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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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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을 묻는다

여기에 실린 안병무 교수와의 대담은 1987년 5월 6일 서울에서 행해진 것이다. 이 대담이 있은 며칠 후에 강력한 시위와 파업의 파동이 1987년 초여름의 한국을 뒤흔듦으로 거의 큰 변혁을 일으켰다. 이 인터뷰의 시기는 정치적 분위기가 험악했으며 그저 약간의 희망적인 신호가 보였을 정도였다. 그 후 일년이 지나 그 상황은 변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그것은 그저 외형적인 수정일 따름이었다. 안병무 교수는 나와의 대담 내용을 1988년에 함부르크에 왔을 때 보았으나 그 내용을 수정할 요구는 하지 않았다. 이 인터뷰를 시도한 동기는 다음과 같다. 그때에 올림픽을 위해서 서울 남쪽 강변에 올림픽 경기장과 그것을 위한 고충 아파트를 세우고 있는 반면 당시의 대통령인 전두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목사 및 신부들이 단식을 계속하고 있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고문당하는 아들들을 슬퍼하는 여인들을 기독교연합회관에서 만난 것 등이다.

P. Tachau

누가 민중인가
안 박사님. 민중이라는 말에 대안 옳은 번역을 도대체 볼 수 없습니다. 독일의 한 신학자는 이 말을 독일어의 'Volk'로 번역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민중신학자들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유럽사람으로서 우리는 어렇게 이 말을 번역할 수 있을까요? 민중은 무엇입니까?

예, 우리는 의식적으로 민중이라는 이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까닭은 외국에는 이와 같은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volk'는 전혀 가당치 않은 번역이라고 봅니다. 독일에 있어서는 'volk'가 잘못된 소극적인 표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민중이라는 말은 제3세계 영역에 속하는 한국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이에 맞는 번역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을 번역하기 어려운 점에 첫째 이유를 든다면 이른바 제1세계와 제3세계를 같은 평면에 놓고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민중이라는 말의 어원은 사실은 중국말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사람들도 우리처럼 같은 문자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 나라에서는 이 말을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중이라는 말에서 구약의 히브리어 '하피루'를 연상합니다.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에서 한 종족공동체를 형성한 하피루 말입니다. 또한 우리는 '암하아레쯔'를 연상하기도 합니다. 바빌론 시대에 이스라엘의 상류층들이 바빌론으로 납치되어 갔습니다. 그들은 팔레스틴에 그대로 남아서 저들의 소유했던 땅을 분배받은 하류계층을 멸시하는 의미로 '암하레쯔'라고 불렀습니다. 즉 암하레쯔라는 말은 상황에 따라서 아주 심한 멸시의 표현으로 둔갑되었습니다. 신약에 있어서는 '오클로스'를 연상하게 됩니다. 예수를 둘러싼 비천한 이름없는 그 무리들을 마르코라는 사람이 그렇게 불렀던 것입니다. 이 세 말 들은 우리는 특별히 중요시하는데 그것들의 공통분모가 민중이라는 말의 내용을 어느 정도 표현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민중은 원래 오래 전부터 쓰는 말이나 독재자 박정회 시대를 통하여 정치적 모티브로 강하게 성격화됐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신학자들이 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이나 민속학자 그리고 한국 사가들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에 있어서는 자연 그 내용이 저들과는 다릅니다.

그러면 민중은 한국 민족(Volk)과 같은 뜻입니까?

