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집

전집은 OCR 스캔 잡업으로 진행되어 오탈자가 있습니다.
오탈자를 발견하면 다음과 같이 등록해 주시면 관리자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수정 요청을 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2. 본문을 읽는 중에 오탈자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앞뒤 텍스트와 함께 마우스로 선택합니다.
3. 그 상태에서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여 나타나는 창에서 수정 후 [수정요청]을 클릭합니다.
4. 각주의 경우에는 각주 번호를 마우스오버하여 나타난 창을 클릭하면 수정요청 창이 열립니다.

※ 컴퓨터 브라우저에서만 가능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한 친구의 어머니는 83세인데 아직 팔팔하기로 이름났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이가 "나는 거울을 들여다 볼 때나 내가 어느새 할머니가 되었구나하지, 보통 때는 새파란 젊은이로 알고 산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거울이란 나쁜 것이구나 생각했다. 실은 나도 구라파 10여 년 생활에서 내가 외국인, 그것도 황색인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이질성"을 비추어 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역시 상가에서 필요에 따라 붙인 거울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하도 비통하나 힘의 한계를 느껴 우울하던 저녁, 동료들이 몽땅 머리를 깎아버렸다. 한 친구부터 들어앉아 불러온 이발사에게 머리를 댔는데, 염색한 머리인지라 기계가 가는데 따라 하얀 도랑이 지며 머리칼이 땅에 제법 둔탁한 소리로 툭툭 떨어질 때 어딘지 섬뜩해졌다. 그러기로 제의한 것이 나 자신이었기 때문에 후회라도 하는 날이면 원망을 들을 게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런데 그중에 한 동료가 다 깎고 체경(體鏡)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이더니 자기 어릴 때 이름을 연거푸 불러댄다. 머리를 깎으니 소년 시절의 자기 모습이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만큼 미숙해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의 머리가 그를 위장한 셈이다. 이 거울이 본래의 자신을 알려 준 것이다.

옥에 들어갔던 한 친구의 이야기다. 옥에 들어가자 자신과 밀착 되어 체취가 나던 "신사 옷"을 벗어 주고 죄수들의 옷을 갈아입었을 때, 그리고 가결 후 머리를 빡빡 깎아 주고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봤을 때, 그 초라함에 놀라는 한편 "야, 요게 내 전부구나. 그런데 어떤 권위 따위를 풍기게 한 것은 양복, 머리카락으로 꾸민 스타일, 안경 등이 만든 존엄성이었구나" 하고 홀로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이 그에게 문제를 던진 것이 아니란다. 그는 동시에 그 감옥에만도 1만 명을 육박하는 그런 수의(囚衣)의 죄수들이 있는데, 그런 이들을 과거에 얼마나 멸시했으며 감옥 밖에서도 인간 대우를 역시 옷을 위시한 그 풍채에서 판단한 듯한 자기가 폭로된 것이 결국 그를 부끄럽게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거울은 공죄(功罪)가 병행한다. 외양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거울은 자기에 대한 실망을 하게도 하지만, 가상과 실상의 폭을 좁혀주는 자신을 자신대로 되찾는 공로도 있으며, 한걸음 나아가서 자(自)의 여인처럼 거울을 맴도는 것으로 나날을 소모하는 사람도 있는 대신 남을 외양으로 규정해 버린 잘못을 뉘우치게도 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신경쓰는 것은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나, 남에게 주는 내 이미지에 대한 관심의 일부다.

나는 외모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실 감옥에서 거울을 거의 볼 수 없었던 10개월에 아무런 불편을 못 느꼈는데, 그것은 내가 평소에 별로 거울에 관심하지 않은 탓이리라. 그래서인지 내 머리는 언제나 방금 자다가 일어난 사람 머리처럼 부스스하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바로 내 머리가 화제로 오고 가는 와중에 "그게 다 자기가 선택한 멋이지, 그저 내버려둔 게 아니야"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후 자기 성찰을 해 보았더니 과연 나도 내 머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는 축이 아니었다. 아침에 세수하고 빗질은 별로 안하지만 예외없이 머리를 내 취미에 맞도록 매만지는 것을 의식했다. 그럼 그건 왜? 역시 남의 눈에 "나다움"을 보이고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단인 게 틀림없다.

