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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 |
한국 민족 운동과 통일
(한국신학연구소)
419의 혼

내가 사는 동네는 우리 현대사에 출현한 인물들의 무덤들이 즐비하게 모여 있다. 모든 망국의 한을 품고 싸우다가 이 민족의 햇볕을 보지 못한 채 타계한 이들이다. 모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인데 계보의 명맥이 유지되는 무덤은 가꾸어지고 있으나 그렇지 못한 무덤은 방치된 채 짓밟히고 잠식당하고 있다. 가령 몽양 여운형의 무덤 같은 것이 그렇다.

바로 이런 동네에 하늘로 치솟은 듯한 하얀 탑들이, 청운의 염원을 상징하는 419 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나는 20년 내 이 곳과 친숙하고 있다. 혼자, 또는 가족과 함께 드나든다. 외국 손님이 오거나 외국 사는 교포가 와도 되도록 그곳으로 산책 방향을 잡는다. 그렇게 자주 찾건만 갈 적마다 어떤 아픔과 감격이 범벅이 된 감격에 사로잡히고 사죄를 구하는 것 같은 보얀 상념에 몽롱해지곤 한다.

누가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나? 그래서 저기 저렇게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피기도 전에 민주 제단의 제물로 바쳐졌다는 말인가? 저들이 저처럼 산화한지도 벌써 한세대, 사반세기가 넘었다. 대학생이었던 저들이 지금 살았다면 중년이 됐으리라. 그런데 저들의 피를 먹은 나무는 과연 민주주의로 자라고 있는가?

419가 혁명이냐 의거냐? 라는 말다툼이 있다. 그런데 어느 것이 더 값지고 참된 것을 위한 밑거름이 되느냐가 문제다. 만일 혁명이란 것이 어떤 이데올로기거나 뚜렷한 대안을 갖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권력을 잡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고, 의거란 순수히 나라와 민족을 불의와 부정에서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건 것이라면 나는 주저없이 419는 의거이며 그렇기 때문에 바로 우리 민족이라는 나무가 먹어 기운을 찾을 믿거름이 됐다고 믿는다. 스스로 권좌에 앉기 위해 폭력으로 하는 혁명이야 사욕을 채우기 위해 남의 피를 강요하는 것이기에 그 결과야 어찌됐든지 민족사의 맥락에 독소 이상 될 수 없다.

파리에 가면 나폴레옹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은 개선문이 있고, 그 아래 점화한 후 꺼뜨리지 않는다는 불항아리가 있다. 그 불은 바로 이름도 남기지 않고 조국을 위해 죽어간 이른바 무명 용사들을 기리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개선문이나 그의 장엄한 무덤은 내게 아무런 감흥도 안 남겼으나, 그 무명 용사의 불티는 알 수 없는 힘으로 나를 사로잡았고 자주 생각하게 하는, 꺼지지 않는 무엇을 주고 있다. 나폴레옹이야 야망의 사나이이지! 그 야망을 채우기 위해 수없는 피를 강요하고 그것을 왕좌로 삼고 왕관을 썼지! 그가 프랑스에 가져다 준 게 무엇인가? 루브르 박물관? 그가 전 구라파를 두루 파괴한 죄과는 어쩌고! 그러나 바로 나폴레옹이나 그 따위를 닮으려는 소영웅들의 강요에 몰려서 당한 것이기는 해도, 그래도 아무런 사심없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유언 따위를 남기는 것은 고사하고 어디서 어떻게 싸우다가 죽었으며 그 이름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산화된 저들이야말로 그 민족사에서 영영 꺼지지 않는 혼이지.

419에 185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쳤으며, 1,196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산화한 저들의 이름이 적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저들은 이름이 있으나 이름 없는 이들! 초등학생, 중고교생, 그리고 대학생! 모두 피기도 전에 진 생명들이니 무명인들이지. 저들은 조그마한 사심도 없이 그 맑은 마음에 간직한 조국, 그 조국이 불의와 부정에 썩어가는 것을 그대로 묵과할 수 없어 오직 붉은 주먹과 마음만으로 불의의 총탄에 가슴을 내댄 것이다. 419 묘지에 묻힌 저들은 이름이나마 돌비에 남겼지만 그때 부상당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름도 남기지 못 한 채, 사람들의 시선에서 외면당한 채, 어디서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 모르는 일이다. 419의 정신은 바로 저들의 혼이지 419를 등에 업고 목에 걸고 이름을 내고 출세를 꾀한 저들이 계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 이름 없이 산화한 419의 혼들이 바로 31 봉기에 가담해서 이름없이 죽어간 저 민중들과 맥을 같이한다. 31의 혼도 저 이름난 33인이 아니라 이름없이 조국을 위해 궐기한 저 이름없는 이들의 피에 엉켜 있다.

