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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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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눈
마르코복음 5, 25-34
1. "눈은 마음의 창"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말한다. "창"이라고 하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안경이다. 집 안에 "창"을 통하여 "밖의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집 밖에 있을 때는 사람들은 "창"을 통하여 "방 안"을 들여다 본다. 이렇게 "창"은 "밖의 세계와 안의 세계"의 교차점이며, "밖의 세계"와 "안의 세계"가 함께 담겨져 있는 곳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이 말을 통하여 볼 때, 사람의 눈은 자신의 내면의 세계와 외부의 세계의 교차점일 뿐만 아니라, 내면의 세계와 외부의 세계 모두가 담겨져 있는 곳임을 알게 된다.

2. 눈을 통하여 일어나는 사건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의 눈을 마주할 수 있다. 그것은 야이로의 딸을 구하러 가는 도상에서 이루어진 사건 속에 자리한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구하러 길을 가는 중이었는데, 혈루증을 앓고 있는 한 여인이 그의 옷자락을 가만히 만졌다. 이것을 느낀 예수는 무리를 "둘러보시면서" 그 사람을 찾는다. 이 때에 예수의 눈과 마주친 그 여인은 그만 그의 무릎 아래 엎드려 버렸다. 그것은 죄송한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눈이 마주침으로써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인가? 예수는 "여인아I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라. 그리고 이 병에서 놓여 건강하라!"고 한다. 그를 힐난하는 제자들의 태도와 너무나 대조적인 조용한 데서 들리는 사랑의 계시 같은 목소리었으리라.

예수의 이야기 중에서 이와 대조되는 눈이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예수를 부인한 다음의 베드로와 배신당한 예수의 눈이 마주칠 때다. 그 때에 베드로의 눈은 어떠했고, 예수의 눈은 어떠했을까? 베드로는 눈을 곧 내리깔았을지 모르나. 예수의 눈은 불쌍히 여겨서 고인 눈물로 차 있었으리라. 눈과 눈이 마주치는 경우는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어떤 눈과 눈이 마주칠 때 일생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때에는 웃음으로 얼버무리던 사람도 단둘이 마주해서 눈을 똑바로 보면 갑자기 당황해 한다. 경우에 따라서 미소짓는 눈이 심각해지다가 마침내 정신을 잃는 경우도 있고, 이름모를 눈물이 가리워 앞을 못 보는 경우도 있다. 앓고 있는 아이를 보는 엄마의 눈, 안과 의사로서 눈병을 앓는 자기 아이의 눈을 보는 눈, 그것은 둘로 나뉜다. 의사의 눈으로 병난 눈을 보는 눈과 아버지의 눈으로 아들의 눈을 보는 눈으로 나뉜다. 그들이 교차되어 결국 그는 냉정하게 의사의 눈을 관철하지 못한다.

3. 예수의 눈

그렇다면 이 여인을 보는 예수의 눈은 이 때 어떤 눈이었을까? 어떤 눈이었기에 부정하다고 소외된 이 여인에게 예수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하고 그리고 또 세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살아가게 했을까? 예수의 눈은 어떤 눈이었을까?

첫째는, 참 눈을 찾아내는 눈이다. 예수는 그 많은 눈 중에서 그 여인을 찾아냈다. 무심코 또는 대중에 휩쓸려 예수를 둘러싼 그 희멀건 눈들 중에서 간절함, 동경, 희열, 사랑이 담뿍 담긴 눈이 있었고 그는 그 눈을 곧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이때 예수의 눈은 앓고 있는 어린 자식을 응시하는 어머니의 눈이요, 눈병 앓는 자식의 눈을 고치려는 의사의 눈이었으리라.

이 환상은 근거 없지 않다. 여기 둘러본다(πεοιβλεψαμενος)라는 말이 두 번 나온다. 이 표현은 마르코복음에 7번 나오는데 그 중에 6 번이 예수의 행태를 나타낸다. 이것은 "두루 살핀다"는 뜻을 갖는 말이다. 그럼으로써 예수는 사람들의 주의를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그리고 이 단어에는 '둘러본다'라는 뜻 외에도 또 '주시한다'는 말이 함께 들어가 있다. 이렇게 예수는 두루 살피면서 주시한다. 또한 우리 말로는 '똑바로 본다'라는 뜻의 εμβεψας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나온다. 가령, 부자 청년에게 εμβεψας(눈여겨보시고), 예수를 부정한 베드로를 εμβεψας한다는 등 "집중해 본다"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이렇게 예수는 정말 "모든 것을 둘러보신 이"이다. 그는 모든 것에서 그 마음을 읽고, 그 뜻을 읽었으며, 또 우리 시선을 그리로 돌리게 한다. 즉, 그는 그의 눈을 통하여 자신의 세계를 보게 만드시며, 또한 그의 눈을 통하여 세계를 보게 만드신다. 그의 눈은 세밀한 데 머문다. 특히 비유들을 보면, 생활 자체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예수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눈은 생활 전체의 모든 면을 세밀하게 보고 있다. 예를 들자면, 고기 잡는 어부의 경우, 그물에 걸린 것을 가려내는 것을(마태오) 세밀하게 묘사한다. 또 농부가 씨 심는 것, 가라지에 대한 걱정, 그리고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에 대한 농부의 분노와 참음(마르코), 또 저절로 자라는 씨에 대한 농부의 감격(마르 12, 24) 등을 통하여 예수의 눈이 얼마나 세밀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를 나타낸다.