아닙니다. 한국말로 민족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신약에 있어서도 오클로스와 라오스라는 말의 뉘앙스는 다릅니다. 마르코복음이 그 대표적인 경우겠지요. 우리들의 이해로써는 라오스는 소속이 분명하며 따라서 의무와 권리를 지닌 국민이라는 말과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오클로스는 일정하게 소속된 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클로스에 있어서는 의무나 권리를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민중이란 고정된 개념은 아닙니다. 북한에 있어서는 이에 대해서 다른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는 프롤레타리아란 뜻을 포함하고 있으나 레닌적인 의미에 국한시키지 않은 인민이라는 말을 쓰지 민중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만일 유럽인이 한국에 오면 어디서 이 민중을 만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어려운 물음입니다. 물론 가시적인 민중과 불가시적인 민중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있겠지요. 그런데 어디라는 말을 묻기 전에 민중을 안식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민중을 말할 때 비록 가난을 아주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지만 가난한 자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크리스천 빌딩에 찾아온다면 민중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의 자식들을 감옥에 보내고 한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민중을 만날 것입니다. 그 여인들은 그 이 전에는 아주 단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계속 저들은 함께 모이고 불의한 정부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 부인들을 만나본다면 무엇을 민중이라고 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수백 수천의 그 어머니들과 자매들에게서 말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가난한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교육을 받은 이들과 또한 아주 단순한 여인들도 함께 있습니다. 저들은 완전히 깨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들은 단순한 부인들로서 일상생활에 매여 사는 것이 전부인 줄 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들이 역사가 무엇을 의미하며 정치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이 여인들은 이미 단결된 한 그룹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정부도 이 여인들에 대해서 불안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또 하나의 다른 예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민중공동체(교회)가 도처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빈민촌—집이라고 할 수 없는 판자집들이 모인 지대이며 일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또는 공장지대에 노동자들이 운집한 곳에 퍼지고 있습니다. 그런 곳으로 찾아가는 젊은 목사들은 저들과 더불어 호흡하면서 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을 살고 있습니다. 이른바 학자로서의 우리는 민중신학을 하고 있는데 대하여 이런 공동체에 소속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몸으로 민중신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그들과 대화하며는 무엇을 민중이라고 말하는가를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어디에선가 민중을 감옥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쓴 일이 있습니다.

나는 감옥에서 저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이미 그 전에 저들을 경험했습니다. 가령 사회적, 정치적 대결의 현장에서 말입니다. 감옥에서 나는 구체적으로 저들의 다른 면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범죄자들에게서 민중의 다른 측면을 발견한 것입니다. 감옥에서 저들을 만나기 전에는 나는 저들을 민중 범주에서 제외했습니다. 감옥에서 나는 강간자들, 강도나 도둑, 폭력배들을 알게 됐습니다. 저들은 다분히 젊은 층이었습니다. 나는 저들의 죄상을 보도로 들으면서 저들은 파렴치범이지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이런 나의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저들에게서 너무나 다른 인간적인 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일반인보다 오히려 순수한 면, 배운 자들보다 오히려 진실한 면을 보았습니다. 저들은 아주 개방적이었습니다. 언어나 행동에 인위적인 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비겁함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저들은 무엇이 옳고 그론지를 똑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이른바 교양 있는 자들의 귀로는 듣기 어려운 다른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정말 야만적인 언어지요. 그런데 바로 그런 말들이 얼마나 삶 그대로를 표현해 주는 생동적인 것이고 있는 그대로를 표출하는 진실한 언어인지를 발견했습니다. 이른바 도덕적인 측면에서 보면 물론 저들은 비도덕적인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인간으로서 볼 때에는 저들은 참 인간이었습니다. 일단 모순되게 들리는 이런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그들의 진면목입니다. 감옥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나는 나의 낡은 가치기준을 바꿔야 했습니다. 아니, 많은 것을 버려야 했습니다. 까닭은 이 사람들이 나 자신을 근본적으로 묻게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주 새롭게 나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이른바 범죄자들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참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권력에 의해서 상처를 받고 짓밟혔습니다. 나는 저들을 범죄자로 보기에 앞서 현재의 모순된 체제의 한 희생자라고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거기서 민중을 새롭게 발견했던 것입니다.

독일에서 배운신학
독일에서는 민중선학에 대에서 제기하는 소리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민중이 하느님의 구윈 계획에 있어서 중심적 자리를 차지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를 침범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중을 결코 이상화하지 않습니다. 도덕적인 의미에서는 물론이고 다른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분명히 민중 속에는 진정한 의미의 범죄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민중을 하느님의 자리에 직접 앉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는 민중에게서 하느님의 사건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민중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우리는 민중사건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현재적으로 경험합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합니다. 이 사실이 벌써 당신이 독일에서 얘기되고 있는 견해들과 차이가 있음을 보여 줄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우리의 이해는 독일에서도 아무 거리낌없이 말할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특별히 요한복음 1장 29절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느님의 양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단순히 예수에게만 적용하지 않고 민중에게 연관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 민중이 서 있다. 세상 죄를 지고 가고 있는' 이렇게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신학을 공부하셨습니까?

(웃으면서) 예. 나는 독일에서 신학을 배웠습니다.

당신은 어디에다가 당신의 신학은 독일에서 돌아감으로 변했다고 썼습니다.

