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이 때가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야 할 때가 벌써 왔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던 그 때보다도 구원이 더 가까와졌습니다. 밤은 깊고 낮이 가까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암흑에 속한 행위를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낮에 행동하는 사람처럼 단정하게 행합시다. 연락과 술주정, 음란과 방탕, 시기를 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읍시다. 그리고 육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마음을 쓰지 맙시다.

바울은 구체적인 말이 없이 여러분은 이 때가 어느 때인지를 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지금은 깊은 밤이라는 암시적인 표현을 합니다. 이것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몸소 당하고 있는 역사적인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로마 정권은 정치적인 이유로 유대인들을 학살. 추방한 일이 있는데 그리스도교인들도 유대교의 한 종파로 간주되어 박해를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네로가 통치하던 로마 시대에 불이 나서 혼란이 일어났을 때에 제국의 학정에 흥분한 시민을 무마하기 위한 희생의 제물로서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전설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제국은 지중해변 일대와 소아시아, 거의 오늘의 유럽 전체를 석권한 후에 정치 군사적인 외적 승리에 도취하여 점점 제왕권을 강화함으로써 마침내 신격화의 도상에 있었습니다. 조직상의 형태로는 민주적인 의회라는 것이 있기는 했지만 단지 제왕의 손발 노릇이나 하는 꼭두각시였고, 평의원들은 국정에는 관심이 없고 제왕의 그늘 아래서 사치와 방탕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느는 것은 정치력 군사력밖에 없고 모든 권력은 한 사람 제왕의 손에 쥐어져 그 지위는 스스로 신격화할 만큼 비대해졌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순교와 더불어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가혹한 박해를 가할 암흑의 세력이 점차 짙어지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며 여러분도 지금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이 말씀을 합니다.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극단의 궁지에 몰리면 마침내 폭력으로라도 궐기, 저항해서 죄없는 피를 흘릴 가능성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권고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결코 무모한 저항을 명령하거나, 폭력과 정치적인 술수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권력에 복종하라고 권고합니다. 구체적으로 권력이 명령으로 조공이나 세금 … 하여간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의무는 순순히 준행하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로마서 13장 1절 이하에 있는 이 말씀을 마치 그리스도교의 국가관의 거점처럼 논의해 왔지만 전체의 흐름으로 봐서 그런 것으로는 해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로마정권에 대하여 증오에 찬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지혜를 가르쳐 준 것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이제 흥분과 분개가 절정이 이를 상태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분개를 통한 유혈의 비극을 안중에 두면서, 보다 높은 차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취하여야 할 기본적인 자세가 무엇임을 여기서 명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유혈의 비극을 피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바울의 권고는 결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삶을 연장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비굴한 복종을 뜻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확고한 신앙이 있어서 이같은 권고를 양심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낮이 가까운 것처럼 오늘의 암흑을 뚫고 다가오는 내일의 빛을 앞당겨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삶을 바라보는 두 가지 눈이 있습니다. 가령 아이들이 자란다고 할 때에는 과거를 기점으로 보고 계산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그 기점을 인간의 종점 혹은 미래에서 볼 적에는 사실은 커가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그 삶이 짧아지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약속된 만날 날을 기다리며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 약속의 날이 가까워 오면 동시에 그와 만났다 헤어질 날도 그만큼 가까워진다고 앞당겨 생각하고 슬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만남의 기쁨은 헤어짐의 슬픔과 두려움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밤이란 지나간 낮에서 볼 때에는 점점 깊어가는 것이지만 다가올 새벽이나 내일 아침을 기점으로 볼 때에는 그만큼 새 날에 가까워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일을 기점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비록 모든 것이 막힌 것 같고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도록 어둠이 짙은 것 같아도 그 암흑의 틈새로 바치는 여명을 앞당겨 봄으로써 새롭게 숨 쉬고 사는 것입니다.

셀리(Shelly)는 『서풍에 부치는 노래』라는 그의 시에서 찬바람이 일어 죽은 듯이 얼어붙은 앙상한 삶을 슬퍼합니다.

기껏 웃어본다는 그 웃음 밑바닥에는 고통이 도사렸고
한껏 기쁨을 부르는 노래 속에도
언제나 한없는 슬픔이 깔려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가리켜 인생의 가시밭에 엎드려 피를 흘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거기 머물지 않고 다시 외칩니다.

겨울이 왔으면 어찌 봄이 멀었으리오.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이 시는 현재의 삶에서 고뇌하고 신음하다가 봄이 오는 것을 앞당겨 보고 새로운 삶으로 소생하는 그 자신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는 새 봄의 확신 속에서 서풍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네 울림이듯 네 거문고로 만들어라
내 것이 저 나뭇잎처럼 떨어지기로 어떠냐
힘찬 네 조화의 아우성은
그 속에서 깊은 가을 소리를 뽑아내지 않겠느냐 …
시들어진 나뭇잎을 날려버리고
다시 새 잎으로 살려내듯이
내 죽은 마음을 누릿가에 날려버려라
그리고 내 부르는 노래로
꺼지지 않은 아궁이에서
재와 불꽃을 날리듯
내 언어를
인류의 마음 속에 흩어주렴아
내 입을 거쳐서 잠든 이 땅 위에
예언의 나팔소리를 들려다오
오, 바람아!

봄이 올 것을 앞당겨 보고 이를 확신한 그에게는 오히려 이 찬 바람이 새 생명을 재촉하는 자장가로 들렸던 모양입니다.

