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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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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교회의 진통

서구의 천년의 그리스도 왕국으로서 제도적 교회의 초석이 얼마나 튼튼해졌냐는 그 무엇보다도 우뚝우뚝 선 교회 건물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원형이 보존된 중세도시는 어디에 가보아도 행정부인 '시청'과 교회가 그 동리의 중심부 광장에 대단히, 또는 대각적(對角的) 위치에 세워졌는데 그것은 그 세계를 지배하는 첨병 역할을 한 구체적 모습이다. 둘의 양상은 다르나 서로 그 권위를 시위하여 그 호화함과 웅대함을 경쟁한다. 시민에게 대한 권한도 측면은 다르나 꼭 같았다. 그런 흔적이 지금도 남아서 결혼도 법의 허락과 교회의 허락이 병행해야 비로소 합법적이며, 정부는 교회의 일을 심부름하여 세금 징수 때 교회에 내는 헌금(세금)인 총세금액의 1/10에 해당되는 것을 거두어 신교 또는 가톨릭 본부에 전달한다. 그러나 이 양상은 급변해 가고 있다.

총인구의 98%의 그리스도교인(신교, 가톨릭을 합쳐서)을 자랑한 지난 1969년에서 6년 사이인 1974년까지 100만 명 이상의 신교 교도와 36만 명의 가톨릭 신도가 교회를 떠났다. 이것은 매년의 거주 신고할 때 종교 란에서 기입한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숫자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매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이다. 가령 1968년경에 신교에서 60,807명, 가톨릭에서 27,995명이 교회를 떠났는데, 1969년에는 약 배로 늘고, 1974년에는 신교 215,000명, 가톨릭은 70,000명이 교회를 떠났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교회를 공식적으로 떠난 사람 중에서 18세부터 30세까지가 39%를 차지하며, 30~40세까지가 27%를 차지했다는 통계인데, 이것은 40세 이하가 68%나 된다는 말이다. 18세까지는 부모의 동의가 있을 때만 대(對)교회 태도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참고 있어야 하며, 자주적으로 결정을 할 수 있는 18세에 교회를 떠나는 현상이 그처럼 급증하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일반적으로 말할 수 없으나 우선 경제사정과 관련이 있다. 가령 기업의 지배인 급으로 탈교회 그룹 중 연 6~10만 마르크 수입자 중 27%, 10~15만 이하가 20%, 15만 이상이 41%가 된다. 이것은 수입이 많을수록 교회를 떠나는 비율이 많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교회를 떠나는 노동자들은 탈교회 숫자의 27%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그들의 수입에서 교회 세를 내면 가계(家計)에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여간 이같은 탈교회 현상은 독일 교회의 위협이며, 무엇보다도 그만큼 교회의 경제적 수입의 축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예산상의 차질을 가져온다고 교회 책임자들은 걱정을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왜 20~40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느냐 하는 문제이다. 산업 사회에서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인가?

사회 또는 교회 측에서 조사한 여론에서 공통된 것은 탈교회한 저들 중 극소수를 빼고는 대부분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 안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저들은 종교(그리스도교)에서 떠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제도적 교회에서 떠났다는 사실이다. 그럼 왜 교회를 떠나나? 여론 조사에 의하면 교회가 이미 부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딴 면으로 해석하면 교회가 신도들이 바친 헌금으로 하는 일에 불신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독일 교회 자체는 막대한 재산을 갖고 있으며 은행, 기업체까지 운영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살만 찌게 하고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사명을 외면하는 데 대한 저항이 탈교회현상의 이유 중 하나이다. 20-40세인 세대는 사회 의식이 예민하다. 그런데 교회는 스스로 비대해져서 기동성을 잃고, 사회적 요청에 호응하지 못하며, 여전히 전통만 고수하는 나머지—전통 고수래야 결국 기득권 수호인데— 역사의 방향에서 지각생이 됐다. 이런 것이 저들에게 실망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와 병행해서 노동자들은 노동 현장의 실존적 문제에 대해서 교회의 설교나 활동은 거의 저들의 촉구에 호응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서독의 노동조합은 정부와 자본주와 더불어 제3의 세력이 될 만큼 강대하여 저들의 의식을 탈교회화하는 데 작용하고 있다.

