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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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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

이른바 경전주의적 주장은 개인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새사람되는 것만을 강조했다. 그래서 회개와 믿음에 의한 개인 구원만을 강조했다. 이런 요소가 바울로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바울로는 새로운 이스라엘로서의 공동체인 교회라는 사상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공동체로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한다. 이로써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신조를 내세웠다. 그런데 이 교회를 노아의 방주로 생각했다. 그래서 세상은 망해도 이 방주에 타고 그것을 폐문하고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로에게는 또 다른 면이 있다. 그것은 만물이 모두 사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릴 영광의 자유를 함께 누리게 될 것을 목표로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로마 8장). 그런데 그 바울로의 말은 오랫동안 묵살되어 왔다. 까닭은 이것이 인간 중심적인 구원 사상과 잘 조화가 안 되며 비신론적인 주장에 지나친 경제를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서 8장의 사상은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성서 전체를 흐르고 있는 핵심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자녀'란 바로 새 사람이다. 그런데 그것은 복수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하느님 자녀의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공동체이다. 그런데 만물이 이 새 공동체가 출현 되기를 갈구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만물 자체도 비로소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순서를 따진다면 만물의 구원, 즉 새로운 세계를 이룩하는 데는 먼저 새 사람이 출현 되어야 한다는 것이 된다. 그렇게 보면 새 세계는 새 인간의 출현으로 가능하며, 나아가서는 새 인간이 비로소 새 세계를 창조하는 권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서는 하느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려는 역사라는 것이 주제이다. 노아 홍수 이야기에서 비롯하여 새로운 인간형의 출현인 아브라함의 이야기, 출애굽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가나안 땅과 또 미래의 축복의 새 현실에의 약속 등이 그런 것이다.

마침내 예언자 그리고 묵시문학에 이르러서는 궁극적인 '새 현실'을 기다리기에 이르렀다. 이 전통 위에서 구체화하어 결론처럼 내세운 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이다.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를 그의 선교의 중심으로 했다. 이것을 전제하고 새사람이 될 것을 촉구했다. 회개하라는 것은 바로 이 새로운 나라에서의 전향을 뜻한다.

'하느님의 나라'란 바로 하느님의 새 창조의 현실이다. 그것을 바로 하느님이 만물을 궁극적으로 새롭게 하는 미래이다. 이 '나라'는 하느님만이 도래하게 하는 현실이다. 이 나라의 도래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의 종말을 뜻한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을 이 새 나라의 도래에 자기를 개방하라는 것이 그리스도 사신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나라', 이 새로운 현실은 이 기존 모든 것의 부정을 전제한다. 기존적인 것의 철저한 부정을 전제한다. 기존 것의 철저한 부정은 동시에 철저한 새 창조의 긍정을 뜻하기도하는 것이다.

이 부정과 긍정 사이는 개선도, 타협도 또는 지양도 없다. 그러므로 새롭게 한다는 뜻은 그러한 점진적 개선이나 개량이 아니라 철저한 새 창조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도래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희망과 기대는 그리스도교가 박해시대에 들어갔을 때 더욱 고조됐다. 묵시록의 저자는 그러므로 재 하늘과 새 땅의 도래와 '오소서 주여'를 궁극적 소원으로 반복한다. 이같은 대전제에 그리스도인의 실존의 자리가 있으며 또 이 신념에서 역사를 보고 또 역사적 투쟁을 한다.

오늘의 역사는 일대 전환점에서 있다. 그것은 반드시 있어야 할 역사의 운명이다. 그것은 기존의 낡은 것이 인간에게 '구원'을 약속한 것이 모두 허구임을 알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은 오고 있는 새것을 가로막는 장애물로써 없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라는 낡은 세력 '합리적', '현실적'이라는 말로 인간을 바로 이 '현재'에 영원히 비끄러매려고 했다. 그럼으로써 미래에서 차원이 다른 꿈아나 비전 희망을 차단하려고 했다. 현대는 '기적은 없다'라는 주장과 동시에 '절망은 없다'라는 약속을 반복하므로 이 '현재'에 안착시키려고 했다. 사람들은 그런 선전에 오랫동안 속아 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선전에 현혹되지 않는다. 이른바 기계문명이 약속한 미래가 허구이며, 그 대가는 인간 상실이라는 결과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새것, 새 세계를 희구하게 됐다.

