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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교회는 왜 세워졌나?
마태오복음 4, 12-25
1. 갈릴래아로 탈출 동기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듣고 …" 예수가 갈릴래아로 급히 돌아온 것은 사건이 일어난 때문이다. 정의를 부르짖던 세례자 요한이 집권자에 의해서 체포되어 마키러스 성에 감금되었다. 이것은 위기의 적신호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대종교집단은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반발을 했다는 흔적이 없다. 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어떤 행동을 취했다는 기록이 없다.

이 소식과 더불어 분연히 내적 세계에서 뛰쳐나온 이는 예수였다. 우리말로 갈릴래아로 떠났다로 번역된 "anechorysen"은 탈출했다는 단어다. 그는 유대 지방에서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고 광야로 가서 사탄과 내적 대결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내적 준비는 필요하다. 그러나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과 더불어 거기를 탈출해서 갈릴래아로 향했다. 즉, 사고에서 행동의 길로 결단한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성립된 것은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 경험이 중추겠으나 그것이 새로운 출발의 계기가 된 것은 스데반의 순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것은 유대교에서의 '탈출'의 계기였으며, 새로운 고백을 행동으로 나타내어 세계 진출의 문을 열게 했다.

국교와도 같은 독일 교회가 권력의 보호 밑에 평온한 자기를 유지를 해 오다가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함으로 교회에 개입함에서 정부의 울타리를 탈출함으로 시작되었다. 바르멘선언과 더불어 고백교회의 출발을 선언했다. 그것은 많은 정치가들과 함께 틸리히, 슈미트, 평화주의자, 프리드리히, 지그문트, 슐츠 그리고 칼 바르트 등이 대학에서 추방됨으로써 더욱 의식화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1969년 3선 개헌, 1972년 10월 유신헌법 공포 등의 회오리바람에 성명서 정도를 끌이다가, 1973년 이른바 부활절사건으로 그 해 4월 박형규 목사 등이 구속되었으나 교회는 낡은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74년 긴급조치 1호 발표와 더불어 장준하 그리고 목사로 권호경 등이 구속되고 연이어 민청사건으로 대량의 학생, 교수들이 구속되었다. 그러나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빌리 그래함, 엑스폴로 74 등의 회오리바람에 빨려들 뿐, 위기의식이 극히 일부분에 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75년에 국민투표, 석방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일면 김관석, 박형규 등의 목사들을 횡령 사건으로 구속했다. 그뿐 아니라 속속들이 크리스천 학생들의 추방, 동아조선 기자 추방 등을 거쳐, 마침내 5월에 11명 중 9명의 기독교 교수의 강제 해직 사건이 일어났다. 이런 과정에서 서서히 정말 막다른 골목에 선 것을 의식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예수에게 다시 찾기 위해 낡은 안온주의(安穩主義), 간헐적 시위운동 등의 찰라주의에서 탈출해서 갈릴리교회를 세운 것이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의 체포에 대해서 정면 충돌하지 않고 낡은 것의 탈출과 더불어 새로운 지대에서 새 출발의 공동체를 모색한 것이다. 그 낡은 것이란 내적 고투에서 행동에로 옮겨갔다.

2. 그러면 예수는 어디로 옮겼나?

바로 갈릴래아다. 그래서 우리는 갈릴리교회라고 했다. 왜 갈릴래아로 옮겼나? 마태오에 의하면 갈릴래아는 그 부모가 헤롯의 살기 영역을 벗어나기 위해 탈출해 온 곳이다. 거기서도 탈출이라는 같은 단어를 쓰고 있다(2, 22). 예수는 거기서 자랐으나 세례자 요한의 소리에 따라 얼마 동안 요단 강변에 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결심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지 않고 갈릴래아로 왔다.

갈릴래아는 탈애굽하여 팔레스틴에 도착할 때, 아셀, 납달리, 스불론 족속이 정착하게 된 곳이나, 가나안인을 완전히 추방하지 않았기에 혼거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 침공 끝에 주전 733년 마침내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그들의 영토화됨과 더불어 많은 이방인을 이주시켜서 유대성을 뿌리 뽑으려 했다.

그러던 중, 주전 164년에 하스몬 가, 즉 마카비에 의해서 600년 만에 다시 이스라엘 영역으로 되돌아왔으며 유대인화 하거나 아니면 추방했다. 그러나 다시 로마의 손 아래 들어가서 주전 4년-주후 39년까지 로마의 앞잡이인 헤로데 안티파스의 손아귀에 놓였고, 44년 헤로데 아그립빠가 죽은 후는 로마의 직할 영지가 되었으며, 특히 66-70년에는 저항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지역은 혼거지역이다. 그것은 다메섹에서 애굽으로 가는 길이며, 해안에서 동으로 가는 통로였다. 그러므로 국제적 항구도시 같은 곳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사회적 부조리가 철저했다. 그러나 동시에 예루살렘 유대지방에서 쫓겨난 피난민 지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대 정통파에게는 버려진 땅으로 취급됐다. 그래서 "이방인의 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그것은 새 희망의 약속의 땅으로 예언되었다.

