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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리스도교의 자기혁명
1. 머리말

한국 그리스도교는가톨릭 200년, 개신교 100년의 역사를 기념했다. 개신교의 역사는 우리의 개항의 날과 함께 시작된다. 불교나 유교에 비하여 그 역사가 일천하나 그 위치나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미 물량적으로도 그 실세를 과시하지만 체질상 그 조직이나 기능이 어느 다른 종교보다 기동력이 있으므로 우리 민족사를 가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 그리스도교의 공죄를 밝히고 그리스도교의 뿌리(본질)을 재규명함으로써 한국의 현실에서 어떤 기여가 가능한가를 묻는 것은 민족 사회를 위한 오늘의 결단의 중요한 일면인 것이다.

2. 민족적 염원과 그리스도교

한국에 그리스도교가 상륙한 때는 조선조 500년이 그 막을 내릴 수밖에 없는 중병을 앓고 있을 때다. 중국 대륙의 세력을 유일한 국제관계의 대상으로 삼아왔었기에 세계에 대해서 무지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조용했던 이 땅에 갑자기 휘몰아친 제국주의 세력들의 각축전이 벌어졌을 때 조선조는 그것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능력이 없었다. 그것은 몰려든 강도들 틈에 옷벗긴 여인처럼 속수무책으로 자신을 될 때로 되라는 식으로 내맡기고 있었다. 신흥세력인 일본이 중국, 러시아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미국, 영국 등과의 식민지 분배 협상에서 우리 땅을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에 그리스도교가 등장한 것이다.

외세에 대한 민족적 울분과 대내적으로는 썩은 지배층에 대한 민중적 분노가 신천지를 고하는 새 소식을 쉽게 받아들이게 했다. 그리스도교는 민중에게 가을 숲의 불길처럼 퍼져나갔다. 특히 동학농민전쟁의 하부구조를 형성했던 눙민들, 사상의 신분체제로 된 유교의 봉건사회체제에서 천대받고 수탈당하여 거덜난 민중, 여인들, 백정, 갖바치, 마부 등과 같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은 이른바 천민층이 앞장서서 몰려들었다. 저들이 그리스도교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했다거나 설득당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홍수에 휩쓸린 자가 손에 잡히는 것을 거머쥐듯 자기 보호 본능과 염원이 저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한 것이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전통을 가진 서울 승동교회의 창시자 박성춘이 백정이었으며, 그의 아들인 박서양이 한국 최초의 외과의사였다는 사실은 그 단적인 증거다.

그리스도교는 서구 문명의 후광과 함께 등장했다. 특히 사상의 신분체제, 남존여비와 상놈들의 제도적 소외로 권리와 부를 독점한 양반 사회에서 시달리는 저들에게는 서구, 특히 미국의 사회 체제 중 민권과 평등사상이 대조적으로 부각되어 그것 자체가 바로 그리스도교의 본질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다.

