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은 분주하면서도 쓸쓸하다. 세월이 흐름을 느껴서일까? 자기의 일년의 결산이 적자이기 때문일까? 가르치는 사람에게 쓸쓸한 이유의 하나는 졸업생을 내 보내는 탓도 있다.
한신대 졸업생 30여 명이 관례대로 사은회를 베풀었다. 우선 그들의 스승의 노래는 매년 느끼는 대로 농담 같다. 노래의 뜻대로 저들이 스승의 은혜를 생각할까? 한 여학생이 노래로 감사를 표시하다 울어버린다. 나도 눈시울을 적실 뻔했다. 스승을 떠나는 것이 슬퍼 우는가 아니면 험한 세상을 향하는 것이 슬퍼 우는가? 하긴 저들의 표정은 모두 우울했다. 하기야 저들이 나갈 세계는 화려하지 않다. 저들은 '오시오, 모든 것이 다 준비됐소' 하는 환영의 장소로 향하는 게 아니라 뚫고 들어가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스승'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해 달란다. 매일 듣는 이야기인데, 또 들을 게 있을까? 나는 별할 말이 없다. 또 강의를 펼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나는 극히 구체적인 세 가지 부탁을 했다. ① 매일 성서를 읽으시오. 내 경험에 의하면 그것만큼 힘을 소생시키는 방법은 없더라. ② 설교는 꼭 교회에서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말을 하시오. 시사평론이나 수필 같은 이야기야 신문 잡지에서 더 잘하는 것이니. ③ 꼭 호신술 하나씩 배우시오. 그것은 정신 자세와도 깊은 관련이 있으나 몸의 훈련을 위해 필요하오. 진리는 머리나 말로만 증거하는 게 아니오. 역시 몸 전체로 증거해야 하오.
얼마나 단순하고 고색찬연한 마지막 부탁인가! 그러나 그림의 명수가 되어도 초보적 데생은 언제나 바른 자세로 반복해야 하고, 세계적 권투선수가 됐어도 기본적 훈련을 계속해야 되듯이 이 셋은 가장 초보적이면서 언제나 반복해야 할 기본이라고 생각됐기에 그랬다. 어쩌면 참 진리는 가장 평범한지 모른다.
(1971. 12. 『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