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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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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신, 당신은 누구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복음 8, 27

마가복음 8장 27절을 마가복음의 분수령이라고 한다. 그전까지는 복음을 전하고 병 고치는 능력의 예수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그는 고난의 길에 들어선다. 예수는 이때부터 비로소 그가 고난당할 것을 예고한다. 그런데 그 예고 전에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묻고 뒤이어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이제 출전하기 직전에 군인들을 점검하는 것과도 같으며 죽음을 앞둔 어버이가 자식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하려는 것과도 같은 엄숙한 장면이다. 이것은 분명히 위기 앞에 선 새로운 다짐이요 재확인이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은 내게 하는 질문이다. 남의 어떤 고백에 나를 그냥 내맡길 수만 없다. 나는 나로서 이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해야 한다. 역사상 인간은 이 질문을 계속 받아왔으며 어떠한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세계의 판도가 달라지고 문화의 모습이 달라졌으며 개인의 삶의 모습도 달라졌다. 이 질문을 엄숙히 받고 대답하려고 하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질문을 받은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는 "당신은 그리스도 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고백은 옳은가? 옳다. 그리스도란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리던 궁극적인 희망이다. 그런 뜻에서 그는 전 인류를 대표해서 고백한 셈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라는 개념은 자명적인가? 베드로는 그리스도라는 뜻을 옳게 이해했는가?

예수는 이 고백 뒤에 그가 고난을 받고… 버림받고… 죽임을 당하리라고 예고 했다. 이 예고를 베드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 예고는 그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의 개념에 맞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그 예고를 거부했다. 이에 예수는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는 책망을 했다.

어떻게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그가 "사탄"으로 전락했는가? 어떻게 이 위대한 고백이 이처럼 악마적인 것을 내포할 수 있었을까? 그는 "그리스도"라는 옳은 고백을 했으나 그 뜻을 바로 알지 못했다. 아니 바로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제나름의 이해를 갖고 그것을 고집했던 것이다. 그는 산 예수보다 관념화된 그리스도 관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그는 예수마저도 그의 그리스도 관념에 굴복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에게는 영광과 승리만이 있을 수 있다고 확신했던 모양이다. 그러므로써 자기확신에 갇혀 있어 이제 이루어질 "하나님의 일"에 마음을 닫아버린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고백은 옳다. 그러나 그리스도란 고정개념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산 분이다. 산 이를 교리나 내 신념으로 관념화 해버리면 그것이 사탄으로 전락될 수 있다. 과거 역사에서 신앙 문제로 많은 피를 흘리게 한 것은 바로 이 관념이 한 일이다. 신앙을 관념화할 때 분쟁을 일으키고 개인도 삶과 유리된 기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기 쉽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동시에 가져야 할 자세는 빈 마음이다. 그러므로써 그것이 형식적인 고백에 그치지 않고 그가 나를 전체로써 점령하게 할 때에 비로소 산 그리스도를 만난다. 이것은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누구를 대할 때 내 마음에 고정된 목적이나 관념을 고수하고 있는 한 대화도 될 수 없으며 그와의 참 "만남"은 불가능하다. 참 인격적인 교류를 위해서는 모든 이전 지식이나 전제를 버리고 빈 마음으로 마주 설 때 가능하다.

그를 그리스도로 고백함은 내 뜻이나 내 신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내 안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이루어지이다라는 고백이다. 그렇다면 그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든 그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복종할 태세가 갖추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그 이름을 빌어서 내 소원, 내 목적을 달성하려는 결과밖에 될 것이 없다.

그를 그리스도로 고백함은 따라서 그를 통해서 무한한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삶, 새로운 미래가 올 것을 믿는 것이다. 우리에게 들어온 것 중에 절대는 없다. 내 지식, 내 신념, 아니 내 신앙적인 고백 마저도 그가 나를 점령함으로써 없어져야 할 그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 그리스도 고백에는 내 것만이 옳다는 고집이 허락되지 않으며 또 현재 상태에서 만족도 절망도 있을 수 없다. 왜? 그를 통해서 계속 새 사실이 일어날 것을 믿기 때문에!

따라서 사람은 한 번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가지면 그것을 붙잡고 늘어질 수 없다. 왜? 그는 우리의 예측이 허락되지 않으며 언제나 앞서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고백은 계속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물음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계속 우리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어온다. 우리는 언제나 그때 그때 이 물음을 듣고 대답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계속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르는 동안 "사탄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게 될 수 있다.

(1970. 2. 『새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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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의미 (마르 15, 27-39)
어머니 (마르 7, 24-30)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르 5, 1-15)
 
제2부 신, 당신은 누구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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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누구인가? (마르 4, 35-41)
 
제3부 인간,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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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버지와 두 아들 (누가 15, 11-32)
부모와 자녀들 (누가 1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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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통한 구원 (고후 1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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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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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復權) (마르 1, 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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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 (사도 7, 23-35)
하느님의 선교 (마르 1, 40-45)
예수의 낙인 (갈라 6, 11-17)
그리스도를 본받아 (빌립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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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영원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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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세계에의 초대 (누가 1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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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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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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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혁명과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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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과 기독교 신앙
무신론자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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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대결 못하는 신학
기독교화와 서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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