선교사들은 '전도'의 효과를 노려 부녀자와 하부계층을 일차적 선교의 대상으로 설정했다. 그러기 위해서 성서를 한글로 번역하고 찬송가 집을 우리말로 엮어냈다. 한글은 '언문'이라고 천대받으므로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만 사용됐는데 그리스도교가 한글의 종교로 등장 함으로써 교회인이 된다는 일과 한글로써 자기정체를 찾고 연대의식화된 한국민이 된다는 것은 동시적이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민중들이, 신앙의 열정으로 한글을 깨치려는 열정으로 이어져서 그것이 곧바로 민권을 찾는 운동조직의 결정적인 용인이 된 것은 우리 민중운동사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다. 그것은 민중의 글로만 남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에 영향받은 개화파를 통해서 그리고 개화파 지식층을 거쳐서 전민족의 글이 되었다. 『독립신문』을 한글로 편 것은 한글성서의 보급으로 눈을 뜬 민중의 층이 매우 두터워졌다는 사실을 전제했다는 증거이다. 이로써 말의 현실과 글의 현실이 엄염히 구분됐던 우리 사회에 말과 글, 삶과 표현이 하나 되는 큰 혁신이 일어났으며 그것은 민중을 중추로 하는 민권운동의 출발점 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교의 전래와 더불어 이 땅에서 수많은 소경들이 순식간에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건 우리 민중의 갈망과 지혜에서 온 것이다. 선교사들이 뿌린 씨가 민중에게서 뜻밖의 다른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그리스도교 중 장로회가 절대 다수 세력으로 진출한 것은 우리 민권운동에 또 다른 길을 열어 놓았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몸으로 체험하고 시행하는 길을 열었다. 장로회는 선거를 통해서 선정된 장로들이 주인이 되는 체제다. 모든 일은 회의를 거쳐서 결정된다. 애당초 교회에는 하부계층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평등사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아직 일반 사회에 상존하는 귀천의식과 상관없이 천시당하는 계층이 도도히 자신들의 뜻을 펴고 선거라는 구체적 권리행사를 하며 지도자로 피선되는 경험과, 신분이 아니라 토론으로 말이 통하는 현실의 경험은 민중에게서 곧바로 민족적, 그리고 민중적 울분에 점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민권과 자주국, 이것은 둘이면서 하나의 염원으로 민중에게 정착되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독점하고 있던 교회 지도층은 이 민중의 염원에 역행했다. 저들은 조선조 말에는 군주적 보수정권과 타협하기 위해서 민권보다는 왕에 충성하는 애국운동을 그리스도교의 진리인 양 선전했으며, 일제하에서는 정교분리를 원칙처럼 내세우면서도 권력에 복종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도리인 양 천명하고 또 그렇게 가르쳐 왔다. 민권과 자주국에 대한 열망을 근본적으로 반역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그리스도교사에서 그 공죄를 규명할 때 반복된 치명적인 죄다. 로마제국과의 야합이 천년 암흑시대를 낳은 결과를 가져왔고, 사제계층의 독점물이 된 성서를 해방시켜 민중에게 돌려주고 만인사제 설을 내세워 교권에 전대미문의 포문을 연 공로를 지닌 루터의 종교 개혁도 그 운동을 지지하는 봉건세력을 등에 업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성서를 왜곡하고 이른바 두 나라설을 내세워 정교분리를 교리화함으로써 사실상 불의한 권력에 대한 싸움을 포기하거나 타협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하여 사실상은 그리스도교가 강자의 편에 서서 그 이데올로기 역할을 함으로써 예수를 반역하는 그리스도교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에서도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정책에 민중은 승복하지 않았다. 그것은 31봉기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그리스도교는 미국의 종교라는 인식은 우리 민중에게 적극적인 호감을 주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미국은 한국의 점령세력이 아니고 오히려 항일운동의 배경이 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요, 또 하나는 왕조가 그것을 금지하고 박해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미국은 그리스도교와 더불어 민권과 자주국을 위한 전선에서 친구일 것이라는 기대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 그리스도교의 유일한 선생들이기에, 저들의 가르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그리스도교 이해는 저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했으며 그래서 저들의 후광인 서구 문화의 우월성에 압도되었던 우리 민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대한 저들의 지시에는 응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지 30여 년, 선교사들의 가르침에 무조건 따르는 듯하던 민중들이 저들의 제동도 아랑곳없이 자주독립운동 대열에 총동원되었다. 31운동의 주역이 33인이 아니라는 견해는 사실이다. 그때 참여한 그리스도인들도 지도층이 아니라 민중이었다. 이것은 당시의 통계숫자가 입증하는 바다. 사람들 중에는 저들에게 그리스도교적 이념 정립이 뚜렷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비그리스도교적 운동이라고 과소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저들의 행동 이 바로 한국에 있어서의 그리스도교는 자기의 길을 제대로 걸었을 것이며, 그로써 우리 역사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31봉기의 무단적 진압 뒤의 한국 그리스도교 지도층의 방향은 철저하게 민중의 염원을 배반했을 뿐 아니라 역으로 피안적인 종교로 민중을 현혹함으로써 교회는 우리 역사 안에 있으면서도 맥이 통하지 않는 군살과도 같이 있으나마나 한 존재가 됐다. 민중을 배반한 교회는 역사의 뿌리를 잘린 상태였으므로 일제의 탄압 앞에 모래성처럼 무력했으며, 해방, 분단, 625, 419, 그리고 516이라는 커다란 민족적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으나 달팽이처럼 뼈 없이 자기 굴 안에 은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민중적 맥락이 아주 끊긴 것은 아니다. 박정권이 한일 국교정상화를 강행할 때 아직 죽지 않았다는 증거로 꿈틀거렸고, 70년대 이후로 민권운동에 적극 가담함으로써 분명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고 또 입증했다. 그러나 아직도 절대 다수는 선교사들이 뿌린 독물에 몽롱한 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들은 정통 고수라는 이름 밑에서 보수의 기수로 자처한다. 무엇이 정통이며 수호해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한국 그리스도교 개혁을 위한 순서일 것이다.