가만히 자성하면 나도 남의 눈에 비치는, 나에 대한 연민성에 있어서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에서 초연하려고 했다. 남의 눈에 비친 나는 나에 대한 남의 평가다. "그 사람 멋이 있다", "못생겼다" 따위의 평가는 거울을 향한 민감성에 포함되는 것이고,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이 질이 나쁘다거나 속물이라거나 위선자라거나 하는 따위의 인간성과 관련된 평가다.

도대체 사람이란 언제나 무엇을 인식할 때 구상화된다. 가령 처음 만나서 불과 몇 가지밖에 못 보고 느꼈는데 그런 몇 가지 요소로 그 사람에 대해서 어떤 상을 만든다. 독어에 Einbildung은 상상이란 뜻으로서 실상과는 거리가 있으나 하여간 상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우리에게 첫인상이니 무어니 하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하찮은 근거에 세운 상을 깨는 데에 의외로 많은 시간과 그와 다른 실증이 필요하다. 가령 목소리, 눈매, 말의 억양, 또는 걸음걸이 따위 정도밖에 못 기억하는데, 그것에 그의 고향 또는 출신학교, 전공 정도쯤까지 더 알게 되었다면 그런 것을 종합해서 그의 인간성을 판정해버리는 경향 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남의 눈에 비치는 것을 조심하게 되는 데, 그 남의 눈이란 의외로 피상적인 것을 간파하지 못하면, 거울을 자주 마주하는 것 같은 외적 매너에 부심하여 소갈머리 없는 외식(外飾)에만 매달리는 자기가 된다. 그따위의 일반 평가에 부심하다가는 제 볼일 볼 새 없다. 그따위로 평가하는 눈들은 멸시해버려도 된다. 오히려 그런 평가를 재빨리 평가해버려서 그 와중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실리적이다. 그런 평가들은 과녁을 찾지도 못했고, 나를 해치거나 또 돕는대야 대수로운 것이 아닌 것이다.

일류나 최고급품 따위만 찾는 버릇은 대부분 이따위 것에 걸린 병인 것이다. 나는 이 같은 병이 걸렸던 20대에 키에르케고르에 의해 해방을 맞았다. 고독한 싸움을 계속하던 그에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콜살(Korsar) 사건"이다. 이것은 그때 코펜하겐에서 발간되던 주간신문으로 풍자와 악의로 남을 괴롭히는 것으로 한몫 보는 악덕 신문이었다. 그런데 이 신문이 어떤 계기로 키에르케고르를 비난하는 데 열을 올려서 거의 매주 키에르케고르의 희화(戱畵)를 게재하고 그의 저서와 내적 생활을 조소하고 폭로하였다.

키에르케고르는 분연히 대항했다.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는 대중은 그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관희적(觀戱的) 흥미에 들떠서 양쪽을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그는 사회라는 것에 눈을 떴으나 곧 부정적인 결론과 더불어 눈을 다시 자신에게로 돌려버렸다. 그때 쓴 글이 "현대의 비판"인데, 그 논술의 초점은 바로 그 대중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무엇이나 새것 또는 싼 것을 그대로 소화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비창조적인 것을 대중성이라고 해부했는데, 결론은 "대중은 허위이다"라는 것이다. 그는 저들은 그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호소마저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이해에 기대할 수 없는 무리라는 것이다.

나는 대중성에 이러한 일면이 있음을 잘 안다. 그러므로 대중의 눈에 비친 나에 고민하는 정도의 나에 해당하는 범위에서는 정곡을 찌른 것이라고 본다. 하여간 이러한 키에르케고르의 과감한 결론으로 '남'이야 어떻게 보든 내 소신과 양심에 족하면 된다는 자리에 자신을 정착시키는 데는 큰 무기가 된 셈이다. 그런 결론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나"라는 우리의 속담으로 표현된다고 생각된다. 그럼 정말 나 자신에 있어서 부끄럽지 않으면 되는가? 내 양심에 떳떳하면 되는가? 다른 말로 하면 "남이야 어쩌든"이란 말을 할 수 있는가?