또는 예수의 눈은 인간사에 함께하는 눈이다. 기쁜 마음, 안타까운 마음, 애절한 마음에 대한 예수의 관심이 이러한 예를 잘 드러낸다. 돈 한 푼 잃은 여인의 안타까움과 그것을 찾은 기쁨, 보화를 발견한 한 사람의 마음, 돌아온 아들을 기뻐하는 아버지의 마음, 신랑과 함께 있는 친구의 기쁨(마태 25), 그리고 억울함을 당한 과부의 마음 등은 예수가 인간사의 희노애락에 대해 세밀히 보고 있었음을 알려 준다.

또 사회관계에 대하여서도 예수는 그 예리함을 드러내고 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 소외된 자들, 불의한 청지기의 관계, 고용관계에서 불평하는 노동자의 관계를 주시하며 매서운 시비를 가린다. 이런 것들은 예수가 넓게, 깊게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려 준다.

그러면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의 눈은 어떤 눈이었는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는 성서 기자들은 예수의 외모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런 대로 견딜 수 있으나 만약 성서 기자가 그의 눈에 대해서만이라도 언급했더라면 우리가 예수를 아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그는 그 눈으로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꿰뚫어 보았으니 예리했으리라.

둘째로 그는 사물, 사건 자체에서 하느님의 뜻과 역사적인 미래를 본다. 농부, 시, 어부, 돈 찾은 여인, 보화 찾는 자, 탕자의 비유에서 하느님 나라가 오고 있음을 본다. 그는 꽃 한 포기, 새 한 마리에서 하느님의 뜻을 본다.

4. 끝말—우리의 눈

나는 조용히 성서에서 예수의 시선을 생각하다가 그의 눈이 속속들이 뒤따르는 것 같다. 그 어느 구석도 그의 눈이 가지 않는 데가 없다. 그의 눈은 우리들의 행동뿐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 구석구석을 두루 살피고 있다.

그리고 이 눈은 우리에게 책망한다. "무얼 보려고 들에 나갔느냐? 왜 천기를 구별하면서 너희들의 세대는 구별할 줄을 모르느냐?" 그리고 우리에게 그는 다른 눈을 뜨라고 한다. 저 백합을 통하여 하느님의 품을 보는 눈을, 이웃의 일그러진 모습 안에 담겨진 하느님을 보는 눈을, 이 역사를 통하여 일구어 나가시는 하느님의 힘찬 행진을 보는 눈을, 그리고 그 행진의 선두에 서서 앞장서 나가시는 예수와 마주 맞출 수 있는 눈을 가지라고, 그 눈을 뜨라고 한다.

우리들이 벌써 서로와 눈을 맞추어 온 지도 어언 17년이 흘렀다. 그간 우리들의 눈맞춤이 서로에게 피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용기가 되고, 그 눈맞춤을 통하여 예수와 눈맞추려는 노력을 쉼 없이 하여 왔는지를 생각할 때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제 다시 우리의 눈을 비비고 눈떠야 하겠다. 그리고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그 기도는 첫째로 이제 이 주님의 눈을 내 생활에서 찾아 그것을 보는 눈을 뜨게 해 달라는 것이어야 하리라. 둘째, 우리는 이 민족의, 이 역사의 눈이 되어야 한다. 아집에서 해방된 맑은 눈으로써 다시 이 민족과 역사를 책임지고자 하는 주인된 눈이 되도록 해 달라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셋째,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참 기쁜 것과 슬퍼하는 데를 보는 눈을 구하자. 보이지 않는 사람과 눈 맞추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눈 맞출 수 있겠는가! 창립 17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들은 서로 눈 맞추어 이것을 위해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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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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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을 담은 질그릇
휴식에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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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와의 투쟁
현대의 욥
자다가 깰 때
 
제3부 축제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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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는 잠에서 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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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은 하느님의 것
봄의 찬가
고백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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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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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은어
해결해
탈우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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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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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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