3. 그리스도교 뿌리의 재확인

그리스도교의 뿌리는 예수와 그 민중의 운동이다. 그 예수는 하늘에서 떨어진 이가 아니라 역사에 뿌리를 갖고 있다. 예수의 뿌리를 밝히고 그 위에서 예수운동을 다시 봄으로써 한국 그리스도교 비판의 전거를 삼아야 한다.

1) 야훼신앙의 형성

야훼신의 신앙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 형성과 직결된 사건이다. 성서를 평면적으로 읽으면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종족이 이집트의 군주 제국 밑에서 억압받다가 마침내 봉기하고 그것에서 탈출하여 광야 40년의 배회 끝에 그들의 약속의 땅인 시리아-팔레스티나지역인 '가나안' 땅을 정복 정착하여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세웠으며, 그 추진력은 야훼신에 대한 신앙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성서의 사회분석적 연구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당시 이집트는 '바알'이라는 신을 내세운 제국으로 중동아시아 일대를 제패하고 있었다. 시리아-팔레스타인도 그 세력권에 놓였다. 이 때에 '아비루' 또는 '하비루'등 br의 어간을 가진 이름으로 통칭된 한 사회계층이 있었다. 성서에는 이스라엘이 히브리라고 호칭된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민족의 이름이 아니라 계층을 지칭한 것이었다. 이집트가 군대를 파견해서 이 계층을 토벌했다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오는데 바로 그 계층과 이집트를 탈출한 일군(一郡)이 같은 부류였다. 히브리에는 농노와 고용병, 거덜난 가난한 자들, 또는 어떤 범죄로 그 사회에서 탈출하여 유랑하는 사람들 등이 속해 있었다. 저들을 토벌해야 했다는 것은 저들이 집단화한 저항세력을 이루고 있었음을 말한다.

가나안 지역에 적어도 30여 개의 군주 도시국가가 있었다. 각 군주는 자기 안보를 위해서 무사들을 봉신으로 삼음으로써 농민들은 이중적으로 수탈당하는 농노가 되었다. 저들은 마침내 군주들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가나안 내의 히브리와 이집트에서 탈출해서 잠입해 들어온 자들과 어떤 과정에서 연결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공동 이익을 위해 쉽게 연대한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저들은 부족동맹을 결성하여 집단으로 군주들에게서 자신들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이 부족동맹이 바로 이스라엘이 된 것이다. 성서에서 12지파라는 것이 바로 이 동맹의 단위를 지칭한 것이다.

군주들에게 저항하고 새 공동체를 형성한 저들이 인간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군주국을 용납할 까닭이 없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민중의 공동체였다. 그러나 주변의 군사화한 군주국들과 싸우기에는 약점이 많았다. 쉽게 자신들의 손으로 군주체제 채택의 유혹을 받을 만한 처지에 있었다. 그럼에도 평동사회를 오랫동안 고수하게 한 것은 야훼신에 대한 신앙이었다. 저들은 일찍부터 '야훼신만'(mono-yahwehism) 신이라는 신념을 굳혔다. 그것은 다른 종교들과의 대결에서 온 것이 아니라 바로 군주제에 대한 저항정신과 직결된 신조였다. 이스라엘 민족의 신조의 요약인 십계명이 야훼신 외에 어떤 신도 섬길 수 없으며 어떤 우상도 만들지 못한다는 계명으로 시작되는 신앙고백은 바로 군주제의 절대 거부가 일차적 조건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 야훼신은 모든 것에 개입한다. 체제의 고정화를 배격하는 활력이었다. 비록 유사시에는 동맹에서 대표를 뽑아 지휘권을 주고 군을 동원해도 상설된 지배기구는 거부했으며, 상존의 군사체제도 거부했다. 이같이 정치사회적 조건과 직결된 '야훼만'의 신앙이 변질되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군주국으로 강제된 것과 때를 같이한다. 완전한 군주국이 된 것은 기원전 1000년경 수립된 다윗 왕조 때부터다. 다윗은 무인으로서 용맹과 교활로 유대 지방의 왕이 되고 숙원이던 이스라엘을 이스라엘의 숙적인 블레셋 군주국과의 협공에서 가로챔으로써 통일 국가를 이룩했다. 그는 군주의 권위를 구축하기 위해 한 군주도시를 약탈하고 사령화(私領化)하여 그곳을 왕도로 삼고 궁궐을 세웠으며, 계속적인 정복전쟁과 함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고대 히브리의 야훼신앙의 상징인 '법궤'를 그곳에 안치하여 성전을 세울 근거를 마련했다.