내 양심상 떳떳하다고 해서 양심을 최후의 교두보처럼 내세우나 그것은 상대적이다. 양심이란 "더불어 안다"라는 구라파 고어(古語)의 원뜻에서 보듯 어떤 것과 자신을 관련시키느냐에 따라서 이변하는 것이다. 기존 질서 또는 지배하는 가치관을 전제로 할 때, 나는 양심상 부끄러운 것이 없다는 경우, 나는 법이나 현존 윤리가 인정하는 것을 침해하지 않았으며 의무를 완수했다는 뜻이 되리라. 그러나 기존 질서 자체가 바로 비인간적이고 오늘의 가치관이 집권자의 불의한 욕구를 위한 것이라는 것이 확실한 경우, 오히려 위에서 말하는 양심에 안주하는 것은 실은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할 수 없는 비겁함을 정당화하는 악덕을 담당하게 된다.

도둑질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으로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술 취한 사람이 자동차 핸들을 잡고 거리를 질주하면서 사람을 상하게 하는 현장에서, 난 저렇지 않으니 부끄러울 게 없다고 하는 것으로 자부할 수 있을까? 단순히 힘이 없다는 이유로 인권이 유린되고 자본주의 횡포 앞에 제 일한 대가를 못 받고 배를 꿇고 있는 현장에서, 나는 그런 기업주가 아니니 양심에 부담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 전통의 사고방식을 알기 위해 유교의 사서오경을 내 나름대로 읽으며 풀이하는 데 열중한 때가 있었다. 공맹(孔孟)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모든 행동의 표본으로 들어왔으므로 그분들은 한국의 선조로만 알 정도로 친근했는데도 막상 어떤 의식 아래서 읽어가니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정치 구상이 오늘에 사는 우리에게 맞을 리 없고 언제나 복고적 체제주의가 마땅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의와 타협할 수 없다는 고고한 그의 자세에는 역시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나물밥을 먹고 맹물을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를 삼는 가난 속에서도 가히 즐거울 수 있다고 하면서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述而)]이라고 했는데, 이 후반의 말을 풀이하는 데는 좀 고심했다. 그대로 읽으면 "불의한 방법으로 부하고 귀하게 되는 것은 내게는 뜬구름과 같다"이다. 이대로 읽으면 부자연스럽다. 불의 부정으로 얻은 부귀는 절대 타기한다거나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허무한 것이라는 정도라면 그저 그런 욕심은 없다는 정도다. 이런 정도로는 은둔객 "도사"(道士)는 될지언정 정(政)을 논할 자격은 없다.