예. 물론 나는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한국에서 신학을 추구했습니다. 독일에서의 연구에서 나의 목표는 역사적 예수를 알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불트만 연구에 집중했는데 그것은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을 받은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트만이 역사적 예수를 묻는 것은 포기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1954년에 케제만이 그의 스승인 불트만에 대해서 비판적인 강연을 했습니다. 그것은 불트만이 역사적 예수를 묻지 않음으로 가현설(doceticism)에 빠졌다고 한 것입니다. 그 뒤를 이어서 역시 그의 제자인 보른캄의 『나사렛 예수』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나는 물론 이런 것들을 숙독했지만 역사의 예수에 관한 논문들은 내 손이 미치는 한에서 전부 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의 결론적인 대답은 나는 그(예수)를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를 모른다. 나는 역사적 예수를 만날 수 없다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한국에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물어도 될까요? 당신은 거기서 그를 발견했습니까?

한국에서? 예이면서 아닙니다(Ja und nein). 나는 여기서도 대학에 있는 동안 문서 비평적인 방법을 수용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 예수에 대한 자료적 한계를 인정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 예수를 다시 되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이 욕구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 계속 물었던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 예수'라는 표현 자체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의 현실성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여기서 그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한국에 와서 발견한 것은 역사적 예수의 재발견과 민중의 현실성의 발견은 동전의 양면같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아 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한국의 현장에서 우리는 예수의 현실성을 만났다고 그리고 예수의 사건을 한국의 컨텍스트 안에서 경험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연구만 많은 신학자들이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브라질 그리고 인도 등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는 이른바 상황화 즉 서구 신학을 자기들의 사회적, 역삭적 컨텍스트에 토착화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 신학도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유럽에서의 연구과정이 없었더라면 우리도 어쩌면 우리가 지금 작업하고 있는 이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한편 서구신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너무나 긴 시간을 보냈 다는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서구신학은 이미 하나의 미래가 없는 신학입니다. 만일 우리가 한국에서 현재로 일어나는 사건을 경험하지 못했던들 서구의 신학 특히 독일신학이라는 감옥에 어쩌면 일생 동안 갇혀 있었을는지 모릅니다. 한국의 컨텍스트가 우리를 해방시킨 셈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인식도 역시 서구신학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얻은 것이지요. 서구신학을 통한 형성과정이 없이는 우리는 어쩌면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해방이라는 지금 표어처럼 씌어지는 언어틀 언급하고 싶습니다. 까닭은 이것이 남아메리카나 아프라카에 있어서의 신학적 노력을 위애서 중심적인 신학적 상통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으로부터 한국의 신학을 관찰한 살람들은 해방이라는 이 말이 한국의 신학에 있어서는 그다지 핵심적인 위지에 있는 것이 아나라는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오히려 고난이라는 말이 그 중심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만 관찰이 옳은가요? 그리고 해밤이라는 상통 언어는 여러분에게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나는 해방과 고난은 원래적으로 아주 다른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지금까지 고난 문제에 집중해왔습니다. 그 점에서는 여러분은 잘 본 셈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아유는 우리가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고난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해방을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바로 해방입니다. 해방신학은 우리에게 몇 가지 의미에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방신학이 고난에 대해서 너무 적게 말하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봅니다. 저들은 한 정치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고난에 대해서 너무 적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중신학이 태동될 때 해방에서 출발하지 않고 고난의 현장에서 출발했습니다. 까닭은 우리 자신들이 수난당했으니까요. 우리는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동했으며 그런 과정에서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서 나타난 계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경험했는데 그것은 바로 고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이 우리에게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인간의 삶에 집중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하기를 민중신학이 해방신학에 있어서보다 더 인간애에 바탕을 두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고난은 물론 단순히 경제적인 가난에 의한 것만은 아닙니다. 거기에 또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고난은 무엇보다도 앞서 정치적인 박해에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우리는 같이 고난당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즉 정치적인 박해와 그로 인한 고난이 현재로서는 화급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고난의 현장에서 본 예수사건
이 고난의 현실은 사회의 모든 분야. 모든 계급을 포함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계급이나 혹은 계급투쟁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계급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고난에 대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고난은 바로 압박에서 생겨나며 가난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신비화해서 고행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 그 자체는 구원의 길을 여는 하나의 열쇠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어느 의미에서 우리도 이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을 하나의 신비적 요소로서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부한 사람들 또는 권력을 남용하는 집권자들은 현재의 고난을 진실하게 인식할 때만 해방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저들에게 구원이 가능하다면 고난 그것만 이유일한 킬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돕는다는 것은 바로 자신을 해방시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바로 구원에의 열쇠입니다. 이 열쇠는 그런데 부한 자나 권력자들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저들은 정말 고난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리고 고난에 자신이 참여할 때에만 스스로를 해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신학에 있어서 그리고 정치적 실천에 있어서도 아주 투쟁적인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의 고난에 대한 이해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우리는 이러한 비교를 하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해방신학의 적극적인 면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들을 비판할 생각이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나 만일 이 둘을 비교한다면 물론 해방신학과 민중신학 사이의 차이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해방은 본래 고난이 시작될 때에 이미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고난의 상황을 통찰한다면 해방이라는 말이 없더라도 그럴 필요성을 자동적으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해방과 고난을 분리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에 강조점을 둡니다. 만일 고난에 대한 깊은 인식도 없이 해방만을 강조하면 쉽게 투쟁을 위한 투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역으로 그것이 비인간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당하는 인간들의 아픔을 간과하게 됩니다. 이런 현실은 우리 주변에서 늘 보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고난과 부활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해방이 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에서부터 해방한다는 것을 말해 주겠습니까?

