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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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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동역자
로마 8, 28

우리 개역 성서에는 로마서 8장 2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낡은 번역에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하게 된다"라고 했다. 이러한 번역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에게는 모든 일들이 비록 어려움이 있는 듯 하나 결과적으로 잘 된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참아서 기다리라"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처럼 이해하면 성서의 본 뜻과는 다른 감상적인 낙천주의가 되고 만다. 이상과 같이 생각하면 무엇보다도 바울로의 기본 사상과 모순된다.

첫째 바울로에게는 '모든 것' 즉 자연 그대로 이것이 잘 되어간다는 사상이 없다. 아니! 오히려 이 자연 자체나 또는 인간의 역사는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악화하는 길밖에 없다고 본다. 그는 바로 그 위에서 만물이 허무한 데 굴복해서 신음한다고까지 했다.

둘째로 바울로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모든 것이 잘 되어감으로써 일반적인 의미의 모든 것이 '행복한 끝'(happy end)에 도달한다고 생각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약함, 고난, 박해 그리고 마침내 순교 등이 그리스도인의 숙명인 양 말했으며, 그 자신도 언제나 그러한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새번역에는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 곧 하느님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함께 일하셔서 모든 것을 선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 번역은 바티칸 사본 등 다른 사본에 의한 새번역이며, 그 뜻이 비로소 바로 전달됐다. 낡은 번역에서는 '모든 것'이 주격으로 된 데 대해서 이 번역에는 '하느님'이 주격으로 됐다. 모든 것을 옳은 길로 이끄는 것은 결코 만물 자체는 아닌 것이다.

모든 것이 합동해서 선을 이룬다는 보장은 없다. 적어도 성서 안에는 그러한 사상은 없다. 선에로 이끄는 주격은 오직 하느님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의 주인이 하느님일 때 모든 것이 선에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성서의 기본 신앙이다.

다음에 낡은 번역에서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합동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새번역』에는 하느님이 그의 뜻대로 부른 자, 즉 그리스도인들과 합동해서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대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하느님이 이 모든 것, 즉 이 역사를 선한 목적에로 이끄는 데서 혜택만 입기 위해서 관조하는 자들이 아니다. 아니! 하느님은 이 목적을 위해서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동역자가 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놀랄 만한 사상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하느님은 이 역사의 주인이다. 그러나 그는 홀로 일하지 않고 인간과 더불어 인간을 통해서, 그 목적을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바울로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지닌다는 말을 했다. 어떻게 보면 그는 마치 스스로를 그리스도와 같은 위치에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 참뜻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종, 또는 하느님의 종이라고 했다. 이것도 역시 하느님께 부름받아서 그의 일에 참예한다는 뜻이다. 그는 종과 삯꾼을 엄격히 구별한다. 그럼으로써 보수에 의해서 고용된 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위대한 역사적 목적에 주체적으로 참예한다는 소명감을 나타낸다.

그에게는 자기의 행복, 자기 개인의 구원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의 완성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마침내 그리스도에게 그 자신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민족이 하느님의 뜻대로 구원받기를 바란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복음'을 자기중심적인 것으로 받아서 이기화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나 하느님마저도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이 세계의 역사의 방향, 인류의 현실과 미래에 대하여 등한시했으며 그러므로 사회적인 책임을 소홀히 해 왔다. 그처럼 우리가 '복음'을 남에게 전할 때도 "믿어서 천당 갑시다!"라는 말이 표현하듯이 이기적인 관심에 호소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무당 종교와 같은 원시 종교나 타락된 다른 종교들이 주는 약속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인상을 주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안에 들어와서도 자기중심적인 낡은 소원에서 뱅뱅 돌도록 만들었다. 물론 성서에서 개인 개인의 구원이 소홀히 취급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역사적 목적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과제는 바로 이 하느님의 역사의 역군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참 개인의 구원도 이 영광스러운 대업의 반열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면 구원받게 되나요?"라고 묻는다. 그러나 그 대업에 참예하면 그 결과로 구원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참여하는 일 자체가 벌써 구원인 것이다.

(1970. 『새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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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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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2부 성서가 사람을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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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예속
무상과 영원
살인과 분노
죽음에 이르는 병
어린이 같지 않으면!
보물을 담은 질그릇
휴식에의 초대
편리라는 유혹
기술사회의 도전
전체주의와의 투쟁
현대의 욥
자다가 깰 때
 
제3부 축제
축제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
이 때는 잠에서 깰 때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
물질은 하느님의 것
봄의 찬가
고백
증인
의식은 죽음인가?
사랑의 저항
민주주의 제일장
거짓증거
양심
은어
해결해
탈우상화
반복
시간과 영원
휴머니즘의 한계
죄란 무엇인가?
정치적?
계룡산
'상도'(常道)
현존의 의미
야도(夜禱)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회개의 의미
고난의 의미
오 주여!
성문 밖으로
 
제4부 남은자의 윤리
종교적 창기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상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오늘의 그리스도론
정치신학
평등추구의 기독교사
기성교회의 꼴
그리스도교가 잘못된 날(?)
한국 교회의 암?
한국의 교회
종은 누구를 위해 우나!
수도자들의 수난사를 들으며
수도원을 찾아서
학문의 자유
'우리 신학' 추구
현대와 그리스도교
교회일치운동
교회 분화론
그리스도 교회의 진통
그리스도교적 교육
남은 자의 윤리
목사 후보생들에 준 말
젊은 목사에게
신학의 길
인간은 관념의 노예?
하느님의 동역자
역사의 핏줄을 만드는 마술사
그리스도교의 목표
어떻게 살 것인가
표지
 
표지
 
표지
 
표지
 
제1부 혁명과 예수
역사적 예수와 신앙상의 그리스도
무신론과 기독교 신앙
무신론자의 예수
자유와 예수
혁명과 예수
 
제2부 서구신학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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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대결 못하는 신학
기독교화와 서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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