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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서 본 교회사의 한 단면
1

신약성서에 나타난 초기 교회사 내지 그리스도교사의 한 단면을 살펴볼까 한다. 더 정확히 말해서 주후 30년경부터 70년 전후 사이에 벌어졌던 신학의 두 가지 흐름을 추적해 보겠다. 이 시기에 신약에서는 벌써 바울 신학과 공관복음서 신학이라는 두 개의 전혀 이질적인 신학의 흐름이 대두하게 되었다. 이 양자의 차이가 무엇이며, 어떤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상황에서 그러한 차이가 생겼는가를 알아보자.

바울 신학이란 것은 바울 서신에 나타나 있는 신학을 말한다. 바울이 직접 쓴 바울 서신은 대략 50년경부터 60년경 사이에 씌어졌다. 공관복음서 신학이란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신학을 말하는데, 공관복음서 중에서 제일 먼저 씌어진 마가복음서는 70년경에 비로소 씌어졌고, 마태복음서와 누가복음서는 80년경에 각각 저술되었다.

바울 신학의 연원과 그 계통은 비교적 정확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관복음서 신학이 어떤 계통을 통해서 전승되었는지를 밝혀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공관복음서가 집필되기 전에 나사렛 예수의 삶과 그의 가르침에 관한 여러 가지 자료들이 전승되어 왔다. 문제는 그것들이 바울 신학의 흐름과는 전혀 독립된 영역에서 전승되었는지 혹은 바울 신학권 내에서의 어떤 특수한 기능 담당자들에 의해서 전승되었는지 판가름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어쨌든간에, 획기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마가복음서 기자가 이러한 자료들을 이용해서 하나의 책으로 편집함에 있어서 '복음'을 쓰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마가복음서 기자는 그때까지 바울 신학이 말하는 '복음'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의미의 '복음'을 말하려 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신학사에 있어서 하나의 혁명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오늘 강연의 골자는 바울 신학이 말하는 '복음'과 공관복음서가 말하는 '복음'의 차이(?)점이 무엇이며, 어떠한 이질적인 사회적 상황에서 그러한 현상 이 생겼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직후인 주후 30년 후에 예루살렘에 그리스도교회가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이 때에 벌써 두 계열의 교회가 있었다. 그 하나는 히브리어(정확하게 말해서 아람어)를 사용하는 본토박이 유대인들로 구성된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희랍어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해외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을 가리킴)으로 구성된 교회이다.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과 예수의 친동생 야고보를 중심 인물로 해서 운영되었는데, 이들은 유대교적 전통을 비교적 고수하려는 점에서 보수적이었다. 이들은 자기네들의 교회가 유대교 내의 한 종파, 기껏해서 한 개혁적인 종파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여전히 유대교의 율법을 모두 그대로 지켜 야하는 줄 알았다. 안식일을 지키고 성전을 드나들고 할례를 반드시 받아야 되는 줄 알고, 유대교의 정결법을 준수하고 이방인과 상종해서는 안 되는 줄 알고 있는 등, 그들은 자기네들이 유대교 내의 일파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었지, 유대교에서 탈출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는 유대교적 전통 문제에 대해서 진보적이었다. 그들은 해외에서 오래 생활했던 경험으로 인해 사상이 매우 개방적이었다. 그들은 예수는 유대교의 전통을 끝마친 분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는 새 역사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유대교의 율법을 그대로 지킬 필요가 없다, 예수를 통해서 유대교의 율법은 폐기되었다, 그리스도교회는 유대교의 한 종파가 아니고 전혀 새로운 교단이다. 이것이 진보파 그리스도교회의 견해였다.

