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로와 바나바가 '루스드라'라는 곳에 간 일이 있다. 거기서 한 앉은뱅이를 고쳤다. 이것을 기화로 그곳 사람들이 그들을 제우스와 헤메 신이 온 것이라고 해서 그에게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갖고 와서 제사를 드리려고 했다. 이에 당황한 두 사람은 자기들 옷을 찢으면서 "우리도 당신들과 꼭 같은 사람이오"라고 소리치면서 저들의 무지를 계몽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루스드라'에는 큰 나무들이 나란히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나무에 얽힌 전설이 있었다. 제우스와 헤메라는 신이 초라한 인간으로 가장하고 그 곳에 왔는데, 모두 그들을 냉대했다. 그런데 늙은 농부의 부부인 필레몬과 바우시스만은 그를 후대했다. 그래서 이 두 신은 동리 사람들을 모두 전멸하고 이 두 부부만 살려 제우스 신전을 지키게 하다가 같은 시간에 죽도록 하므로 이별의 슬픔을 모르게 했는데, 그들의 죽음에서 두 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자랐다는 것이다.
이 주민들은 아마 이 두 사람을 바로 이런 신들이 나타난 것으로 알고 일면 화를 면하고 또 축복을 받기 위해서 그들을 후대한다는 뜻에서 제사를 지내려고 한 모양이다.
그러나 산 사람을 신으로 만드는 것이 대접일까? 그것은 산 채로 매장하는 것과도 같을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들은 이렇게 함으로 참과 거짓을 혼동하게 만든다.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함으로써 하나의 우상을 만들어 참것과의 사이를 가로막게 하는 것이다. 또 어떻게 보면 제우스 신전의 제사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제우스가 살아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그들의 능력을 바로 제우스의 능력과 일치시키라는 지능적인 데몬스트레숀을 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대체로 우상이라는 것은 정책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가장 예민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우상 타파이다. "여호와의 형상을 그 어떤 것에도 만들지 말라"는 것은 이 세상의 진상을 가장 예리하게 통찰한 계명이다. 그것은 반드시 종교적 차원에서만 이해할 것이 아니다. 우상화의. 이면을 파헤친 것이다. 신을 다른 어떤 것과 일치시키는 것은 우선은 그 신을 숭배하는 듯하나 따지고 보면 그 신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로 둔갑하게 마련이다. 신은 구체적인 어떤 것과 일치시킬 때 그 신은 사람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말하자면 그 신을 가두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두는 것의 열쇠는 바로 우상화한 사람 또는 그렇게 한 집단의 손에 쥐고 있다. 그때부터 그는 그 신의 대행자로 승격할 뿐 아니라 한 걸음 나가서 그 신을 조종하는 상전이 돼 버리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저들은 그 신을 숭앙하는 자들의 운명의 열쇠를 그 손에 잡게 되는 것이다.
일본이 세계 침략으로 그 국민을 몰려고 할 때 왕을 신격화하고, 이른바 신사를 곳곳에 세우고, 국민과 그리고 피식민지인들까지 그곳에 무릎을 꿇도록 강요했다. 이것은 날조된 종교이다. 그런데 이 이면에는 집권자들의 각본이 있는 것이다. 그 안에는 어떤 것을 신격화하고 그리고 그것을 가두는 열쇠를 자기 손에 넣으므로 그 이름으로 천하를 마음대로 요리하자는 속셈이 들어 있는 것이다. 히틀러는 자기가 20세기의 신화를 만든다고 했다. 그런데 점점 히틀러 자신을 우상화하는 간신들이 생겼다. 그래서 히틀러는 점점 메시아라도 된 듯이 날뛰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는 간신배들의 각본에 의해서 조종 받고 있었던 것이다. 신이 됐으니 신처럼 행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를 신으로 만들고 실속을 노린 것은 그 간신배들이다.
'우상이 많으면 떡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우상의 그늘 아래에는 축제가 많기에 먹을 것이 많다. 축제는 우상을 위한 것이나 우상은 입이 없기에 먹는 것은 그 그늘 밑에 있는 자들이다. 그러니 억울한 것은 우상 자체이다.
하여간 성서의 하느님이 그의 형상을 절대로 허락지 않은 것은 참 통쾌한 것 중의 통쾌한 것이다. 그후 성서에서 이 우상타파를 계속 밀고 나은 것은 가장 장한 일이다.
그런데 중세기에 들어와서 무수한 우상이 꼬리를 물고 생겨났다. 웬 성인들이 그리도 많았던고! 그런데 그 추앙의 대상 중에는 참 위대한 인물들이 많았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를 제우스와 헤메라고 하던 그 졸개들처럼 이들을 제멋대로 우상화하므로 실은 이들의 참 모습은 감금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이들은 희생의 제물이 되고, 그 밑에서 제물을 나꾸는 협잡배만 늘어났다. 그 성인화된 인물들이 천하에서 곡 하리다! 까닭은 이 우상화는 산 하느님과의 관계를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그리스도교를 무력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 왔으니까!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많은 우상화의 현상을 본다. 종교계, 정치계 등에서 보는 현상이다. 이것은 근대화를 위해서 불행한 일이오, 또 우상화되는 대상 자체를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 불행한 일이다.
(1972. 6. 『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