요는 교회의 체질개선이 문제이다. 중세기 이후부터 고수한 체제와 부에 안주하여 좀처럼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 문제는 점점 커져서 민중의 원한의 대상까지 될 것이다. 말하자면 저들의 부가 저들을 강화시키는 것이며, 시대의 지각생이 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일부 선구자들이 교회의 체질개선을 위해서 개혁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싸우거나 아니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등에게 민중을 빼앗길 위험성을 눈앞에 보고 이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지키기 위해서 저들의 세계에 뛰어들어서 저들의 현실적 문제를 안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이 '산업 선교'라는 형식으로 나타나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그 의미와 방향을 찬동하는 수는 적으며, 교회 자체는 이런 추세에 못 이겨 약간의 관심을 표명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만 있을 수 없는 단계에 왔다. 교회의 건물은 웅장하나 출석률은 전 교인 수의 2-3%도 안 되며, 교회에 내는 세금도 계속 삭감되며, 탈교회 현상만이 아니라 교회 내부의 젊은 층의 압력도 대단하다. 한동안은 저들을 반교회-반그리스도교라고 단정해서 교회 자체가 더 경화증을 일으켰으나 지금에 와서는 교회의 근본적 체질개선이 없으면 교회의 존재성 문제에까지 위험을 느끼므로 결국 일대 혁신이 불가피한 처지에 있다. WCC의 슬로건이나 종교의 꾸준한 선각자적 투쟁은 결국 기성 교회의 체질을 돌 하나 돌 위에 겹쳐 놓이지 않게 다 무너뜨리고, 새로운 교회를 '사흘만에' 탄생케 하는 기적을 일으킬 것이냐 아니면 고스란히 사회와의 유기성을 잃고 군살처럼 붙어 있다가 그대로 역사에서 도태되어 버리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서 교회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기존의 교회는 없어지는 한이 있어도 그리스도인은 비록 양적으로는 줄어들지 몰라도 오히려 강력한 의식에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절대 세력으로 싸워 나갈 것이다.

이러한 서구 교회의 현상을 보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교회들의 자기 비대주의 현상에 경악을 금할 길이 없다. 교회는 자체를 살찌우면 둔탁해지며, 커지면 커질수록 그것을 지키는 데 노예가 되어 결국 무력해진다. 교회 자체의 체구는 최대한 작아야 한다. 그리고 '너'를 위해 기동적일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는 것은 개교회들의 예산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체 소비의 율만 늘어나고 있다는 현상에서 폭로되고 있다.

(1976. 2. 『현존』)


List of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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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르 5, 1-15)
 
제2부 신, 당신은 누구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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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눈 (마르 5, 25-34)
이 분이 누구인가? (마르 4, 35-41)
 
제3부 인간, 너는 누구냐?
삶의 좌표 (빌립 2, 12-18)
바울의 실존 (빌립 3장)
소명에서 산다 (빌립 1, 18-26)
복음의 생명력 (마가 1, 15)
바리새 사람과 세리 (누가 18, 9-14)
어떤 아버지와 두 아들 (누가 15, 11-32)
부모와 자녀들 (누가 15, 11-32)
두 인간형 (누가 18, 9-14)
보물이 담긴 질그릇 (고후 4, 7-18)
사람으로서의 삶 (마태 6, 25-34)
 
제4부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
사건을 통한 구원 (고후 11, 23-33)
돌들이 소리지르기 전에 (누가 19, 37-41)
이 성전을 헐라 (요한 2, 13-22)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놈들 (마태 23, 16-26)
핍박을 받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마태 5, 11-12)
무대에서 춤추는 꼭두각시와 무대 뒤에 숨은 주인 (마태 6, 1-8)
 