그런데 419 묘지는 그날이 오면 그 분위가가 해가 갈수록 괴이하게 변모해 간다. 419 정신은 날로 퇴색해 가고 '학생의 날'조차 자취를 감추었는데 419의 그날이 오면 419 묘지는 그 날과 그 정신에 어울리지 않은 분위기로 '성황'이다. 고급 승용차가 운집하고 '유명한' 이들이 앞을 다투어 모이는가 하더니 심지어는 울긋불긋한 색채로 임시 단좌를 만들고 길에 융단까지 등장된다. 그래서 이름없는 시민이나 학생은 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쭈그리고 잠깐 기웃거리다 사라지거나 애당초 그곳 가기를 포기하는 실정이다.

그날이면 눈을 뜨자 찾아가던 내 마음도 근경에는 그날의 한적한 때를 기다리거나, 찾아 갔다가도 밀려난 사람 같은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서기가 일쑤다. 419 묘지가 정치 전시장이 돼서야 되겠는가! 더욱이 419 정신을 역행하는 자들이 그 자리를 독차지해서야 되겠는가!

위선자들아!……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우리가 조상들의 세대에 살고 있었다면 예언자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데 가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한다. 이렇게 너희는 너희가 예언자를 죽인 사람들의 후손인 것을 증거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가 그 시대의 지도층을 향한 분노의 힐책인데 그 힐책이 419 날 묘지로 가면 번개처럼 뇌리에서 되살아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419는 젊은이들이 나라 사랑을 몸으로 이루려다가 죽임을 당한 사건인데 그 정신은 세월과 더불어 사라져가고, 허례와 형식으로 단장되어 간다. 419의 '사자'들이 이빨, 발톱이 다 빠지고 419 정신은 이론의 도마 위에 올라 글쟁이들의 칼질에 적당히 요리되고 있다. 그렇게 말하는 내게도 419의 사건은 쉽게 아름다운 한때 얘기로 탈바꿈한다

작년에도 일찍 419 묘지로 갔다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와 인파에 몰려 얼른 돌아와 집 뜰을 거닐다가 어느 모퉁이에서 나도 모르게 딱 멈춘 채 숨을 죽인 일이 있다. 나는 산단화나무 앞에 마주 선 것이다. 아래서부터 위까지 온통 수없이 많은 꽃봉오리가 빨갛게 돋아 나왔는데 그것은 순간 어떤 기억을 되살렸다. 어릴 때 한의사가 환자의 이마에 수없이 (변두)침질을 해서 그의 이마에 무수한 핏방울들이 봉오리가 됐다가 마침내 서로 엉켜 흘러내리는 것을 본 기억이 살아났다. 그런데 그것은 연쇄적으로 419에 난사 당해 쓰러져 죽은 젊은이들의 몸에서 쏟아지는 그 피로 변해서 나를 60년 419 현장으로 몰고간 것이다.

(『샘터』 1984. 4)


| 평론 |
한국 민족 운동과 통일
(한국신학연구소)
List of Articles
표지
 
제1부 옳은 민족 옳은 역사
서양사람 한국사람
구라파에서 본 조국
사상의 주체성
세계 속의 한국
   
제2부 한국의 민족 감정
민족 감정
아키히토 방한과 민족 감정
히로히토가 엄존하는데
민족적 염원
'조국 근대화'와 민족문화
민족 정신 문화 불식시키는 외래 종교
   
제3부 한국의 민족 운동
3•1절과 민족사적 고백
8•15와 해방
3•1 운동과 기독교
민중 운동의 새 기원
4•19혁명과 민주주의의 갈망
4•19의 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4부 한국 민(民)과 종교
민족적 과제와 교회
그리스도교와 민족 공동체
개화기의 한국 교회의 위치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주체성과 신앙
더 이상 종교는 침묵일 수 없다
   
제5부 민족 자결
민족 자결의 민족주의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혼선된 역사
   
제6부 분단과 평화
해방은 통일로써만
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이 땅에 평화를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통일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씨알과 민족 통일
   
제8부 평화의 길
평화와 칼
아시아 평화와 일본
함석헌의 평화 사상
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평화의 실현
분단 극복과 평화
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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