그런데 사도행전 6장과 7장에 기독교회사에 있어서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에 대한 보도가 있는데 이 스데반은 다름아닌 진보파인 디아스포라 유대인 교회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스데반은 모세의 율법이 예수를 통해서 무효화되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유대교인들에 의해서 순교를 당했던 것이다. 이 스데반의 사건은 스데반 한 사람의 순교로서 끝난 것이 아니고 그가 속해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 교회인 진보파 기독교회가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예루살렘에 계속 머물 수가 없어서 이방의 각 곳으로 피해서 흩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이방 선교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에 있던 진보파 기독교회가 박해를 받아 사방으로 흩어짐으로 인해서 이방인에게도 기독교의 복음이 전도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데반의 순교와 더불어 일어난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는 진보파 기독교회에만 해당되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중심한 보수파 기독교회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건재해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원시기독교라할 때에는 이 보수파 교회를 지칭하는 말인데, 이들은 60년대 말에 로마 정권에 의해서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으로부터 모든 유대인이 추방당할 때까지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으나 70년 이후에 있어서 그들의 신학적 전통의 명맥이 어떻게 전승, 변혁 또는 소멸되었는지 정확히 규명해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신약성서에서 하나의 커다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바울 신학의 중심 인물인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원시기독교회에 접한 사람이 아니고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이방에 세워진 이방 기독교회를 통해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신학은 역시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한다는 사상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바울은 과거 유대교인이었을 때 누구보다도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다. 율법주의는 인간의 구원은 율법을 행하는 데 대한 보상으로 획득된다는 사상이다. 율법주의는 곧 행한 만큼 받는다는 공로사상과 통한다. 그런데 바울은 개종 후에 율법주의를 철저히 배격했다. 구원은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값 없이 공짜로 주어진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났다. 구원이란 것은 이 사실을 믿는 데 있다. 이 예수는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분이다. 이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인간에게 구원이 값 없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관한 '기쁜 소식'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것은 곧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뜻한다. 이 상에 언급한 것을 요약해서 말한다면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의 골자이다.

루터도 이러한 바울적인 복음의 이해를 근거로 해서 종교개혁을 단행했고 우리도 지금까지 복음의 이해에 있어서 이러한(즉 바울과 루터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 받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에는 역사적 인물로 살았던 나사렛 예수의 삶, 교훈, 활동 등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다는 사실이다. 바울의 서신에서는 예수의 말씀, 비유, 교훈 또는 활동 등에 관해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사실 그는 고린도후서 5장 16절에서 육적인 표준을 따라 그리스도를 알지 않기로 선언하고 있다. 그가 자주 언급하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도 죽음 자체보다는 그 죽음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을 따름이다.

여기에서 누구도 답하기 어려운 하나의 물음이 생긴다. 즉 바울은 왜 역사적 예수의 전승(Jesustradition)을 전혀 도외시하는가?

바울은 예수의 전승을 몰랐기 때문에(왜냐하면 예수를 생시에 직접 대면 못했다) 그렇게 했으리라는 가설은 설득력이 없다. 보다 그럴사한 다른 하나의 가설은 바울의 활동무대의 특수성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즉 바울은 헬리니즘 문화권에서 선교했다. 갈릴리의 예수가 농경 문화권에 속했다면 헬레니즘 세계의 바울은 도시문화권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바울은 헬레니즘 영역에서 도시에서 도시로 전전하면서 전도했다. 이렇게 활동무대가 다름으로 인해서, 그리고 또 전도의 대상이 다름으로 인해서 그가 전하는 예수의 모습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으리라는가설을 세울 수 있다.

바울은 헬레니즘 세계의 여러 가지 철학사상 및 종교들과 대결하면서 예수를 구세주로 증거하려고 하다가 보니까 어느새 실제 생활과는 유리된 이론화 작업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다는 바울의 복음은 예수에 관한 이미 상당한 이론화의 산물이다. 여기에 소위 기독론(Christologie, 예수가 어떤 분인가에 대한 교리)과 구원론(Soteriologie, 예수가 인간의 구원에 어떤 작용을 하느냐에 대한 교리)의 발단이 엿보인다. 이론화하면 할수록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생명력이 감소된다. 따라서 이론화된 즉 개념화된 예수는 실제의 역사상의 예수와 거리가 멀어지게 마련이다. 이론화 작업을 통해서 바울은 교리화된 그리스도만을 전하게 되었다.

