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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 |
한국 민족 운동과 통일
(한국신학연구소)
815와 해방

1945년 8월 15일, 나는 우리 민족의 해방을 만주땅 간도에서 맞았다. 그것은 흡사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와도 같은 글자 그대로 뜻밖의 선물이었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마치 영원한 성벽처럼 생각되었는데, 하루 아침에 그처럼 폭삭 거꾸러져 무릎을 꿇다니! 그날이 너무도 갑자기 왔기에, 그날이 정말 오리라는 생각을 못한 우리 민족 대다수는 그날을 맞이할 아무런 준비도 없었으므로 독립 민족의 자세를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만주와 우리 땅 이북은 소련군이 점령했다. 저들이 공산군이라는 생각보다 우리를 해방시킨 연합군의 하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우리는 그들을 환영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일본이 강요하는 학병을 거부하고 몇 해를 죄수처럼 칩거하여 살던 나는 민족의 해방에 앞서 실존적 해방의 감격에 떤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우라 소비에트 졸다르'(소련군 만세!)

그 귀한 광목을 아까운 줄 모르고 필째로 편 위에 붓으로 크게 쓴 플래카드를 만들고 내가 숨어살던 동리 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하되 여인들에게는 깊이 간직했던 채색옷을 입도록 하고, 이 동리 뒤에 가로지르는 대로에 나가서 저 '해방군'을 환영하도록 했던 것이다. 마침내 지프를 선두로 '메이드 인 유 에스 에이'의 군 트럭에 실린 저들이 왔다. 우라! 세상 떴던 부모라도 돌아온 것처럼 목에 피가 터질 듯한 함성으로 저들을 영접했다. 저들은 차에서 내려 우리의 환영에 호응했는데 덩실덩실 춤을 추는 부녀자들을 덥썩 안고 서양춤을 추기도 했다. 그 수줍은 우리 아낙네들 중 이를 거부하는 이도 없었고 얼굴 붉히는 이조차 없었다. 그만큼 열광적이었고 저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10여 명의 우리 해방군이 총칼을 들고 들이닥쳐 우리의 누나, 우리의 딸들을 능욕하는 강도떼로 변신했던 것이다. 반나절 정도 찾아왔던 해방의 기쁨은 삽시간에 공포와 전율로 바뀌고 그 밤부터 동리 사람들은 밤에 찾아든 이 강도떼로부터 내 아내, 내 딸을 보호하기 위한 절망적인 작전에만 몰두하게 됐다. 해방은 무슨 해방, 그저 억압자가 교체되었을 뿐, 그것은 늑대가 물러나더니 호랑이가 들어온 격이었다.

라디오 다이얼을 이남 방송쪽으로 돌리면 해방의 환호의 노래가 꿈처럼 들려왔다. 가자, 해방을 찾아, 자유를 찾아 자유의 나라로!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은 속속 그곳을 탈출하여 남으로 향했다. 나도 어느날 밤 식구들 그리고 몇 소년들과 함께 탈옥이라도 하듯 몰래 빠져나와 두만강을 건넜다. 그토록 그립던 고향이 있는 이북땅도 유형지인 양 얇은 얼음강을 밟듯 지나 온갖 희비극을 거쳐서 한 지역을 넘었을 때 일행 중 한 사람이 '이제부터 이남땅이다' 하고 외치자 우리는 일제히 제2차 해방이나 맞은 것처럼 환호성을 올렸다. 그때 저 앞에 길을 막고 우리를 환영하듯 기다리고 있는 미군이 어찌나 반가왔던지. 우리는 두 손을 높이 들어 흔들면서 갈라져 있던 형제라도 만난 듯한 정을 안고 저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짧은 영어이기는 하지만 당신들은 우리의 참친구라는 표현을 해 보았는데, 저들은 귀찮다는 정도가 아니라 경계와 멸시가 뒤섞인 것 같은 경직된 표정으로 결코 환영한다는 뜻이 아닌 무슨 욕설임에 틀림이 없는 말투로 중얼거리면서 총대로 우리들을 한줄로 서도록 지시하고는 파리 잡기 위해 약을 살포할 때 쓰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하얀 가루를 머리에서부터 가슴, 그리고 허리끈까지 풀게 하고 마구 살포했는데 그것이 DDT라는 살충약이었다.

