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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춤추는 꼭두각시와 무대 뒤에 숨은 주인
마태오복음 6, 1- 8

마태복음 6장 1-16절에 세 가지 문제가 언급되어 있다. 적선, 기도 그리고 금식이다. 그런데 이 셋은 유대교 신앙생활의 3대 의무이다. 이 유대교의 3대 요소를 들어서 비판한 것은 예수에게 와서 전혀 다른 지표가 두어졌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 차이는 외적인 문제보다 근본적 차이, 본질적인 것에 대한 세 단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세 문제에 대한 말씀은 세 가지로 나뉘나,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잘못된 신앙 태도에 대한 비판이다. 둘째, 그것과 다른 새로운 자세이다. 셋째, 신앙의 대상에 대한 뚜렷한 지시이다.

1. 유위적 무와 무위적 유

예수는 이 세 가지의 유대교 강령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첫째, 구제에 대해서는 "남에게 보이려고, 남에게 칭찬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하며 기도에 대해서는 "위선자들처럼하지 말라. 저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길 모퉁이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고 하고 금식에 대해서는 "너희는 금식할 때 위선자들처럼 침울한 표정을 짓지 말라.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얼굴에 그 기색을 낸다"고 말한다.

그럼, 이 말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온 말인가?

첫째, 유대교 교사들은 내용은 없으면서 무엇이나 남에게 보이려고 한다. 그들의 대상은 바로 인간이며 인간들에게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저들을 위선자라고 하며 극단적으로 이런 사람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둘째, 저들은 이렇게 소문을 내고 "기색"을 내며 구제하는 냄새, 기도를 열심히 한다는 소문, 금식한다는 수고의 냄새를 피운다. 그래서 남에게 안정받는 데 성공한다. 그러면 그들은 그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이미 기대한 것은 성취했으니 더 받을 것은 없다. 그러니 미래가 없는 자들이다.

어째서 사람이 이렇게 되어 갈까?

첫째, 자기가 처한 구조적 분위기에 자기를 적응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그렇게 하면 나도 그렇게 함으로 인정받는다는 분위기에 호응하여 버리기 때문이다.

둘째, 이들은 그러므로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거나 또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고 모양만 갖추다가 마침내 속은 엉뚱한 것으로 차서 자신이 무엇 때문에 또는 "누구를 위해서"라는 목적을 잃어버렸다. 이래서 "위선자"가 된다. 우리말로 밖은 단장한다(외식한다)는 표현이 적중한 말이며 그것을 좀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단장만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 예수는 정말 삶을 알차게 하는 길을 제시한다. 첫째, "너희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구제를 은밀히 하라"고 한다. 둘째, "너희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하게 하고 사람들 앞에 중언부언 수다스럽게 하지 말라"고 한다. 셋째, "금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그래서 금식하는 것을 남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한다. 금식 등이 진정한 것이 되려면 너희들이 지금까지 하는 자세와 정반대로 하라. 조용히 남이 모르게 하라! 아니 <한다>는 의식마저 정지되는 상태에 하라는 것이다. 동양의 무위적 유를 연상케 하는 말이다.

2. 한국 교회에 쏘는 화살

이상의 말씀은 유대교인들에게 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하신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지금 바로 한국 교회의 동향에 하시는 말씀이다.