그래서 이 발언을 그가 선 역사적 현실에서 한 것이라는 가정으로 풀이해 보았다. 그는 불의와 부정이 횡포하는 풍토에서 정(政)은 정(正)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해직되어 끼니도 어려운 상태에 빠졌으나 그래도 결코 그런 자기 상태 때문에 실의에 빠져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자리에서 불의한 세력과 타협하고 그것의 손발이 되어 부(富) 할 뿐만 아니라, 높은 관직에 앉아 귀(貴)로 사하는 자들에게 "네가 반석 위에 앉은 줄 아느냐, 아니, 구름을 타고 있는 거야"라고 경고한 것이라고 보면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이와 비슷한 또 한 대목이 있다. "독신호학(篤信好學) 하고 옳은 일을 죽음으로 지키고"라는 데까지는 성현 다운 말씀인데, 그다음에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난(亂) 한 나라에서는 살지 말고 세상에 참이 있으면 나타나 활동하고 참이 없으면 은둔해서 살라"라는 대목에 와서는 저항을 느꼈다. 이거야 시세를 타고 살자는 태도지 혁명 가는 물론 개혁가의 자세도 못 된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상 이 잘 되면 나타날 것도 없고 세상이 잘못 가면 정말 그의 말대로 자기를 죽여 인(仁)을 이루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그다음 구절의 해석에 따라서는 이런 거부반응을 뒤엎을 수 있다. 그것은 "나라에 도(道)가 있는데 가난하고 천하면 부끄러운 일이요, 나라에 도가 없는데 부하고 귀하면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대목이다. 이것은 해석하기에 따라 문제가 있지만 하여간 부끄러움의 차원이 다르다는 데 주목할 바가 있다. 나라가 불의한 정권에 의해 썩어빠졌는데 그런 데서 치부했고 귀한 자리에 있다면 바로 그 권력과 야합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니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고한 입장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 아니 마음이 평안할 수 있는가? 내가 불의에 타협하지 않기 때문—소극적 항거—에 결국 "탈락"되어 자진해서 백이숙제(伯夷叔齊)처럼 더러운 천하를 하직하는 것을 절개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도 관념의 희롱이 아닐까? 아니, 그렇게 해서 마음 편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백이숙제도 그들이 피해서 캐먹던 산나물은 주(周) 나라의 것이 아니었던가하는 비판을 들었다. 눈감고 아웅하는 것이지 뭔가. 불의와 결탁해서 부귀를 누릴 수 있는 풍토라면 벌써 잘못된 세상이요, 그따위 놈들이 지배층에 속한 사회라면 가난하고 천한 사람은 그만큼 무수할 것이고, 그중에는 특히 불의와 타협할 수 없는 양심이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저것들처럼 말을 재빨리 갈아타는 재주도, 그렇다고 자신들을 억누르는 힘에 대결할 힘이 없는 약자가 많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현장에서 몸을 피해자기나 깨끗하면 된다는 자세는 양심을 들먹일 자격이 없다. 그는 불의 부정한 놈들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게 한 책임을 적어도 일부 져야 할 것이며, 그런 세상과 맞서 싸우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더욱이 정(政)을 말하고 민족을 논하면서 그따위 은둔자적 자세를 합리화하는 일은 결코 병행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유교적 폐습인지 모른다. 도대체 수신제가평천하(修身齊家平天下)라고 했는데 이 셋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엄연한 단계적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벌써 비실존적이다. 너와의 관계, 세계와의 연대의식 또는 책임의식을 뺀 수신이란 어떻게 가능하며, 반면에 자기를 조종하고 극복하는 힘은 어느 단계에 가면 완성된다는 사고가 틀린 것이다.

수신이란 삶이 계속될 때까지 지속된다는 것이다. 나는 공자가 15세에 학문에 뜻을 정하고, 30세에 확고히 서고, 40세에 더 이상 어떤 유혹에 동하지 않고, 50세에 천명(天命)을 알고 … 하는 짧은 연대적 자서전을 글자 그대로 믿다가 콤플렉스만 들었다.

그렇게 사다리 같은 삶은 없다. 한단 한단 처리하는 삶, 학교 학년제 같은 삶은 없더라. 15세에 뜻을 세우나 50세에서도 무너질 수 있고 그래서 쓰러질 수도 있으나 다시 세울 수 있고, 40세가 아니라 70세에도 언제나 유혹에 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도전이 있고, 그래서 쉬지 않는 싸움이 있고, 그래서 "이만하면 되었다"라는 순간이 오는 법이 없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믿으면 그것은 자기 기만이며, 삶을 학년제 학교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도사연(道士然) 한다는 게 바로 그러한 착각에서 온 것이라고 본다.

"삶에는 연습이 없다"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30대를 넘어서부터다. 학생 과정을 거친 사람에게 유혹 받기 쉬운 것은 삶의 어느 토막까지를 연습하는 기간으로 상정하는 버릇이다. 학생 시절은 삶의 연습 기간이니 사회에서도 관용하고 자신도 언제나 수정하고 반복할 수 있는 연습 기간으로 자기 행위에 대해서 관대하기 쉽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 어느 순간의 것도 연습으로 내 삶을 카운트하는 데서 제외되는 것은 없고, 모두가 바로 나의 삶의현실이었고, 그 순간순간이 모두 점철되어 오늘의 나를 이루었다. 남이 그렇게 규정한다는 사실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삶의 지각생이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바로 역사 현실이라는 것과 직결된 탓이다.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 말을 그 어떤 잘못이 막중해서 오래오래 기억되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쉬우나 그 뜻은 좀더 깊은 데 있는 것으로 안다. "역사의 죄인"이란 말은 "역사 앞에 죄인"이라는 뜻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런 경우 역사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의 과정이 아니라 어떤 실체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역사는 심판이라는 말을 쓴다. 이런 경우 역사를 어떤 정적(靜的)인 원리 따위로 보지 않고 어떤 다이나믹한 의지로 파악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역사철학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다. 신념처럼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역사는 결코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신념은 나의 삶에 대한 파악과 직결된다. 삶에 연습이 없듯이 역사에는 반복이 없으므로 그것은 언제나 일회적 사건으로 매듭지어진 것으로 점철되어 선을 이루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현실이라고 할 때 그것은 언제나 유일회성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지금 여기서 되는 일은 특수하며 그때에 주어진 일을 그 시점에서 어떻게 처리하느냐에서 이미 결정이 나는 것으로, 아무리 잘못을 후회해도 다시 만회할 기회는 오지 않는다.

