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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형제들이여, 나는 이날까지 하느님 앞에서 오로지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전한 바울로의 말이다.

이 말에서 주의할 것은 단순히 양심을 갖고 살았다고 하지 않고 "하느님 앞에서"라는 말이 앞서 있는 점이다.

양심이라고 하면 얼른 다음의 생각이 따르게 된다. 양심이란 사람의 본성에 속한 것으로 본래부터 주어진 어떤 오르간과 같은 것이다. 악인은 악한 마음, 선한 사람은 양심을 날 때부터 지닌 것같이 생각된다. 동양의 사고는 대체로 그러하며 서구의 관념철학에도 그렇게 이해했다. 양심 하면 동양의 성선설—맹자—을 생각하며, 칸트의 유명한 감탄사인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내 마음의 양심률(良心律)"이 생각된다.

그러나 정말 인간에게 보편적인 양심이 있는 것인가. 같은 일도 경우에 따라서 전혀 다른 판단이 생기며, 시대와 지역(상황)에 따라서 선, 악의 기준이 다른 것을 본다.

'양심'으로 번역된 syun-eidesis는 "더불어 안다"라는 뜻의 복합명사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Con-science, 독어로는 Ge-wissen이라고 한다. 즉 양심이란 홀로 지니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너와 더불어 아는 것, 즉 어느 누가 이해해 줄 때 성립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알아주는 대상은 많을 수도 있고 단 한 사람일 수도 있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사람이 나의 어떤 행위를 오해하거나 비난해도 내 사랑하는 사람 하나가 내 한 일을 옳다고 인정해 주면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양심이란 언제나 유동적이 될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양심은 사람이 자기의 책임을 피할 수 있는 도피처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양심에도 바른 양심, 삐뚤어진 양심이라는 말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양심이라고 해도 믿을 수 없게 되며, 자신으로서도 어느 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 혼미한 상태에 있을 수 있다.

바울로는 하느님 앞에 선 양심을 말한다. 하느님 앞에 선 존재란 말은 자기는 홀로 있지 않다는 말이며 그의 행위나 생각은 제 이해관계나 감정에 의해서 좌우될 수 없는 책임적 존재임을 의식하는 자의 말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기적인 동기나, 상황에 따라서 좌우 될 수 있는 아전인수격의 양심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서도 맑은 마음으로, 책임적으로 결단할 수 있는 양심의 소유자가 될 수 있는 비밀을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과거에 인간의 인격을 너무 믿어 왔다. 인간은 자신을 잘 수련하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자기 안에서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또 그러한 것을 인간에게 기대했다.

그러나 인간 안에 그러한 영원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즉 양심이란 그의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전혀 딴 사람끼리는 절대로 합해질 수 없으며 서로 시비를 가려낼 여지가 없다고 보게 됐다.

그런 입장에서 공산주의 같은 것은 부르주아에 대해서 프롤레타리아를 내세우고 그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구별이 있기 때문에, 대화나 설득 따위는 쓸데없고, 있는 것은 타도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확실히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는 홀로 설 때 급급하게 된다. 남을 이해하는 것도 자기 이해 문제에 의해서 한계가 생겨 버린다. 그러기에 한 문제에 대해서 개인이나, 그룹 또는 민족 사이에 그처럼 뛰어넘을 수 없는 차이 내지 상반성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흔히 대화, 설득으로 가능하다고 하지만 아무런 전제 없는 대화나 설득에서 해결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을 너무 낙관하는 것이다.

참 이해란 너와 내가 공통점을 가졌을 때 가능하며 그 공통점은 내 이해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하느님 앞에 섰다는 믿음은 정말 양심을 양심 되게 하는 길이다.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은 자기의 이해나 자기에서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에게 갇혀 있지 않고 자기 밖에 섬으로써 자기와 관계를 가질 수 있으므로 자기를 비판도 하고 인정도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어떤 편견이나 고집에 사로잡혀 차단되지 않고 정말 이해하고 바른 결론과 바른 행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행위가 옳다는 것을 스스로 보장할 수 없다. 나는 나 밖에서 인정받을 때 비로소 양심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이 땅에 떨어진 혼탁한 시대에서 하느님 앞에 선다는 사실은 참 양심 수립의 유일한 길일 것이다.

(1970. 11. 『새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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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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