이미 당신이 말한 대로 수난과 부활은 한 사건입니다. 이것은 두 다른 사건이 아닙니다. 수난이 없이 부활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단지 고난 그 자체를 한 독립된 것으로 볼 경우에는 아주 잘못된 인식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해방은 고난을 전제한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이 투쟁으로 될 때 쉽게 이 고난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해방신학은 해방은 바로 제국주의로부터 혹은 식민주의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하려고 시도합니다. 즉 폭력적 구조에서 말입니다. 한국에 있어서의 해방의 의미도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물론 이미 말한 대로 민중신학은 정치적인 상황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는 악한 권력구조를 제거해야 되고 우리를 그것으로부터 해방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현재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차적인 해방의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 목표는 악한 구조의 제거에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역시 해방입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도 절대로 고난 자체를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고난을 강조합니다. 이 고난은 단순히 경제적인 여건이나 정치적인 여건에서만이 아니고 후에 많은 요소들이 그것을 유발합니다. 유발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우리의 힘이 미치는 대로 분석하여 확실한 인식에 도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에서 강조하는 고난사상은 해방신학에서보다도 훨씬 더 포괄적입니다.

그러면 지배세력에서의 해방이라는 말이 정당합니까?

예. 어떤 성격의 지배자든지.

그러던 민중신학은 일면 능동적이며 또 한편에서 이 고난은 전체의, 즉 집단적인 것인가요?

예. 민중신학은 언제든지 집단적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말할 때 한 개개인의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가령 예수가 고난한 것은 우리는 한 개인의 비극으로 보지 않고 바로 거기에서 인간의 고난을 봅니다. 예수가 홀로 수난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서 우리는 민중을 봅니다. 그의 고난은 민중의 고난입니다. 민중은 개체적 인격이 아닙니다. 그것은 집단적 개념입니다. 가령 우리의 한 수난당하는 사람을 보면 그 개인의 아픔에 한정시키지 않고 거기에서 집단적인 고난을 봅니다. 이 가해자는 물론 구조적인 악이지요.

당신은 위에서 말하기를 민중은 단순히 신학과만 관련 있는 것이 아니고 또만 다른 영역과도 관턴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 위에서 말한 것 외에 문화적 시각이 있습니다. 문화에는 지식층의 문화와 민중의 문화가 있습니다. 즉 상류계급의 문화와 민중문화 말입니다. 민중문화는 언제나 멸시당해 왔고 지배층에 의해 박해 받아왔습니다. 이 민중문화도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웃음, 그들의 울음, 그들의 기쁨 그들의 고통에 대한 표현은 소위 고급문화에서와 다릅니다. 이른바 고급문화는 그들의 표현양식이 오직 유일한 것이고 그 외의 다른 것들은 야만적이라고 규정해왔습니다. 저들은 민중문화가 그들대로의 고유한 특색에서 얼마나 진실한가를 볼 눈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민중문화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면서도 크게 존중 하며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억압당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민중은 또한 오랫동안 그들대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습니다.

또 저들 나름의 기쁨을 표현할 장이 없었습니다. 상류층은 그들의 삶의 표현만이 문화라고 생각했으며 민중들에게는 문화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삶의 표현이 있는 것을 못 볼리가 없지만 그것은 무지요 미신이라고 일축했을 뿐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한 서구인들은 자기들만이 문화를 독점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므로 그들의 식민지 안의 여러 종족들의 고유한 문화를 볼 눈도 없었거니와 무지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아주 강조하는 다른 종교가 있습니다. 불교가 그것입니다. 민중신학과 불교 사이에 비슷한 요소가 있습니까?