이것이 예루살렘이다. 야훼신이 다윗에게 납치된 것이다. 그의 아들 솔로몬에 의해 세워진 성전은 야훼신을 감금한 감옥이 된 셈이다. 이로부터 예루살렘은 권력과 종교가 야합하여 민중을 억압, 착취하는 현장이 된 것이고, 야훼신은 착취의 수단이 되었다. 그것은 이미 이스라엘의 본디 신은 아니었다. 다윗은 그래도 이스라엘 전통을 고려 해서 유대 지방 출신과 맞먹는 권좌를 이스라엘계에 주었으나 솔로몬에 이르러서 이스라엘계를 완전히 숙청해버린 것은 이스라엘의 뿌리를 제거하려는 발악이었다.

2) 예수운동

맨 처음 출현된 복음서인 마가복음의 "세례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는 갈릴로 가다"(1:14)라는 기록은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예수의 공생애의 출발은 세례 요한이 로마의 앞잡이인 헤롯 안티파스에게 정치범으로 체포된 것과 때를 같이 했다는 것이다. 그의 공생애 출발은 정치적인 동기와 직결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갈릴리로 갔다. 그곳에는 두 가지 중요한 뜻이 있다. 하나는 그곳이 바로 요한을 체포한 안티파스의 지배영역이라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지역적으로 그곳이 고대 이스라엘에 속한 곳이란 사실이다. 그곳은 예루살렘(유대) 시각에서는 '이방인의 땅', '그곳에서는 선한 사람이 날 수 없다'고 낙인 찍힌 소외지역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반권력투쟁의 자세임을 잘 나타낸다. 그는 '하느님 나라 도래'를 선포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혁명의 선언이다. 그가 찾아간 대상은 갈릴리의 민중들이었으며, 철저히 그들 편에 섰다. 이른바 '죄인'들의 친구로 지목된 것이 그의 행태를 반영한다. 그는 새로운 신론을 전개하지도 않았으며 어떤 새로운 종교를 설교하지도 않았다. 아니 기성종교의 심판에서 민중을 변호했으며, 그런 종교를 설교하지도 않았다. 아니 기성종교의 심판에서 민중을 변호했으며 그런 종교가 맨 쇠사슬을 가차없이 벗겨버렸다. 안식일법정결법 등과의 정면 충돌이 그 예다.

갈릴리는 민중(암 하아레츠)의 현장으로 성격화되었다. 로마제국의 식민지로서만이 아니라 로마의 앞잡이인 식민지 세력에 붙어먹는 자기 민족에 의해 고혈을 빨리고 있었다는 의미에서 전형적인 민중의 장이다. 그는 그곳에 새로운 공동체의 씨를 뿌리고는 예루살렘으로 돌진했다. 거기서 그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저주하고 로마와 예루살렘파의 야합에 의하여 십자가에 처형됐다. 십자가 처형은 식민지 정치범에게 가하는 로마의 가장 잔악한 처형법이다. 그러므로 그의 죄목은 '유대의 왕'으로 되었다.

이상에서 우리는 그가 이스라엘의 야훼신앙에 뿌리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갈릴리를 그의 활동무대로 한 것에서부터 '히브리'와 계보를 같이하는 민중(오클로스)과 더불어 살다가 민중 착취의 상징이요 본산인 다윗 성 예루살렘으로 돌진한 것은 민중 편에서, 그들의 한을 안고 로마의 권력과 신의 이름까지 등에 업고 인간 위에 군림하는 지배권력을 죽임을 당하기까지 거부한 것은 바로 고대 이스라엘의 '야훼만'의 신앙과 같다. 히브리를 해방한 야훼신을 다윗 성에서 해방함으로써만이 민중이 해방될 수 있고, 그 민중이 중추가 되어 신천지(하느님 나라)를 이룩할 것이라 전망했다고 본다면 그의 운동은 미래지향적(오는 그 나라)이면서 동시에 뿌리(이스라엘의 고대 사회)에로의 회귀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 전거가 있다.