L교수가 식민지 시대의 잔재가 아직고 그대로 위세를 부린다고 한탄하는 글에서 오늘날 일본이 우리를 그처럼 깔볼 뿐 아니라 내적 정신자세나 경제사회 구조가 일제 식민지의 연장 이상이 아니라고 진단, 그 가장 중요한 이유로서 해방 후 반민족행위처벌법과 그 의지를 집행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바로 그 때의 역사 현실에서 막중한 과제를 담당했는데, 이유야 여하간에 그것을 이행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처럼 강조하고 있는데, 바로 그런 것이 역사적 시점이며 그런 것이 역사적 사건의 일회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로 그 세대의 주역들이 이유야 무엇이든지 이 역사적 과업을 이행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역사의 죄인이며, 역사는 그들을 심판했으며, 그 여파는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보는 경우 역사라는 거울 앞에 당시의 친일 분자들의 추한 모습이 추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처단하지 못한 자들의 죄가 오히려 더 무거우며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방 직후 민족 무대에 선 사람들은 역사 앞에서, 나는 친일파가 아니었으니 깨끗하다고 입방아를 찧을 권리가 없다는 말이다.

그럼 오늘은 어떤 역사적 시점에서 있는가? 해방 직후의(자유당 당시) 역사의 중심 과제는 역시 민족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잃었던 땅, 잃었던 주권으로 흩어지고 흐려진 민족의 것을 되찾기 위해 자명적으로 된 과제였다. 그런데 그 과제가 이행되지 않았기에 오늘날도 그 문제가 그대로 있으며, 그것은 우리 앞에 거울이 되어 우리의 정체를 폭로하며 심판한다. 그것은 분단의 비극사를 거쳐서 통일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앞에 놓고 우리를 힐책한다.

그러나 이 역사적 현실이 제시하는 지표는 "민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이 '민족의 주체'로 향하고 있다. 그것은 이 민족사를 짊어지고 다음의 길을 갈 주인은 바로 민중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오늘의 역사의 실체는 바로 민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구체적으로는 이 역사의 주역이 되어야 할 민중과 더불어 그 앞에서 있다.

우리의 근대사(왜 근대사뿐이랴만)는 민족은 있어도 민중은 없었다. 이 말은 집권자들이 민족이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민족의 실체인 민중을 탄압하고 고혈을 빤 역사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결국 민족도 없고 집권자만이 있어왔다. 민족의 실체인 민중은 오늘날에 와서도 민족적 중대 문제를 결정하는 마당에는 접근할 권리가 없다. 역사적 현실은 우리의 민중만이 우리 민족 문제의 운명을 떠안고 그래야 한다고 했는데, 저들은 주역은 고사하고 들어봐도 안 되도록 소외되고 있다.

이 마당에 역사는 무엇이라고 할까?

우리는 "이 역사적 시점의 우리 민중은 무능하고 힘이 없었다." 또는 "나는 이 민중을 억압했거나 착취한 일이 없다." 따위의 말로써 이 역사의 심판에서 제외되리라고 생각하는가?