바울의 공로는 크다. 신화화된 영웅주의가 팽배하던 그 당시의 헬레니즘 세계 속에서 예수를 구세주로 증거하는 데 그의 이론이 주효했다. 인간적인 표준으로 볼 때 나사렛 예수의 미천한 출신, 변변치 못한 활동, 드디어는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죽음 등등을 내용으로 하는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전하다가는 바울의 전도는 처음부터 벽에 부딪쳤을지 모른다. 바울은 헬레니즘 세계의 언어를 사용해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구원의 이론(Heilslehre)과 대결하면서 예수의 의미를 전하자니까 자연적으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언급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공관복음서가 없었더라면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끝끝내 비밀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하여튼 바울의 전도를 통해서 헬레니즘 세계에 이방 기독교회가 점점 퍼져 나가게 되었다.

그러면 예루살렘의 기독교회는 어떻게 되었나? 주후 68년에 팔레스틴에서 범유대인의 반 로마운동이 전개되어 소위 유대전쟁이 일어났다. 70년에 예루살렘을 중심한 유대지방은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초토화되었고 모든 유대인은 거기서 추방되었다. 그 대신 이방인이 이민되었고 그 땅 이름도 팔레스틴(구약에 나오는 유대 민족의 원수인 블레셋 사람의 땅이라는 뜻)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예루살렘에 있던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산지사방으로 흩어져서 거지 신세가 되어 내 일의 보장도 없이 정처없이 떠다니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들에게 신앙상의 회의가 생긴 것은 당연하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부활을 했고 그를 통해서 새 세계가 왔다고 믿었는데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왜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고, 병들고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목마르고 굶주리는 이러한 형편없는 처지에 빠지게 되었나하고 회의하기 시작했다. 이런 극한적인 상황에서 바울의 기독론과 구원론은 아무런 위로가 안 되었다. 그런 설교는 현장과 맞지 아니했다. 바울 이론은 헬레니즘 세계를 정복하는 데는 큰 역할을 했으나 주후 70년 후의 거지 신세가 된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무런 위로를 줄 수 없었다. 여기에서 그들은 원래의 예수의 모습을 되찾아 볼 필요를 느꼈다.

2

마가복음이 씌어진 것은 유대전쟁이 끝난 직후인 70년경이다. 마가복음서 기자는 책머리에 중요한 새로운 선언을 하고 들어간다. 즉 1장 1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하고 복음이란 낱말의 의미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는 바울이 말한 이론화된 의미의 복음이 아니라, 이제 자기가 써내려 가려고 하는 내용 전체가 바로 복음이라는 선언과 함께 복음을 새로운 의미에서 전개시키고 있다. 마가 기자가 말하는 복음은 바울식의 예수에 관한 부분적인 교리가 아니고 역사적인 예수의 삶 전체를 다 내포한다. 예수의 말씀, 교훈, 활동, 태도 하나 하나가 다 복음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마가는 거지 신세로 유리하는 그리스도인 상황에서 되찾은, 새로 이해한 예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가복음에서는 '민중'이라는 용어가 즐겨 사용되고 있다. 예수의 주변에 모여든 이름 없는 사람의 떼거리가 곧 민중이다. 마가는 이 민중에서 주후 70년대에 거지 신세가 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았다. 예수의 주변에 모여든 제자들도 변변치 못한 민중의 일원이었다.

예수는 문동병자를 고쳐서 그의 잃어버린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회복시켜서 인간 세계로 되돌려 보낸다. 당시 사회에서 가난 때문에 또는 직업상 죄인으로 규정받아 소외당하고 있는 인간에게 죄의 용서를 선언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선언을 통해서 인권을 법 위에 둔다.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선언으로 유대교의 정결법을 무효화시킨다. 왜냐하면 정결법은 그래도 밥술이나 먹는 사람이 지킬 수 있지 가난한 민중들은 그런 것을 지킬 겨를이 없다.