제5부 나를 따르라
그리스도를 따라서(imitatio Christi) (고전 11, 1)
역경과 복음의 전진 (빌립 1, 12-17)
그리스도의 공동체 (로마 12, 1-8)
복권(復權) (마르 1, 40-41)
제가 무엇인데 감히 (출애 3, 1-12)
소명 (사도 7, 23-35)
하느님의 선교 (마르 1, 40-45)
예수의 낙인 (갈라 6, 11-17)
그리스도를 본받아 (빌립 2,1-11)
무위와 신앙 (마태 6, 24-34)
 
제6부 영원한 현재
하느님 나라 (마태 13, 44)
휴식에의 초대 (마가 6, 31)
영원한 현재 (계시 21, 6-8)
전야 (계시 22, 10-16)
오늘의 성탄 (누가 2, 1-7)
바울 사도의 기도
새 세계에의 초대 (누가 14, 16-24)
단 둘 (요한 8, 1-11)
결단은 수난의 각오다 (마르 3, 1-6)
성 윤리의 기준 (요한 8, 1-11)
갈릴리 교회는 왜 세워졌나? (마태 4, 12-25)
표지
 
재1부 이천 년 동안 십자가에서 못 내려오는 저 사나이
이천 년 동안 십자가에서 못 내려오는 저 사나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수난
베일에 싸인 십자가
화려한 십자가
부활은 십자가의 표면
부활의 뜻
부활절 새벽
부활절 아침에 드리는 기도
4월과 부활절
부활과 4ᆞ19
부활을 믿느냐?
부활절의 십자가
Advent
생명을 잉태한 여인
오늘의 성탄절
구유에 누운 아기
영원한 평화
그는 흥해야 하고
누가 내 이웃이냐!
예수는 정치범?
수난의 각오
종말사상의 힘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사건화하는 손
 
재2부 성서가 사람을 죽여?
성서가 사람을 죽여?
성서
두 가지 물음
성서 절대주의
성서를 찾는 마음과 눈
그리스도는 우주인인가
이미 늦었다
우상화
삶의 모순율
자유와 예속
무상과 영원
살인과 분노
죽음에 이르는 병
어린이 같지 않으면!
보물을 담은 질그릇
휴식에의 초대
편리라는 유혹
기술사회의 도전
전체주의와의 투쟁
현대의 욥
자다가 깰 때
 
제3부 축제
축제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
이 때는 잠에서 깰 때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
물질은 하느님의 것
봄의 찬가
고백
증인
의식은 죽음인가?
사랑의 저항
민주주의 제일장
거짓증거
양심
은어
해결해
탈우상화
반복
시간과 영원
휴머니즘의 한계
죄란 무엇인가?
정치적?
계룡산
'상도'(常道)
현존의 의미
야도(夜禱)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회개의 의미
고난의 의미
오 주여!
성문 밖으로
 
제4부 남은자의 윤리
종교적 창기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상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오늘의 그리스도론
정치신학
평등추구의 기독교사
기성교회의 꼴
그리스도교가 잘못된 날(?)
한국 교회의 암?
한국의 교회
종은 누구를 위해 우나!
수도자들의 수난사를 들으며
수도원을 찾아서
학문의 자유
'우리 신학' 추구
현대와 그리스도교
교회일치운동
교회 분화론
그리스도 교회의 진통
그리스도교적 교육
남은 자의 윤리
목사 후보생들에 준 말
젊은 목사에게
신학의 길
인간은 관념의 노예?
하느님의 동역자
역사의 핏줄을 만드는 마술사
그리스도교의 목표
어떻게 살 것인가
표지
 
표지
 
표지
 
표지
 
제1부 혁명과 예수
역사적 예수와 신앙상의 그리스도
무신론과 기독교 신앙
무신론자의 예수
자유와 예수
혁명과 예수
 
제2부 서구신학을 넘어서
신학한다는 일
성서와 대결 못하는 신학
기독교화와 서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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