이미 이사야가 이런 예언을 했다. "전에 고통당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야훼께서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했으나,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래아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는 자에게 빛이 비취리로다"(9, 1-). 마태오 기자는 이 예언이 예수의 옴과 더불어 임했다고 보아 인용한다. 이 예언에서도 갈릴래아가 이방인처럼 멸시를 받고 암흑 시대에 살고 죽음의 그늘에 있었음을 전제한다. 그가 갈릴래아로 오신 것, 그래서 마태 19장까지의 무대가 된 그 곳은 수난의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행동했다는 것은 바로 수난자와 더불어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독일 고백교회의 방향으로서 바르멘선언은 solus Christus(그리스도만)을 핵심으로 했다. 그런데 그것은 sola ecclesia(교회만)로 이해되었다. 이래서 그리스도를 교회의 파수꾼으로 삼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때 이미 히틀러가 1933년 1월 30일에 정치백서로서 교회에 관해서 "우리는 국가 안에서의 모든 종교적 고백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것이 현재의 체제를 위험하게 하지 않고, 게르만 민족의 윤리, 도덕적 감정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한에서… 우리는 내외의 유대적 물질주의와 싸울 것이며, …"라고 했다. 여기 벌써 반민주체제의 전제, 배타적 민족주의, 유대인 박해 등이 뚜렷이 드러났고, 그것이 착수되었는데도 교회 밖의 인권문제(특히 유대인 학살), 사회나 의회 독립, 언론 자유 등을 위해서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었다. 그것은 바르트 자신도 후에 수치로 알 정도다. 저들이 "교회를 교회되게"라는 슬로건에 웅거하고 있는 동안에 1936년까지 재정분리법(Finazabteilung), 사법재판보유법(Beschluesslellen in Rechtsangelegenheit), 마침내는 독일 복음교회보호법(Gesetz zur Sicherung der Kirchen) 등이 나왔다. 이것으로 교회재산 박탈, 재판을 버림으로 인권유린 그리고 교회보호라는 미명 아래 게슈타포의 감시 아래 바쳐버리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므로 36-38년 사이에 이 고백교회는 지리멸렬되었다. 그들의 잘못은 바로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수호한다는 데 머물고 갈릴래아 예수를 소외한 데 있다.

왜 solus Christus가 sola ecclesia냐? 아니다. Solus Christus는 바로 수난당하는 자, 눌린 자,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신음하는 자들의 편에 설 때만 가능하다. 우리는 뒤늦게나마 갈릴리교회를 설립했는데, 그 이름이 "갈릴리교회"인데 나타나듯이 바로 눌린 자, 죽음의 위협을 받는 민중의 편에 선 예수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이 장소에서 민중의 신학이 나오고 마미하나마 "사랑방 교회"등을 친구로 인식했으며, 수난자들을 위해 문을 열고 있다. 또한 우리 교회는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니라, 바로 수난자인 "너"를 위한 교회이기 위해 언론이 억압된 아래서, 인권이 유린되고 민족의 장래가 위태한 방향으로 달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 그것에 간여하다가 투옥당했던 사람들이 중심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예수처럼 처형된 것이 아니다. 그 분의 결단인 고난 앞에서 그따위를 자부한다면, 이 교회의 수명은 끝난 것이다.

3. 예수, 갈릴래아에서 무엇을 했나?

그것은 암흑과 죽음의 그늘 밑에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첫째, 우선 하느님의 나라가 임박했다는 선언을 했다. 이것은 역사의 전환에 대한 선언이다. 이것은 눌린 자에게는 기쁨의 소식이나 불의한 자에게는 심판의 선언이다. 즉, 새 시대가 온다. 이것을 의식화시키는 것이 선행했다.

둘째, 다음 이 새 시대의 준비를 위해서 수난당하는 자와 더불어 살기 위해 공동체를 조직했다. 그것이 제자들을 불러모으는 것으로 출발되었다. 그 제자들이란 엘리트들이 아니다. 당시에 천대의 대상인 어부들, 말하자면 노동자들을 모은 것이다. 이것은 혁명이다. 저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한 것은 지배층의 전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지배층은 강권이나 권위의 지배할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 현대어로는 사람들을 규합하는 모체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갈릴리교회는 아직 착안도 못한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이름이 "갈릴리교회"로 인한 이제부터 어쩔 수 없는 과제로 우리 목을 매여 끌 것이다.

셋째, 예수는 그들과 더불어 행동했다. "두루 다니며… 흩어지며 …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며 … 병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병자, 간질병자, 중풍병자, 육체 귀신들 자, 구조악에 신음하는 이들을 그 고통에서 해방하는 일이었다. 이래서 가르침과 해방시키는 것이 일치된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예수의 활동에서 환자를 고치는 데 세 가지 측면이 있다. 그것은 현존하는 "악에서 구하소서"에 밝힌 대로, 첫째 육체의 고통에서 해방, 둘째 내적면, 공포, 콤플렉스에서의 해방, 셋째 사탄, 즉 구조 악에서 해방이다. 이것도 갈릴래아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우리의 목표도 이것이다.

그런데 특기할 것은 이 갈릴래아 운동에 민중이 무조건 따랐다는 것과 둘째로 예수는 어디까지나 저들의 언어, 저들의 감정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보면 우리는 너무 지적이고, 우리가 먼저 안 것, 우리의 재산이라고 모은 지적인 것을 아래로 강요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민중 속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에서 출발해서 그 요구에 응한 이가 예수라면 우리 교회의 체질이 그러해야 할 것이다.

(1975. 갈릴리교회가 한빛교회에서 첫 모임 때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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