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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의 그리스도
히브 13, 12-13
1. 예수를 거부한 그리스도교

성서에서 줄기차게 이어 온 물음은 '오늘 예수가 어디, 어떤 형태로 현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하면 체제로서의 교회가 유지 발전하느냐'는 관심과 병행하는데, 뜻밖에도 이 두 요청은 상호 보완된 것이 아니라 상충되었으며, 교회사(일반적 의미)로 볼 때에 이의 해결을 위해 제도적 교회가 현존의 예수를 흡수함으로 그 물음을 봉쇄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찾은 해결점이라고 하는 것은 교리, 법왕이 베드로의 계승자요 베드로는 예수에게 전권을 위임 받았다는 도그마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종교개혁 후 개신교에 와서도 현존의 예수도 교회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톨릭교회의 그것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들에 따른다면 그리스도의 현존은 설교와 그리고 중세기 때보다 축소된 싸크라멘트에 참여할 때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는 도저히 원하는 바가 충족되지 않으므로 성령파로, 신비주의로, 고행주의로 또는 자선운동으로 현존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그런 주장들은 주변인 운동으로 머물렀고 서구의 신학은 '말씀의 신학'에 정좌한 채 일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중심이 성서에서 제도교회에로 옮겨짐으로써 역사의 예수가 제의의 대상인 그리스도화되는 과정이 뚜렷한 반면에, 비록 그 주류에 깔려서 양적으로는 적고 또 가리워져 눈에 뜨이지 않는 상태로 되었지만 오늘에 살아 움직이는 예수를 확신하고 그를 물어 쉬지않는 계보가 엄연히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있음에도 무색해지고 묵살되는 것은 역사의 예수가 그 때 권력에 처형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에도 그 예수가 살아 움직이면 곧 다시 처형되는 역사가 반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런 것 중에서 이미 생각하고 여러 형태로 발표한 바 있는 몇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2. 처음 교회의 설교 원형

여러분은 그를 불법한 자들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내어 다시 살리셨습니다(사도 2, 23b: 2, 3b).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이 일에 대한 증인입니다'(사도 3, 14-16).

처음 것과 두번째 것을 비교해 보면 나중 것은 '이 일에 대한 증인'이라는 것이 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처형자가 불법으로 죽었다는 것을 증언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그 대열에 앞장 설 각오를 했다는 말이 됩니다. 사실 그후(5장) 박해가 시작되고, 그 때 또다시 "우리는 이 모든 말씀의 증인이요, 하느님께서 그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이 또한 그 증인이시오"라고 합니다(사도 5, 32).

3. 바울

고린도전서 1장 23절에서 바울은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이것이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 되고 이방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지만 …"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대담하게도 예수를 일컬어 '십자가에 달리신 주'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한 죽음이 아니라 의도된, 고의적인 정치적 암살사건이다(고전 2, 8)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전승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지혜있는 자, 권력있는 출신이 아니라 기존 기준에서 볼 때에 어리석고 약하고 멸시받고 존재없는 자 같은 이들이다"(고전 1, 26 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떤가?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으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니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는 것입니다(고후 4, 10).

여기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가 '우리 몸'에 현존한다는 사상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이와 관련해서 부연할 것은 바울은 예수와의 일체감을 고난을 통해 체험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의 이러한 일체감은 민중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b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그리스도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3장에서는 "사실 그(예수)는 약하셔서 십자가에 죽었습니다만 하느님의 권능으로 살아 계십니다"고 합니다. 여기서 예수를 '가난하고' '약하다'고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여기서 바울은 바로 그의 민중성을 그대로 '그리스도'적 색채없이 나타낸 것입니다.

한편 바울은 비록 컨텍스트가 다르긴 하지만 그를 따르는 자의 길은 "이름없는 자 같으나 유명합니다. 죽은 것 같으나 살아있습니다. 슬퍼하는 것 같으나 기뻐합니다. 가난한 것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고후 6, 10)고 합니다. 물론 이상은 바울의 고뇌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민중의식의 구체적 발로요, 거기서 그는 산 예수와의 일체감과 그의 현존성을 경험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4. 마르코

마르코는 이미 발표한 논문들에서 밝혔으니 긴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세 가지 구절만 지적하는 것으로 생각할 자료로 삼겠습니다.