불교는 고난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난을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이해합니다. 우리들은 구조적인 시각에서의 고난을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 불교는 존재론적인 시각에서 말하지요. 또 한편 불교는 항상 고난을 강조하고 있지만 불교의 본질상으로는 사실상 고난은 없습니다. 사람이 각(覺)에 도달하는 경우는 고난은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고난은 현실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깨달음으로 눈을 떠야 합니다. 이 순간에 고난은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불교도는 현실적으로 역사적인 고난을 직시한 일이 없습니다. 그들이 각하는 순간 그것이 현실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영지주의 사상과 통하는 면이 있으나 그렇다고 이원론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중신학은 어떻게 새로운 교인을 만들기 위에 전도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을 포섭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민중을 내편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아니,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민중으로부터 그들이 절규하고 그들이 말하려고 하는 실제를 들으려고 합니다. 까닭은 저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민중신학은 민중의 언어를 이해하고 민중사건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요. 우리는 저들의 실상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증언자로서 진실하게 받아 들이며 그것을 세상에 공개하고 알리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중의 눈과 입이 되려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민중을 계몽하거나 용기를 북 돋거나 나아가서는 크리스천을 만들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민중에게서 들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의무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이해한 것을 확산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민중신학의 과제는 민중언어의 번역에 있습니다. 민중사건을 이해하려면 단순히 관찰하거나 분석하거나 분석을 통해서가 아니라 참여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참여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 말은 결국 직접적인 경험이 필요하다는 말인 것입니다. 경험이란 사변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것에 참여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입니다.

교수님의 신학운동이 정부로부터 밤해를 받습니까?

물론입니다. 저들은 우리를 마치 공산주의자처럼 보려고 합니다. 그들은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을 일치시킵니다. 그러므로 정부와 민중신학 간에 큰 긴장이 있습니다.

민중신학은 그것을 선전알 수 있는 매체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고는 정부의 반응을 이해하기 곤란하군요.

우리는 민중사건을 신학화합니다. 정부는 한마디로 민중의 소리를 무서워합니다. 저들은 현실을 보려는 눈을 뜨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로 현재에도 한국의 도처에 민중의 고난과 절규가 계속 됩니다. 이에 대해서 정부는 저들을 억압하고 저들을 음지에 묻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 사실들을 햇빛 아래 공개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정부는 싫어하는 것입니다. 예로 1987년 5월 1일에 우리는 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날은 한 젊은 학생이 분신 자살한지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 학생은 크리스천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천을 넘는 경찰이 우리가 모이려는 이 장소를 봉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예배를 위해서 오래 준비했습니다. 준비 과정에서 나는 그 학생의 일기를 통해서 왜 그가 분신자살하려고 했는지를 알려고 했습니다. 그의 분신자살 이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어머니가 아주 탈바꿈한 일입니다. 그는 본래 아주 단순한 가정부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는 투사요 의식분자가 됐습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변화가 우리 역사에서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 학생이 일 년 전에 경찰에 의해서 살상되었습니다. 단순한 그의 부모들은 그로부터 아주 달라졌습니다. 즉 민주주의를 위한 무서운 투사가 됐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실들은 기적같이 보입니다. 이런 일들은 생동하는 사건들입니다. 도처에 이와 같은 각성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지하에서 돌고 있는 저들의 소리를 매개하는 글들을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원하는 것을 분석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공개적으로 청중 앞에서 강연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 차례 저지당했고 수없이 경찰에 의해서 가택연금을 당했습니다. 이 정부가 민중의 소리를 듣기를 거부하고 그것을 아는 것을 무서워한다는 구체적 증거가 이런 예들이 아닐까요?

민중신학과 투쟁
나는 이제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말하고 싶습니다. 이에 대한 당신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는 광주에서 한 목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그때 단식투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들은 민주주의와 자유틀 위애서 단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대통령인 전두환이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제한 투쟁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 목사들은 그러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는 말일까요? 그리고 이런 그들의 투쟁이 어떤 성과를 가져올까요?