유대 전통에는 예루살렘을 성도(聖都)로 삼았을 뿐 아니라 장차 올 메시아도 반드시 예루살렘에 그리고 다윗의 후예로서 온다는 것이 교리화 되어 있었다. 이것은 다윗 왕조 사가(史家)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뿌리깊은 이같은 권력지향적인 전통이 예수 이후 그리스도교에서 마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예수가 다윗의 후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의 계보를 다윗과 결부시키는 일, 그의 탄생설화를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과 결부시키며 그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호칭하는 예 등이 있다. 그러나 맨 처음 씌어진 마가복음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 예수는 다윗과도 예루살렘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더 나아가 우리는 메시아가 다윗의 후예임을 정면으로 부정한 예수의 발언을 볼 수 있다. 예수의 적대자인 예루살렘파들이 메시아는 다윗 후예라는 것을 예수에게 재확인할 것을 요구할 때 예수가 "다윗 자신이 그(메시아)를 주라고 불렀는데 그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마가 12:37)라고 한 반론이 그것이다. 군주적 권력과 폭력에 의한 민중지배를 정면으로 거부한 예수 발언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사람들의 집권자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고관들은 세도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크게 되려고 하면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누구든지 주인이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가 10:42-43). 이 이상 기존의 권력구조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기대할 수 없으며, 그리하여 새로운 세계는 종이 주인이 되는 사회여야 한다는 혁명적인 발언은 고대 이스라엘과 뿌리를 같이하는 구체적인 예가 된다.

이와 관련된 또 하나의 발언이 있다. 유대체제에서 안식일법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그것은 원래 노예 등 강제로 남을 위해 노동 해야만하는 계층을 위해 만들어진 민중 위주의 사회법이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창조설화로 뒷받침해서 절대화했다. 그러나 예수 시대에는 그것이 역으로 이용되어 민중을 구속하되 사형에까지 처할 수 있는 비중을 차지했다. 그것은 안식일에 쉬라는 본 뜻을 무시하고 안식일법을 조문화하여 그대로 지키지 못하면 엄벌하거나 죄인으로 소외시켜버림으로 계층형성의 원인이 되었다. 그날 그날 호구지책에 시달려야 하는 가난한 층이나 병자 등과 같은 무력한 층은 바로 안식일 법을 주저없이 침범했다. 그가 안식일법을 법한다는 적대자들의 항의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가 2:27-28)고 응수했다. 이 발언은 민권 선언이다. 어떤 제도든지, 그것이 비록 신의 이름으로 실시되는 것이라고 해도 사람을 구속할 수 없다는 선언이며, 무엇이든지 사람을 위해 있을 때 비로소 그 존재 이유가 인정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것은 언제든지 철폐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것은 종교교리의 싸움이 아니라 인간과 권력체제와의 싸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는 일찍부터 기득권 수호를 위한 교리가 만들어지고 중세기에 와서는 그것을 기준으로 이에 반하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심판하는 권한을 고집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제도교회는 자신의 뿌리도 잃었으며 그 본래의 정체성도 상실했다. 그 대신 기존체제 안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각도에서 추상적 언어로 민중을 유린해왔다. 이런 교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 나오는 대심판관처럼 만일 예수가 다시 온다면 즉각 추방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는 체질이 되고 말았다.

4. 한국 그리스도교가 해야 할 결단

먼저 강조해야 할 것은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자체의 위치를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그리스도교는 밖으로 국제적인 관계에 있어서나 안으로 남북대화나 분단의 극복이라는 민족적 과제 앞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적 결단에 있어서도 가장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밖에서 인정하든 말든 이것은 그 실세이다. 그것이 제 본분을 다하면 국제관계의 좋은 교량역할을 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외세침투의 거점이 될 수 있다. 분단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그 수로나 체질에 있어서 한국의 정체성에서 뺄 수 없는 요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북대화와 화합에 있어서 근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고, 반대로 재통일을 방해하는 암적 존재도 될 수 있다. 또 한국의 옳은 질서를 위해 건설적인 압력단체의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불의한 정권의 들러리 역할을 함으로써 배반할 수도 있다.