첫째는 1장 14절로서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이라고 나은 부분이고, 둘째는 12장 37절로서 "다윗 자신이 그(메시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는 물음이고, 셋째는 15장 34절로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의 절규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는 모두 정치적 박해의 현장에서 수난당할 때 인간의 절대권을 부정하고, 권력과 메시아 개념을 결부시키는 사고에 도전하여 그것을 부정하고, 권력 아래에서 불의한 재판을 받고, "왜 나를 버렸습니까?"라는 절규가 있는 그 곳에 바로 오늘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이며, 그것의 증인은 교회의 권위자가 아니라 여인, 즉 민중의 유언비어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5. 마태오

그리스도의 현존의 양태를 뚜렷하게 나타낸 것은 마태오의 고유 자료인 마태오 25장 31절 이하의 '최후의 심판' 비유입니다.

거기서 심판자는 주린 자, 목마른 자, 정처없는 나그네, 헐벗은 자, 병든 자, 감옥에 갇힌 자와 자신을 일치시킴으로써 그런 민중들이 있는 바로 거기에 예수가 현존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의 말이거나 교훈이 아닙니다. 마태오는 마르코와 이른바 Q자료(루가도 함께 전한다)를 바탕으로 편집하고 있는데 그 자신만이 전승하는 예수의 말이나 그의 형태가 위의 비유와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징적인 것으로 다음의 두 가지만 열거하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은 다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 내가 너희에게 주는 멍에는 메기 편하고 내가 너희에게 지우는 짐은 가볍다(11, 28-30).

이것은 피해자인 민중을 부르는 소리임에 틀림없다. 이에 상응하는 예수의 행태를 다음처럼 묘사한다.

예수께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들고 허약한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또 무리가 목자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지친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9, 35-36).

6. 루가

루가는 예수의 첫 선포를 다음과 같이 포괄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포로된 자에게 해방을
눈먼 자에게 빛을
눌린 자들을 놓아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라(4, 18-19).

이것은 Q자료인 7장 22절과 상통합니다. 거기에도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이 말은 옥중에 있는 세례자 요한에게 전한 것입니다. 이런 선포가 정치적 수난을 가져 오는 곳에 전해졌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예수가 말하는 복음의 성격을 말해줍니다.

7. 성령강림 사건으로 현존한 이

"예루살렘에 온 각 곳에서 모인 자들 중에서 한 적은 무리가 외쳤습니다. '그들이 누구인가?' '보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 다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니요? 그런데 우리 모두 제각기 날 때부터 써온 나라 말을 그들로부터 듣고 있으니 어떻게 된 일이요?' 그리고 마침내 베드로가 갈릴래아인들을 대표해서 설교했습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했습니다' 하니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했습니다."(사도 2장) 이로써 민중이 주체된 사건이 성령의 사건임을 분명히 하며, 또한 다시 일어난 갈릴래아가 바로 예수 현존의 장임을 극명하게 밝힙니다.

8. 성문 밖 버림받은 현장에

히브리서 13장 12-13절에서는 '예수께서도 자기 피로 백성(laos)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ezo tes pules)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가 당한 수치를 걸머지고 성문 밖에 계신 그에게로 나아갑시다'라고 합니다.

예수는 '성문 밖에서' 죽임당했습니다. 바로 그리로 나아가자는 것은 그곳에 바로 그리스도가 현존하기 때문입니다.


