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구약의 야훼는 신으로 성격화할 수 있습니다. 구약은 본래 '엑소더스'에서 시작이 됩니다. 엑소더스는 바로 '해방의 신'으로서의 야훼를 말합니다. 그는 강력한 지배자인 에집트를 치고 그 밑에서 신음하는 약자인 이스라엘을 해방합니다. 이스라엘은 엑소더스에서 비로소 집단적으로 신을 만납니다.
최근 구약학 연구에서는 '히브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히브리'가 한 종족명사가 아니고 계층개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정복설'에 대해서 가나안의 '농민봉기설'을 내세웁니다(Gottwald). 그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고대 이스라엘이 시리아, 팔레스틴에서 히브리가 군주(君主)들에 항거하여 자율적 공동체로서 종족동맹을 맺은 데서 시작됐다는 사실은 정설인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에서 야훼신앙이 재평가되어야 합니다. 즉 야훼신앙은 반군주혁명의 동력인 것입니다. 따라서 '야훼만'(Mono-Yawhism)의 신앙은 다른 종교와의 대결이라는 시각에서 볼 것이 아니라 신격화된 인간의 지배에 대한 절대부정의 선언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야훼신은 처음부터 '히브리', 즉 민중의 신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는 야훼로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것은 동양이나 헬레니즘 세계관에선 생각할 수 없는 신입니다. 탈출시키는 신, 히브리 편에 선 신. 그런 신은 편파적이기 때문에 보편성의 신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신이 아니며, 신이라고 해도 지극히 저속한 신이지요. 이 신은 '갈등'입니다. 왜 에집트는 누르고 히브리 편에 섭니까? 이것 자체가 벌써 모순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결이 아니에요. 탈출은 히브리에게는 해방이지만 에집트로서는 상실이며 패배입니다. 보편적인 신관에서 보면 네게도 좋고 내게도 좋은 신이 되어야 하는데 야훼신은 그런 신이 아닙니다. 해방은 기존질서를 전제로 한 '해답'은 아닙니다. 해방은 그대로 기존질서를 파괴하는 사건입니다. 해답이 아니라는 얘기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해방시키는 것이 세계문제의 해결이 될 수 있을까요?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만을 사랑했다는 것은 보편적인 신관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신은 세계에 대한, 코스모스(cosmos, 우주)에 대한 질문의 해답이 될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