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린교회에서 오후 한 시부터 성서 강좌를 계속한다. 30-50명의 청중이 모인다. 그중에는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끝마치고 뛰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재작년에는 신학자들의 사상을 계보적으로 소개했고, 작년부터는 공관복음서를 강해하고 있다. 강의가 끝나면 질문을 받는다. 그중에 왜 성서만이 진리냐? 또는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없느냐? 진리는 성서의 독점물이 아니지 않느냐? 믿지 않아도 선을 행하면 될 것이 아니냐 등의 질문이 많다. 이것은 이 모임에서만이 아니고 특히 학생들의 모임에서 자주 받은 질문이다. 내가 성서를 너무 강조하니까 그리스도교 절대주의자 또는 성서 절대주의 자라는 인상을 받기 때문인 모양이고, 또 요새 종교 간의 대화이라는 말이 떠도는 데서 오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대답을 한다. 나는 그리스도교는 물론, 성서만이 진리를 독점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서에서 내 문제의 열쇠를 찾겠다는 인상은 내 마음의 자세이다.
진리라는 말은 추상적으로 들린다. 정말 객관적 진리란 있는 것인가? 있다고 해도 나와는 상관없다. 나는 내게 해 오는 '말'(Anrede)이 될 때 진리라고 한다. 성서는 진리일반을 말하는 진리의 해설서도 아니요, 교과서도 아니다. 그것이 내게 물음이 되고 대답과 결단을 요구한다. 그런 뜻에서 성서는 내게 진리이다. 그런데 만일 성서의 내용을 진리의 교훈이라고 할 때 그것이 성서에만 고유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불경, 사서삼경, 플라톤이나 세익스피어에서도 그러한 뜻의 말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것이 내게 Anrede가 되느냐가 문제이다. 가령 불경에서 수긍이 가는 진리를 찾았다고 해도, 내가 그저 '그렇게 기록되어 있더라', '바른 말이더라'라는 데서 머물게 되면 그 말들이 내게 지적인 플러스는 가져와도 나의 진리는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이 내게 물음으로 와지지 않을 때는 나와 직결된 진리는 아니다. 그런데 성서는 내게 Anrede로 온다. '그렇더라'가 아니라 그것이 내게 하는 말로 들리면 나는 그것에 가부간에 '대답의 의무'(responsibility)를 느낀다.
내게 있어서 다른 경전과 성서의 차이 중의 하나는 나와 직접 상관없는 사람의 말을 듣고 나 홀로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대상이고 다른 하나는 내 사랑하는 이나 부모의 말씀처럼 그의 말에 대해서 "옳소 또는 아니요"로 그와 맞서서 납득이 될 때까지 판가름을 해야 되는 관계와 같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대답에 대해서 '만일 불교도가 불경이 그에게 Anrede가 되는 경우는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묻는다. 나는 이런 질문에는 '그럼 그에게 다행이지요'라는 대답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대답은 의레 다음의 화살을 각오해야 한다. '그럼 성서 절대주의는 포기해야 할 게 아니요?' 그러나 나는 비교에 의한 절대주의란 생각할 수 없다. 자기 아버지를 남의 아버지와 비교해서 절대로 내 아버지인가? '그러면 어째서 당신은 성서만이 당신의 Anrede가 되느냐?'는 물음이 곧 제기된다. 그건 나도 모른다. 그것은 왜 내가 그 많은 사람의 말 중에 하필이면 저 사람의 말이면 꼭 응답할 의무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지 모르는 것과도 같다. 그러니 이것은 내게 '주어진 것'(gegebengeit)이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라. 나는 성서도 무조건 진리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응답하고 싶은 사람의 말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지 않는 것과도 같다. 내가 그것을 옳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납득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진리의 객관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써도 좋다.
성서는 내게 '해오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내게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러면 다 자기 주관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 불교도는 그들대로 그리스도교도는 그들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전제에서 자기 것을 고집하면 대화가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한다. 글쎄, 왜 두 삶이 각기 자기 아버지를 가지고 대화가 안 될까? '당신 아버지는 이런 것을 이렇게 생각하고 또 요구하는데' 하는 따위의 말을 왜 못 할까? 그 모임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197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