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지고?
요샌 뻑하면 '십자가를 질 각오로'라는 소리들을 잘한다. 공부 잘 못하는 아이 가진 부모까지 '저게 우리 십자가요'라고 하는데, 이런 망발을 들으면 아연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십자가가 뭔데!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라고 외친 것은 젤롯당들의 슬로건이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로마 집권자들의 손에 정치범으로 죽는다는 말이다. 까닭은 당시 로마정권은 반로마 운동가만 십자가에 처형했기 때문이다(식민지에서는). 그러므로 예수의 곁에 함께 처형된 사람들은 로마법으로 이름 지어 '강도'라고 옮긴 것이지 실은 독립투사들이었다. 그들은 조국을 위해 죽기까지 싸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예수는 "너희가 나를 따르려거든 너를 부정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을까? 마치 게릴라 대장의 진군 명령같이!
집권자란 언제나 안정제일주의에 선다. 새것도 싫거니와 어떤 형태로나 질서를 문란케 하는 것은 적으로 안다. 그러므로 새 세계, 새 가치관, 새 윤리를 행동화하면 곧 집권자와 충돌하게 되는 것이 역사현실이다. '죽인 후 비석 세우기'가 역사 아닌가! 그러나 비록 무장한 주력 부대가 아니더라도 하느님의 나라를 업고 오는 예수를 따르려면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해야 한다.
(1977. 9. 『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