List of Articles
동양의 한 시각에서 본 서구신학 비판
종교고발
성서와 종교
해방과 참여의 신학
정치신학의 동향
혁명의 신학
정치적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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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개혁을 위해 성서를 다시 본다
I 새로 보이는 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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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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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한국 신학의 과제
한국의 신학의 현황과 과제
한국 교회의 예수 이해
한국 그리스도교와 종교개혁
한국 그리스도교의 자기혁명
한국 교회의 구미신학의 유산과 그 한계
 
제5부 도피냐 구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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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냐 구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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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서의 구원론
부활신앙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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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하느님의 선교와 새로운 공동체의 모색
목회론
평신도의 목회
선교신학의 성서적 핵심
하느님의 선교
새로운 공동체
전달자와 해석자
프로테스탄트 교회관과 일치운동
1980년대 교회의 선교적 과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교회상
예수공동체의 신앙고백
한국 교회는 민족의 과제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1부 메시아를 기다리며
때 (시편 39, 5-13)
진통하는 역사 (로마 8, 18-27)
밤이 오면 (로마 13 , 11-14)
아침을 기다리며 (로마 13, 11-14)
밤과 새벽의 분계선 (로마 13, 11-14)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루가 11, 2)
내가 속히 오리라 (묵시 22, 12-13)
마라나타 (묵시 22, 10-20)
성탄절에 보내는 글 (요한 1, 14)
미래의 크리스마스 (루가 2, 1-38)
 
제2부 넓은 문과 좁은 문
해방자 예수 (루가 4, 18-19)
우리는 모두 사찰당하고 있다 (마르 3, 1-6, 22)
"악마!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르 5, 1-15)
분단의 극복 (요한 4, 21-23)
다 팔아 보화를 산다 (마태 13,44-46)
평화와 칼 (마태 10, 34-39)
좁은 문 넓은 문 (마태 7,13-14)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루가 11, 3)
기도의 사건화 (루가 18, 1-8)
인간봉화(人間峰火) (마르 8, 31-38)
"십자가를 지고"의 뜻 (마르 8, 34-38)
신의 침묵은 심판이다 (로마 1, 18-32)
복음의 전진 (필립 1, 12-18)
사건의 신학 (고후 11, 23-33)
 
제3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
오늘의 그리스도 (마르 15, 27-37)
오늘을 사는 청년 예수 (마르 2, 15-17)
그리스도 (마르 8, 27-33)
우리를 지키시고 구해 주시는 이 (고후 1, 8-11)
새로운 존재 (요한 3, 1-12)
이제 다 끝났다 (요한 19, 28-34)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마태 6, 32-33)
예수 그리스도一세상의 생명 (로마 8, 18-28)
문 두드리는 소리 (묵시 3, 14-22)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고전 6,1-11)
권위와 행동 (루가 20, 8)
현존의 그리스도 (히브 13, 12-13)
 
판권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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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권
제1부 옳은 민족 옳은 역사
서양사람 한국사람
구라파에서 본 조국
사상의 주체성
세계 속의 한국
   
제2부 한국의 민족 감정
민족 감정
아키히토 방한과 민족 감정
히로히토가 엄존하는데
민족적 염원
'조국 근대화'와 민족문화
민족 정신 문화 불식시키는 외래 종교
   
제3부 한국의 민족 운동
3•1절과 민족사적 고백
8•15와 해방
3•1 운동과 기독교
민중 운동의 새 기원
4•19혁명과 민주주의의 갈망
4•19의 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4부 한국 민(民)과 종교
민족적 과제와 교회
그리스도교와 민족 공동체
개화기의 한국 교회의 위치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주체성과 신앙
더 이상 종교는 침묵일 수 없다
   
제5부 민족 자결
민족 자결의 민족주의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혼선된 역사
   
제6부 분단과 평화
해방은 통일로써만
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이 땅에 평화를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통일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씨알과 민족 통일
   
제8부 평화의 길
평화와 칼
아시아 평화와 일본
함석헌의 평화 사상
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평화의 실현
분단 극복과 평화
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판권
제1부 절망 속의 희망
실락원 (창세 2-3장)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 (창세 4, 1-16)
카인의 후예 (창세 4, 1-26)
아브라함과 종주권 (창세 16, 3-12)
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제2부 지성소
바벨탑 (창세 11, 1-9)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지성소(至聖所) (출애 3, 5)
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믿음의 조상 (히브 11, 17-19)
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제4부 남은자의 믿음
다윗 왕권의 죄 (삼상 8, 4-18)
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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