근래에 100만을 상회하는 대규모의 그리스도인들의 집회가 자주 있어 그 동원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러한 매머드적 대집회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 두는 이가 없었다. 그것은 대규모의 운동경기나 인위적인 축제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런 '취미'를 가진 자들의 축제 이상의 의미가 없고 우리 민족 현실과 별 상관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00만이 한 자리에서 이 민족 현실에 대한 어떤 의지를 표명하는 경우라면 역사에 기록할 만한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 집회의 주최자 자신들도 또 밖에서 보는 이들도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리스도인 자신의 자기비하요 밖에서 보면 민족정력의 소모행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이 땅의 교회가 예수의 대열에서 단절된 증거가 아니겠는가! 이에 대해서 이 땅의 양식(良識)은 눌린 자의 인권을 위해 자기 몸을 내대는 한줌밖에 안 되는 소수의 그리스도 인들의 움직임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정부들도 긴장한다. 그것은 우리 역사적 현실에서 가장 예민한 부분에 개입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치를 의식한다면 그리스도교는 자기혁명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 지난 100년에서 얻은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100년을 천만을 육박하는 신자를 얻은 것을 놀랄 만하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 없는 자체 능력의 결과라고 간주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것은 우리의 정치사회경제적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주류로 자치하는 대다수는 역대 정권과 타협하여 그 비호를 받아 성장했으며, 이른바 근대화라는 바람에 휘말려 급변하는 사회과정에서 본향을 잃은 수많은 실향민(피난민, 이농 인구)들이 다급하게 선택한 길이 교회로 가게 했다. 그것은 사회병리와 깊은 관계가 있다. 이렇게 해서 모여든 교인 들은 우리 국민들이다. 그런데 저들에게서 걷는 헌금을 가지고 수십, 수백 억의 교회당을 짓고 버스, 자동차들을 사들여서 교인 쟁탈전을 하는 것이 응분의 권리라고 생각하는가? 아직도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농민과 노동자들을 눈 앞에 두고 그같은 엄청난 돈을 교회당을 짓는 데 투입하면서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은 기득권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기득권을 주장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한국 민중에게 큰 빛을 지고 있다. 그것은 이 민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에 첫 단계에 모여들었던 민중, 그리고 31봉기에 총동원되어 외치던 그 원천적인 과제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뿌리인 예수와 그 운동의 길이요, '야훼만'을 고수하던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에로의 회귀의 길이다.

둘째, 교회는 '나'에게서 '너'에게로 그 중심을 옮겨야 한다. 그것은 섬김을 받기 위한 존재가 아니요 섬기기 위한 존재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류에 저항하는 길밖에 없다. 한국 교회의 보수성은 바로 주류에 가담하겠다는 의식이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서도 정치사와 마찬가지로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긴 자들이 주류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주류란 바로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권력의식이다. 정치적 표현을 빌면 여당이다. 이른바 정통을 운위하는 것도 바로 이 주류에 충성한다는 뜻이다. 주류가 내세운 교리는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에 얻은 권리이지 그것이 바로 진리라는 말은 아니다. 힘이 곧 진리라는 도식을 인정한다면 이른바 정통교리는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주류가 된 그 힘은 진실에서 얻은 힘이 아니라 정치권력에 지원받은 힘이 큰 몫을 차지했다. 그러므로 이른바 주류는 정통성의 담지자로 자처하면서 그 권리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군림할 뿐 아니라 폭력을 동원했다. 그 밑에서 참 진리는 침묵당했으며, 많은 진실과 양심들에게 이단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그들은 처형되었다.