오늘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병은, 큰 위험은 군중심리를 이용하는 사실이다. 대부흥회, 대집회, 대전도회 등 군중심리의 도가니 속에 휘몰아서 소리치고, 울고불고하여 마치 일생의 기도를 거기서 한 번에 다 해치우려는 기세다. 평생 곁 사람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다가도 부흥목사가 "우리 함께 헌금합시다" 하면 막혔던 물꼬가 갑자기 터지듯 자비심이 생겨나 주머니를 털게 한다. 이것은 매스컴을 통해서 어떤 불쌍한 사람의 소식을 전하면 동정의 손길이 쏟아지는 경우와 같다. 마치 평생 그런 고난의 사람을 못 만났던 자처럼 그렇게 야단들을 떤다. 이른바 엑스포에 참여한 일본 대표의 성명을 보자. 그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한국 그리스도교회 중에는 성서의 경전성,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십자가의 속죄성을 부정 또는 경시하고 따라서 구원보다 정치 혁명을 목표로 설정하고 교회를 그 혁명의 거점으로 하려는 자들이 극소수이기는 하나 있다. 그런 것들이 학생과 민중을 선동하여 정부 전복을 의도했기 때문에 체포되었다고 본다……그런 중에 극히 적은 일부의 사회파적 목사와 신도가 법에 저촉, 대상이 되어 있으나 종교 활동 자체는 조금도 구속되어 있지 않다…. 구속 중인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그들이 성령에 눈을 뜨고 복음의 바른 이해가 주어지고 빨리 석방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말하자면, 구속된 저들은 성서, 예수, 십자가를 경시 또는 부정했기에 그렇게 되었고, 저들은 성령을 모르고, 복음을 바로 몰라 그렇게 되었으니 저들이 회개하도록, 그래서 석방되도록 기도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리에서 남에게 보이려고 방성대곡하면서 우리만이 잘 믿는 자라고 천하에 알리려는 엑스포의 성격을 잘 대변한 시각이다.

원래 이같은 독선적인 신앙풍조를 앓고 있는 우리 교회에 또 한 번 이런 바람을 일으켰다. 그래서 마치 그런 것만이 신앙의 길인 듯한 풍조가 일고 있다. 이들에게 위에서 본 예수의 말씀은 어떻게 들리는가? 왜 이렇게 떠들어대야 하며 자기들의 신앙을 남에게 그처럼 시위해야 하나? 예수께서는 적선, 기도, 금식을 절대로 금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정말 적선이요, 기도요, 금식이 되려면 "제발 남이 모르게 하라, 내가 한다는 의식도 없이 남을 구제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오른손이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는 것이다.

남에게 알리고 싶고, 보이고도 싶고, 사람이 많은 데서만 기도가 나오고 또 열심히 섬기는 자는 결국 인간의 눈만 의식하는 자다. 반면에 정말 남 모르게, 숨어서, 소문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사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3. 역사의 담지자

끝으로 우리의 방향을 좀 바꾸어 그것이 현실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이것은 유대교의 종교생활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그 비판을 적극적인 뜻으로 일반 생활 영역으로 현장을 바꾸어 보자.

이 역사의 실질적 담지자는 누구인가? 맑스주의자들은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노동자라고 했는데 이것은 산업사회라는 전제를 붙이고 보는 눈인데 대해, 그런 조건 없이 역사를 이끈 것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름 없이 그늘에서 소리 없이 꾸역꾸역 제 할 일을 한 계층이다.

한국의 역사를 누가 이끌어 왔나? 비록 가느다랗게나마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은 왕족이나 상부층에 의한 것은 아님은 누구도 부정 못할 것이다. 극심하게 말하면 우리 일반 역사책에 이름이 알려진 놈들은 이 역사의 담지자들이 아니었다. 저들은 권력다툼, 착취, 자리다툼에 여념이 없었다. <나라>라는 이름, 구체적으로 왕권을 내세우면 가장 나라를 팔아 사복을 채운 것이 귀족들이다. 저들의 사리사욕은 외세 앞에 노예 이상의 시늉을 하며 그것에 기생해 왔다. 저들은 외세가 바뀔 때마다 말을 갈아타며 의복을 갈아입고 꼭두각시 춤을 추었다. 그들은 무대에 등장한 배우들일 뿐이다. 이런 역사에서 남에게 칭찬받으려고도 하지 않고, 나팔을 불지도 않고, 거드름을 피우고 길가에 나가 으스대지도 않고, 도탄에 빠져서도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않고 꾸역꾸역 제 모습을 지켰으므로 이 민족의 모습을 계승한 게 누구인가! 그것이 바로 민중이 아니겠는가!

사업을 한다, 정치를 한답시고 밖에 나가 이름을 내고 나팔을 불며 거들먹거리다가 일생 몇 차례씩 집안을 탕진해도 한 가정을 끝끝내 지켜온 이가 누구인가! 그것은 어떤 경우가 와도 유지에서 묵묵히 이름 없이 집안일과 아이들을 지켜온 여자들의 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예수는 유대교를 비판하면서 한 나라의 이른바 지도층과 가정의 남성을 주로 비판하고 그 허상을 폭로하면서 동시에 저 숨은 민중 그리고 주부들이 실제적 주인임을 밝힌 것이 아니겠는가!


