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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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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가 잘못된 날(?)

어떤 분이 그리스도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된 날은 바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000명이 세례받은 날일 거라고 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럴런지도 모른다. 3,000명이 한번에 세례를 받았으니 얼마나 날조된 신도들이 많았겠느냐는 말이다. 콘스탄틴 대제에 의한 그리스도교의 국가종교화는 그리스도교의 성격을 변질시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다. 그것은 질에서 양에로의 전환이다. 사람들 중에는 그날을 그리스도교의 승리의 날로 말하지만 실은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에 병합된 비운의 날이다. 그때부터 그리스도교는 갑작스럽게 몸집이 커지는 반면에 머리와 팔다리는 위축됐다. 그때에 권력과 종교는 야합되어 세계를 식민지화하는 백인들의 도구로 전락될 씨가 뿌려졌다. 그때에 미래적 하늘나라는 지상에서 이동됐고,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가진 자가 복이 있다는 말로 대치됐다. 그때부터 아래서 위로 향하던 전파의 길이 위에서 아래로 강요하는 종교가 됐다.

얼마 전에 어느 군단(軍團)에서 동시에 수천 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일부 그리스도교 주간지들이 기적이나 일어난 듯이 대서특필했었다. 왜 내게는 그 기적이 소름을 끼치게 할까? 어떻게 군인 세계에서만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왜 수천 명을 한 곳에 모아서 무더기로 세례를 주어야 했는가? 정말 그것이 하느님 앞에서 한 성실한 행사인가 아니면 하나의 과시인가?

저들이 모두 참 진실한 결단을 한 크리스천이면 오죽 좋으랴, 그러나 세례를 주고받는 것이 크리스천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대중적인 종교일지 모르나 신앙의 결단은 어디까지나 단독적(單獨的)이다. 참 진리는 조용히 누룩처럼 퍼진다. 그리스도교는 대중운동은 아니다. 아무리 공동체이지만 각 사람을 하느님 앞에 엄숙히 세우는 일이다.

(1972. 1.)


List of Articles
우물가의 대화 (요한 4,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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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르 5, 1-15)
 
제2부 신, 당신은 누구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 8, 27)
모순과 은혜 (로마 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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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눈 (마르 5, 25-34)
이 분이 누구인가? (마르 4, 35-41)
 
제3부 인간, 너는 누구냐?
삶의 좌표 (빌립 2, 12-18)
바울의 실존 (빌립 3장)
소명에서 산다 (빌립 1, 18-26)
복음의 생명력 (마가 1, 15)
바리새 사람과 세리 (누가 18, 9-14)
어떤 아버지와 두 아들 (누가 15, 11-32)
부모와 자녀들 (누가 15, 11-32)
두 인간형 (누가 18, 9-14)
보물이 담긴 질그릇 (고후 4, 7-18)
사람으로서의 삶 (마태 6, 25-34)
 
제4부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
사건을 통한 구원 (고후 11, 23-33)
돌들이 소리지르기 전에 (누가 19, 37-41)
이 성전을 헐라 (요한 2, 13-22)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놈들 (마태 23, 16-26)
핍박을 받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마태 5, 11-12)
무대에서 춤추는 꼭두각시와 무대 뒤에 숨은 주인 (마태 6, 1-8)
 
제5부 나를 따르라
그리스도를 따라서(imitatio Christi) (고전 11, 1)
역경과 복음의 전진 (빌립 1, 12-17)
그리스도의 공동체 (로마 12, 1-8)
복권(復權) (마르 1, 40-41)
제가 무엇인데 감히 (출애 3, 1-12)
소명 (사도 7, 23-35)
하느님의 선교 (마르 1, 40-45)
예수의 낙인 (갈라 6, 11-17)
그리스도를 본받아 (빌립 2,1-11)
무위와 신앙 (마태 6, 24-34)
 
제6부 영원한 현재
하느님 나라 (마태 13, 44)
휴식에의 초대 (마가 6, 31)
영원한 현재 (계시 21, 6-8)
전야 (계시 22, 10-16)
오늘의 성탄 (누가 2, 1-7)
바울 사도의 기도
새 세계에의 초대 (누가 14, 16-24)
단 둘 (요한 8, 1-11)
결단은 수난의 각오다 (마르 3, 1-6)
성 윤리의 기준 (요한 8, 1-11)
갈릴리 교회는 왜 세워졌나? (마태 4, 12-25)
표지
 
재1부 이천 년 동안 십자가에서 못 내려오는 저 사나이
이천 년 동안 십자가에서 못 내려오는 저 사나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수난
베일에 싸인 십자가
화려한 십자가
부활은 십자가의 표면
부활의 뜻
부활절 새벽
부활절 아침에 드리는 기도
4월과 부활절
부활과 4ᆞ19
부활을 믿느냐?
부활절의 십자가
Advent
생명을 잉태한 여인
오늘의 성탄절
구유에 누운 아기
영원한 평화
그는 흥해야 하고
누가 내 이웃이냐!
예수는 정치범?
수난의 각오
종말사상의 힘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사건화하는 손
 
재2부 성서가 사람을 죽여?
성서가 사람을 죽여?
성서
두 가지 물음
성서 절대주의
성서를 찾는 마음과 눈
그리스도는 우주인인가
이미 늦었다
우상화
삶의 모순율
자유와 예속
무상과 영원
살인과 분노
죽음에 이르는 병
어린이 같지 않으면!
보물을 담은 질그릇
휴식에의 초대
편리라는 유혹
기술사회의 도전
전체주의와의 투쟁
현대의 욥
자다가 깰 때
 
제3부 축제
축제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
이 때는 잠에서 깰 때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
물질은 하느님의 것
봄의 찬가
고백
증인
의식은 죽음인가?
사랑의 저항
민주주의 제일장
거짓증거
양심
은어
해결해
탈우상화
반복
시간과 영원
휴머니즘의 한계
죄란 무엇인가?
정치적?
계룡산
'상도'(常道)
현존의 의미
야도(夜禱)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회개의 의미
고난의 의미
오 주여!
성문 밖으로
 
제4부 남은자의 윤리
종교적 창기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상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오늘의 그리스도론
정치신학
평등추구의 기독교사
기성교회의 꼴
그리스도교가 잘못된 날(?)
한국 교회의 암?
한국의 교회
종은 누구를 위해 우나!
수도자들의 수난사를 들으며
수도원을 찾아서
학문의 자유
'우리 신학' 추구
현대와 그리스도교
교회일치운동
교회 분화론
그리스도 교회의 진통
그리스도교적 교육
남은 자의 윤리
목사 후보생들에 준 말
젊은 목사에게
신학의 길
인간은 관념의 노예?
하느님의 동역자
역사의 핏줄을 만드는 마술사
그리스도교의 목표
어떻게 살 것인가
표지
 
표지
 
표지
 
표지
 
제1부 혁명과 예수
역사적 예수와 신앙상의 그리스도
무신론과 기독교 신앙
무신론자의 예수
자유와 예수
혁명과 예수
 
제2부 서구신학을 넘어서
신학한다는 일
성서와 대결 못하는 신학
기독교화와 서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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