. 머리말
    2. 출애굽
    3. 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
    4. 민중을 배반하고 세워진 왕권
    5. 분단시대의 고난
    6. 민중운동의 여러 계열
    7. 예수의 민중운동
    8. 맺는 말
   
제3부 민중과 체제
   
민중사실의 증언
    1. 민중신학의 전제들
    2. 민중사실의 증언
고난과 고백
    1. 수난자와의 일치
    2. 마르코의 민중
    3. 수난사와 고난
    4. 더불어의 고난
    5. 맺는 말
갈릴래아 민중에 항복한 바울로
    1. 바울로의 위치
    2.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3. 그리스도교 박해
    4. 예수를 만남
    5. 전향
    6. 맺는 말
소명(召命)
    1. 바울로의 소명
    2. 사도 됨과 소명
    3. 이방인에게로
바울로와 역사의 예수 I
    1. 머리말
    2. 예수에 대한 바울로의 말
    3. 예수냐 바울로냐
    4. 왜 예수가 아니고 케리그마인가
선택받은 민중: 고린토전서 1장 26~31절
    1. 고린토교회 구성원의 사회계층
    2. 공동체원의 가치 판단 기준
    3. 민중을 보는 눈
    4. 택함을 받은 민중
   
제4부 예수의 희망
   
하늘도 땅도 공(公)이다
    1. 낙원 이야기
    2. 아담一인간
    3. 실락원은 공을 사유화함으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마르코 16장 1~8절
    1. 제3의 자리
    2. 갈릴래아
    3.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예수의 희망
    1. 새 세계에의 희망
    2. 희망과 세계혁명
    3. 바른 인간공동체의 희망
    4. 맺는 말
   
판권
표지
예수는 논하지 않았다
   
제1부 민중의 언어, 이야기
   
1. 성서라는 책의 성격
2. 성서의 서술양식
    1) 구약성서
    2) 신약성서
    3) 민중언어
   
제2부 예수의 이야기(비유)
   
1. 만성병에 걸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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