이같은 흐름은 전혀 처형권이 없는 처지에 있는 교회 내에서 다른 형태로 그대로 흐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비라사이주의라는 것이다. 바리사이주의에 생명보다 저주가 있었다면 바로 주류의식이 그러하다. 예수가 저들에 의해 이단자로 처형되었던 바로 그 전통주의자가 진리를 처형할 수밖에 없다. 중세 로마 가톨릭은 성서를 차압하고 진실을 처단했다. 루터도 저들에 의해 이단자로 추방됐다. 그러나 봉건주의 권력을 등에 업고 싸웠던 루터나 스위스의 정권을 손에 잡은 칼 빈 자신도 '성공'과 더불어 주류의식에 사로잡혀 이단자를 규탄하고 처단하며 민중의 절규를 저주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그 방법이나 정신이야 어떠했든 승리자의 편에 서는 것을 진리 옹호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놀랍게도 장로회는 예수보다 칼빈이, 루터교는 루터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며 이단자 규정의 심판관이 된다. 이런 주류에 참 생명이 있을 수 없다. 아니, 놀랍게도 바로 주류에 의해서 처단된 '이단자' 대열에서 예수의 기본정신이 면면히 전승되고 있다. 한국 교회는 더 이상의 범죄를 짓지 않고 참 예수운동에 가담하려면 방법상으로 이단자들의 계열에 과감하게 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셋째, 한국 그리스도교의 현주소는 미국은 물론 아니요, 서구도 아니요, 그렇다고 팔레스틴도 아니며 어디까지나 한국이라는 점이다. 그 사실의 재확인과 더불어 오염된 체질개선이 시급하다. 선교사들이 상륙할 때 그리스도교 자체와 서구 문명이 혼동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수용은 사로 비한국인화라는 어처구니없는 도식을 낳게 했다. 그리스도교는 한국의 역사, 한국의 문화적 맥락에서 떠나 서구 문명화된 그리스도교권에 이식된 것으로 착각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유 전통 중에 특히 민중문화 따위를 이른바 '미신'이니 '우상숭배'라는 이름 밑에 마구 처리해 버렸다. 이런 과정에서 그리스도교는 그 발생지와 아무 상관도 없는 '서양 종교'라는 규정을 받게 됐고, 따라서 역시 외국에서 발생한 불교나 유교는 한국 것인 양 이것과 대조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역사 안에서 물 위에 뜬 기름 같은 위치에 있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진리 자체는 내 것 네 것이 있을 수 없다. 진리는 만인 공유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눈, 그것을 파악하고 사고하며,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의해서 내 것 네 것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를 거쳐 유럽과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그들의 표현으로 정착되어 자기 것을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가 주체가 되어 우리 눈으로 우리 현장에서 우리의 방법으로 재해석하고 표현하면 우리 것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정서, 우리의 역사적 유산, 우리의 가락, 우리의 멋을 갖고 있다. 그것은 사대주의에 물든 지식층에게서보다 민중 속에서 원래적인 것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 그것이 왜 미신이며 우상숭배인가? 지금 한국 교회가 도입한 멋이나 가락이나 사고는 어디까지나 서구의 것이지 예수의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교회가 사용하는 멜로디로부터 교회당 건축에 이르기까지 서구 표현의 아류일 뿐이다. 이것은 서구 숭상이지 그들이 믿는 예수에 대한 진실한 표현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가 결단해야 할 것은 탈서구화다. 우리는 더 이상 서구를 매개로 예수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없으며, 우리 감정을 저들의 가락과 멋으로 표현할 이유도 없다. 탈서구화! 이것은 예수와의 관계를 보다 가깝게 단축하는 길일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탈서구화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이원론의 오염에서 탈출하는 일이다. 영과 육, 차안과 피안, 정교분리론 등이 그것이다. 루터는 두 나라론을 교리처럼 내세웠다. 교회가 정권의 영역을 분담 하자는 발상이다. 이것은 진리와 무관한 정치협상이다. 그것은 교회도 교권으로써 정치권력과 맞먹는 역사를 가진 서구 역사의 고민에서 모색해낸 타협안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과 피안을 담당하고 정부는 육과 차안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관념상으로는 이분화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현장은 차안뿐이다. 정권은 사실상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어떤 불의를 자행해도 종교는 관여 하면 안 된다. 물론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교회의 기득권을 침해하지 않고 보호해 주는 것이 그것이다. 이 따위 이분법적 발상이나 제도는 서구 역사가 빚어낸 것이고 그리스도교와 아무상관도 없다. 성서는 그런 이원론을 모른다. 구약성서에는 통합적 인간만 있을 뿐 영과 육으로 분화할 수 있는 존재를 모른다. 또 피안이라는 것도 모른다. 있는 것은 바로 이 역사뿐이며, 이 역사가 유일한 무대다. 예수도 전체로서의 인간,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대로했기 때문에 정치권력과 충돌했지 영이나 피안만을 설교했더라면 그런 갈등이 있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헬레니즘 영역에서 전개됨으로써 영이니 육이니 하는 인간학적 개념이 사용된다. 바울에게서 그런 것을 본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개념을 구사하면서도 이원론을 극복 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 결과로 사람을 육도 영도 아닌 '몸'(soma)이라는 개념으로 포괄했다.