가령 악덕 기업주에 당하는 노동자들이 참다못하여 궐기하나 힘의 한계에 부딪혀 앓고 있는 것을 보는 오늘에서 사는 사람이, 그 기업주의 악덕이나 규정하는 것으로 제 할 일 다했다고 하거나, 난 그중에 어느 누구도 아니니 그것과 무관하다고 빌라도처럼 자신의 깨끗함을 입증하기 위해 대야에 물을 떠서 손을 씻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이제 그도 역사의 죄인이다. 그가 양심을 운운하려면 그런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한 자기를 부끄러워할 줄은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그런데 이 주제 자체가 문제다. 엄밀히 말해서 이런 질문은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줄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이 너무 벅차서 도피하려는 속셈이 언제나 작용한다. 사르트르에게 한 청년이, 혼자 기동도 못하는 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하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을 때,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그 청년은 이미 갈 길을 정했으나(그것은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지 않는 방향으로) 어쩐지 마음이 꺼림직해서 사르트르에게 자신이 결정한 일의 핑계를 정당화할 단서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 그것이 도학적 질문이 아닌 한 언제나 구체적 역사 현실에서의 결단을 위한 것인데, 그것은 대체로 자명하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주제 앞에서 거울 앞에 세운 나, 남의 눈에 비친 나, 양심 앞에 세워본 나, 그리고 역사 앞에 세운 나, 그 역사를 구체화해서 우리의 문제로서 민족사를 보고 결국 오늘에 와서는 민중 앞에 세운 나로서 대답은 자명하게 될 것이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이것은 단적으로 말하면, 되도록 자기 도피의 길을 막아보라는 말이 될 것이다. 자신에게 진실하면 대답은 자명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뜻을 총괄해서 두 마디로 요약하고 나의 할 일을 묻는다. 그것은 "역사 앞에 민중(이웃)과 더불어"다. 역사라고 쓴 말은 내가 믿는 "하나님"의 대명사이다. 그 이름으로 나를 비추어보고 판단하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역사적 현실에서 나에게 명령하는 바를 회피할 도피구는 없다는 신앙을 총체적으로 나타낸다. 민중도 바로 "역사"의 실체다. 그러므로 민심은 나를 비추는 가장 구체적인 거울일 것이다. "민중과 더불어"는 그런 뜻에서 "역사 앞에"와 동의어일 수 있으나, "앞에서"와 "더불어"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주객의 어느 한 입장에 서서는 안 되고 역사적 연대성과 책임성에서 "나"라는 달팽이집 같은 것에 칩거해버릴 수 없고 오직 행동만이 있는 숙명성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수록)


List of Articles
우물가의 대화 (요한 4, 3-42)
구걸하는 초월자 (요한 19, 28)
심는 자 와 거두는 자 (요한 4, 31-38)
나를 먹어라 (요한 6, 34-40)
약자 예수 (고후 13, 4)
남은 고난 (골로 1, 24)
제물 (히브 11, 17-19)
죽어야 산다? (마태 16, 24-25)
십자가의 의미 (마르 15, 27-39)
어머니 (마르 7, 24-30)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르 5, 1-15)
 
제2부 신, 당신은 누구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 8, 27)
모순과 은혜 (로마 9, 19-24)
신의 주권만이 (누가 11, 1-4)
이 사람을 보라 (요한 19, 6)
하느님의 눈 (마태 6, 2-4)
앞선 자와 뒷선 자 (마가 10, 31)
예수의 눈 (마르 5, 25-34)
이 분이 누구인가? (마르 4, 35-41)
 
제3부 인간, 너는 누구냐?
삶의 좌표 (빌립 2, 12-18)
바울의 실존 (빌립 3장)
소명에서 산다 (빌립 1, 18-26)
복음의 생명력 (마가 1, 15)
바리새 사람과 세리 (누가 18, 9-14)
어떤 아버지와 두 아들 (누가 15, 11-32)
부모와 자녀들 (누가 15, 11-32)
두 인간형 (누가 18, 9-14)
보물이 담긴 질그릇 (고후 4, 7-18)
사람으로서의 삶 (마태 6, 25-34)
 
제4부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
사건을 통한 구원 (고후 11, 23-33)
돌들이 소리지르기 전에 (누가 19, 37-41)
이 성전을 헐라 (요한 2, 13-22)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놈들 (마태 23, 16-26)
핍박을 받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마태 5, 11-12)
무대에서 춤추는 꼭두각시와 무대 뒤에 숨은 주인 (마태 6, 1-8)
 
