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심취한 때가 있었다. 유영모(柳永模), 함석헌(咸錫憲) 두 어른에게서 자극 받은 것이 그 계기였다. 『도덕경』을 읽는 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자란 내 몰골이 퍽이나 옹졸한 것을 발견하고 부끄러움을 처음 느낀 후, 나는 신학과 교회 주변에서 맴돌다가도, 자기 반성을 위해 가끔 그것을 펼친다. 나는 도덕경이 공자(孔子) 이후 유교가 자리 잡혔을 때, 형성된 것이라는 학설은 옳을 것이라 생각한다. 『도덕경』은 유교의 군자상(君子像)을 타기한다. '인'(仁)이니 '예'(禮)이니를 너무 강조하고 그것이 하나의 수신(修身)을 위한 도구화가 되어 일종의 도그마적 학설과 인간으로 경화증을 일으켰을 때 그 반동으로 『도덕경』이 형성됐음직하다.
나는 '도덕경'에서 생의 좌표로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라는 말을 골랐다. '공을 세웠으면 거기 머물지 않는다.' 이것은 유교나 또 잘못 해석된 그리스도의 도그마보다 얼마나 시원한 말인지 모른다.
어떤 단체든, 싸움하는 이면을 들여다보면 공로의식이 뱀처럼 머리를 드는데 그 원인이 있더라.
요새 어떤 분란이 계속되는 교회 사람을 만났다. 그 분란의 원인은 결국 공로싸움이다. 그 교회를 시작했다는 목사가 공로자로서의 위세를 너무 부려서 부목사도 장로도 붙어있을 수 없단다. 그 목사의 일같은 언제나 '내가 누군데!'라고 한다. 즉 공로자를 몰라본다는 분노이며, 싫은 놈은 나갈 것이고,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는 통에 그는 사람을 다 잃고 한때, 명성을 날리던 그는 노망한 노인으로 따돌림을 받고 있단다. 우리 주변에서는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가 아니라 '공성이불거'(功成理不去)의 위인을 많이 본다. 어떤 목사는 하도 사임을 하지 않기에 젊은이들이 들것에 떠매여 멀리 내던지고 들어 왔더니 얼마 후 다시 돌아와서 "난 못 나간다, 너희들이나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수십 년의 공이 아쉬워 노망이 든 예이다.
이에 반해서 일생을 공을 들이고도 누가 마다하면 홀홀이 떠나서 '무위무위'(無位無爲: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왈가불가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지켜 누가 와서 무어라고 해도 그 기관의 문제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 하는 이가 있다. 그래서 그는 '불성거불거'(不成居不去)의 위인이 되고 있다. 즉 그가 세운 '공'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사람들의 마음에서 그가 떠나지 않는다.
나는 예수가 왜 그토록 공로사상과 싸웠나하는 것을 세상을 경험하면서 점점 실감하게 된다. 어떤 공로를 저 세상에까지 끌고 가서 하나님 앞에서까지 주장하자는 작자들이 그의 눈에 거슬리지 않았을 리 없다.
나는 어떤 교회의 창립기념 설교를 하라기에 갔더니 목사님이 '우리 교회 창립자이신…' 하고 소개하는 바람에 얼굴이 붉어진 일 있다. 그후부터는 다시는 그 교회에 간 일이 없다. 해방 직후, 우연하게 권유에 못 이겨 시작했던 모임이 커져서 한 교회가 됐다. 그러나 나는 설교를 했을 뿐 그 설립의 공로자들은 무명(無名)의 여인들이었다. 그 교회가 자리잡게 되어 목사를 모셨는데, 무명(無名)과 무위(無爲)의 나는 주일 낮과 밤 설교를 하고 그 목사님은 수요일 저녁 설교와 그리고 주로 축복기도를 맡게 된 것은 그이의 강경한 사양에서 된 일이었으나 후에 알고 보니 나와 함께 시작한 부인들이 미리 침을 놓은 탓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기부터 그 목사는 "나는 축복기도 목사일 따름이요" 하기 시작하는데 눈치를 채고 나는 소리 없이 거기를 홀홀이 떠났다. 그 후 나는 언제나 남이 칭찬하거나 내 비중이 커지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때는 또 떠날 때가 됐나보다라고 마음을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것도 아직 젊었기에 자신이 있어서 가능했는지 모른다.
나는 늙었다는 말과 '공성이불거'(功成而不去)를 동의어로 생각한다. 키에르케고르가 거미형의 인간을 말했듯이 일찍이 공들여 쳐놓은 자기 판도 한복판에 웅크리고 앉아 거기 걸리는 것을 먹고살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최근에 나는 이런 생각에 짖었다가 요한복음에 심은 자와 거두는 자가 다르다는 말씀을 읽고 되새기고 새기다가 그것으로 설교를 했다. 나로서는 나의 생활태도를 천명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설교였다. 내가 오늘 거두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공'이 아니라, 이미 심어 놓은 이가 있어서 된 것이요. 또 내가 무엇을 심을 때 거기서 나는 수확을 제 손으로 거두리라는 생각은 아예 말자는 생각을 다짐하면서 그 설교를 했다. 정부는 50세를 고령이라고 해서 해고시켰다는데, 나도 그 줄에 들어서게 됐으니, 더럽게 늙지 않기 위해서는 '공성이불 거'(功成而不居)를 염불처럼 부지런히 외워야 할 때가 왔나보다.
(1971. 3. 『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