왜 당신이 이해하기 힘든지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 요구가 너무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대통령이 물러나야 단식투쟁을 그만 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투쟁은 우리가 서울에서도 친구들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저들에게 계기를 준 셈입니다. 우리는 그때 단식투쟁을 하지는 않았고 크리스천 빌딩에서 연좌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이 때 또한 가톨릭의 신부들도 자기들 나름으로 이런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는 단식투쟁을 하는 그룹도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이러한 현상은 전국에 퍼져나갔습니다. 예. 그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전제를 내걸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 요구가 불가능한 것입니까? 너무 지나친 것입니까? 그러나 당신은 바로 저들은 아무런 다른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 또 그들은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명을 내거는 것 이외에 다른 무기가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꽉 막힌 상황에서 자해하거나 분신자살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 길 밖에 다른 길이 보이지 않으니까. 저들의 요구는 죽음 아니면 생명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상황은 진지하게 생각하면 이런 경우에서 이렇게 밖에는 다른 길을 찾지 못하는 사실을 이해해야죠. 이것은 우리의 상황이 반영된 것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상황이 신학적인 자세에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 희생을 통해서 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셈이지요. 사실상 우리는 언제나 기적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기적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아무 선택의 길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 섰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관철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인식한 사람들이 이런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40명을 넘는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이렇게 자기 생명을 희생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정황을 웅변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민중신학을 하는 우리는 이런 학생들도 주저없이 민중으로 간주 합니다. 노동자들도 분신자살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런 것을 직시하면서 나는 이러한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중에게는 자기 초월이 가능하다구요.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이러한 일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서 자기 초월의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오는 힘일까요? 이런 시각에서 보면 교회는 이미 죽어버렸습니다. 기존의 교회에서는 이런 행위는 불가능합니다. 이른바 순교자라는 것은 더 이상 없잖아 요? 아직까지 단 한 사람의 목사도 신부도 자기 생명을 내 버린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밖에서는 계속 이런 순교자가 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나는 민중사건이라고 봅니다.

독일신학에 대애석 결정적인 비판의 초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신학에 있어서는 예수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저들은 예수를 수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독일교회에 수용할 자리가 없습니다. 신학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한 구조적인 결과입니다. 도스도예프스키는 그의 『대심문관』얘기에서 이 사실을 정확히 보고 있습니다. 서구신학은 그리스도론만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들에게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그 그리스도론을 전제로했을 때 예수의 위상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설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는 너무도 혁명적인 서구의 신학은 바로 이러한 예수 앞에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지배자의 두둔을 위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는 말이 되는가요?

물론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주 영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눈이 멀었습니다. 눈이 먼 까닭은 저들이 잃어버릴 것을 너무 많이 가졌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너무 부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에 희망이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민중신학은 경우에 따라서 폭력을 지지할 수도 있습니까?

우리는 폭력을 위하지도 않고 반폭력적이지도 않습니다. 이 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정당한 대답이 아주 어렵습니다. 도대체 폭력이 무엇인가가 물어져야 합니다. 그 대답은 상황과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폭력을 사용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 몰릴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그런 상황이란 바로 자루 속에 든 쥐새끼가 다른 데로 갈 수 없는 것과 같은 경우를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폭력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수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개는 비록 자기 주인이라도 돌아서 뭄니다. 바로 이런 상황이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원칙을 설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폭력과 비폭력 사이의 관계는 아주 모호합니다. 최후 순간의 자기방어를 폭력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딴 사람이 나를 죽이려고 칼을 드는 순간 나는 죽지 않기 위해서 이에 대응할 것입니다. 그때 나는 그것이 내가 폭력을 쓰고 있는지 아닌지를 의식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폭력 사용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 학생들 중에는 자살을 하려는 의사가 없었던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수천의 경찰이 엄습해 오는 순간 저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몸에 석유를 붓고 경고를 했던 것입니다. 즉 가까이 오지 말라! 가까이 오면 나는 나에게 불을 붙이겠다는 자기방어적 경고입니다. 이 순간에 경찰이 냉철했더라면 그 학생들을 자살까지 몰아넣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학생들은 자살을 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입니다.

당신은 민중신학자로서 지금의 북한에서 그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좀 추상적인 전제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거기로 갈 시기나 정황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못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오히려 거기에서 민중신학은 더 효과적으로 적용되지 않을까요? 남한의 분위기는 사람들을 아주 쉽게 현혹시킵니다. 우리는 아주 자유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체제 하에 참 자유가 있나요? 이같은 소비성 사회 아래서 우리가 정말 똑바른 의식에서 살 수 있나요? 나는 공산주의 세계에서 오히려 깨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의 원수이고 우리가 어떤 현장에 있는지를 똑바로 인식해야 할 상황에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활발하게 민중신학을 전개할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데올로기적인 차원에서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라는 오해는 마십시오.

(Zeitschrift für Mission, Basel, 1988 게재. 인터뷰의 시일: 1987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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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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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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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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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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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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