예수는 민중을 단순히 동정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로 '내 형제요 내 어머니'라고 하면서 자기와 민중을 일치시킨다. 민중은 체제 밖으로 밀려난 존재이다. 그런고로 민중과의 연대는 곧 체제에의 도전이다.

예수는 인간을 사랑하되 영과 육의 구분없이 전체로서의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한 과정에 있어서 체제와의 충돌을 불사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체제의 옹호자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예수의 적대자들이다. 타락한 그리스도는 인간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교훈을 체제와 충돌없이 하기 위해서 인간을 영과 육으로 이원화시켜 놓고 편리하게 이용해 먹는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면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무시한다면 진짜 인간을 팔아 넘기는 행위이다. 또 그리스도가 피안적인, 내세적인 구원만을 역설하는 것도 인간을 비역사화시키는 그릇된 짓이다. 인간은 그 사회와 역사로부터 유리될 수 있는 추상적인 존재가 절대로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고통과 궁핍을 외면한 인간 구원이란 헛말이다.

예수는 인간을 그의 구체적인 곤궁으로부터 구출하려고 했기 때문에 언제나 체제와 충돌이 생겼다. 끝내는 예수는 사회질서(체제)를 교란시키는 위험 인물로 고발되어 십자가에 처형되고 말았다. 예수의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피땀나는 기도에도 하늘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마지막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라는 부르짖음에도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아니했다. 이와 같이 예수의 최후는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비참했다.

70년대에 거지 신세로 유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역사적 예수의 모습에서 승리한 영광의 예수에게서보다도 더 큰 위로를 얻었을 듯하다. 그들이 만약 바울의 기독론에서처럼 부활한 승리의 예수에 집착한다면 그들은 곧 이러한 물음에 빠질 것이다. "그 예수는 지금 무얼하고 있는가? 왜 우리를 이 모양 이 꼴로 내버려두고 우리를 돕지 않는가?" 그래서 그들은 원래의 예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보았다. 그럴 때에 예수의 주변에 모여들던 민중 속에서 오늘날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때 그 민중을 감싸 주던 예수의 따뜻한 몸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의 운명은 우리와 같이 비참했다. 아니 우리보다 더 철저히 버림받았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 마가는 지금 그들의 처지와 동일시된 예수의 모습을 그렸다. 마가는 지금 그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역사상의 예수에게로 그들의 시선을 돌리게 해주었다.

중요한 것은 원래 마가복음은 16장 8절로 끝맺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마가복음서에는 부활하신 예수의 현현보도가 없다. 부활하신 예수가 갈릴리 또는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났다는 전승을 마가가 몰랐을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는 그의 복음서를 16장 8절에서 끝맺었다. 16장 6-7절에서 마가는 무덤가의 한 청년의 입을 통해서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과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그의 약속을 남겨 놓고 있다. 마가는 예수를 단순히 어제의 사건으로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미래에의 약속을 남겨놓고 있다. 예수는 지금 거기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신다. 지금 우리는 거기까지 가는 도정에 살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비참하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날 희망을 안고 살고 있다. 이 희망이 있기 때문에 현실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이것이 바울이 그린 승리와 영광의 초역사적인 그리스도상과는 전혀 다른, 70년대의 그리스도인의 비참한 현실에서 되찾아진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다.

(『현존』 112호, 198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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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판권
제1부 절망 속의 희망
실락원 (창세 2-3장)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 (창세 4, 1-16)
카인의 후예 (창세 4, 1-26)
아브라함과 종주권 (창세 16, 3-12)
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제2부 지성소
바벨탑 (창세 11, 1-9)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지성소(至聖所) (출애 3, 5)
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믿음의 조상 (히브 11, 17-19)
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제4부 남은자의 믿음
다윗 왕권의 죄 (삼상 8, 4-18)
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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