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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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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늦었다

성서의 '너무 늦어'(zu Spat)라는 말은 성서의 심판관(審判官)에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되어 있다. 더 이상 만회할 수 없는 막다른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나는 옥중에서 한국 근세사에 초점을 모아 독서를 했다.

그동안 연발한 소리가 '이미 늦었다'였다. 무슨 운동, 운동 해서 구국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사를 준비하는 대목마다 '이미 늦었어'라고 중얼거리면서 읽어내려 갔다.

대원군의 개혁동학란개화정책갑오경장을미사변독립협회운동, 그 뒤의 의병봉기게릴라 조직 등이 모두 이미 늦은 때를 실감하게 했다는 말이다. 때를 놓치지 않으면 무너져 가는 집도 바로 지을 수 있고 허물어질 방파제도 개수할 수 있다. 그러나 실기(失機)하면 몇천 배의 힘이 가세해도 걷잡지 못한다.

한국교회사를 공부하다가도 그런 생각이 자주 인다. 가령 1925년에 서울 남산에 신사를 세웠는데, 그리고 35년에는 선교사들이 신사참배 문제로 퇴진했는데, 38년 장로교 총회가 강제로 소집되어 총대 두 명에 한 명꼴의 형사들 틈에서 신사참배를 제의, 가(可)면 묻고 부(否)는 묻지 않은 채 가결될 때까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그리고도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자, 교회수 등은 자랑처럼 내세우는데 그게 어찌 한국 교회의 자랑거리가 되느냔 말이다. 적어도 13년 전에 그러한 전제의 초석이 섰을 때부터 손을 써야 했을 게 아닌가? 서울 남산에 선 것은 과거에는 우상이 아니었고 나 자신이 참배를 강요당할 때만 비로소 우상으로 둔갑하는가! 발 앞에 불덩이가 떨어졌을 때는 이미 늦은 때! 그러기에 그 위의 교회의 학교의 폐문교단 통합충성 강요친일파 난무의 과정은 방파제가 다 터진 후에 일어난 일이다.

주기철 목사를 가진 한국 교회를 자랑하는가? 그런데 그가 체포된 후 그가 담당했던 '장대재교회'의 문이 닫힌 후에 이에 항거하거나 그의 뒤를 따른 이가 얼마나 됐던가? 듣기로는 그 교회 폐문 후 해방이 될 때까지의 7년간 제직회 한 번 못 모았다고 하지 않나! 아니 그렇게 강도식으로 신사참배를 가결시킨 총회 다음에 힘과 열을 자랑하는 한국 교인들이 무얼했나?

따지고 보면 그게 공동체적 연대의식이 없는 오합지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처럼 맥없이 항복할 수 있나!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으나 나는 단적으로 종교적 이기주의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운집(雲集)해도 개개인의 구령(救靈)을 목적한 이기적 개인주의자들의 집회가 아닌가. 모두 자기 개인 구원을 위해서, 혼자 살기 위해서는 부모, 처자, 친척, 친구 다 버리고 자기만 도망하는 저 '천로역정'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저들을 모래를 가득 담은 자루와 비교한다. 자루가 터지면 모래는 모두 흩어지기에.

옛말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의 우리의 자세도 그렇단 말이다. 모든 것에 때가 있다. '이미 늦었다'의 때 이전에 움직이지 않으면 그릇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없다.

오늘 한국에 얼마나 우상(偶像)이 난립해 가고 있는가! 웬 성역(聖域)이 그렇게 늘어가며,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대상이 왜 그리 많으며, 경건한 자세로 명상해야 하는 인간의 언어가 어찌 그리 많아져 가는가!

우상이란 상대적인 것이 절대화된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교 역사는 바로 우상과의 싸움으로 피를 뿌리며 자라오지 않았나! 그런데도 아직 내게 '직접', '구체적'으로 강요되지 않은 이상 오불관(吾不關)의 자세를 취해야 하나! 아니면 또 교묘한 변명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인가!

때가 늦으면 아무리 울고 발광을 해도 소용이 없다.

(197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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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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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사상의 힘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사건화하는 손
 
재2부 성서가 사람을 죽여?
성서가 사람을 죽여?
성서
두 가지 물음
성서 절대주의
성서를 찾는 마음과 눈
그리스도는 우주인인가
이미 늦었다
우상화
삶의 모순율
자유와 예속
무상과 영원
살인과 분노
죽음에 이르는 병
어린이 같지 않으면!
보물을 담은 질그릇
휴식에의 초대
편리라는 유혹
기술사회의 도전
전체주의와의 투쟁
현대의 욥
자다가 깰 때
 
제3부 축제
축제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
이 때는 잠에서 깰 때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
물질은 하느님의 것
봄의 찬가
고백
증인
의식은 죽음인가?
사랑의 저항
민주주의 제일장
거짓증거
양심
은어
해결해
탈우상화
반복
시간과 영원
휴머니즘의 한계
죄란 무엇인가?
정치적?
계룡산
'상도'(常道)
현존의 의미
야도(夜禱)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회개의 의미
고난의 의미
오 주여!
성문 밖으로
 
제4부 남은자의 윤리
종교적 창기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상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오늘의 그리스도론
정치신학
평등추구의 기독교사
기성교회의 꼴
그리스도교가 잘못된 날(?)
한국 교회의 암?
한국의 교회
종은 누구를 위해 우나!
수도자들의 수난사를 들으며
수도원을 찾아서
학문의 자유
'우리 신학' 추구
현대와 그리스도교
교회일치운동
교회 분화론
그리스도 교회의 진통
그리스도교적 교육
남은 자의 윤리
목사 후보생들에 준 말
젊은 목사에게
신학의 길
인간은 관념의 노예?
하느님의 동역자
역사의 핏줄을 만드는 마술사
그리스도교의 목표
어떻게 살 것인가
표지
 
표지
 
표지
 
표지
 
제1부 혁명과 예수
역사적 예수와 신앙상의 그리스도
무신론과 기독교 신앙
무신론자의 예수
자유와 예수
혁명과 예수
 
제2부 서구신학을 넘어서
신학한다는 일
성서와 대결 못하는 신학
기독교화와 서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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