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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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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이것은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천사의 노래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종교적인 노래가 아니라 인간의 가슴 깊이에서 나오는 숙원임과 동시에 인간의 역사가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지를 가장 바로 가르친 영원한 좌표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히브리 시문학의 한 구절이다. 이 노래의 중심은 평화이다. 희랍어로 '에이레네'이고 히브리 원어로는 '샬롬'이다. 이 말은 오늘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 때 쓰이는 인사 말로 우리의 "안녕하셨습니까?" 또는 "평안히 계십시오"와 통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언제나 전쟁의 참화와 공포 속에서 그 역사를 이어 온 민족의 비원인지 모른다. 사실상 '샬롬'은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어서 전쟁이 끝나고 이 땅 위에 평화가 와 달라는 기원의 표현이다. 그러나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 그치는 외적인 평온을 말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살롬' 하면 그것은 동시에 구원이라는 뜻이 있다. 구원이란 전쟁행위가 정지된 휴전상태와 같은 것은 아니다. 전쟁의 원인이 되는 모든 것에서 해방이 될 때 참 평화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샬롬'은 결코 힘의 균형을 유지하거나 정치, 외교의 수법으로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평화와는 그 바탕이 다르다. 그러므로 '샬롬'은 전쟁의 정지에 그치지 않고 종당에는 인간 개개인이 모든 불안과 공포에서 자유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말하며, 마침내 죄에서의 해방, 그것을 궁극적인 평화라고 보는 것이다. 인간의 내적 평화, 자기 자신 안에서의 갈등에서 해방됨이 없이 참 평화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이다. 그와 동시에 인간 역사를 꿰뚫고 계속되는 염원이 평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그칠 날이 없음은 평화를 위한 노력이 평면적인 데서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 평화는 소위 무사태평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평화는 고인 물과 같은 것으로서 비록 잔잔할지는 모르나 그대로 썩어버리는 그런 것이 될 수 있다. 이 평화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평화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사람들을 뜻하는지 지금까지 구구한 해석이 있었다. 오랫동안 이것은 참 종교적이요 도덕적인 사람들이라고 해석해 왔다. 그러나 어떤 사본에는 "하느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다. 이 뜻에 따르면 사람의 행위에 그 기준이 있기보다는 하느님의 행위에 그 중심이 있다. 이것은 새 역사의 출발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이는 새 시대에 선택된 공동체라고 했는데, 이 해석이 가장 옳을 것이다. 이 평화는 과거의 질서를 유지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새 역사의 시작이다. 따라서 위의 말은 이 새 역사를 믿고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참 평화가 임할 것이라는 말이다. 참 궁극적인 평화의 미래를 믿고 그것을 바라고 사는 사람에게는 현실은 아직 싸움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싸움은 아래로 흐르는 물에 부딪히는 돌에 의해서 잠깐 생기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가장 근본 문제를 전제하고 있다. 그것은 이 땅 위의 인간들의 궁극적인 평화는 지평선에서만 이루어질 수 없고, 그것을 넘어서서 온 우주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장 높은 데서" 이 땅에 이르기까지 평화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 천사의 노래는 이 지구상의 평화를 고립시키지 않았다. 그것을 우주적으로 확대했으며 그것을 연결시켰다. 위가 없는 아래가 없고 아버지 없는 아들이 없듯이 위에 있는 이를 전제하지 않은 땅 위의 인간이란 있을 수 없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괴롭히는 마음의 평화나, 부모를 기쁘게 못하고는 자식의 평화가 생각될 수 없듯이 가장 높은 곳에서의 평화 없이 땅 위의 평화란 있을 수 없다. 그런 뜻에서 땅 위의 평화는 말하기 전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이요"라는 것을 앞세우고 있다.

"하느님께 영광"이란 말은 한마디로 하느님의 주권을 그에게 그대로 돌리는 일이다.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자기 영역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싸움의 불씨는 자기의 위치를 상실하고 자기를 넘어서려는 데서 온다. 세계전쟁의 원인은 자기의 분깃을 넘어서려는 데서 오며, 인간의 갈등도 자기 한계성에 대한 망각에서 온다. 이 땅위의 평화는 인간의 한계를 지킬 때만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모두 한 뜻에(지극히 높은 데) 그 초점을 모으고 그것을 위해 살 때만 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땅과 하늘, 인간과 하느님의 화해의 길이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교만에 의해서 망각되며 그럴 때 평화는 파괴된다.

크리스마스! 그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의 실증이며, 영원한 증거이다. 따라서 이 천사의 선포는 특정한 종교인들에게 주어진 메시지가 아니라 바로 전쟁 속에 사는 인류 전체에게 주는 기쁜 소식임과 동시에 언제나 새롭게 울리는 경종이다.

(1971. 『새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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