기적이 없다는 것은 현재의 군림가들의 영구집권을 위한 세뇌적 선전이었다. 아니 기적은 있다! 우리 삶도 이 역사의 지속도 실은 기적이다. 이러한 기적을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자가 살아난다'라는 기적을 믿음으로써 비로소 만물을 온전히 새롭게 하는 하느님을 믿는 자들이다.

기적이 없다는 말은 희망을 버리라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체념에서의 굴종을 종용한 거짓말이다. 하느님은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기적은 있다'라는 재천명이며, 이 이상 숙명론의 함정에서 종살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1973. 4. 『세계와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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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가의 대화 (요한 4,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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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르 5,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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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생명력 (마가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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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버지와 두 아들 (누가 15, 11-32)
부모와 자녀들 (누가 1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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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서의 삶 (마태 6, 25-34)
 
제4부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
사건을 통한 구원 (고후 11, 23-33)
돌들이 소리지르기 전에 (누가 19, 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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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춤추는 꼭두각시와 무대 뒤에 숨은 주인 (마태 6, 1-8)
 
제5부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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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과 복음의 전진 (빌립 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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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 (사도 7, 23-35)
하느님의 선교 (마르 1, 40-45)
예수의 낙인 (갈라 6, 11-17)
그리스도를 본받아 (빌립 2,1-11)
무위와 신앙 (마태 6, 24-34)
 
제6부 영원한 현재
하느님 나라 (마태 13, 44)
휴식에의 초대 (마가 6, 31)
영원한 현재 (계시 21, 6-8)
전야 (계시 22, 10-16)
오늘의 성탄 (누가 2, 1-7)
바울 사도의 기도
새 세계에의 초대 (누가 14, 16-24)
단 둘 (요한 8, 1-11)
결단은 수난의 각오다 (마르 3, 1-6)
성 윤리의 기준 (요한 8, 1-11)
갈릴리 교회는 왜 세워졌나? (마태 4, 12-25)
표지
 
재1부 이천 년 동안 십자가에서 못 내려오는 저 사나이
이천 년 동안 십자가에서 못 내려오는 저 사나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수난
베일에 싸인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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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4ᆞ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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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사건화하는 손
 
재2부 성서가 사람을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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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절대주의
성서를 찾는 마음과 눈
그리스도는 우주인인가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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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예속
무상과 영원
살인과 분노
죽음에 이르는 병
어린이 같지 않으면!
보물을 담은 질그릇
휴식에의 초대
편리라는 유혹
기술사회의 도전
전체주의와의 투쟁
현대의 욥
자다가 깰 때
 
제3부 축제
축제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
이 때는 잠에서 깰 때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
물질은 하느님의 것
봄의 찬가
고백
증인
의식은 죽음인가?
사랑의 저항
민주주의 제일장
거짓증거
양심
은어
해결해
탈우상화
반복
시간과 영원
휴머니즘의 한계
죄란 무엇인가?
정치적?
계룡산
'상도'(常道)
현존의 의미
야도(夜禱)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회개의 의미
고난의 의미
오 주여!
성문 밖으로
 
제4부 남은자의 윤리
종교적 창기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상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오늘의 그리스도론
정치신학
평등추구의 기독교사
기성교회의 꼴
그리스도교가 잘못된 날(?)
한국 교회의 암?
한국의 교회
종은 누구를 위해 우나!
수도자들의 수난사를 들으며
수도원을 찾아서
학문의 자유
'우리 신학' 추구
현대와 그리스도교
교회일치운동
교회 분화론
그리스도 교회의 진통
그리스도교적 교육
남은 자의 윤리
목사 후보생들에 준 말
젊은 목사에게
신학의 길
인간은 관념의 노예?
하느님의 동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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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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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혁명과 예수
역사적 예수와 신앙상의 그리스도
무신론과 기독교 신앙
무신론자의 예수
자유와 예수
혁명과 예수
 
제2부 서구신학을 넘어서
신학한다는 일
성서와 대결 못하는 신학
기독교화와 서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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