List of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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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들 (누가 1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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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통한 구원 (고후 1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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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놈들 (마태 23, 16-26)
핍박을 받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마태 5, 11-12)
무대에서 춤추는 꼭두각시와 무대 뒤에 숨은 주인 (마태 6, 1-8)
 
제5부 나를 따르라
그리스도를 따라서(imitatio Christi) (고전 11, 1)
역경과 복음의 전진 (빌립 1, 12-17)
그리스도의 공동체 (로마 12, 1-8)
복권(復權) (마르 1, 40-41)
제가 무엇인데 감히 (출애 3, 1-12)
소명 (사도 7, 23-35)
하느님의 선교 (마르 1, 40-45)
예수의 낙인 (갈라 6, 11-17)
그리스도를 본받아 (빌립 2,1-11)
무위와 신앙 (마태 6, 24-34)
 
제6부 영원한 현재
하느님 나라 (마태 13, 44)
휴식에의 초대 (마가 6, 31)
영원한 현재 (계시 21, 6-8)
전야 (계시 22, 10-16)
오늘의 성탄 (누가 2, 1-7)
바울 사도의 기도
새 세계에의 초대 (누가 14, 16-24)
단 둘 (요한 8, 1-11)
결단은 수난의 각오다 (마르 3, 1-6)
성 윤리의 기준 (요한 8, 1-11)
갈릴리 교회는 왜 세워졌나? (마태 4, 12-25)
표지
 
재1부 이천 년 동안 십자가에서 못 내려오는 저 사나이
이천 년 동안 십자가에서 못 내려오는 저 사나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수난
베일에 싸인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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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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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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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정치범?
수난의 각오
종말사상의 힘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사건화하는 손
 
재2부 성서가 사람을 죽여?
성서가 사람을 죽여?
성서
두 가지 물음
성서 절대주의
성서를 찾는 마음과 눈
그리스도는 우주인인가
이미 늦었다
우상화
삶의 모순율
자유와 예속
무상과 영원
살인과 분노
죽음에 이르는 병
어린이 같지 않으면!
보물을 담은 질그릇
휴식에의 초대
편리라는 유혹
기술사회의 도전
전체주의와의 투쟁
현대의 욥
자다가 깰 때
 
제3부 축제
축제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
이 때는 잠에서 깰 때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
물질은 하느님의 것
봄의 찬가
고백
증인
의식은 죽음인가?
사랑의 저항
민주주의 제일장
거짓증거
양심
은어
해결해
탈우상화
반복
시간과 영원
휴머니즘의 한계
죄란 무엇인가?
정치적?
계룡산
'상도'(常道)
현존의 의미
야도(夜禱)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회개의 의미
고난의 의미
오 주여!
성문 밖으로
 
제4부 남은자의 윤리
종교적 창기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상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오늘의 그리스도론
정치신학
평등추구의 기독교사
기성교회의 꼴
그리스도교가 잘못된 날(?)
한국 교회의 암?
한국의 교회
종은 누구를 위해 우나!
수도자들의 수난사를 들으며
수도원을 찾아서
학문의 자유
'우리 신학' 추구
현대와 그리스도교
교회일치운동
교회 분화론
그리스도 교회의 진통
그리스도교적 교육
남은 자의 윤리
목사 후보생들에 준 말
젊은 목사에게
신학의 길
인간은 관념의 노예?
하느님의 동역자
역사의 핏줄을 만드는 마술사
그리스도교의 목표
어떻게 살 것인가
표지
 
표지
 
표지
 
표지
 
제1부 혁명과 예수
역사적 예수와 신앙상의 그리스도
무신론과 기독교 신앙
무신론자의 예수
자유와 예수
혁명과 예수
 
제2부 서구신학을 넘어서
신학한다는 일
성서와 대결 못하는 신학
기독교화와 서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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