왜 우리가 서구 역사가 낳은 기형적 유산을 몰려 받아서 자기 책임을 도피해야 하는가? 동양에는 서구식으로 영원의 평행을 긋는 이원론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성서의 세계와 가깝다. 이웃은 구체적 존재다.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의 역사적 조건들을 전제할 때 구체적이 될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전장에 나가서 쓰러져 죽는 사람의 영혼이나 빌어주는 따위가 사랑인가! 아니면 그를 죽게 하는 전쟁 자체를 막는 것이 참 사랑인가? 서구전통은 그리스도교의 사랑을 내세우면서도 자기들 정권이나 상인들이 피선교지역에서 어떤 만행을 감행해도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것은 이원론이라는 마술이 만든 연막이 있어 가능했다. 이같은 이원론에 한국 교회는 크게 오염되어 파렴치하게 되었다. 그것은 수십 수백 억원짜리 집을 지으면서 사랑을 거침 없이 반복하여 설교할 수 있는 것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그리스도교의 뿌리로서 고대 히브리 공동체의 '야훼만'의 신앙과 그리고 예수운동의 정체를 밝힘으로써 변질에서 반역으로 치닫는 그리스도교를 보는 거울로 삼았다.

한국의 그리스도교도 야훼신을 유일한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여 예배의 대상으로 한다. 그런 뜻에서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공동의 신앙을 가졌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한국적이라고 하거나 한국의 그리스도라는 표현 자체에 대해서 민감하게 거부한다. 어리석은 반발이다.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의 '야훼만'의 신앙고백이 그들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과 직결되었으며, 예수의 '야훼만'이 로마 치하의 갈릴리 민중의 해방을 위한 싸움으로 직결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한국적인 것이 왜 거부되어야 하나! 고대 이스라엘의 히브리가 '야훼만'을 부르짖던 상황이나 예수의 '야훼만'의 신념이 갈릴리 민중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로 집중되었어야만할 상황이 우리의 오늘의 그것과 같은 것인 한, 거기에는 공동의 목표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느님만'의 고백은 우리의 고유한 역사적 정황에 따라서 내용상 달라져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과 같은 민족적 분단상황 아래 일어나는 정치경제적 부조리 아래에서 신음하는 민중의 절규를 외면한 '하느님만'은 결국 종교간의 경쟁에서 일어나는 독선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오늘 이 민족은 민족통일만이 지상의 과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 마당에 그 길을 방해하는 온갖 장애물과의 싸움과 '하느님만'의 고백이 동전의 양면처럼 밀착 될 때 한국 그리스도교 자체도 살고, 따라서 그것은 이 민족을 살리는 종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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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기다리며 (로마 1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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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보내는 글 (요한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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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극복 (요한 4, 21-23)
다 팔아 보화를 산다 (마태 13,44-46)
평화와 칼 (마태 10, 34-39)
좁은 문 넓은 문 (마태 7,13-14)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루가 11, 3)
기도의 사건화 (루가 18, 1-8)
인간봉화(人間峰火) (마르 8, 31-38)
"십자가를 지고"의 뜻 (마르 8, 34-38)
신의 침묵은 심판이다 (로마 1, 18-32)
복음의 전진 (필립 1, 12-18)
사건의 신학 (고후 11, 23-33)
 
제3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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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一세상의 생명 (로마 8, 18-28)
문 두드리는 소리 (묵시 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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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행동 (루가 20, 8)
현존의 그리스도 (히브 1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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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파에서 본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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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한국의 민족 감정
민족 감정
아키히토 방한과 민족 감정
히로히토가 엄존하는데
민족적 염원
'조국 근대화'와 민족문화
민족 정신 문화 불식시키는 외래 종교
   
제3부 한국의 민족 운동
3•1절과 민족사적 고백
8•15와 해방
3•1 운동과 기독교
민중 운동의 새 기원
4•19혁명과 민주주의의 갈망
4•19의 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4부 한국 민(民)과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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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의 한국 교회의 위치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주체성과 신앙
더 이상 종교는 침묵일 수 없다
   
제5부 민족 자결
민족 자결의 민족주의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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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분단과 평화
해방은 통일로써만
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이 땅에 평화를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통일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씨알과 민족 통일
   
제8부 평화의 길
평화와 칼
아시아 평화와 일본
함석헌의 평화 사상
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평화의 실현
분단 극복과 평화
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판권
제1부 절망 속의 희망
실락원 (창세 2-3장)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 (창세 4, 1-16)
카인의 후예 (창세 4, 1-26)
아브라함과 종주권 (창세 16, 3-12)
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제2부 지성소
바벨탑 (창세 11, 1-9)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지성소(至聖所) (출애 3, 5)
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믿음의 조상 (히브 11, 17-19)
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제4부 남은자의 믿음
다윗 왕권의 죄 (삼상 8, 4-18)
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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