언젠가 알프스의 고지에서 나무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나무들은 모두 강풍에 휩쓸려 경사가 된 채 비스듬이 누워 있었습니다. 눈은 무겁게 나무를 덮고, 거센 바람이 끊임없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휘며 지나갔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 나무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나무대로 비록 알프스의 산꼭대기에 있을지라도 겨울을 위한 준비를 합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화려하던 여름 철의 잎들은 노랗게 물이 듭니다. 그것은 모든 영양분을 본체로 빨아들이는 작용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강풍과 싸늘한 밤과 겨울을 이겨 내기 위해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털어버리고 내실화 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이쪽 저쪽으로 휘면서도 오히려 뿌리는 그것을 계기로 점점 강하게 대지를 파고듭니다. 겨울이 깊어가면 마치 불을 향한 부채질처럼 바람을 이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에 다 죽은 듯이 자기를 완전히 숨기고 있는 나무도 때가 되면 아직 기온이 내리지 않았고, 아직 눈 속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여전히 굳은 목피를 뚫고 흡사 기적과도 같이 새 생명의 움을 솟구칩니다.

우리의 삶에도 밤이 있고 겨울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다가오는 밤이나 겨울에 쓰러져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활고나 혹은 마음의 고통 때문에 스스로 목을 조르고 죽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밤은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낮이 올 것을 믿는 사람은 그러지를 않습니다. 그렇다고 멍청이 앉아 내일이 오기만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밤의 위협과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 밤을 이용합니다. 본문에선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주정을 하지 말고 음란과 호색을 하지 말고 싸움과 시기를 하지 맙시다"고 권고합니다. 즉 깊은 밤을 낮이듯이 살자는 말입니다.

낮을 낮처럼 사는 것과 밤을 낮처럼 사는 데는 차이가 있습니다. 밤을 낮인듯이 사는 사람의 삶은 기다림의 삶입니다. 새 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새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밤을 이용하며 밤을 모든 때 묻은 것 더럽고 추하며 사치와 낭비로 물든 악습들을 훌훌히 떨어버리는 계기로 삼습니다. 겨울에 나무들이 서풍을 이용해서 자기 스스로는 떨어버릴 수 없는 낡은 잎들을 날려 버리듯이 지혜있는 사람은 역경에 처해 있을 때 삶을 거추장스럽게 하는 장애물들을 말끔히 정리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때묻은 삶이나 인습에 사로잡힌 그릇된 타성을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변화없는 일상성은 정직하고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을 언제나 흐리게 합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오고 시련이 오면 이제까지 자연스럽게만 생각하였던 삶이 그 뿌리부터 흔들립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역경에 처할 때 흔들리는 삶에 불안해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자기의 삶을 다시 검토하고 스스로는 제거하기 힘겨웠던 거추장스러운 삶의 장애물들을 말끔히 정리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우리는 욕심이라는 것의 노예가 되어서 내게 주어진 것에 대한 참 의미와 가치를 보지 못합니다. 언제나 보다 더 좋은 것만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그 반대편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시련이 삶을 휘몰아치는 어두운 밤 같은 날에는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내 삶의 전체이듯 귀하고 중하게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도 알게 됩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방탕과 술주정과 음란과 호색, 투쟁과 시기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막연한 말이 아니고 특별히 헬레니즘의 영역에서 성행하고 있던 한 장면을 약술한 것입니다. 희랍에서는 스포츠경기에서 우승한 사람을 축하한다는 뜻에서 친구들이 등에 업고 거리를 누빕니다. 그때는 안하무인이 되어 소란을 피웁니다. 그것이 방탕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엔 어쩔 수 없이 술상을 차려 호탕하게 먹게 됩니다. 그래 술주정이 나오게 되고 호색하게 되고 처음엔 체면도 차리고 부끄러워도 하던 것이 술에 취하자 수치감을 잃어버리고 막되게 굴고 결국은 서로 두들겨 패고 욕하고 싸우게 됩니다. 이러한 일이 거의 정례적인 과정으로 행해지는데 바울은 이것을 마음에 두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축제인듯이 살고 있으며 또 축제인듯이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밤을 낮으로 착각하고 들뜬 축제의 분위기에 젖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것 내 때도 아닌데 매스컴과 거리의 웅성거림에 쉽게 휘말리고 허영에 들떠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결국 내 밤의 준비를 방해합니다. 바울의 권고는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 복종하라는 것이 아니고 내 삶에 직립 관계가 없는 축제 분위기적인 허영과 사치와 안일에 빠진 사고를 이 겨울바람에 깨끗이 날려 보내고 단순하고 순박한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같은 소극적인 금령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놓아버리라는 것은 보다 튼튼한 것. 보다 귀하고 참된 것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어떠한 위기에서도 이것만은 버릴 수 없고,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을 붙잡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의 초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자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의 권고의 초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위기를 당합니다. 위기는 어떤 일정한 기간만이 아니라 순간 순간에 우리의 삶을 찾아 옵니다. 그럴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만은…" 하고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내 생명처럼 여겨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그처럼 귀한 것을 끝끝내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자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정말 이처럼 굳게 예수를 붙들고 있습니까? 그것을 분명히 투시하는 것이 밤에 할 일입니다. 이것이 뚜렷해질 때에만 우리는 밤을 이길 수 있고 그 밤을 한낮을 살듯이 살 수가 있습니다.

세계 정세는 분명히 지금 위기 속에 있습니다. 자유세계는 이제 물질적인 포화상태에 이르러 그 구조와 체제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에 직면해 있으며, 공산세계는 공산세계 대로 새로운 술렁임 속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낮이라면 해가 기우는 황혼이요, 밤이라면 분명히 깊은 밤인 전환과 진통의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서 쉽게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밤의 정경에 취하고 밤의 풍토에 적응하는 밤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곧 인간에서 짐승으로의 전락을 뜻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보나 민족적으로 보나 이 위기를 어떻게 해서든지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정치나 경제의 차원에서 이 밤이 지나고 낮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참 낮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바울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깊은 밤도 오히려 낮이 가까이 온 증거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