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라고 할 때 앞서는 것은 '인'(人), 즉 사람이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라는 상황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존재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그리스도 <인>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그리스도인은 20세기, 아니 1979년에 한국에서도 남한, 그리고 이 안에서 세력화한 구조와의 관계에서 존재한다는 점에 한국인 전체와 다를 바 없는 한국 국민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도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꼭 같이 있다.
그런데 흔히 그리스도인(종교인)이라는 이름 아래 어처구니없는 발상법이 생겨서 그리스도인을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다. "'종교인'은 그 한계를 지켜야 한다, 아니 한계를 지키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 경우에는 <사람ᆞ국민>이라는 점이 고의적으로 배제된다. 종교인도 국민인 이상, 국민으로서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고 권리가 있다. 그런데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적어도 민주 체제에 있어서는—기존 체제나 지배 세력에 맹목적으로 순응한다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민주 사회의 일원으로서 각기 가치 판단의 자유를 고유하게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존 입장에 동의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래서 비록 자기 의사와 달라도 다수의 의견을 위해 자기 의견을 후퇴시킨다는 약속을 지킬 수도 있다.
이 점에서는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가 제시한 가치 기준을 가지고 한 국민으로서 이 공동체에 참여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한 손에는 신문을, 한 손에는 성서를 들었다. 그는 법질서와 성서의 계율의 분계선에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어떤 형성된 영역에만 머물러, 그것에만 관심할 수도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 된다. 비록 그리스도교적 입장이라고 해도 반드시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용어를 쓰고, 일반의 견해와 달라야 한다는 이유는 없다.
그리스도 교회는 정당(政黨)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조직이 수권적 정치단체일 수 없다는 말이지, 결코 정치 현실에 눈감고 입을 봉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아니! 그리스도교 교회가 정말 제 의무를 다하려면, 객관적으로는 '참을 참으로' 밝히고 그것을 수호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입장에는 차원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표현에 있어서는 보편적 현상에 대해서 보편적 언어와 보편적인 행위로 나타나게 된다. 그럴 때 그리스도교는 역사 속의 종교일 수 있으며, 그런 종교에 발을 딛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1979. 9, 『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