제5부 나를 따르라
그리스도를 따라서(imitatio Christi) (고전 11, 1)
역경과 복음의 전진 (빌립 1, 12-17)
그리스도의 공동체 (로마 12, 1-8)
복권(復權) (마르 1, 40-41)
제가 무엇인데 감히 (출애 3, 1-12)
소명 (사도 7, 23-35)
하느님의 선교 (마르 1, 40-45)
예수의 낙인 (갈라 6, 11-17)
그리스도를 본받아 (빌립 2,1-11)
무위와 신앙 (마태 6, 24-34)
 
제6부 영원한 현재
하느님 나라 (마태 13, 44)
휴식에의 초대 (마가 6, 31)
영원한 현재 (계시 21, 6-8)
전야 (계시 22, 10-16)
오늘의 성탄 (누가 2, 1-7)
바울 사도의 기도
새 세계에의 초대 (누가 14, 16-24)
단 둘 (요한 8, 1-11)
결단은 수난의 각오다 (마르 3, 1-6)
성 윤리의 기준 (요한 8, 1-11)
갈릴리 교회는 왜 세워졌나? (마태 4, 12-25)
표지
 
재1부 이천 년 동안 십자가에서 못 내려오는 저 사나이
이천 년 동안 십자가에서 못 내려오는 저 사나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수난
베일에 싸인 십자가
화려한 십자가
부활은 십자가의 표면
부활의 뜻
부활절 새벽
부활절 아침에 드리는 기도
4월과 부활절
부활과 4ᆞ19
부활을 믿느냐?
부활절의 십자가
Advent
생명을 잉태한 여인
오늘의 성탄절
구유에 누운 아기
영원한 평화
그는 흥해야 하고
누가 내 이웃이냐!
예수는 정치범?
수난의 각오
종말사상의 힘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사건화하는 손
 
재2부 성서가 사람을 죽여?
성서가 사람을 죽여?
성서
두 가지 물음
성서 절대주의
성서를 찾는 마음과 눈
그리스도는 우주인인가
이미 늦었다
우상화
삶의 모순율
자유와 예속
무상과 영원
살인과 분노
죽음에 이르는 병
어린이 같지 않으면!
보물을 담은 질그릇
휴식에의 초대
편리라는 유혹
기술사회의 도전
전체주의와의 투쟁
현대의 욥
자다가 깰 때
 
제3부 축제
축제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
이 때는 잠에서 깰 때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
물질은 하느님의 것
봄의 찬가
고백
증인
의식은 죽음인가?
사랑의 저항
민주주의 제일장
거짓증거
양심
은어
해결해
탈우상화
반복
시간과 영원
휴머니즘의 한계
죄란 무엇인가?
정치적?
계룡산
'상도'(常道)
현존의 의미
야도(夜禱)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회개의 의미
고난의 의미
오 주여!
성문 밖으로
 
제4부 남은자의 윤리
종교적 창기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상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오늘의 그리스도론
정치신학
평등추구의 기독교사
기성교회의 꼴
그리스도교가 잘못된 날(?)
한국 교회의 암?
한국의 교회
종은 누구를 위해 우나!
수도자들의 수난사를 들으며
수도원을 찾아서
학문의 자유
'우리 신학' 추구
현대와 그리스도교
교회일치운동
교회 분화론
그리스도 교회의 진통
그리스도교적 교육
남은 자의 윤리
목사 후보생들에 준 말
젊은 목사에게
신학의 길
인간은 관념의 노예?
하느님의 동역자
역사의 핏줄을 만드는 마술사
그리스도교의 목표
어떻게 살 것인가
표지
 
표지
 
표지
 
표지
 
제1부 혁명과 예수
역사적 예수와 신앙상의 그리스도
무신론과 기독교 신앙
무신론자의 예수
자유와 예수
혁명과 예수
 
제2부 서구신학을 넘어서
신학한다는 일
성서와 대결 못하는 신학
기독교화와 서구화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위로
텍스트를 수정한 후 아래 [수정요청] 버튼을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