그때 그 순간이 어찌나 모욕적이었는지, 순간적으로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노예들을 자기 나라에 들여올 때 바로 이런 수속을 밟았으리라는 것이 연상되면서 이것은 해방에로의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전광처럼 스쳐갔다. 사실상 소련군은 폭력으로 우리 딸들의 몸을 더럽히고 미국은 돈으로 사서 더럽히고!

해방은 남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방은 제 힘으로 쟁취해야 진정한 것이지! 해방은 자유를 의미하는 것인데 자유를 누가 주나. 자유는 쟁취하는 것이지. 자유는 피를 주고 살 수 있는 것인데, 자기 피를 흘리지 않고 자유가 왔으려니 생각한 것 자체가 망상이지.

사실상 전쟁은 끝났지만 우리의 해방은 현실화된 것이 아니라 강대국들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었다. 우리를 강점했던 일제가 물러났으면 그것으로 우리는 자유민으로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는데 강대국들이 고깃덩이를 놓고 으르렁거리는 맹수처럼, 노예 시장에서 노예들을 보다 싼 값에 사기 위해 아귀다툼하는 경매꾼처럼 우리를 물고 놓지 않는 것이다. 어처구니없이 남북을 나누어 인수하고 점령한 그 지역에 대한 권리 싸움을 벌이던 이들은 미소 공동협상을 거듭하더니 결국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게 되자 서로의 엉큼한 생각을 실현시킬 수 있을 때를 미루기 위해 신탁통치라는' 절묘'한 결정을 내려 우리를 강제하려 했다. 이러다가 마침내 어느 것도 되지 않아 군사적 분계선이 그대로 우리 민족의 허리를 잘라매는 현실로 정좌하기에 이른 것이다.

815는 우리 민족의 해방의 날이 아니다. 815 해방은 우리의 힘으로 싸워 일본군을 내몰고 쟁취했어야 진정한 해방일 터인데 그렇게 못한 주제에 해방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다. 815는 우리 민족을 해방의 길목으로 이끈 날일 뿐이다. 이 날은 우리의 해방의 문이 열린 날이다. 소련이나 미국을 등에 업고 굿을 보다 떡이나 먹자는 자세로는 얻어질 그런 해방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대외 의존적이었기에 오늘날까지 우리는 해방되지 못했다.

지난 39년간 우리는 많은 고통을 겪었으며 많은 피를 흘렀다. 그것이 결국은 우리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서 바쳐진 것이었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민족의 독립 투쟁에 바쳐진 대가보다 훨씬 많다. 나는 지난 39년간 흘린 피가 우리의 자유를 위해 바쳐진 것으로 믿고 싶다. 따라서 우리는 그만큼 자유민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그럴 때가 가까와졌다고 믿는다. 625동란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나.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비극이 연발했나. 그 상처가 이산 가족이라는 비극으로 지금까지 연장되고 있다. 공산 독재에 항거하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얼마나 많은 생명이 숙청되었나!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서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낳았는가!

이쯤 하면 됐지, 또 얼마나 더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때때로 이런 절규인지 기도인지를 드린다.

"이만하면 됐습니다. 이 이상 더 우리에게 희생의 제물을 요구하지는 마십시오. 이제는 해방될 권리를 주장합니다."

(『샘터』 1984. 8)


| 평론 |
한국 민족 운동과 통일
(한국신학연구소)
List of Articles
표지
 
제1부 옳은 민족 옳은 역사
서양사람 한국사람
구라파에서 본 조국
사상의 주체성
세계 속의 한국
   
제2부 한국의 민족 감정
민족 감정
아키히토 방한과 민족 감정
히로히토가 엄존하는데
민족적 염원
'조국 근대화'와 민족문화
민족 정신 문화 불식시키는 외래 종교
   
제3부 한국의 민족 운동
3•1절과 민족사적 고백
8•15와 해방
3•1 운동과 기독교
민중 운동의 새 기원
4•19혁명과 민주주의의 갈망
4•19의 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4부 한국 민(民)과 종교
민족적 과제와 교회
그리스도교와 민족 공동체
개화기의 한국 교회의 위치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주체성과 신앙
더 이상 종교는 침묵일 수 없다
   
제5부 민족 자결
민족 자결의 민족주의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혼선된 역사
   
제6부 분단과 평화
해방은 통일로써만
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이 땅에 평화를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통일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씨알과 민족 통일
   
제8부 평화의 길
평화와 칼
아시아 평화와 일본
함석헌의 평화 사상
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평화의 실현
분단 극복과 평화
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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